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75
#1774.
울부짖다 (4)
회색빛의 폭연이 하늘로 치솟는다.
위긴스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
‘뭐지?’
보지 못했다.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의 동체시력으로도 저 폭발을 일으킨 원인을 찾지 못했다.
‘투사체가 없었는데?’
저만한 폭발을 일으킨 물건이라면 그 크기가 작을 수 없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중국이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바닥?”
위긴스가 원인을 찾아냈다는 듯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투사체가 없다면 바닥에서부터 폭발했겠지. 지뢰라든가, 아니면 미리 매설해 둔 폭약이라든가.
어느 쪽이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위긴스가 이를 갈아붙였다.
그들은 지금 즉흥적으로 진격로를 정했다. 출발 직전까지 어디로 갈지는 그들도 모르지 않았던가.
매설이라는 것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최소한 진격로라도 확보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병력을 결집시킬 때 매설할 수도 있지 않냐고?
무리다.
무인의 눈썰미는 평범한 이들을 완벽하게 상회한다. 강진호쯤 되면 거의 인간의 감각을 초월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이가 조금 전에 파헤치고 다시 묻은 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폭약은 최소한 며칠 전에는 매설이 끝났다는 이야기다.
‘말도 안 돼.’
정황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위긴스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아무리 창왕의 두뇌가 뛰어나다고 해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유도했다는 건가?
이쪽으로?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는 건 창왕은 이미 총회가 달아나지 않고 그를 쫓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의미다.
‘아니야. 불가능 해.’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닌가.
제아무리 창왕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선택마저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 절대로!
“그럼 대체…….”
그때, 솟아오른 폭연이 점점 걷히며 강진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로, 로드…….”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강진호의 안위를 살피는 게 먼저라는 걸 그제야 깨달은 위긴스가 답답한 신음을 토하며 바라봤다.
어느새 마기를 회수한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본다.
다행스럽게도 강진호의 몸에 딱히 다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폭발이 너무 커서 당황했지만, 저 강진호가 누군가. 폭발 따위에 당할 이가 아니었다.
강진호가 딛고 있는 바닥이 완전히 뒤집혀 있는 걸 확인한 위긴스가 안색을 굳히며 고함쳤다.
“로드! 창왕이…….”
“됐다.”
강진호가 차갑게 말한다.
그 목소리를 들은 위긴스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뭘 준비했든 상관없어.”
강진호가 앞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막으면 뚫는다. 그뿐이야.”
위긴스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과하게 솟구쳤던 열기가 식으며 머리가 다시 돌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위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강진호의 말이 맞다.
설사 창왕이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그들을 함정에 빠뜨린 거라 치자. 그럼 대체 뭘 어쩔 건가.
지금부터 방향을 틀어 다른 쪽으로 도주하기라도 할 건가.
‘개소리!’
이건 이미 외통수다.
전력을 소비한 그들이 중국이라는 땅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이상, 달아날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들이 창왕을 죽이든지, 아니면 총회가 창왕계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든지 둘 중 하나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뭘 망설인단 말인가.
‘이현수더러 그렇게 침착하라고 해놓고서는…….’
막상 창왕의 그림자에 뒤흔들리는 건 이현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도 창왕이라는 존재가 가진 짙고 깊은 그림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었다.
“……지원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마음에 든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한 가지는 알아둬.”
“예?”
“저쪽도 필사적이야.”
“…….”
그 말에 위긴스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완전히 몰려 있었군.’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창왕은 완벽하게 여유를 가진 채 그들을 상대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확연히 생각한 것은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다름 아닌 강진호다.
세상 그 누구도 강진호를 상대하면서 여유를 가질 수는 없다. 이쪽이 필사적으로 뚫으려 하는 것처럼 저쪽도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막고 있을 뿐이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거금을 투자해 육성한 수하들은 있는 대로 밀어 넣고, 가진 정치력을 모두 소모해 군을 동원하고, 그러면서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필사적으로 뒤로 숨어든다.
이게 어딜 봐서 여유를 가진 이가 할 대처란 말인가.
이전 전투에서 창왕은 직접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강진호를 직접 상대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아무리 대담하게 스스로를 미끼로 썼다지만, 그건 마스터라는 탈출로를 확보한 이후의 행동일 뿐이다. 그 이후로는 과거처럼 근거리에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숨기지 않았는가.
‘저쪽도 그만큼 부담이 크다는 거겠지.’
겁에 질렸다?
그렇게까지 표현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창왕 역시 이 한 번의 승부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목이 떨어진다는 것을 완전히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서로 마찬가지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걸 이해한 것만으로 한결 숨쉬기가 편해지는 느낌이다.
“죄송합니다, 로드.”
“괜찮아.”
강진호가 적루를 늘어뜨린다.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침착하다고 자부하지.”
“…….”
“전장에서 해야 할 것은 침착을 유지하는 게 아니야. 내가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거지.”
정곡이 찔린 기분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바토르가 눈을 찌푸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쳤으면 교대해 주지.”
“건방진.”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다시 간다. 숨도 쉬지 말고 따라와.”
대답도 듣지 않고 강진호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한 번 눈길을 빼앗겼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창왕의 무사들이 이곳까지 오는 동안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강진호의 시선을 빼앗은 동안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지금의 창왕계의 무사들에게 강진호의 멈춤은 그저 도망갈 시간이 조금 늘어난 것에 불과했다.
창왕의 계산보다 조금 더 일찍 무너진 전열이 그의 계획을 조금씩 어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앞쪽에서 들려오는 폭음에 이현수의 눈이 가늘어진다.
‘이건 무공으로 나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조금 전처럼 로켓탄을 쏴대는 것도 아니었다. 명백히 폭음의 결이 다르다.
‘매설 폭약 혹은 특수 제작한 지뢰. 그게 아니면 크레모아인가?’
어느 쪽이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현수는 딱히 그 부분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소지하고 사용하는 화기로 강진호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이미 수없는 전투에서 증명이 끝난 논제다.
‘오히려 빨라졌어.’
달리는 이들이 점점 버거워하는 느낌이 든다. 길을 뚫는 이들의 속도가 따라붙는 이들의 속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나쁘지 않아.’
차갑게 가라앉은 이현수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다른 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온전히 머리를 쓰는 것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었다.
“뭐가 얼마나 남은 거야!”
“안 남았어.”
“뭐?”
이현수가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처음 파악한 거리는 이미 거의 좁혔어. 이제 불과 2킬로미터 정도다!”
2킬로미터.
무인에겐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아니, 평범한 이들에게도 긴 거리가 아니다. 전력을 다해 달린다면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창왕의 위치는?”
“아마 그대로겠지. 지금 사부님이 계속 탐지하고 있을 거야. 변화가 있었다면 방향이 바뀌었겠지!”
“모르고 있는 건가?”
“그건 알 수 없어.”
이현수가 작게 뭔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창왕계의 움직임, 상대가 동원한 무기, 그리고 병력의 배치와 공기의 흐름.
그 모든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분석하며 상대의 반응을 예측해 낸다.
“앞쪽에 모든 게 배치되어 있을 거다. 창왕은 도박을 하지 않아. 도박처럼 보여도 그건 언제나 철저한 계산의 결과지. 병력을 재배치하며 자신의 앞을 보강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거기까지 말을 한 이현수가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폭격? 아니, 폭격은 아니야. 그건 너무 부정확해. 그럼 뭐지? 대규모 매설? 아니야. 그건 위치를 특정하기가 너무 힘들어. 방향에 따라 다르지. 그럼…….”
그가 창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지한다. 일단은 저지한다.’
어떻게든 상대의 접근을 막아내고 끊임없이 방해한다.
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해.
이건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총회의 병력이 소모되지 않는 이상, 그건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을 늦추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생각해라. 내가 창왕이라면…….’
노려야 할 것은 둘 중 하나.
강진호를 반드시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든가.
그게 아니면…….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렸다.
“산개해! 당자아아앙!”
“뭐?”
차이커창이 당황하여 이현수를 돌아본다.
“길에서 벗어나라! 숲속으로 들어가! 지금 당장!”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럼 속도가 늦어진다!”
“닥치고 전달해! 어서!”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폭격은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차이커창이 화력이 아닌 화학무기를 쏟아부은 이유도 명백하다.
첫 번째는 굉음과 화염.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리고 이곳이 아무리 외지라고 해도 중국 땅에 폭격을 가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리는 없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특정할 수가 없어.’
폭격이란 즉각적으로 방향을 수정하여 쏟아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폭격은 목표 지점을 정해놓고 투하한다. 폭격기란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 목표를 수정할 수 있는 병기가 아니니까.
이 어둠 속, 이 숲속에서 움직이는 이들을 핀 포인트로 저격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려면 산맥 전체를 뒤덮어 버릴 기세로 화력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럼 화력의 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는 다르지! 벌써 한 번 처 맞았잖아! 자주포를 쏴댈 거다!”
화포는 포구를 조금 트는 것만으로 실시간으로 좌표 수정이 가능하다.
“자주포는 이런 상황에서 큰 도움이 안 돼! 이 넓은 곳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
차이커창의 눈이 흔들린다.
“빌어먹을, 길을 뚫었구나!”
원래대로라면 숲을 달리는 그들을 자주포가 특정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바토르가 뚫어내고 그들이 달리고 있는 길이 좌표가 되어줄 테니까!
“산개해! 숲으로 들어가! 빌어먹을! 당장 움직여, 이 굼뜬 새끼들아!”
그 순간, 차이커창의 귀에 맹렬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무언가가 보인다.
“빌어 처먹을!”
이현수의 뒷목을 움켜잡은 차이커창이 전력을 다해 길옆의 숲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수십 개의 폭음이 동시에 터진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산 전체가 뒤흔들리고, 연이은 후폭풍이 산맥 전체를 휩쓸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이 개 같은 새끼야아아아아!”
산비탈을 굴러 떨어지는 이현수의 입에서 처절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