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59
#1758.
둘러싸다 (3)
낮은 콧노래 소리가 흘러나온다.
딱히 공을 들이지 않은 가벼운 리듬이지만, 절묘하게 맞아드는 박자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 위화감에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작은 노랫소리에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12열 뚫립니다!”
“보충해.”
“예비대가 없습니다!”
“그럼 다른 쪽을 빼서 보충하면 되겠군.”
“사방이 다 적입니다! 뺄 수 있는 전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간격을 더 벌리라고 해. 그럼 임시 방편 정도는 되겠지.”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는 이들의 머리에는 공통적인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적이 밀고 들어온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다. 삼왕계가 아니라 바다를 넘어 침입한 적이 지금 그들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오는 중이다.
위기?
단순히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들은 창왕계.
세의 유불리를 떠나서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황을 주도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적이 쳐들어올 때는 언제나 그 적을 상대하는 대처 방안이 미리 확립되어 있기 마련이었고, 쳐들어갈 때는 굳이 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들이 지금껏 겪어온 것과 명백하게 다르다. 적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허점을 정확하게 찔렀고, 지금은 그 허점을 잡아 벌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의아하게 만드는 것은 밀고 들어오는 적이 아니었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만 시선이 뒤로 간다.
의자에 기대앉아 낮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창왕에게로 말이다.
‘대체…….’
지금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이는 창왕이 아니었다. 창왕은 조금 전부터 눈을 감은 채 콧노래만을 부르고, 지시는 그의 부관들이 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명령을 내리는 부관들은 창왕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그들이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밀립니다!”
“못 버팁니다!”
보고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마지막에는 거의 비명성처럼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 비명성을 들으면서도 창왕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 보내.”
“하, 하지만 중과부적…….”
“상관없어.”
낮은 목소리가 돌아온다.
“뒤, 뒤로 물려야 하지 않을까요? 쓸데없이 병력만 낭비…….”
“오, 뭔가 생각이 있다는 건가?”
순간, 말을 한 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아닙니다!”
“그럼 시키는 대로 해.”
“예!”
깔끔하게 지시를 마무리한 이가 여유롭던 표정을 살짝 굳히고는 몸을 돌린다.
“상황에 대한 보고를 따로 드릴까요?”
창왕이 가만히 눈을 뜬다.
딱히 어떤 빛도 떠올라 있지 않은, 투명한 눈빛이 살짝 옆으로 향한다.
“어떻게 생각하지?”
“너무 제 마음대로 구는 것도 조금 곤란한지라…….”
“편한 대로 해.”
창왕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하겠습니다.”
창왕이 다시 눈을 감았다.
“현재의 상태를 유지한다. 적을 막는 데 전력을 다해라!”
“예!”
그 마지막 대답은 모두의 귀에 똑똑히 울렸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연해졌다.
창왕은 결코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다.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간사한 것.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는다면, 굳건한 믿음에도 의문은 찾아오는 법이 아니던가.
다시금 창왕의 존재를 확인한 이들이 화면에 눈을 집중했다.
그 굳건한 믿음……,
“창왕이시여.”
하지만 그들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시금 그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아둔한 저로서는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 감히 여쭙습니다만…….”
“미사여구는 빼고 본론만.”
“……혹시 지원군이 있습니까?”
“없어.”
“…….”
그 짧은 대화가 그 방 안에 있는 모두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준비해 두신 수는?”
“너희가 생각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손이 멈춘다.
말도 멈추고, 생각도 멈췄다.
“그럼…….”
질문이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의심할 텐가?”
“그렇지 않습니다, 창왕이시여.”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이내 다시 낮은 콧노래 소리로 바뀐다.
“지시를 계속해라.”
“예!”
의문과 믿음.
신뢰와 의심.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위로 창왕의 콧노래 소리가 천천히 퍼져 나간다.
* * *
“준비!”
위긴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평소의 그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친 목소리다.
“갈겨!”
수십 개의 불덩어리가 중장갑을 착용한 기사들의 머리 위를 타 넘고 앞으로 쏟아진다. 그들의 앞 공간이 순식간에 불지옥으로 화했다.
“돌격!”
뱅상의 입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져 나오며 중장 보병처럼 줄을 맞춘 카발리에와 기사들이 앞으로 돌진해 나간다.
원탁이 수백 년 동안 발전시켜 온 전술과 전열은 이런 집단 전투에서 확실히 빛을 발했다.
거리를 벌려 자신이 활약할 공간을 만드는 무인과는 다르게 서로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간격을 좁힌 기사들이 오로지 앞만을 보고 달려 나간다.
건너편에서 본다면 그건 거의 육중한 전차가 고속으로 돌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일 것이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한들 그에 맞설 엄두가 나겠는가.
더구나 불구덩이 속에서?
“피, 피해!”
“맞서지 마라!”
하지만 카발리에들은 창왕계의 무인들이 몸을 뺄 시간을 주지 않았다.
콰아앙!
검과 어깨에 부딪친 이들이 핏덩어리가 되어 튕겨져 나간다. 어찌어찌 방어에 성공한 이들도 계속해서 밀려오는 기사들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건 차라리 일격에 죽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콰득! 콰드득!
중갑을 입은 기사들이 쓰러진 이를 말 그대로 짓밟으며 지나간다.
비명을 질러야 할 입에 철갑이 틀어박히고, 숨을 빨아들여야 할 폐는 움푹 함몰된 가슴뼈에 눌려 찢겨진다.
무인의 끈질긴 생명력이 그의 생을 오랫동안 연장시켰다는 것이 쓰러진 이의 불행이리라.
“확인 사살은 하지 않는다! 속도를 높여!”
마티외의 외침에 카발리에들이 검의 손잡이를 흉갑에 두들겨 낸 소리로 화답한다.
“가자!”
돌진하는 카발리에들을 보며 위긴스가 눈을 빛냈다.
‘오래도 걸렸군.’
총회는 그동안 끊임없이 전력을 강화해 왔다.
기존의 회원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원탁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받아들이고, 중국의 마교도들마저 흡수했다.
과할 정도로.
일반적인 문파였다면 배가 터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끝도 없이 더 많은 이들을 받아들이고, 훈련시키고, 또 강화했다.
그 모든 투자가 지금 이 순간 빛을 발한다.
동양의 검술을 받아들인 카발리에들의 실력은 과거보다 일취월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평생을 추구해 온 전술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변화란 좋은 거지.”
위긴스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따라붙는다. 거리를 유지해!”
“예!”
그리고 그런 이들의 뒤를 위긴스가 육성해 낸 마법 부대가 받친다.
카발리에들이 동양의 무인들에 비해서 확연히 앞서는 부분.
그건 분명 방어력이다.
맨몸으로 전투에 임하는 창왕계에 비해 중갑을 착용하고 갑옷 자체를 강화하는 방식을 추구해 온 기사들은 웬만한 마법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창왕계의 무사들은 방어력을 상승시키는 대신 속도를 올려 적의 공격을 피하는 쪽으로 발전해 온 동양의 무인.
‘적당히 달라붙어 잡아둔 뒤, 그 위에 마법을 뿌려 대면 이쪽은 버티고, 저쪽은 죽어 나간다는 거지.’
이게 위긴스가 그동안 연구하고 또 연구해 온, 동양의 무인들을 상대하는 기사들의 전법이다.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다.
문제가 있다면…….
“……그래봐야 피라미를 잡는 데나 의미가 있는 수준이라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그 피라미를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긴스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창왕을 죽이는 건 그의 역할이 아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강진호나 바토르와 같은 절대강자들이 별다른 소모 없이 창왕에게 도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간격을 유지해! 거리가 벌어지면 우리는 쓸모가 없다!”
“예!”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위긴스가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렸다.
달이 없는 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역사가 바뀌기에는 좋은 밤이로군.”
오늘 이곳에서…….
수십 년간 정체되어 변하지 않던 삼왕의 치세가 끝날 것이다.
“아아아악!”
“끄으윽!”
비명 소리가 하나씩 들릴 때마다 목숨 하나가 끊어진다.
요동친다.
어둠에 파묻힌 산맥의 곳곳이 들썩인다. 그리고 그 들썩임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한 곳으로 조여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수십 마리의 이리 떼가 사냥감을 달려드는 것처럼.
굶주려 이성을 잃어버린 이리들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오직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중 단 한 마리의 이리만큼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아주 느릿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바닥 확인해!”
“예!”
이현수가 무전기를 들어 상황실과 교신한다.
“위성으로 이쪽 상황 다시 점검해 달라고 해!”
“예!”
이현수가 신중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주변을 살핀다.
“뭘 찾는 거지?”
“상대가 상대니까요.”
강진호의 말에 이현수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대답했다.
“제가 저놈이었으면 이 산맥 바닥에다 대전차지뢰라도 깔아뒀을 겁니다. 폭약을 미친 듯이 묻어놓고 단번에 폭발시키려고 했겠죠.”
“…….”
“그게 아니라면 저번처럼 포격을 가해올 수도 있죠. 혹여 몰라 주변의 군부대가 움직이는지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중입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장난 아니네.’
그는 무인의 전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현수는 무인의 전쟁을 지휘하는 동시에 또 하나의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결과는?”
“……깨끗합니다.”
이현수가 자신의 아래턱을 부여잡고 눈을 찌푸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 새끼…….”
이현수가 살짝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허를 찔렀다고 하지 않았나?”
“예. 우리가 여기로 단번에 밀고 들어오리라는 건 절대 생각 못했을 겁니다. 그놈도 사람이라면요.”
“그런데 준비가 없어서 이상하다고?”
“원래 저런 놈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도 대비합니다. 전쟁이 벌어질 일이 없어도 성을 쌓는 것처럼 말이죠.”
이현수가 한쪽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둘 중 하나겠죠.”
“둘 중 하나?”
“창왕이 제 예상보다 멍청하든가…….”
“그건 생각할 필요가 없겠지.”
“예. 그럼 하나 남습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보았다.
“이 앞에 뭔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게 있겠죠.”
“…….”
이현수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펴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보죠. 중국 놈들은 체면을 중시한다고 하던데, 우리 같은 큰 손님에게 대체 무슨 선물을 준비했을지.”
이현수의 얼굴에 귀기가 어리는 걸 본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