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67
#1766.
추격하다 (1)
퉁! 퉁!
흩뿌려진 탄들이 바닥으로 추락하며 연분홍의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
그 광경을 보며 차이커창이 몸서리를 쳤다.
화학무기.
저 안에 든 게 정확하게 뭔지 알 도리는 없다. 그가 생물학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저 광경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게 뭐든 간에 생화학탄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민간인 쪽으로 날아가면 어쩌려고! 이 정신 놓은 새끼가!”
“지랄하지 말고, 빨리 이거나 껴!”
이현수가 자신의 아공간에서 꺼낸 방독면을 차이커창에게 던졌다.
“메이드 인 코리아다, 이 새끼야! 짱깨산이 아니라고!”
“…….”
차이커창은 질렸다는 듯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이현수가 하는 미친 짓은 자신이 가진 육체의 나약함에 대한 반동이라고 생각했다. 무력으로 상대를 압박할 수 없는 이현수가 무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인보다 더 독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제 보니 이 새끼는 그냥 미친놈이다.
“방독면 빨리 짱깨 새끼들한테 넘겨! 당장!”
총회의 회원들이 챙겨 온 여분의 방독면을 홍왕계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왜 미리 준비하라고 말 안 했지?”
“중국에서 니들이 방독면을 대량으로 사들이면 그걸 창왕이 모르겠냐?”
“그럼 너희는 이거…….”
“군용이다, 군용! 이 새끼야, 한국은 창고 안에 군용 방독면을 백만 개는 깔아놓고 사는 동네라고! 평화에 찌든 중국 놈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냐!”
“…….”
백만 개?
“생화학무기가 퍼지고 어쩌고…… 미친놈아, 애초에 저 집속탄부터 금지조약에 걸려 있는 무기야! 이 새끼들이 그런 걸 신경이나 쓰겠냐?”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려 사방을 채워오기 시작하는 연분홍의 연기를 바라보았다.
‘벚꽃 놀이라도 온 것 같네.’
환영 인사로는 더없이 제격이다.
‘이건 절대 생물학무기 같은 건 아냐.’
저놈들이 총회의 무인들이 병에 걸려 신음하기를 느긋하게 기다릴 리가 없다. 즉발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신경가스 쪽에 가깝겠지.
‘사린 계열인가?’
그 이상은 이현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럽게도 퍼붓네, 이 새끼들.”
애초에 신경가스는 조금만 맡아도 사람을 거의 즉사 진적까지 몰아가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이 무인이라는 점을 감안했다는 듯, 좁은 구역에 미친 듯이 탄을 뿌려 대고 있었다.
방독면이 없다면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이대로는 방독면이 있다고 해도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
“회주님!”
“하고 있어.”
강진호가 뽑아 든 적루와 청루를 들고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파아아아앗!
그가 날린 검풍에 쏟아지던 탄들이 사방으로 비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
한쪽에서는 위긴스가 마법 병단을 이끌고 그려낸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마력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화염이 주변의 가스들을 집어삼켜 태우며 허공으로 밀어 올렸다.
장민을 위시한 마교의 장로들도 각각 기운을 내뿜어 가스를 밀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발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은 단연코 홍왕과 바토르였다.
“훕!”
콰아아아아아아!
“타앗!”
쿠우우우우웅!
두 사람이 만들어낸 권풍이 연기를 단숨에 밀어낸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한 광경이지만, 지금은 감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빌어먹게도 퍼붓네!”
물량공세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어차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할 화학무기를 모조리 처분하겠다는 생각인지, 폭격기는 끊임없이 날아왔다. 어디서 저 많은 폭격기를 동원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화학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 이상, 화력은 쏟아지지 않을 거라는 점. 기껏 뿌려놓은 화학무기를 화염과 폭발로 모조리 날려 버릴 수는 없을 테니까.
“빌어먹을! 피부! 피부로 스며든다!”
“정화통도 오래 못 버텨! 이탈한다!”
이현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회주님, 이탈해야 합니다!”
강진호가 허공을 박차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바닥에 착지한 강진호의 눈이 광망을 토해냈다.
“바토르!”
“알았다!”
“홍왕! 뒤를 맡아라!”
“그러지!”
“움직여!”
바토르가 전방으로 전차처럼 돌진했다.
“따라와라, 이 빌어먹을 놈들아! 내가 길을 열어주겠다!”
전방으로 돌진한 바토르가 자신의 앞쪽에 놓인 나무들을 과격하게 후려쳤다.
콰르르릉!
나무들이 부러지고 뿌리째 뽑히며 앞쪽으로 휘돌며 날아간다.
대규모로 따라올 총회의 회원들에게 확실한 이정표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혹시나 앞쪽에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의 은신처를 날려 버리기 위한 일격이었다.
콰르르릉!
“오오오오오오!”
바토르가 괴성을 내지르며 내달린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보존했던 힘을 단번에 털어내겠다는 듯 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좋아!’
이현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딱히 말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만큼 우수하기 때문인지.
바토르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이현수의 원하는 모든 것을 해내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기.
무엇보다 사기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사들처럼 상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모를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니 지금 다들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머리 위로 폭격이 떨어지고, 사방에서 화학무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무슨 수로 정신을 차리겠는가.
순식간에 모두가 패닉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게 바로 이정표고, 닥치고 등을 보고 따라 달릴 수 있는 이다.
바토르는 고함과 주먹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모두에게 알렸다. 그리고 더없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그의 뒤만 따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고 있었다.
앞으로 튀어나가자마자 그 모든 것을 단숨에 해내는 바토르도 대단하고, 그런 바토르를 주저 없이 선두에 세운 강진호도 대단하다.
이럴 때는 그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오히려 바토르가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계산이겠지.
“뒤로 따라붙어! 당장! 절대 떨어지지 마!”
“예!”
총회의 회원들이 방독면을 조이며 바토르를 따라 질주를 시작했다.
“방진훈!”
“예, 회주님!”
“이차로!”
“예!”
뒤쪽에서 상황을 통제하던 방진훈이 강진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몸을 날려 무인들의 사이로 파고든다.
“장민, 교도를 이끌어라!”
“명을 받듭니다!”
장민이 마교도들을 이끌고 총회 회원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위긴스!”
“이동합니다!”
마지막으로 위긴스까지 움직이고 나자 남은 것은 홍왕계뿐이었다. 강진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차이커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자!”
“예!”
차이커창이 득달같이 달려와 이현수의 뒷목을 움켜잡았다.
“뭐야, 이 새끼야.”
“닥치고 따라와! 너는 뒤쪽에 있어봐야 방해만 돼!”
이현수를 제압한 차이커창이 홍왕계의 선두에서 질주를 시작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달려 나가는 것을 확인한 홍왕이 고개를 슬쩍 돌려 강진호를 바라봤다.
“뒤는 내가 맡기로 했을 텐데?”
“안 그래도 이제 가려던 참이야.”
“마왕.”
둘만 남은 두 절대자가 서로를 바라본다.
“어쩌면 지금은 내가 너에게 충고를 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군. 하나는 명심해라, 마왕.”
“…….”
“모두를 살릴 방법 같은 건 없다. 희생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홍왕을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너보다 더 잘 알고 있어.”
“그럼 그걸로 됐다.”
홍왕을 빤히 바라보던 강진호가 몸을 날려 회원들에게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홍왕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강진호는 수도 없는 전투를 통해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이니까.
다만…….
“지금까지 네가 잃어버린 이들을 진정으로 잃었다고 할 수 있는가?”
버려도 될 것들을 잃은 이와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잃은 이가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저 단호한 대답이 지금 강진호의 심리를 말해주는 것 같아 껄끄러운 홍왕이었다.
“생각보다 더 힘겨운 전쟁이 될 수도 있겠군.”
홍왕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쏟아집니다!”
“이 미친 새끼들, 대체 얼마나 준비한 거야!”
하늘에서 검은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명환은 습기가 차오른 방독면을 신경질적으로 조였다.
‘빌어먹을!’
제대로 된 방독면이라면 이렇게 습기가 차서는 안 되는 법이다. 하지만 방독면이 불량품인지, 그게 아니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는 그의 폐활량을 방독면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고글 안 쪽부터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미칠 노릇은 그렇다고 방독면을 벗을 수도 없다는 것.
이 가스가 얼마나 지독한지 이미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현기증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전신을 수천 개의 바늘로 찔러 대는 것처럼 피부가 따갑다.
“문지르지 마, 이 병신들아! 손대지 말라고!”
“제길!”
무인은 평범한 사람보다 모든 면에서 저항력이 뛰어나다. 일반인이 먹으면 즉사할 독도 무인에게는 그저 작은 복통을 유발하는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이리 전신의 피부가 짓무를 정도로 아파온다는 건, 이 가스가 평범한 이는 순식간에 숨을 끊어버릴 정도로 지독하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가스를 쓰는 놈도 미친놈이고, 그걸 예상하고 방독면을 준비하라고 한 놈도 미친놈이지!’
전쟁이란 애초에 광기와 광기의 격돌이라고 하지만, 이 광기는 그가 예상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커억!”
이명환의 눈이 흔들린다.
앞쪽에 달리던 이가 비틀대더니, 그 자리에 풀썩 넘어졌다. 순간적으로 이명환의 머리가 탈색된다.
‘어떻게 하지?’
데리고 간다?
지금도 화학가스가 쏟아지고 있는 이 미친 전쟁터에서 다른 이를 돌볼 수 있나?
그럼 두고 간다?
제대로 손에 피도 묻히지 않았는데, 그건 그저 변명이 아닌가?
“빌어먹을!”
“이명환!”
등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지만, 이명환은 지체 없이 달려들어 쓰러진 이를 어깨에 들쳐 멨다.
“의식이 있으면 계속 숨을 쉬어! 그냥 잠깐 쇼크가 온 거야! 금방 괜찮아진다!”
“죄, 죄송……..”
“닥치고 천천히 숨부터 쉬어!”
쓰러진 이를 들쳐 멘 이명환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반드시 살아 돌아간다! 반드시!”
그러는 와중에도 그들의 주변으로 주먹만 한 쇠공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바닥에 닿은 쇠공에서 연분홍빛의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비현실적이군.’
SF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광경이다. 하지만 이건 그의 피부에 와닿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가스에 더 노출되면 못 버…….”
그 순간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액!
무언가가 그들의 머리 위로 광속으로 날아들었다.
이명환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위쪽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익숙한 형체가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회주님?”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명환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강진호의 주변을 지키면서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크기의 검은 화염이 그들의 머리 위를 완전히 뒤덮었다.
카가가가각!
카각!
쏟아지던 금속구가 화염과 맞닿으면서 바닥에 떨어지지 못하고 우그러져 연기를 뿜어냈다.
검은 화염 위로 연분홍빛의 연기가 꽃처럼 피어난다.
“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기괴한 광경.
과학과 내력이 충돌하고, 상식과 비상식이 뒤섞여 춤을 추는 세상의 끝을 그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