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40
#1739.
끌어내다 (4)
담배 연기가 바람에 날려 퍼져 나간다.
강진호가 펴져 가는 연기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총회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거기서 뛰어내린다고 죽겠습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마침 이현수가 입가에 미소를 담고 걸어오고 있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들어 옥상에 다 올라오셨습니까?”
“그냥.”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여기에서 총회를 본 적이 없던 것 같아서.”
“시인이 되셨나. 안 어울립니다.”
강진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언제 하루 날을 잡아야…….
“그래서…… 여기서 본 총회의 광경은 어떠십니까?”
“별다를 게 없네.”
“…….”
이현수가 뚱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그게 중요한 거지.”
별다를 것 없다는 게 말이다.
다르지 않다는 건 유지된다는 의미고, 유지된다는 건 평온하다는 뜻이다.
‘한때는 더없이 바라던 거지.’
“감상에 젖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아냐.”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감상이라는 거창한 말을 들먹일 만한 일은 아니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말이다.
“내가 뭘 위해 싸우는지.”
“그쪽에서 덤비니까.”
“…….”
강진호가 떨떠름한 눈으로 이현수를 돌아봤다.
“아닙니까?”
“…….”
어…… 맞지. 그래, 맞지.
“싸우는데 뭐 이유가 중요합니까? 누가 때리면 그때부터 둘 중 하난 죽는 거죠.”
“…….”
심플하네.
강진호는 한 번씩 이현수가 무학에 재능이 있었다면 어떤 무인이 되었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아무리 못해도 문파 하나는 세웠겠지.’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도 양심은 있는지, 저 인간에게 힘까지 주지는 않았다.
“이유를 찾는다는 것부터 나약하다는 증거입니다.”
“……응?”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복왕들은 그 땅에 쳐들어갈 이유 같은 건 찾지 않았습니다. 그냥 남의 땅이 있으면 쳐들어가 약탈하고 빼앗고 불을 질렀죠.”
이 새끼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물론 회주님한테 그런 걸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그거야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들이나…… 아니, 잠깐만. 예전에 하신 일 아닙니까?”
“…….”
둘 사이의 공기가 어색해졌다.
살짝 겸연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던 이현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늦었어.”
“에이,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나도 실수 하나 해도 되냐?”
“……그럼 저 죽어요.”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지만, 이놈은 목적으로 향하는 수단과 방법이 과할 정도로 잘못되어 있는 인간이다.
이건 이현수 나름의 위로겠지.
“준비는 대충 끝났습니다.”
“그래?”
이현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에 대한 부분도 정리가 됐고, 타국과의 입장도 대충 조율해 뒀습니다.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길어야 오 일 정도일 겁니다.”
“애썼네.”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를 천천히 다시 빨았다.
오 일이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총회의 마무리는 방 이사가 할 겁니다.”
“그렇겠지.”
“마염들은 대충 정리를 하신 것 같고, 원탁 쪽은 위긴스 이사님이 마무리를 하시겠죠. 마교야 뭐, 당연히 장민 장로님이 하실 거고.”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몽골 쪽을 바토르 님이 정리하고 나면 남는 게 없네요. 국가적 부분은 제가 처리할 테니까요.”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지금 여기서 제일 쓸모가 없는 사람이 회주님이라는 거죠.”
“……시비 걸려고 온 거면 정말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좀 나가십시오.”
“응?”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할 일도 없으면서 총회에 붙어 있으니까 할 짓 없이 옥상에 와서 담배나 피우는 것 아닙니까.”
“…….”
“적당히 놀다 오세요. 뒷마무리는 제가 할 테니까.”
“괜찮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방해됩니다.”
“……응?”
이현수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최고 권력자가 그렇게 할 일도 없이 어슬렁거리면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꾸 신경이 쓰이거든요. 오늘 카페만 몇 번 가셨죠?”
“세 번인가?”
“그럴 거면 사무실에 드립기는 왜 가져다 두셨습니까?”
“…….”
“됐으니까, 가서 놀다 오세요. 아니, 될 수 있으면 오지 마십시오.”
이현수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강진호에게 던졌다.
키를 받아 든 강진호의 눈이 더욱 찌푸려졌다.
“……이거, 내 킨데?”
“회주님 책상 위에 있던데요?”
강진호가 할 말을 잃었다.
남의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은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것부터 가르쳐야 하나?
그건 너무 많이 간 건데.
“뭐, 여하튼…….”
그 순간이었다.
강진호의 시선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그 동작이 너무도 급작스러워 말을 하려던 이현수가 움찔할 정도였다.
“회주님?”
그 순간, 강진호의 몸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한쪽을 향해 쏘아졌다.
파아아아아앗!
발을 내디딘 건물의 옥상이 움푹 파이며 거미줄처럼 쩌적쩌적 갈라졌다.
그 충격에 이현수가 뒤로 나자빠졌다.
“뭐, 뭐야?”
그의 눈이 이미 저 멀리에서 점으로 화해 버린 강진호의 모습을 다급하게 쫓았다.
벌컥!
곳곳의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강진호가 몸을 띄우며 만들어낸 기운에 놀란 이사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러고는 두말없이 강진호를 쫓아 전력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마존이시여!”
“주인!”
가장 먼저 도착한 장민과 바토르가 놀란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봤다. 그가 총회 뒤편 야산에 선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마존이시여?”
놀라 달려온 위긴스와 방진훈이 도착할 즈음이 되어서야 강진호가 바라보던 곳에서 시선을 돌려 이사들을 응시했다.
“대체?”
“여기에 있었다.”
“……예?”
“나를 지켜보던 놈이.”
그 말을 들은 바토르가 피식 웃옸다.
“창왕이 감시자를 보냈던 모양이군. 그래서 죽였나?”
“놓쳤다.”
“그래. 그럴…… 뭐?”
바토르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두 배는 더 크게 키우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강진호를 바라봤다.
“놓쳤다고? 주인이?”
“그래.”
바토르가 할 말을 잃었다.
강진호는 강자다.
그것도 사람의 차원을 한참 넘어버린 강자다. 바토르처럼 육체의 강함에 비해 그 속도가 부족한 이도 존재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총회의 이사들 중에서도 강진호의 손을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강진호가 감시자를 놓쳤다는 건?
“……창왕이 직접 오기라도 한 건가?”
“창왕은 아니야.”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기는 이미 한 번 느꼈다. 만일 이곳에 있던 이가 창왕이라면 그가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몰라도 그의 손에서 달아나느라 기운을 내뿜는 단계에서는 강진호의 감을 속일 수 없다.
“그럼 누구지?”
이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이들 중에서 강진호의 눈을 피해 달아날 수 있는 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창왕의 수하 중 하나겠지만…….”
위긴스가 슬쩍 강진호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로드께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단정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위긴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느낀 기운은 이제껏 창왕계에서 느낀 기운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창왕계라 해서 다들 동일한 무학을 익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다 같은 기운을 내뿜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그 자리에 창왕계의 무인들이 모두 왔을 리도 없으니, 이건 성급한 단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느낌이 이상하군.’
강진호의 감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먼 곳을 바라보고 있던 강진호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아무래도…….”
“……예?”
“흥미가 조금 떨어졌던 모양이야.”
강진호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지금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정신병자가 따로 없군.’
겁이 나고 떨린다?
다 잃을까 봐 무섭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강진호는 실제로 그리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왕과의 전쟁으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적의 출현에 이리 피가 끓어오르지는 않을 테니까.
‘누구지?’
흑왕 쪽인가?
아니면…….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무래도 좋다, 아무래도.
어쨌거나 그를 감시하러 저만한 이를 보냈다는 건 그와 대적할 마음이 있다는 거니까.
우습지도 않지.
더없이 평온을 바라면서도 평온함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봐야겠어.”
“예?”
“아니다.”
강진호가 손을 내저었다.
위긴스가 조금 굳은 얼굴로 강진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로드?”
“흐음.”
여하튼 총회 바로 주변까지 적이 침입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이건 총회의 방어가 뚫렸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내버려 둬.”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저만한 놈이 마음먹고 들쑤시면 막을 방법이 없어.”
“그렇긴 합니다만.”
“대신…….”
“알겠습니다. 가족분과 중요 인사들에 대한 호위를 강화하겠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정도면 됐다, 지금은.
하지만 위긴스가 물러나는 순간, 장민이 입을 열었다.
“마존이시여.”
“…….”
“괜찮으십니까?”
“왜?”
“아니, 평소와는 좀…….”
“아냐. 적이 가까이 와서 조금 흥분했을 뿐이야.”
강진호가 손을 내젓자 장민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난다.
‘흥분하신 것 같은데?’
고양감이나 위기감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장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강진호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대답이 궁한 건 강진호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군.’
심장이 계속 뛴다.
스스로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건만, 강진호조차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저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을 받을 뿐이었다.
“돌아가지.”
“예,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뒤를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총회 쪽으로 돌렸다.
정한 대로 흘러가던 흐름에 이물질이 끼어든다.
어쩌면 이게 생각한 것보다 더 큰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강진호가 총회로 걸음을 옮겼다.
* * *
“잡히지는 않았습니다만, 까딱했다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는 무시무시합니다.”
[그렇겠지.]“감시를 지속해 보겠습니다.”
[됐다. 복귀해.]“하지만…….”
[경계하기 시작한 그를 네 수준으로 감시하는 건 무리다. 괜한 목숨 잃지 말고 돌아와라.]“예.”
[그런데 하나.]“예?”
수화기 너머로 한동안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기를 든 이는 감히 재촉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부동자세로 다음 말을 한없이 기다렸다.
[그는 행복해 보이던가?]“……예?”
전화를 든 이가 얼이 빠진 얼굴로 전화를 바라봤다. 이 질문에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다. 괜한 것을 물었군. 복귀해라.]“아,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 사내가 귀에서 뗀 전화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생각하지 마라.
그저 물으면 답하고 명하면 행할 뿐이다.
그게 위대한 이의 명을 듣는 이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사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