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61
#1760.
둘러싸다 (5)
“밀어붙여!”
“오오오오!”
공영길의 몸에서 내력이 솟구친다.
그동안의 지옥 같던 수련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내력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전신에는 말로 할 수 없는 활력이 넘쳐 났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의 조악한 언변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고양감이 전신을 터뜨릴 듯 채우고 있었다.
내디딘다.
쿠우웅!
내지른다.
콰아아앙!
그의 앞을 막아서던 이가 와류(渦流)를 실은 권력에 얻어맞아 쏘아진 포탄처럼 튕겨 나간다.
“우오오오오오!”
딱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입이 절로 열리며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건 욕망이자 분출이었다.
무인들은 누구나 강해지기 위해서 수련을 한다.
아무리 같잖은 변명을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더 강한 힘, 더 큰 폭력을 손에 넣기 위해 육체를 갈아 넣고 정신을 학대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바로 무인이란 족속이다.
그런데 어찌 환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그가 그토록이나 바라던 폭력의 정화가 그의 몸 안에 임해 있는데.
“흡!”
짧은 호흡과 함께 내력이 폭발적으로 회전한다.
기혈을 모두 찢어버릴 것처럼 강렬한 내력이 단전에서부터 시작해 육체를 한 바퀴 휘돌고, 마지막에는 주먹으로 쏟아져 나온다.
콰아아아!
기운이 폭포처럼 분출하며 전방을 막는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악!”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피가 눈을 간질이고, 쏟아지는 비명이 귀를 후려친다.
이 쾌감을 무엇으로 비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마약을 한다고 해도 이러한 고양감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감각을 알아버린 이는 전장에서 영원히 떠나지 못한다. 몸은 평화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마음만은 언제나 전장을 향하는 무학의 노예가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
“놈!”
움찔!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고함 소리에 공영길이 눈을 번쩍 떴다.
“빠져들지 마라!”
“…….”
“정공이든 마공이든 무학은 언제나 사람을 휘두르려 든다. 무학에 취해 무학이 너를 휘두르게 두면 결국은 심마에 빠져 자신을 잃게 된다! 권이 너를 이끄는 게 아니라, 네가 권을 이끄는 것이다! 무에 취해 자신을 놓지 마라!”
정론.
더없이 확연한 정론이기에 이런 상황에서는 더없이 뼈아픈 일침이 된다.
“예!”
공영길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나아가라!”
“예!”
지체 없이 달리는 공영길을 보며 바토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해졌군.’
묘하다.
총회에서 키운 이들이 그의 유일한 제자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 동안 그는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냈으니까.
관계로 따진다면 초원의 전사들이 공영길들보다는 훨씬 더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전우들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달려 나가는 저들의 등을 보고 있으려니 묘한 감정이 생겨난다.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군.’
저들을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리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저들은 바뀌었다. 그리고 총회도 처음에 비한다면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어쩌면 그중 가장 크게 변한 건 바토르 자신일지도 모른다. 긍지 높던 초원의 전사로 오로지 강자와의 승부만을 원하던 그가 예전에는 거들떠보지 않았을 핏덩어리들을 이끌고 누군가의 명을 따르고 있지 않은가.
“흠.”
바토르가 고개를 좌우로 살짝 저었다.
“누구라도 결국은 변하기 마련이지.”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방향이 올바른가이다. 강진호를 따라 이곳까지 온 것이 과연 올바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토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드는 것만은 분명하지.”
그의 눈에 숲 너머로 보이는 회색빛 건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착했습니다!”
“포위 완료!”
“빌어먹을 놈들, 끈덕지게도 달라붙는군!”
수십으로 나누고 쪼갠 병력들이 각자 정해진 루트를 타고 이윽고 최종 집결지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이현수의 눈이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피해는?’
시선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중앙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크지 않아.’
물론 지금 도착한 이들은 당연히 큰 전투를 치르지 않은 이들이다. 앞으로 도착할 인원들의 피해는 이보다 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걸 모두 감안한다고 해도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마존이시여!”
장민이 마교를 이끌고 달려온다.
각각 일군의 마교도를 이끌고 갈라진 마교의 장로들도 속속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도착했다! 빌어먹을!”
숲을 뛰어나오자마자 살기 어린 눈길로 이현수를 찾는 이도 있었다.
“저 병신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못하네.”
이현수가 차이커창의 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혀를 찼다.
지금 저 살기가 어디 이현수를 향할 때인가.
“흐음.”
저벅저벅.
홍왕이 가만히 걸어 나와 회색의 건물을 바라본다.
“이곳인가?”
“예. 여기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군. 그리고 무난하게 도착했어.”
홍왕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조금 있으면 홍왕계도 모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총회의 인원들 역시 속속들이 도착 중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시간을 끌수록 이쪽은 강해지고, 저 건물 안에 웅크리고 있는 이들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까?
저벅저벅.
이현수가 묘한 눈빛을 하며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차이커창도 그에 호응하듯 앞으로 나온다.
굳이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병력을 이끌고 온 총회의 이사들과 홍왕도 그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움직이지 않는군.”
“흐음.”
차이커창의 말에 이현수가 눈을 빛내며 회색의 건물을 바라봤다. 그가 확인할 수 있던 건 위성사진 정도다. 하지만 눈앞에서 본 건물은 그가 예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창이 없군.”
“그러네.”
“아마 저 콘크리트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두텁겠지.”
“벙커 수준이라고 봐야지.”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이현수가 차가운 눈으로 건물을 응시했다.
“저딴 콘크리트 덩어리를 믿고 농성을 할 정도로 창왕이 멍청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무인들에게, 특히나 강진호나 홍왕. 그리고 바토르 같은 무인에게 있어서 저런 돌과 철근으로 만들어진 벽 따위는 종잇장과 별다를 것도 없다.
마음만 먹는다면 10미터 두께의 벽도 1초 만에 뚫어버릴 수 있으니까.
“이미 빠져나간 것 아닌가?”
“아니야.”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확신하는 이유는? 아무리 다른 출입구가 없다고 해도 창왕의 능력이라면 이런 산의 지하 정도는 두부처럼 파버릴 수 있다. 땅굴 하나 뚫는 정도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그럼 창왕이 그 짓을 할 동안 안 걸릴 것 같나? 여기 인간 소나가 둘이나 있는데?”
“…….”
차이커창이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홍왕이 쓴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다. 나나 마왕의 감각이라면 그걸 모를 수 없지. 그리고…… 굳이 그걸 논할 필요도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느껴지지 않느냐, 저 노골적인 기운이?”
“…….”
홍왕의 눈이 건물에 고정되었다.
“자기는 이곳에 있다고 기운을 풀풀 내뿜는군.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되레 입을 대기가 무서울 정도야.”
“창왕이 안에 있는 게 확실히 느껴지십니까?”
“내 목을 걸어도 좋다.”
차이커창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왕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창왕은 반드시 저기에 있을 것이다.
“그럼 왜…….”
이현수가 가라앉은 눈으로 건물을 바라봤다.
“창왕이니까.”
“음?”
이현수가 낮게 속삭이듯 말했다.
“잊지 마. 지금 우리 등 뒤에서는 창왕계가 거꾸로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 창왕에게는 미리 달아날 방법이야 몇 가지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서는 우리 역시 느슨한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 버리면 그만이야.”
“…….”
“포위망은 좁아져야 의미가 있지. 넓은 포위망은 점점이 뿌려진 산개 병력과 다를 게 없어. 되레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이 있지.”
“놈이 여기에 있어야 우리가 모이고, 거꾸로 우릴 포위하는 이들도 모일 수 있다?”
“한 가지 가정만 지켜진다면 완벽한 전략이지. 놈이 반드시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말이야.”
이현수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아마 저 건물 안은 미로처럼 꼬여 있을 거고, 바깥에는 없던 창왕계의 진짜배기들이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겠지.”
차이커창이 헛웃음을 흘렸다.
“던전 클리어라도 하라는 건가?”
묘한 상황이다.
그들은 허를 찔러 창왕을 완전히 몰아넣었다. 하지만 되레 이렇게까지 상황이 흘러버린 이상, 그들이 필사적으로 타이밍을 노려 확보한 수적인 우위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
하나는 입구로 돌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나마나 좁은 복도로 이루어졌을 저 건물 안으로 돌입하는 것은 지금 그들이 지니고 있는 수적인 우위를 반 이하로 깎아먹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병력이 있는 이상 승리할 수 있지 않냐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그들은 시간 싸움도 해야 한다. 이건 타임 리미트가 걸려 있는 동시에 최악의 난이도를 지닌 던전을 소규모 파티로 돌파해야 하는 끔찍한 게임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놈들의 생각대로 따를 필요가 없지. 벽을 부수고 들어가면 된다. 걸리는 벽은 모조리 족족 다 부수고 건물 자체를 해체해 버리면 그만이야.”
“……그럼 벽을 부수는 틈을 노려 놈들이 공격해 올 겁니다. 적과 싸우면서 건물을 부수고 들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멍청한! 그럼 벽째 적을 날려 버리면 될 게 아닌가!”
바토르가 몸을 돌리더니, 건물을 향해 정권을 날렸다.
콰아아아!
그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가며 외벽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커다란 진동이 그들을 덮쳤다.
하나…….
“……저거?”
차이커창이 눈을 부릅떴다.
으스러진 외벽은 불과 십여 센티미터에 불과하다. 그 안으로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우그러진 쇳덩어리였다.
“……철이라고? 설마 이 건물이 통째로?”
“평범한 철도 아니겠지. 너구리가 판 굴이니까.”
이현수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놈이 파놓은 굴이 있으리란 건 이미 예상했어. 아직은 상정 범위 안이야.’
조금 어려워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쪽에는 홍왕과 강진호라는 무적의 카드가 있다. 둘 중 한 사람만 있었다면 창왕과의 승부를 대비하여 체력을 소모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둘 중 하나가 마음먹고 건물을 부수고 들어가 준다면, 남은 한 사람이 창왕을 상대하면 그만이다.
“시간이야 좀 벌었지만…… 조금 모자란 것 같은데, 창왕?”
이현수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게 다가 아닐 거야. 절대로.’
아직 있다.
그들이 예측하지 못한 한 수가.
저놈이 창왕이라면, 그를 농락하고 차이커창의 바보로 만들어 버린 그 창왕이라면, 절대로 이런 흔하고 빤한 수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철컹! 철컹!
“음?”
이 커다란 건물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문. 그 문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시작인가?”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그 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윽고 문이 활짝 열린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아는 이는 알기에 얼어붙었고…….
모르는 이도 모습을 드러낸 이의 존재감은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창왕.”
이현수의 입가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태연하게 걸어 나와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긴 창왕이 더없이 멋들어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겠군, 다들.”
그가 천천히 양팔을 벌린다.
“환영하지.”
밤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