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56
#1755.
터뜨리다 (5)
부우우우웅.
어두운 국도를 한 대의 차가 과격하게 내달린다. 도로의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차가 쉴 새 없이 들썩였지만, 차를 모는 이는 액셀을 밟은 발에서 힘을 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흐음.”
아침까지는 정저우에 도착을 해야 한다. 너무 늦으면 쉴 시간도 없이 출근을 해야 할 판이다.
“도로가 이래서야!”
사내가 언성을 높였다.
세금은 있는 대로 다 걷어가면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도로가 거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주변에 딱히 인가도 없고 건물도 없는데 도로가 이리 구불구불해서야 되겠는가.
“여하튼.”
사내가 짜증을 내며 창문을 내렸다.
거친 바람이 얼굴로 쏟아진다. 하지만 사내는 개의치 않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칼! 찰칵!
오늘따라 담배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에이, 썩을!”
사내가 신경질을 부리며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겨우겨우 불이 붙자 과격하게 담배를 빨아댄다.
차창에 그의 담뱃불이 비춰 새빨갛게 빛났다.
“별게 다 신경을…… 응?”
사내가 미간을 좁혔다.
‘뭐지?’
방금 차창에 비친 담뱃불 옆으로 뭔가가 보인 것 같았다.
‘아니겠…….’
반짝.
사내가 눈을 끔뻑였다.
‘뭐가 있는데?’
응? 뭐가 있다고?
사내의 눈이 계기판으로 향한다. 지금 그의 차는 시속 80㎞로 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도로 위도 아니라 도로가에 그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산짐승인가?’
아니, 산짐승이 이런 속도로 달릴 수가 있던가?
사내가 기겁을 하며 창문을 확 내렸다.
그러고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닿지 않는 길 구석의 어둠을 바라봤다.
“뭔가 있었…….”
사내의 눈이 뒤흔들렸다.
“뭐, 뭐야!”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모습이 점점 더 명확하게 보였다.
“사람?”
산짐승이거니 생각한 것들이 산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검은 의복을 입은 이들이 단체로 줄을 지어 달리고 있었다.
‘미친! 지금 80㎞라고!’
단거리 선수도 시속 40㎞를 넘지 못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사람이 무슨 수로 80㎞로 달리겠는가.
이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거나 그 비슷한 무엇임에 틀림없다.
“어, 어어…… 어!”
그 순간, 앞만 보고 달리던 한 사람이 고개를 돌려 자신 쪽을 바라본다.
“헉!”
사내가 헛바람을 삼켰다.
그러자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가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앞?’
고개를 홱 돌려 앞을 바라본 사내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길이 급격하게 꺾이는 커브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핸들을 틀 시간도 없이 차가 도로를 이탈해 논으로 돌진한다.
“아아아아악! 빌어먹을!”
쿵! 쿠우우웅!
차량이 물 위를 달리는 보트처럼 튀어 올랐다.
미친 듯이 브레이크를 밟아보지만, 차는 멈춰 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악! 아아악! 아악!”
핸들에 머리를 처박은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핸들을 뒤틀었다.
쿵! 쿵!
뒤뚱거리던 차가 옆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사내가 의자에 매달린 채 숨을 몰아쉰다.
“……뭐야, 대체? 빌어먹을.”
힘없는 뇌까림이 흘러나온다.
“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뒤집힌 차를 바라본 이가 슬쩍 뒷머리를 긁었다.
‘알려줬는데.’
어쨌든 알려주긴 했으니, 그의 잘못은 아니다.
“속도 더 올려!”
“예!”
달리던 이들이 도로 안으로 진입했다. 야간이라 멀리서 차가 다가오면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미리 알 수 있다, 그때는 살짝 옆으로 빠지고, 차가 없으면 다시 도로를 달린다.
“그런데 카메라는 전부 무시합니까? 밤이라도 찍힐 수 있을 것 같은데.”
“신경 쓰지 마!”
“예!”
선두에 선 이가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어차피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창왕이 아니야. 은밀한 것도 좋지만, 속도를 우선시해야 해!”
출발 전에 이현수에게 들은 지시다.
“달려! 더 빨리!”
커다란 고함 소리가 어둠에 물든 도로 위로 퍼져 나갔다.
* * *
차이커창이 이를 악물고 달렸다.
‘생각할수록 미친 짓이야.’
이곳은 중국이다.
저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중국의 대륙도 가로지르면 2,000㎞가 넘는다. 그 광활하기 짝이 없는 대륙에서 지금 그들은 기동전을 펼치고 있다.
“차이커창.”
“예, 홍왕이시여.”
“이게 확실히 통하는 전략인가?”
차이커창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보증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하지만 저희로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이 이상의 전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홍왕이 미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희라…….’
차이커창과 이현수를 말하는 거겠지. 과거의 차이커창이었다면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자신을 이현수와 묶어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차이커창도 나름 이현수와의 유대감이 생긴 모양이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이런 분야에 있어서는 너에 미치지 못한다. 조금 자세히 설명을 할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홍왕이시여!”
차이커창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시작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들이 노릴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 * *
“상륙 자체를 막는 겁니다.”
“그렇겠지.”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슬쩍 돌려 몸을 웅크리고 있는 마염들을 바라보았다.
“우우웩!”
“아니, 이거…… 원래 이렇게 멀미가 나나?”
“됐어. 살아서 도착한 게 어디야?”
“……이 새끼들이?”
눈을 부라리자 마염들이 슬쩍 이현수의 시선을 피했다.
실제로 붙으면 한주먹거리는커녕 한 손가락으로도 눌러 죽일 수 있는 이현수지만, 그래도 이현수는 무섭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계속해 봐.”
“예.”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리고 설명을 이어갔다.
“간단한 이치입니다. 무인은 물고기가 아니고, 날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육로는 없습니다.”
“흠.”
“그럼 격추를 하든, 배를 침몰시키든, 어떤 식으로든 중간에서 요격할 수 있으면 대박 치는 거죠.”
“그걸 노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좀 미묘하죠.”
“응?”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막아야 하지만, 창왕도 우리가 어떻게든 그걸 해결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그걸 막으면 되잖아.”
“아니죠.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저희가 침공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공격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 문제는 저희가 어떻게든 해결을 했다는 게 서로 간에 합의가 된 거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해하고 끄덕이시는 것 맞죠?”
“……그럼.”
“…….”
이현수가 잠시 흐린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딜레마가 시작되는 거죠. 막으면 대박인데, 못 막을 확률이 높다. 그럼 병력을 투자해야 할까요, 투자하지 말아야 할까요? 회주님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소한만 투자하지 않을까? 실패해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네. 그게 정답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병력을 최대한 줄일 방도를 찾을 뿐, 병력을 아주 투자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이현수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그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강진호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현수도 굳이 기다리지 않았다.
“다음은 상륙이죠. 수송기가 내륙으로 향할 수 없는 이상, 어차피 상륙은 해안에서 이뤄집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공중에서 떨어지는 놈이나 배에서 내리는 놈이나 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에서 헤엄쳐 오는 놈은 말할 것도 없죠.”
“음…….”
“다시 말하자면, 해안에서 대기만 해도 월척들이 알아서 그물로 뛰어드는 모양새가 된다는 거죠. 그럼 어쩌시겠습니까?”
“……병력을 보내야지.”
“예. 해안이죠. 해안으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놓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중국은 너무도 광활하고, 해안은 너무 넓습니다.”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창왕은 창왕이죠. 대도시는 피해야 하고, 상륙이 애매한 곳은 다 피해야 합니다. 아마 그놈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적절한 상륙 지점을 모조리 찾아내 가장 효율적으로 병력을 배치했겠죠.”
“그래.”
“그럼 이럴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뭘까요?”
“……묻지 말고 말하면 안 되냐?”
“……우리가 다짜고짜 한 곳에다가 모든 병력을 때려박아 버리는 겁니다. 그럼 분산 배치한 병력으로는 그걸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그렇겠지.”
“그러니 적당한 해안을 기점으로 뒤쪽에 예비대를 배치해야 합니다.”
“아…….”
“여기까지가 기본이죠. 이게 상륙작전을 상대하는 이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배치입니다. 창왕이 미친놈처럼 머리가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여기까지의 병법은 세계가 수천 년 동안 인간을 갈아 넣으며 완성한 기초 중의 기초거든요. 창왕이 아무리 뛰어나도 제갈량과 한니발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전략보다 뛰어난 전략을 간단히 만들 수는 없는 법이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하다는 거지?”
“중국은 넓습니다.”
이현수가 웃었다.
“넓죠. 너무 넓죠. 이런 식으로 병력을 배치하면, 아무리 창왕계가 많다고 해도 반수 이상이 해안 근처로 몰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가 안쪽으로 순간적으로 파고들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창왕에게 더 가까워지겠지.”
“빙고.”
이현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물론 창왕도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니 자신의 주변에 대한 방어를 놓치지는 않았겠죠. 정저우 주변은 미친 듯이 뒤졌을 겁니다. 우리가 노린 곳은 해안에 배치된 병력과 정저우 근처의 병력 사이에 있는 그 미세한 틈이죠.”
“미세하다고는 하지만…….”
“예. 이곳이 중국인 이상 그 미세한 틈이 끝도 없이 넓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이리 파고들 수 있던 거구요. 그럼 결과는 간단해 집니다.”
이현수가 킬킬대며 웃었다.
“해안에 뿌려놓은 병력보다 우리가 먼저 정저우에 도착하는 순간, 창왕계가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는 사라집니다.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완전 대등해지거나 오히려 우리가 앞서게 되는 겁니다.”
“……1,000㎞짜리 마라톤이라는 건가?”
“그렇죠.”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수도 없이 적을 속이고 또 흔들었다.
난전을 만들고, 일부러 전투를 벌이고, 루트를 꼬아가며 상대에게 이쪽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전략이 더 많을 정도다.
그리고 그 결과…….
“그러니 이렇게 잡아낸 겁니다.”
이현수의 눈이 스산하게 아래를 바라본다.
그의 눈에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 들어왔다.
“쥐새끼처럼 숨어들었지만…… 그래봤자죠. 차라리 잘됐습니다. 정저우시 안에 있었으면 민간인들 때문이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는데, 이리 판을 깔아주면 날뛰어줘야죠.”
이현수가 시리게 웃는다.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패드에 이곳을 향해 달려드는 붉은 점이 보인다.
“잡았다, 이 쥐새끼!”
이현수가 이를 악물고 무전기에 소리쳤다.
“달려, 새끼들아! 완전히 포위해! 여기서 창왕을 잡는다!”
정저우 남서쪽의 거대한 산맥지대.
어둠을 뚫고 살기를 품은 무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