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45
#1744.
침공하다 (4)
“흑오대(黑五隊)가 무너졌습니다!”
“청이대(靑二隊) 투입해.”
“지금 거리로는 불가능합니다. 그전에 무너질 겁니다.”
“그럼 예비로 빼놓은 황칠대(黃七隊)를 거기로 보내.”
“알겠습니다!”
차이커창이 입에 문 담배를 깊게 빨았다.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게 하나도 없다. 하나하나 심장을 송곳으로 찔러 대는 듯한 소식들뿐이다.
하지만…….
‘상정 범위 안이야.’
이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
“섬세하신 분이신지라.”
물지 않는다.
이건 짐승으로 따지자면 입질에 가깝다. 살짝 이빨을 대보는 것으로 상대의 반응을 파악하고 어찌 할지를 정하려는 것이다.
껄끄러운 거겠지.
있는 힘껏 물어뜯었는데 그 여려 보이는 팔뚝에 쇠바늘을 찔러 넣어 뒀을 수도 있으니까.
차이커창이 담배를 세차게 빨아댄다.
그의 눈이 오랜만에 미묘한 호선을 그렸다.
‘껄끄럽다, 이거지?’
안다.
아직 그는 창왕의 손바닥 위에 있다. 그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창왕의 손을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변화는 생겨나고 있었다.
손 위에 올려진 게 같다고 한들, 모든 게 같을 수는 없다. 손 위에 올려진 게 저항할 수 없는 장난감이라면 제 대로 굴 수 있겠지만, 그게 만약 독을 가진 독사라면?
손 위에 있다고 해서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지.’
지금은 그런 과정이다.
아마 창왕 역시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독사의 모양을 한 장난감이 숨을 쉬기 시작한 것에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건드려 본다.
갑자기 뱀이 살아나 자신의 손을 물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가볍게 톡톡.
‘그 가벼운 공격에 맞아 죽을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야.’
차이커창이 자신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피부가 아플 정도로 얼굴을 잡아당겼다.
오싹하다.
이런 감각은 생전 처음 느껴본다.
지금 그는 확실히 창왕과 소통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그를 짓밟고 농락한 자. 감히 같은 반상(盤上) 위에 앉을 엄두도 나지 않던 이가 지금 그의 건너편에 앉아 있다.
‘저열하군.’
차이커창의 입가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그놈은 미친놈이야.’
차이커창은 어떻게든 창왕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려 했다. 그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만 이현수의 방향성은 완전히 다르다.
이현수는 자신이 올라가는 대신 창왕을 끌어내리는 쪽을 택했다. 어차피 정정당당히 붙어서 싸움이 되지 않는다면, 상대를 진창으로 끌어내린다.
발목에 진흙이 차오르는 전장에서는 산뜻한 풋워크도 엉망이 되고, 허리에 제대로 힘이 실리지도 않을 테니까.
상대의 허리를 잡고 늘어져 진흙 바닥을 구른다.
그러고는 외친다.
‘너 역시 진창을 구르는 인간일 뿐이다, 인가?’
끔찍하고 저열하다.
하지만…….
웃기지 않은가.
고고하기 짝이 없는 상대의 발을 붙들고 늘어져 진창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이 쾌감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등골이 오싹오싹하다.
“결국 나도 좋은 놈은 아니라는 거지.”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차이커창이 얼굴을 가다듬고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보인다.’
과거의 그는 창왕의 공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이해한 게 아니었다. 그저 창왕의 의도대로 말려 들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차이커창은 창왕의 의도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
상대를 자신이 만든 전장으로 끌어들여 족쇄를 채운다는 것.
“끝내주는 기분이군.”
으드득.
차이커창이 담배 필터를 물어뜯는다.
그러고는 필터가 뜯겨 나간 생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담배 연기가 폐를 제멋대로 할퀴어 댄다.
“차이커창 님, 홍왕께서…….”
“지금 가지.”
차이커창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이런 간단한 지휘 따위는 그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는 법이니까.
“부르셨습니까?”
차이커창이 더없이 경건한 자세로 홍왕을 배알했다.
내뻗은 손끝, 조아린 고개, 그리고 단단히 힘이 들어간 허리까지…… 어디 하나 경배의 뜻을 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어딘가 다르다.
‘내가?’
아니, 아니다.
그의 믿음은 신앙처럼 굳건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가 아니라 바로…….
차이커창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홍왕을 바라본다.
과거, 그가 있던 북경 인근의 궁이 아니기에 홍왕은 단상 위가 아닌 그와 같은 높이에 발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앉아 있는 곳도 화려함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의자일 뿐이다.
그 때문일까?
눈높이가 같아졌기 때문에?
홍왕을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던 위엄이 지금 이 순간에는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긍정적인가, 아니면…….
“혼란스러워 보이는구나.”
차이커창이 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당연하다.
홍왕은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홍왕이 그의 마음에 있는 의혹과 불안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그리 걱정할 것 없다.”
차이커창이 슬쩍 고개를 들어 홍왕을 바라봤다.
석상을 깎아 만든 것처럼 단단하기 짝이 없던 홍왕의 표정이 느슨하게 풀려 있다. 곧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차이커창.”
“예, 홍왕이시여.”
“세상에는 한 가지 모순이 존재하지.”
홍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승리는 모든 것을 얻게 한다. 하지만 좌절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지. 그렇다면 무엇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차이커창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과거의 그였다면 그렇다 해도 승리라고 말했을 것이다. 좌절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는 말은 영원히 승리하지 못한 이들이 위안삼아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홍왕을 앞에 두고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더 강해야 한다.”
“…….”
“강함이란 누군가를 이끄는 힘이다. 또한 강함이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지. 네가 나를 앞에 두고 대답을 망설이는 것은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홍왕이시여!”
“어떠하더냐?”
홍왕이 가만히 차이커창을 내려다봤다.
“나는 나약한가?”
“홍왕께서는…….”
홍왕이 빙그레 웃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나약하지 않다.”
“…….”
“그저 나약했을 뿐이다.”
홍왕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걸어 창가로 향했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는 홍왕의 눈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마치 과거의 패기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것이 그저 변명으로 들린다.
변명과 홍왕이라는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단어가 지금 차이커창의 머릿속에서 조합되고 있었다.
‘이 무슨 불경스러운.’
신앙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도전을 받는다.
하나…….
“이해하느냐?”
“……예?”
차이커창이 움찔하여 다시 고개를 숙였다. 홍왕의 말을 되묻다니, 과거의 그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건가?’
지금 이 순간에? 이 중요한 순간에?
“……좋구나.”
차이커창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홍왕의 말 때문에?
아니, 홍왕의 말에 어려 있는 그 이상한 진정성 때문이었다.
“차이커창.”
“예, 홍왕이시여.”
“너는 나를 믿느냐?”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홍왕이 미묘한 미소를 짓는다.
“하면 묻겠는데, 너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중 누구를 더 신뢰하느냐?”
차이커창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대답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그는 홍왕을 모욕할 수 없고, 또한 홍왕의 앞에서 거짓을 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답을 내가 알려주마.”
홍왕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는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보다 더 신뢰한다.”
“…….”
차이커창이 고개를 번쩍 들어 홍왕을 바라보았다.
이건…….
“이상한 말이겠지. 너의 마음에는 이미 의혹이 깃들었음에도 내가 이리 말하니 말이다.”
“저는…….”
“하지만 나의 말은 틀린 게 없다. 너는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보다 더 신뢰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속하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의심하기 때문이다.”
홍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과거의 나를 신뢰했던 이유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지. 맹목적이다. 그래, 그저 맹목적이지. 하지만 그 맹목적인 믿음이란 상대의 절대성에서 기원한다.”
홍왕은 무너지지 않는다.
홍왕은 세상에서 가장 강인하다.
홍왕만이 그들을 미래로 이끈다.
그 굳건한 믿음이 차이커창을 지탱했다. 단 한 치의 의문도 품지 않은 채 그저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는 지금의 나를 의심한다. 하지만 믿지. 의심하지 않아서 믿는 이와 의심함에도 믿는 이, 둘 중 어떤 믿음이 더 강하겠느냐?”
“……후자입니다.”
“그래, 그렇다.”
홍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패배를 모르는 것뿐이었지. 모르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는 없으니까.”
홍왕의 얼굴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너와 마찬가지다, 차이커창. 의심을 모르는 이는 믿음을 논할 수 없다. 부처께서는 깨달음을 얻기 전 수많은 의혹과 유혹에 맞서 싸우셨다고 하지. 부처께서 보리수나무 밑에서 수련을 하실 때, 수많은 마귀들이 그를 유혹하였다 했다.”
홍왕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럼 내 묻겠는데, 부처께서 유혹을 알았기에 그 깨달음은 불완전한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께서 본디 인간이셨기 때문에 날때부터 신성을 얻은 이들보다 못한 것이더냐?”
“오히려 그렇기에 더 위대합니다.”
“그래. 그러하다, 차이커창.”
홍왕이 눈을 감았다.
“나는 두 번의 패배를 이 몸에 새겼다. 한 번은 부정했고, 한 번은 강제됐다. 그렇기에 이제는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고, 어떻게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다시 눈을 뜬 홍왕의 눈에 더할 수 없는 패기가 어렸다.
“이제는 맞설 뿐이다.”
그 목소리는 과거의 홍왕의 목소리처럼 강대하게 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홍왕이 내던 목소리 이상으로 무언가를 울려 댄다.
“홍왕이시여.”
“의심하라, 차이커창. 나를 의심하고, 나에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경계하라.”
홍왕이 과거의 그처럼 단호하고 패기로운 얼굴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증명하리라. 의심한 자가 결국에는 의심하지 않은 이들보다 더 단호한 믿음의 영역에 이르듯이, 패한 자가 결국에는 패하지 못해본 자보다 더 높은 곳에 이르듯이, 나는 나를 이끌 것이다.”
쿵!
차이커창이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의심이라…….
웃기지도 않는다.
어찌 저분에게 의심이란 단어를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홍왕.
세상을 그 발아래 둘 이다.
“의심하지 않습니다, 홍왕이시여!”
“시작은 창왕부터다. 준비는 모두 끝났느냐?”
“예, 완벽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시작하자꾸나. 창왕에게 설욕하는 것으로부터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겠다!”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굳건한 의지를 담은 얼굴로 차이커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강진호. 그리고 이현수!’
마지막에 서 있는 이는 결국 홍왕이 될 것이다.
차이커창이 그리 만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