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6
#175.
잡아오다 (5)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나름 톱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 강은영의 열애설이 터진 것도 큰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방송 사고와 맞물려 강은영의 오빠까지 등장해 버리니…… 그야말로 폭풍이 불어온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은영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인터넷의 여론은 꽤나 우호적이었다.
― 솔직히 오빠가 저러는데 은퇴 안 하면 열애 없었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 가족끼리 짜고 띄우려고 할 수도 있잖아.
― 오빠가 연예계 데뷔하면 강세아보다 더 벌게 생겼던데 뭐.
― ㅇㅈ.
― 오빠 옆에 있으니 애가 평범해 보이더라. 역시 얼굴은 상대적인 거야.
인터넷 여론을 확인한 조규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급한 불은 껐네.”
이제 양쪽에서 보도 자료를 내서 제대로 서로 만난 적도 없다는 식으로 입장 표명을 하면 될 것이다.
“일을 이런 식으로 돌파해 버릴 줄이야…….”
이미지가 깎이는 것이 아니라 되레 이미지가 올라가는 측면도 있었다. 가십성 열애설 한 번 떴다고 생방송에 난입하는 오빠가 있는데, 어디 감히 남자를 사귈 수나 있겠냐는 의견과 함께 강은영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상승해 버린 것이다.
전화위복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RRRR.
전화가 울리자 조규민은 화면은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예, 비서실장님. 저 서용찬입니다.
“네, 서용찬 이사님.”
― 지금 PD 쪽이랑은 전화를 끝냈습니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았지만, 좋게 풀기로 했습니다.
“의외네요?”
― 아무래도 소문을 들은 모양입니다. 세아를 재경에서 관리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니까요. 이런 일로 서로 얼굴 붉힐 것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다행이죠.”
― 그리고 그, 재경 쪽에서 미디어 사업부 출범한다는 소문…… 혹시 그쪽에서 흘리신 겁니까?
조규민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대답했다.
“금시초문입니다.”
― 아니죠?
“글쎄요. 저는 그쪽이랑은 관계가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희가 보통 사이도 아니니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 회장님께서는 영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규민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혹시 몰라 흘려놓은 소문이 약발을 잘 받아 거기까지 들어간 모양이었다. 피디가 평생직장도 아니고, 요즘처럼 공중파와 케이블 간의 왕래가 자유로운 상황이라면 굳이 척을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다행히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았으니, 세아 씨의 활동에도 별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 네. 그리고 그럼 그 건은 직접?
“네. 제가 가죠.”
조규민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관심이 없으신 것은 알지만, 회장님께 제 이름 한 번은 전해 주십시오. 혹시 압니까?
“하하하, 알겠습니다.”
― 예, 그럼.
전화가 끊기자 조규민은 코웃음을 쳤다.
“혹시 알기는?”
평생이 가도 황정후가 서용찬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며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운 조규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이제…….”
으드득.
조규민이 이를 갈아붙이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 * *
“뭐 어쩌자고?”
FRC 엔터테인먼트의 한선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앞에 앉은 이현민 실장이 코를 긁으며 대답했다.
“서로 잘 안 적도 없는 걸로 하자던데요.”
“코드에서?”
“예.”
“……누구 맘대로?”
이 실장이 ‘앗, 뜨거라’ 하는 얼굴로 말했다.
“에이, 사장님. 저쪽은 그래도 코드 아닙니까. 저희가 코드랑 척 져서 좋을 일은 뭐가 있습니까?”
“야, 인마! 코드랑 사이 좋아서 좋은 일은 있었냐? 어차피 망해 자빠질 판인데, 뭐라도 해봐야 할 거 아냐!”
“그래도…….”
이현민이 말끝을 얼버무리자 한선구가 화를 버럭 냈다.
“이 새끼야, 이 판이 어떤 판이야? 판 벌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할 거 아냐! 네가 되레 나보고 판 벌리라고 해야지,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꼬리 내려 버리면 손해만 보고 빠지는 거 아냐!”
이현민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쯧.”
한선구도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코드 같은 애들은 피해 좀 입어도 돼. 걔들이야 돈 많잖아. 우리 같은 중소 업체가 이득 보고 지들이 손해 좀 봐도 그러려니 해야지. 하여간에 대한민국 놈들은 돈 많은 것들이 더 쪼잔하다니까.”
“코드 쪽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강세아면 코드에서도 주력으로 밀고 있는 애 아닙니까. 그런 애한테 오명이 붙는 건데, 그리고 사실 준영이랑 별 관계도 아니잖습니까. 듣자하니 준영이가 얼굴 한 번 보고 좋다고 달라붙었지만, 한 번도 상대 안 해준 것 같던데…….”
“괜찮아, 괜찮아. 그러다가 오빠 되는 거고, 그러다가 여보 되는 거야.”
“사장님.”
“어허!”
한선구가 이현민의 말을 잘랐다.
“인마! 이 기회에 우리 애들도 매스컴 좀 타보자! 데뷔한 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애들이 제대로 공중파도 못 탔잖아! 이런 와중에 강세아랑 열애설이 났는데,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넘기자고? 어떻게든 엮어서 연예란이든 사회란이든 이름이라도 좀 알려야 할 것 아냐!”
“우리 애들 이미지는요?”
“강세아 정도 되는 애랑 열애설이 나면 이미지가 나빠질 게 어있어? 듣보잡보다야 사랑꾼이 나은 법이야, 인마!”
이현민은 깊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좋게만 풀리면 저도 왜 반대를 하겠습니까. 하지만 강세아는 재경에서 후원한다는 말이 있는 애라는 말입니다.”
“응? 재경?”
“예. 그 재경요.”
“으하하하하하하핫!”
한선구가 크게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야, 인마! 너는 이 바닥에서 얼마를 굴러먹었는데 아직도 루머랑 진실이랑 구분도 못하냐?”
“소문이 파다합니다.”
“야. 너 황정후 회장님이 어떤 분인지는 아냐?”
“……예?”
“옛날에 대기업 간부나 정치인들이 연예인 한둘 끼고 노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질 때도 술자리에 가수가 오는 것도 싫어하시던 분이다. 제아무리 요즘 기업의 전략 자체를 기획부에서 짜고 전문 경영인들이 의견을 낸다고는 하지만, 그 황정후 회장님이 엔터테인먼트에 진출한다고?”
“아…….”
“그리고 그 양반이 진출을 할 거면 앞에서 대놓고 들이대 버릴 양반이지, 그렇게 뒤에서 연예인 한둘 지원하면서 간 볼 사람 같으냐? 너는 어떻게 황 회장님 성정도 모르고 그러냐. 그 양반은 뒤가 없는 사람이야. 뒤가 없으니 뒤가 구릴 일도 없고, 뒤가 없으니 간을 볼 일도 없어. 그런 사람이 뭐? 강세아를 후원해?”
이현민은 순간 머리가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워낙에 파다한 소문이라서 사실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선구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숨겨둔 손녀거나 딸일 수도 있잖습니까.”
“뭐, 인마? 너 황정후 회장님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딴 소리를 씨부리는 거야?”
“…….”
“그분은 가난할 때 만난 부인을 제 사람이라고 평생 끼고 사셨던 분이다. 남들은 성공하면 박색 마누라를 내팽개치고 어린 여자랑 새장가들 때, 사람은 도리를 모르면 짐승과 다를 게 없다고 단 한 번도 외도를 해본 적이 없으신 분이라고. 사별하고 나서도 재가 안 하신 거 보면 모르겠냐?”
“으으음, 확실히…….”
“아서라, 아서. 내가 비록 이렇게 먹고살고 있지만, 그분은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농담 따먹기할 사람이 아니다.”
이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이번 사태는 어떻게 합니까?”
“의뭉스럽게 대답하면서 시간 계속 끌어. 그럼 한 번이라도 더 나올 거고, 한 번이라도 더 보도된다.”
“그러다가 명예훼손이라도 들어오면요?”
“벌금 내. 그거 얼마나 한다고.”
“이미지가 너무 망가지잖습니까.”
“이 새끼야, 너나 내가 총대 메면 되잖아. 애들은 죄 없다고 하고. 우리는 언론에서 애들 탓만 하는 거지. 그럼 악덕 소속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이돌이라고 홍보된다니까. 걔들은 아이돌이랑 소속사를 별개로 생각해서 애들 물건 팔고 노래 사주면 우리가 돈 번다는 생각을 못해요.”
“으음…….”
이현민 실장은 뭔가 찝찝한 느낌이지만, 사장이 직접 이렇게 나서는데 더 이상 반대하고 나서기도 힘들었다.
“예. 그럼 그렇게…….”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하, 회의 중이라니까 진짜.”
한선구가 인터폰을 들어 받으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아! 왜!”
― 사, 사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약속 잡은 일이 없는데, 뭔 놈의 손님이야? 돌려보내!
― 아니요, 사장님.
“어?”
한선구가 인상을 확 쓰다가 금세 풀었다.
경리가 한 번씩 그의 속을 썩이기는 하지만,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의 짜증에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오늘 그를 찾아온 이가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언제든지 만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누군데?”
― 재경 비서실에서 나오셨답니다.
“어디?”
― 재경이요. 재경 비서실장님이랍니다.
“……뭐?”
한선구가 멍한 얼굴로 돌아보았고, 이현민은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라는 얼굴로 가슴을 쳤다.
“드, 들여보내.”
― 네.
짧은 시간이 지나고 문이 열리더니, 검은 슈트를 쫙 빼입은 사내 하나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사기꾼 아냐?’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재경의 비서실장이라면 요직 중의 요직이다. 회장을 바로 옆에서 모신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웬만한 상무와도 맞먹는 힘을 가진 자리가 바로 비서실장이었다.
그렇기에 수행 비서와는 다르게 비서실장은 나이가 지긋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걸어 들어오는 놈은 비서실장이라기에는 너무 젊었다.
그리고 뭔가 조금 뺀질거린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는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내가 자리에 앉기 전에 명함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한선구에게 내밀었다.
‘재경 그룹 비서실. 실장 조규민’이라고 적힌 명함을 받아 든 한선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기꾼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이 사람이 재경 그룹 비서실에서 나온 거라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FRC가 나름 중견 기획사라고 하나 재경에 비한다면 동네 구멍가게와 다를 게 없었다. 입김이 아니라 콧김만 불어도 회사가 날아갈 판이었다.
“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한선구는 조규민이 굳은 얼굴로 마주 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이번에 그쪽 연예인과 저희 쪽 귀하신 분이 아끼는 아이가 열애설이 났더군요.”
‘귀하신 분이 아끼는 아이?’
한선구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웬만해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회장님이 아끼시는 아이라니!
“진상을 파악해 보니 이쪽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데, 그쪽 사람이 자꾸 달라붙는 것 같더군요. 코드 쪽도 그렇고, 이쪽의 귀하신 분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선구가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런 건 줄 모르고!”
“네? 그런 거요?”
조규민의 되물음에 한선구가 미묘한 미소를 짓더니 대답을 했다.
“귀하신 분이 아끼는 아이면…… 그…… 황정후 회장님이 그 스폰…….”
차마 민망해서 더는 말을 못하겠다는 듯 실실 웃는 한선구를 보고 마침내 조규민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이 미친 인간아!”
조규민의 고함 소리가 FRC 건물을 쩌렁쩌렁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