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57
#1756.
둘러싸다 (1)
[도착했습니다!] [지정한 위치에서 대기 중입니다!] [배치 완료했습니다!]무전기에서 연이어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현수의 귀는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귀는 화면에 뜬 GPS에 고정되어 있다.
“지대공 미사일 배치해!”
[라져.]강진호가 눈을 크게 뜨고 이현수를 돌아봤다.
“미, 미사일?”
“아, 놀라지 마십시오. 미사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개인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사람 기준으로, 아니면 무인 기준으로?”
“……그야 무인 기준이죠.”
그럼 보통 일이 아닌데?
“미사일을 쏜다고?”
“아니, 그게 그런 미사일이 아니라니까요. 그냥 작은 겁니다. 탄두라고 해봐야 사람 머리통만 한 수준밖에 안 되는 작은 미사일이에요.”
강진호가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한 번 미사일 때문에 심하게 데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제 미사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움찔하게 된다.
“그런데 그건 왜?”
“쥐새끼가 도망치는 걸 막아야 하니까요. 안쪽에서 헬기 같은 게 날아오르면 모조리 격추해 버릴 겁니다.”
“…….”
“사실 공군의 지원을 받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이 새끼들이 죽어도 이 안까지는 못 들어온다잖습니까. 쫄보 새끼들. 미군씩이나 되어서 중국이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아니.
그건 무서워야지, 이 새끼야.
세계대전이라도 벌일 셈인가?
웬만해서는 전쟁에 돌입한 이상 묵직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강진호지만, 이현수는 그런 강진호의 기준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버린다.
‘진짜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인데.’
어느 미친놈이 중국 땅에 돌입하면서 무인들에게 지대공미사일을 지참하게 만든단 말인가.
“근데 그거 어디서 빼앗아온 건데?”
“뺐다뇨. 빌린 겁니다. 미젭니다, 미제. 예로부터 한국인은 미제라면 초콜릿도 가리지 않았죠.”
“……미친놈이.”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희도 이미 한 번 써먹은 수잖습니까. 우리가 쓴 방법에 우리가 당하면 그보다 더 병신 같은 건 없는 법이죠. 그럼 저는 식음을 전폐하고 굶어 죽을 겁니다. 절대 그런 꼴은 안 보려고요.”
이걸 꼼꼼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미쳤다고 해야 할지…….
어쨌거나 절대로 창왕을 놓치지 않겠다는 광기가 느껴진다.
“문제는…… 흠.”
이현수가 GPS를 보다가 눈을 찌푸렸다.
“여하튼 느려 터진 짱깨 새끼들이! 아직까지 도착을 못했네! 이 새끼들은 진짜.”
“……그러지 마. 나도 한때 중국인이었어.”
“아, 회주님은 반짱깨 아닙니까. 그건 인정해 드립니다.”
“……고맙다.”
참 눈물나게 고맙네.
이현수가 이를 갈았다.
“그만큼 제시간에 도착하라고 했는데! 차이커창, 이 무능해 빠진 새끼가!”
“많이 늦어?”
“곧 도착할 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를 내?”
“이럴 때 욕해야죠. 꼬투리 잡았잖습니까. 생각 같아서는 전화해서 욕치고 싶은데 참는 겁니다.”
“…….”
하지만 태연한 목소리와는 달리, 이현수의 얼굴에는 미묘한 초조함이 드러나 있었다.
‘시간이 생명이야.’
말은 좋다.
먼저 도착하고 먼저 둘러싸면 병력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저 창왕이 머리를 쓸 시간을 주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선공권.
아무리 대단한 이라고 해도 방어를 할 때는 쓸 수 있는 전략도, 부릴 수 있는 기책도 제한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전략으로 이현수는 선공권을 얻었고, 병력의 차이를 극복했다.
문제는 그게 영원한 게 아니라는 것.
‘시간이 끌리면 역으로 포위된다.’
중앙에서 창왕이 버티고, 해안으로 퍼져 있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그들을 둘러싸 버리면 정말 도주로 하나 없는 지옥에서 모조리 몰살당한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든 창왕을 죽여야 살아 돌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다.
‘영광인 줄 알라고, 창왕.’
이현수가 이를 갈았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지 않다. 이건 배수진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도박수를 최대한 배제하고 어떻게든 상대의 피를 빨아먹는 타입인 이현수가 배수진마저 치게 만든 저놈이 괴물이다.
배수진이란 결국 성공하지 못하면 몰살밖에 남지 않는 수.
강진호와 홍왕이라는 세상을 주무르는 절대의 무인을 둘이나 보유하고도 이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었다.
[도착했다!]“늦잖아, 이 병신 새끼야!”
[상황이 상황이니 별말은 하지 않겠다만…… 너, 내가 반드시 그 주둥아리를 찢어놓겠다.]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차이커창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이현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됐어!’
제대로 포위하기 전에 그 틈을 창왕이 노린다면 이 전략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다행히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현수에게 쾌재를 부르게 만들었다.
“모두 다 왔나?”
[5분 내로 전원 도착이다.]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버티고 또 버티면서 전력을 보존하다가 단번에 포위망을 뚫고 여기까지 도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이현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화가 난다.
‘빌어먹을.’
전략이란 애초에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
그 어긋남을 최소로 줄이고 최선의 방향으로 순간순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배치 완료됐다!]“좋아!”
이현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눈에 드넓게 펼쳐진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안에 창왕이 있다. 그리고 이 안에 창왕이 배치해 둔 전력들이 바퀴벌레처럼 우글대고 있을 것이다.
“냄새가 나는군.”
강진호가 이현수의 옆에 서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제대로 찾아오긴 한 모양이야. 살기가 짙어.”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다.’
여기까지는 그저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모든 것이 결정 난다.
불안 요소는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중 가장 불안한 것은 저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 분명 중간쯤부터는 자신들이 이곳을 포위하러 온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 분명 나름의 대처를 했을 텐데, 위성으로 확인한 이곳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상관없다, 뭐든.
어쨌든 자신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이 이상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회주님!”
“음.”
“돌입 시작하겠습니다.”
강진호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한 강진호가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예.”
“내가 제일 먼저 간다.”
이현수가 그런 강진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준비는?”
“언제든 좋습니다!”
“그래.”
마염들이 투기를 끌어올리며 강진호의 뒤로 붙는다.
“가자!”
“예!”
마염들이 강진호의 옆을 스치듯 달려들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 망설임 없는 전진에 이현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덥석.
이현수의 뒷목을 움켜잡은 강진호가 미련 없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의 눈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창왕.’
분명 일전에 맞붙었을 때, 강진호는 창왕에게 우세를 점했다. 하지만 그걸 승리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과거, 홍왕에게 밀린 강진호가 이번에는 홍왕을 완전히 쓰러뜨린 것처럼 승부란 언제고 변화하는 법이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목을 따주지.’
스산한 살기를 내뿜은 강진호가 바닥을 박차고 빛조차 들지 않을 것 같은 울창한 숲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죽여라! 모조리!”
두 눈에 마기와 광기가 동시에 넘실거린다.
총회에서 가장 뛰어난 전력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역시나 마교다.
과거의 한때에는 중원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쓰레기 같은 취급을 받던 마인들. 강진호 아래에 모여들어 숨을 참으며 스스로를 단련해 오던 마인들이 오늘 밤 그 조여놓은 목줄을 풀기 시작했다.
마인들이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지만, 장민은 굳이 그런 그들을 억제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다.
교도들이 총회에 들어온 이후 이런저런 전쟁에 동원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진정 적이라 생각하는 삼왕계에 이를 박아 넣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얼마나 핍박을 받았던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가.
그 모든 울분이 지금 이 순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죽여라!”
달 아래 짐승처럼 장민이 포효했다.
“목을 가르고 배를 찢어라! 살을 물어뜯고 뼈를 짓밟아라! 수백 년을 쌓아온 우리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저들에게 똑똑히 알려주어라!”
대답 대신 짐승의 괴성이 들려온다.
일만에 달하는 마교도들. 그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최정예의 마인들이 두 눈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적을 주살했다.
“비, 빌어먹을! 쓰레기들이!”
“어디서 이런 놈들이!”
그들을 막아선 창왕의 무인들이 당혹 섞인 경호성을 토해냈다.
그들이라고 마인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마인들은 지금껏 그들이 알던 마인과는 너무도 달랐다.
익히면 이성을 잃고 광인이 되어버리는, 잡스러운 마공이 아니라…… 과거의 마교를 전성기로 이끈, 제대로 된 마공을 익힌 마인들은 더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콰드드득!
검게 물든 손이 살을 꿰뚫는다.
장민의 옆에 늘어선 마교의 장로들이 저마다 검은 마기를 구름처럼 뿜어내며 이를 갈아붙였다.
“창왕계,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것들!”
“모두 쳐 죽이겠다, 모두!”
교도들이 핍박당하고 심심풀이로 죽어 나가도 저항조차 해보지 못한 이들이 지금 그 한을 풀어내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게,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아아아아악!”
“무, 물러나라! 이놈들, 보통이 아니다! 물러…… 아아악!”
고함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고, 고통에 찬 비명이 귀를 찢어 댔다.
전신에 피를 머금은 마교도들이 한 무리의 늑대처럼 적을 향해 달려든다.
그들이 지나는 곳에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민이 피맺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좋은 밤이 아닌가.”
피가 타고 혼이 찢어지는 고통을 버티고 또 버텨내며 마존의 재림을 기다렸다. 이 밤은 그 모든 고통을 보상받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알고 있다.
이제 마존은 더 이상 마도천하를 원치 않는다. 그가 기다리던 마존과 지금 그가 모시는 강진호는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지배하고 군림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지친 몸을 뉠 한 평의 땅과 평온이 전부였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걸 수 있다.
“싸워라! 죽여라! 마존을 위해서! 아니…….”
장민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나간다.
“스스로를 위해서 싸워라! 우리는 이들을 죽여 우리의 삶을 쟁취할 것이다! 한 번의 싸움으로 천년의 평온을 얻으리라!”
어쩌면 그게 마존의 뜻이리라.
수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중화의 땅으로 돌아온 마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시작한다.
얽히고설켜 이제는 풀어낼 수도 없는 원한의 고리에 불이 붙었다.
어둠으로 물든 숲이 순식간에 피 냄새로 가득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