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68
#1767.
추격하다 (2)
손끝이 저려온다.
밀려 들어오는 독기가 숨통을 틀어막는다.
피어오르는 연분홍빛의 연기들이 강진호의 마기에 밀려난다. 하지만 밀어내도 밀어내도 피어나는 연기는 끝을 모른다.
‘독기라…….’
과거식으로 표현하자면 독기라고 해야겠지.
그 독기 속에서 강진호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천당가와 싸우는 것 같군.’
독과 암기의 조종이라 불리던 사천당가가 현대까지 그 명맥을 유지했다면 아마 이런 형태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무학을 무학으로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서 활용하던 이들이니까.
좀 더 효율적이고, 좀 더 간편하게 독을 쓸 수 있는 방법이라면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포탄의 비를 바라보았다.
이 공격에는 인간미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를 죽여 없애겠다는 의지만이 가득한, 시리도록 차가운 공격.
말 그대로 강철의 비였다.
딱히 구분할 생각은 없다.
버튼을 눌러 사람을 죽이는 일이나, 직접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일이나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까.
숨과 숨이 마주 닿고, 피와 피가 섞여 흐른다고 해서 그곳에 인간미를 투영하는 것은 정신이 어떻게 되어버린 광인의 관점일 뿐이다.
다만…….
그럼에도 심장이 섬뜩해 오는 것은 이 일련의 공격을 행하는 이가 다름 아닌 창왕이기 때문이다.
삼왕(三王).
수십 년 동안 무인계의 중심인 중원을 지배한, 확고부동한 무의 정점.
그 창왕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전쟁에서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가 바로 폭격이라는 사실이 강진호를 더없이 섬뜩하게 만들었다.
강진호 역시 알고 있다.
무학은 언젠가는 사멸한다.
무학은 결국은 살인술에 불과하다. 아무리 도니 예니 하는 말을 붙여 개소리를 지껄여 댄다 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무학이 살인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언젠가 무학은 과학의 이름하에 사멸하고 말 것이다.
과학은 무학처럼 지난한 수련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람을 학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인은 스스로 익혀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마련이다. 강진호만 해도 언젠가는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도 없이 ‘아직은’을 외쳐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창왕에게는 그런 자부심이 없다.
스스로 실리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강진호지만, 창왕은 그런 수준을 훌쩍 넘었다.
평생을 거쳐 이룩한 무학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다버리고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을 주저 없이 택한다. 강진호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손을 잡을 수 없고.
그렇기에 섬뜩하다.
우둑.
주먹을 틀어쥔 강진호의 주먹이 마기를 내뿜는다.
이제는 그의 일부나 다름없어진 마기가 주인의 의지를 받들어 살아 있는 듯이 타오른다. 검고 검고 또 붉은 마기가 불꽃처럼 타오르며 연기를 밀어 올렸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명환에게 벼락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멍하니 있어! 움직여!”
누구의 목소리인지 파악할 틈도 없다.
머리가 목소리를 인식한 순간, 그의 다리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저만한 폭격을 막아내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이탈하는 것이 강진호를 도와주는 길이다.
“달려!”
이명환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강진호가 막아내기 전에 이미 떨어진 탄들이 연분홍의 연기를 피워낸다.
달빛이 내리비치는 산속에서 연분홍빛의 연기들이 피어오르는 광경은 어이없게도 환상적이었다. 저 연기들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더없이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지옥이라는 건가?’
이명환이 이를 악물었다.
눈에 보이는 광경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그 속을 헤쳐 나가는 이들의 상태는 결코 좋지 못했다.
‘빌어먹을.’
손끝에서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바늘을 찔러 대는 듯한 가혹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손끝만은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명환은 이게 절대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코끝에서 비릿한 향이 느껴진다.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조여진 방독면을 뚫고 가스가 스며들고 있다.
평범한 이라면 순식간에 전투 불능이 될 만한 유독 가스를 여기까지 막아준 방독면의 성능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완벽하게 가스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한 기능에 욕을 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쿨럭! 쿨럭!”
기침을 뱉어낸 이명환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들쳐 메고 있는 이의 방독면 끈을 잡아 조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절대로!
“야! 이쪽으로 넘겨!”
“됐어!”
“닥치고 넘기라고! 네가 빨리 지치면 우리도 좋을 것 없어!”
옆을 달리던 마염들이 거칠게 그를 밀어내고 부상자를 업어 든다.
“간다!”
이명환이 이를 갈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살짝 여유가 생긴 그가 달려 나가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회주님!’
강진호는 여전히 쏟아지는 쇠공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마기를 저만큼 두텁고 넓게 전개할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스스로 마기를 다루는 입장이기에 지금 강진호가 얼마나 가공할 무위를 보여주고 있는지 완벽히 실감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기에…….
“빨리 달려, 이 새끼들아! 당장!”
더더욱 마음이 급해지는 이명환이었다.
“오오오오오!”
바토르가 바닥을 박차고 돌진하며 양팔을 휘두른다.
콰르르릉!
그의 팔에 걸린 나무가 사방으로 튕겨 나가며 다른 나무들을 부러뜨리고 뽑아낸다.
바토르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개 같은 자식들!”
그의 눈앞에 쏟아지는 쇠공들이 보인다. 아무리 강진호가 막아내고 있다고 한들 이 긴 행렬의 가장 앞쪽과 뒤쪽을 모조리 커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바토르가 달려 나가며 바닥에 떨어진 쇠공들을 바닥째로 걷어차 날렸다.
최대한 멀리, 그리고 최대한 많이!
쇠공들이 연분홍빛의 꼬리를 남기며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우둑.
전신이 저릿저릿하다.
그가 아무리 신이 내린 육체를 소유한 이라고 해도 신경에 파고드는 독소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
“바토르 님!”
“알고 있다!”
바토르가 버럭 소리를 질러냈다.
아마 강진호는 행렬의 중간을 완벽하게 커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홍왕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폭격을 막아내겠지.
하지만 모두의 중독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이곳이다. 앞쪽에 떨어진 쇠공들을 어쩌지 못한다면 아무리 위를 막는다고 해도 행렬은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길을 지나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바토르는 이런 섬세한 작업을 하기에 적합한 이가 아니었다. 지대 자체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 짓을 반복하다가는 아무리 그라고 해도 금세 지쳐 버릴 테니까.
“이런 빌어먹을!”
바토르가 막 일권을 더 날리려던 찰나였다.
“그냥 가십시오!”
바토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의 뒤쪽을 따르던 총회의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방독면으로 가려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보지 않아도 저들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길만 뚫으십시오! 저것들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피부에 닿는 것도 위험하다, 이 멍청한 놈들아!”
“압니다!”
대답은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아니까 가십시오! 바토르 님의 속도가 떨어지면 어차피 다 죽습니다!”
“이…….”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이!”
바토르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가 쇠공들을 무시하고 돌진하자, 그 뒤를 따르던 이들이 와락 달려들어 바닥에 떨어진 쇠공들을 집어 들고는 멀리 내던지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별 느낌이 없지만, 신경 독을 손으로 만지고도 무사할 리가 없다. 이 독은 분명 피부로도 스며들고 있으니까.
하지만 선두를 달리는 이 중 망설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 멀리 던져!”
“길 밖으로 던져도 가스가 퍼지면 여기까지 온다! 뒤쪽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도록 힘껏 던지라고!”
“알았어!”
누군가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검은 하늘에 여전히 폭격기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공포를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끝이 없어, 이 미친놈들.”
“보지 말고 달려!”
이를 악물고 바닥을 걷어찬다.
다리의 힘이 절로 풀려 나갈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의지를 잡아 붙들어주고 있는 건 선두에서 치고 달리는 바토르와 그들의 머리 위에서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 강진호의 존재였다.
그리고 반대로…….
콰아아아앙!
바토르가 나무를 통째로 뽑아낸다.
의미 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길을 얼마나 깔끔하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그의 뒤를 따라오는 이들의 속도가 달라진다.
‘나 혼자 모든 걸 할 필요는 없어!’
그가 놓친 것은 따라오는 이들이 해줄 것이다. 그는 강진호가 될 필요도 없고, 홍왕이 될 필요도 없다.
그는 그저 바토르.
그걸로 충분하다.
강진호나 홍왕이 선두에 선다고 해도 그처럼 빠르게 길을 뚫지는 못할 테니까!
그의 고개가 슬쩍 뒤로 돌아간다.
앞으로 달려든 이들이 쇠공을 걷어내면, 뒤따르는 이들이 그들을 추월해 튀어나와 다시 쇠공을 걷어내기를 반복한다.
한번 그렇게 걷어내고 나면 슬쩍 뒤로 빠져 몸을 사릴 만도 한데, 이놈들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선두로 나서려고 서로를 밀쳐 내고 있었다.
“흐…….”
그 광경을 본 바토르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머저리 같은 것들이.’
제 목숨 귀한 줄도 모르고!
주먹을 움켜잡은 바토르가 앞으로 달려 나간다.
“빨리…….”
바토르가 입을 다물었다.
어둡기만 한 숲의 건너편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
‘적? 아니면…….’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
숲 사이에서 붉은 불꽃이 수십 개 피어오른다 싶더니, 무언가가 바토르를 향해 순간적으로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커다란 폭음이 터지며 바토르의 몸이 순간적으로 검은 폭염에 휩싸였다.
“바토르 님!”
“이런 빌어먹을! 대전차 로켓?”
뒤따르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콰아아아앙!
조금 전 터진 폭음에 비해 몇 배는 더 큰 폭음이 터지며 숲이 통째로 들썩였다.
“이따위로 나를 막아내겠다고?”
전방의 나무를 사방으로 날려 버린 바토르가 폭염 속을 뚫고 나온다.
“달려라! 멈추지 말고 달려! 앞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내가 모두 막아줄 테니, 나를 믿고 달려라!”
“예!”
바토르가 두 눈을 붉게 물들였다.
다시 한번 날아드는 대전차 로켓들을 보면서도 바토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되레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바토르가 사자가 포효하는 듯 고함을 내질렀다.
“바토르다!”
콰아아아앙!
날아드는 포탄들을 몸으로 막아내고, 그를 스쳐 지나는 포탄까지 모조리 쳐낸 바토르가 야수처럼 돌진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바토르가 두 눈을 부릅뜬 창왕의 무인을 후려쳐 날렸다.
‘초원의 전사가 아니야.’
바토르가 입가를 뒤틀며 웃어버렸다.
“그래. 나는 총회의 바토르다! 와라, 창왕의 개들아!”
바토르의 커다란 고함 소리가 어둠이 내린 하늘 위로 퍼지고 또 퍼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