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44
#1743.
침공하다 (3)
새하얀 방이다.
티 하나 없는 벽지와 아이보리색의 가구들. 그리고 중간중간 포인트를 준 듯 보이는 검은색의 전자제품들은 이 사무실을 쓰는 이의 성정이 어떤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사무실 안에 짙은 남색의 슈트를 차려입은 사내가 절제된 자세로 앉아 있다.
“하여…….”
그리고 그 앞에서 머리를 깔끔하게 포마드로 정리한 사내가 조심스레 보고를 한다.
“총회는 며칠 내에 중국으로 공격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사내.
창왕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보고를 한 이를 바라봤다.
한참 동안 보고자를 응시하던 창왕의 시선이 다시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로 향했다.
“확실한가를 묻는 건 부질없는 짓이겠지?”
“검증된 정보들입니다.”
그렇겠지.
이들에게 정보를 얻는 방법과 얻은 정보의 진위 여부를 분별하는 법을 가르친 사람은 다름 아닌 창왕 자신이니까.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지만, 그 실수가 이런 다양한 정보에 포괄적으로 나타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말해…….
“공격이라…….”
창왕이 묘한 얼굴로 보고자를 바라봤다.
“묻지.”
“예.”
보고자가 허리를 바짝 세웠다.
“저들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나?”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럼 저들이 자신들의 승산을 잘못 파악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이현수와 차이커창은 그리 멍청한 이가 아닙니다.”
“그도 그렇겠지. 그럼…….”
창왕이 보고서를 탁탁, 쳤다.
“왜 이러는 것 같나?”
보고자가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량첸.”
“예.”
“대답해 봐.”
량첸의 입가가 살짝 떨렸다.
“이게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상대의 의도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량첸이 마른 침을 삼켰다.
“패배를 안다고 해서 그 패배를 얌전히 기다릴 이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인간이란 그리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흠.”
창왕이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량첸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성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다?”
“확률은 충분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질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저항해 보지 않겠습니까?”
그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는 듯 량첸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자신들의 지위가 보장된다면 항복을 고려하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닙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일단 고양이를 물고 보는 법이지요.”
창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량첸.”
“예, 하명하십시오.”
량첸을 빤히 바라보던 창왕이 입을 열었다.
“머리는 쓰라고 있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듣기에는 그럴싸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감당할 수 없는 적을 상대로 할 때는 전투의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하는 법이지. 반격의 여지라는 건 내가 어떠한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나 생겨나는 법이다. 그렇지?”
량첸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이 부분이지. 승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시간을 끌려고 했을 거야. 마침 국가도 다르고, 반도는 방어에 최적화되어 있지. 다시 말해…….”
창왕이 손가락을 까딱댔다.
“한국은 거대한 성과도 같아. 저들은 물자를 보급받는 농성전을 치를 수 있다는 거지.”
“창왕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농성을 해봐야 말라 죽을 것 같으니 성을 버리고 공격을 한다? 그건 미치광이나 할 짓이야. 상식적이지 않지.”
량첸의 입가가 살짝 경련했다.
전쟁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야 언제나 벌어지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반박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대는 다름 아닌 창왕이니까.
게다가…….
‘적은 미치광이가 아니야.’
차이커창의 지력은 창왕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이현수라는 작자는 이번에 창왕계를 제대로 물 먹인 이가 아니던가.
세상을 통틀어 몇 없을 계략가들이 함께 움직이는데, 멍청한 짓거리를 한다?
그럼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둘 다 병신이 되었거나, 아니면 저들의 의도를 이쪽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든가.
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는 감히 창왕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법이다.
“뭘까?”
창왕이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뒤로 젖혔다.
“그러니까, 지금 저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전장을 보고 있다는 건가? 내가 보지 못하는 가능성을 보고?”
“서,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흐음.”
창왕이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량첸은 저 미소가 결코 즐거움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창왕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 창왕이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상황은 애초에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흐음, 모르겠군.”
창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빤해서 내가 의심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내 예상을 뛰어넘는 뭔가를 준비한 건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전자면 실망스러울 텐데.”
“혹시 그들이 우리가 이 정보를 얻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까?”
“그럴 정도로 멍청이들은 아니지.”
창왕이 그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이라는 듯 딱 잘라냈다.
“우리는 그들의 정보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의 정보를 보고 있겠지. 이건 서로 레이더를 켜고 하는 전쟁이야. 어디로 움직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상대가 보고 있음에도 그쪽으로 움직여야 할 당위가 있느냐가 중요하지.”
량첸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이곳까지 가버리면 그의 능력으로는 더는 창왕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귀로 들려오는 말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말의 안에 숨어 있는 함의(含意)를 이해하는 건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수들의 바둑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군.’
바둑돌이 어디에 놓였는지는 빤히 보이지만, 그 바둑돌이 대체 왜 거기에 놓아지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량첸은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이 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이것과 닮아 있을 거라고.
신이 어떤 행위를 하여 어떤 결과가 돌출된다면 인간은 그 행위의 목적과 안배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사람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도 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가 창왕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홍왕계는?”
“움직일 겁니다. 아직은 움직임이 없지만, 시간문제겠죠.”
“벗어나지 마라, 량첸.”
감정 없는 목소리가 량첸을 찌른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량첸의 이마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미묘한 반발감이 그의 가슴을 장악한 모양이다.
“웅크린 채 조금도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반응을 보기 위해 공격해 봤지만, 철저하게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창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빠르다, 예상보다 빨라. 그럼 이 시기를 당기게 한 요인이 뭘까?”
창왕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아주 작은 껄끄러움.
정말 작은 껄끄러움에 불과하다.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저들의 그 어떤 공격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완벽에 가까운 상황을 살짝 뒤흔드는 미묘한 불순물이 창왕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요원을 모두 풀어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모조리 빼내.”
“이미 한계까지…….”
“신분을 숨길 필요도 없다. 적발돼도 상관없다. 지금까지 한국과 홍왕계에 잠입시켜 둔 정보원을 모두 잃어도 된다. 사소한 것 하나도 빼놓지 말고 모두 보고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량첸이 고개를 숙였다.
창왕이 더 이상 말이 없자 량첸은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방을 나서는 량첸의 가슴에 미묘한 불안감이 파고들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물론 그건 옳은 선택이다. 그 사소한 정보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찾아내고, 저들의 전체적인 움직임과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창왕뿐일 테니까.
하지만…….
‘아니, 아니겠지.’
그건 너무 과한 생각이니까.
* * *
“더 풀어.”
“여기서요?”
“그래. 아무거나 다 풀어버려. 장민 장로님이 요즘 머리털이 좀 빠지는 것 같다는 것도 풀어버려.”
“……실장님, 목이 두 개는 아니실 텐데.”
“그럼 그건 빼고.”
이현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소한 것 하나 빼지 말고 모조리 다 털어놔. 애들한테도 주변에 조금이라도 그쪽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놈이 있으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하라고 해.”
“……진짜 괜찮겠습니까? 그럼 저놈들이 그 정보를 고스란히 다 알게 될 텐데요?”
“괜찮아.”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그게 목적이니까.”
“…….”
박희태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실장님, 대체 왜 이런…….”
“저쪽에서 지금 정보를 얻으려고 난리를 칠 것 아냐.”
“그렇죠.”
“그러니 정보를 줘야지. 세세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
아니…….
그러니까 왜 그래야 하냐고.
박희태의 표정을 읽었는지,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절대왕정의 최대 피해자는 왕이지.”
“……황제겠죠.”
“그게 그거지. 여하튼 창왕계의 가장 약점은 아주 간단해. 창왕이 너무 대단한 인간이라는 거지. 이건 예전에 회주님도 똑같이 겪은 문제지.”
“……좀 풀어서 설명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제 수준에서는 실장님도 충분히 대단한 인간이니까. 그 갭을 감안해서요.”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뛰어나지 않은 인간은 남을 믿는다. 어차피 자기가 해도 별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뛰어난 인간은 아무도 믿지 못해. 누가 뭘 해도 자신이 직접 한 것에 비하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거든.”
“……그렇죠.”
“그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직접 할 수밖에 없는 거야. 누구도 믿지 못하니까. 특히나 창왕 같은 괴물이면 더하겠지.”
박희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실장님도 별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맞아. 그런데 그놈은 나보다 몇 배는 더 심한 완벽주의자거든. 그놈은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을 머리에 넣어두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사는 편집증 환자야.”
이현수가 낄낄대며 웃었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 유능한 이가 스무 명이 넘는 팀원을 데리고 조별 과제를 하는 거지. 일은 스무 명이 해야 하는 분량인데, 분담한 놈들이 조사해 온 자료를 보면 모니터를 뽑아서 내려쳐 버리고 싶은 심정일걸? 그럼 어떻게 될까?”
“……직접 하겠죠.”
“그렇지.”
이현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니 도와주겠다고, 어설프게 조사를 하면 할 일이 줄어들 테니까, 정말 꼼꼼히 다 생각할 수 있도록 자료량을 늘려주겠다, 이 말이지. 정보가 늘어나면 가능성도 늘어나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이현수가 휘휘 손을 내저었다.
“그러니 가서 있는 대로 다 지껄여 버려. 창왕이라는 슈퍼컴퓨터가 고장 나는 게 먼저일지, 아니면 우리가 낱낱이 까발려지는 게 먼저일지 어디 한번 보자고.”
“…….”
박희태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할 발상인가?’
들어보면 창왕도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 이현수의 똘끼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뭐 해?”
“아, 알겠습니다.”
박희태가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이현수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모르지, 네가 스파이일 수도.’
그래도 상관없다.
창왕은 지금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할 수 없을 테니까.
아니, 진실인 상황과 거짓인 상황을 모두 생각할 것이다.
“고민한 만큼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현수가 씨익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