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54
#1753.
터뜨리다 (3)
“제양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항저우, 난창에 적 출현했습니다!”
“상양! 상양이 뚫립니다!”
“내몽골 쪽에도 적이 출현했습니다! 현재 우란차부 시로 이동 중입니다!”
지도 곳곳에 검붉은 점이 찍히기 시작했다.
가오쉰의 눈이 일순 멍해졌다.
‘이게 뭔 상황이야?’
상대의 진입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런데 대륙 곳곳에서 저들이 출현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방어선이 뚫린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바, 방어…….”
가오쉰이 입을 닫았다.
‘뭘 어떻게 방어하라고 해야 하지?’
방어란 기본적으로 상대의 공격 방향을 선점하여 막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지금 대륙 전체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뭘 어떻게 막으라는 건가.
아니, 애초에 막을 곳은 있나?
혼란스러운 가오쉰의 귓가에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찔러 들어왔다.
“홍왕! 홍왕계가 북상합니다!”
“뭐?”
“진격로…… 빌어먹을, 진격로가 파악 안 됩니다! 최소 열다섯 곳 이상으로 분산해서 이동하고 있습니다.”
가오쉰의 입이 벌어졌다.
‘이 미친놈들이.’
평소 누군가 이런 전략을 썼다면 비웃었을 것이다. 병력을 나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일이다. 특히나 더 강한 세력을 상대할 때 병력을 함부로 나눈다면 각개격파될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 가오쉰은 저들을 비웃을 수가 없었다.
“그럼 대체 몇 군데를 동시에 확인해야 한다는 거지?”
지도에 찍힌 붉은 점이 스무 개가 넘는다. 그런데 여기에 홍왕의 병력들까지 추가된다고?
사람이라면 이 모든 전장의 현황을 동시에 파악할 수가 없다.
“차, 창왕께는 보고가 들어갔는가?”
“실시간으로 함께 보고하고 있습니다.”
“…….”
가오쉰이 반사적으로 전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창왕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본능적으로 창왕의 지시를 기다리게 된다.
잘못된 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게 가장 정답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뭔가 잘못됐어.’
가오쉰은 본능적으로 지금 전황이 뒤틀리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다들 침착하게 우선은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라고 해!”
“예!”
으드드득.
가오쉰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잘도…….’
핏발 선 그의 눈이 상황판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한동안 추가적인 명령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 * *
“아니, 늦잖아, 이 짱깨 새끼야!”
[너, 내가 꼭 죽인다. 기억해 둬라.]“더럽게 무섭네요, 병신아!”
이현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동시에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느려 터진 새끼들이 진짜! 빨리 안 움직여?”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저들이 이쪽으로 투입한 병력이 예상보다 조금 더 많았을 뿐이다. 1차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문제없으니까, 그 쓰레기 같은 주둥아리 처닫아라. 찢어버리기 전에.]“예이, 예이. 더럽게 무섭네요.”
이현수가 낄낄대며 웃다가 정색했다.
“한 타이밍만 놓쳐도 거꾸로 다 당한다. 알고 있겠지?”
[물론이다.]상황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
창왕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름 아니라 창왕이 가장 뛰어나다는 점이다. 모든 정보와 모든 상황은 창왕에게 도달하고, 다시 명령이 내려지게 되어 있다.
그건 틀린 방법은 아니다. 창왕은 차이커창과 이현수를 가지고 노는 존재니까. 조금 뛰어나다 싶은 이들이 수십 일을 고민해서 내릴 만한 결론을 창왕은 잠시 동안의 사유만으로 가뿐하게 뛰어넘어 버린다.
그런데 왜 굳이 머리를 써서 고민하겠는가. 명령을 기다리면 그만인데.
“과부하는 걸었어. 하지만 아직 몰라!”
이현수와 차이커창이 준비한 칼날이 창왕을 찌른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 불안함을 어찌할 수 없는 건, 역시나 상대가 그 창왕이기 때문이다.
이현수는 여전히 창왕이라면 이 상황을 단번에 타개해 버릴 묘수를 내놓을 수 있다는 공포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사유를 완전히 뛰어넘는 존재를 보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얼마나 높이 있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뒤를 돌아보지 않는 도박.
목을 길로틴에 밀어 넣고 카드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운이 없거나 상대가 그의 예상보다 더 뛰어나다면, 그 순간 목이 잘린다.
“빨리 움직여! 빨리! 한순간이라도 뒤처지면 지옥까지 떨어진다. 지금 바닥이 꺼지고 있잖아, 이 새끼야!”
이현수가 전화를 부수듯 끊어버리고는 몸을 홱 돌렸다.
이제는 상황실에 앉아 있는 게 의미가 없다. 그 역시 다른 이들을 믿고 그가 해야 할 일을 할 순간이다.
이현수가 뒤쪽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자라 새끼가.”
차이커창이 끊긴 전화를 바라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앞에 있으면 말도…… 아니, 이 새끼는 앞에서도 제 할 말 다 했지.”
목이 열 개는 아닐 텐데, 대체 이런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아니, 배짱이라고 칭해주고 싶지도 않다. 그냥 겁대가리가 없는 거겠지.
“각 부대에 전해! 속도를 높이라고! 합류가 늦으면 지휘관부터 목을 치겠다!”
“예!”
차이커창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뒤쪽을 돌아본다.
“흐음.”
한 사내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시작하면 되는 건가?”
“예, 홍왕이시여!”
차이커창이 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홍왕이 눈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예의는 생략해라. 전시라는 걸 잊었더냐?”
“죄송합니다.”
“나는 이 전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순간순간의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나보다 네가 나을 터. 차이커창.”
“예!”
“나의 머리가 되어라. 나는 너의 몸이 되겠다. 거침없이 지시하라.”
“명심하겠습니다!”
“가자!”
“예!”
차이커창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홍왕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그런 그들의 뒤로 홍왕계의 최정예들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길지 않아!’
대륙이라는 거대한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지만, 이 전쟁은 절대 길게 가지 않을 것이다. 승부는 한순간에 난다.
차이커창의 눈이 시리게 빛났다.
‘우리는 오늘 대륙을 수복한다.’
* * *
찰칵.
“후우우우.”
뿌연 담배 연기가 어둠이 내려앉은 밤하늘로 천천히 퍼져 나간다.
‘별이 없네.’
강진호는 완연한 어둠으로 물든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너무 자연스럽게 느꼈고, 한때는 그저 그립기만 했다. 그리고 한때는 감격스러웠고, 이제는…….
음…….
딱히 뭔가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람이란 바뀌어가는 존재이니까. 그에게 의미를 가지던 것들 중 몇 가지는 그 의미가 바래 버렸고, 딱히 의미가 없던 것들이 새로운 의미가 되었다.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흐를 뿐이다.
“회주님.”
“음?”
“……이 실장님이 늦는데, 찾으러 갑니까?”
“냅 둬.”
강진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늦으면 늦는 이유가 있는 놈이지. 그리고…….”
강진호가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봤다.
“아직 시간 안 됐잖아?”
“그, 늦을까 싶어서…….”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긴장하지 말라는 말은 의미가 없겠지만, 적당히 쫄아.”
“……쫄기는 누가 쫄았다고.”
이명환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뒤로 한 발 물러선다.
“아, 좀 나대지 말고 들어와 있어.”
“저 새끼, 저거. 회주님한테 말 한마디 더 걸어보려고 괜히 저러는 거 아냐?”
“여하튼 진짜. 찐따 새끼가 권력을 얻으면 저렇게 된다니까.”
이명환이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근데 이 새끼들이?”
“뭐?”
“…….”
마염들이 동시에 눈을 부라리자, 이명환이 말없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에이, 저렇게 많으면 못 이기지.
강진호가 그런 마염들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재미있네.’
과거, 그를 따르던 친위대를 부활시켜 보겠다는 의도로 다시 만든 마염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들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그 의도를 충족시켜 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시 마염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설 상황이 되자 괜히 과거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나누지 못했지.’
그저 방패막이였을 뿐.
그리고 그를 충실히 따르는 부하들이었을 뿐이다.
결국 그의 과거는 일방통행.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마음을 전하고 충성을 바쳤지만, 그는 그저 현재라는 이름의 과거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가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다면, 어쩌면 그의 두 번째 삶은 많은 것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됐어.”
“예?”
“아니야.”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 삶을 후회한다는 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지금이다.
“다들…….”
강진호가 입을 열자 모두 입을 닫고 강진호를 바라본다.
“죽지 마라.”
“…….”
마염들이 강진호를 빤히 보다가 씨익 웃었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회주님은 죽으실 일이 없을 겁니다. 저희가 막을 테니까요.”
뭔가 할 말이 더 있지만,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말이라는 건 구구절절해질 뿐이니까.
그때, 한쪽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오시네.”
“저 양반은 아무리 약해도 그렇지, 속도가 저게 뭐야? 거북이 기어가네.”
“전공이 아니시잖아. 내버려 둬.”
“다 들린다, 이 새끼들아!”
이현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뛰어와 숨을 골랐다.
“준비 다 되셨습니까?”
“너만 준비하면 돼.”
“……예.”
이현수가 살짝 궁시렁거리며 연무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마법진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이게…….”
마법진의 이곳저곳을 점검하는 이현수를 보며 마염들이 불안한 눈을 했다.
“괜찮나, 진짜?”
“왜?”
“저 양반, 야매잖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데.”
“……그렇지?”
“아니, 우리는 왜 하필 저 양반이냐고. 다른 좋은 기사(?)들도 많은데.”
등 뒤로 쏟아지는 비난과 우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이현수는 꿋꿋했다.
“준비됐습니다! 올라오시죠!”
“……진짜 괜찮은 거죠?”
“아, 불안한데.”
마염들이 투덜거리면서도 하나둘 마법진 위로 향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한 사람만은 그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남은 이를 보며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회주님?”
“…….”
“뭐 하십니까? 바쁩니다. 빨리 오십시오.”
“……생각해 봤는데, 나는 그냥 헤엄쳐서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얼마 걸리지도 않을 텐데.”
“뭔 소리세요! 빨리 오세요.”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른 쪽에 전력을 조금이라도 더 보태기 위해 한 선택이지만, 너무 무모했던 게 아닌가 싶다.
“……잘할 수 있지?”
“지금 저 무시하십니까? 제가 못하는 게 있습니까?”
“싸움.”
“……사람이 못하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지.”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으며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잠시만요. 저쪽이랑 연락 좀 하고.”
위성전화로 반대편과 교신한 이현수가 비장한 얼굴로 마법진에 손을 댔다.
“시작하겠습니다!”
“제발 살아서 도착만 했으면 좋겠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왔어야 하는데.”
“아, 그럴걸.”
“좀 닥쳐, 이 새끼들아! 집중 안 되잖아!”
이현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마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본다.
“닥치시라는데요.”
“…….”
이현수와 강진호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아니…….”
“됐고, 그냥 빨리 출발이나 해.”
“……예.”
이현수가 한숨을 내쉬고는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세상에서 제일 긴장감 없는 출진이네.’
뭐.
이것도 나름 총회답지.
“갑니다!”
이현수를 비롯한 마염들의 육체를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휘황찬란한 빛이 휘감았다.
이윽고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곳에는 피다 만 담배만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