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80
#1779.
대면하다 (4)
“달려, 이 새끼들아!”
이현수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흙먼지와 검댕으로 더러워진 그의 얼굴에 핏발이 선 눈만이 붉게 빛났다.
그의 주변을 지키며 뒤를 따르는 이들의 몸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들러붙은 화염이 몸을 지져 대 곳곳에 화상을 입었지만, 그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분노에 가까웠다.
“허억! 허억! 허억…….”
전력으로 달리던 이 중 하나가 다리가 꼬였는지 바닥으로 쓰러진다.
“일어나, 이 새끼야!”
이현수가 쓰러진 이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잡았다.
“힘들어? 뒈지면 힘들 수도 없어! 여기가 어디라고 처 누워! 당장 안 일어나?”
이현수가 쓰러진 이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실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힘 빼시면 안 됩니다!”
달리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이현수에게 몰려들었다.
그들이 이현수를 잡아 쓰러진 이에게서 떼어냈다. 이현수가 감정적으로 나오는 것을 우려하는 게 아니라, 이현수가 괜히 힘을 뺄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저희가 업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이현수가 이를 빠득, 갈았다.
그의 주변을 알아서 모인 십여 명의 회원들이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화염이 떨어지면 제 몸으로 막아내고, 앞서 나가 함정이 없는지를 살핀다.
누가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이현수가 다치거나 죽어서는 안된다는 걸 말이다.
“이러실 시간 없습니다!”
“이동하셔야 합니다.”
이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쓰러진 이를 들쳐 업는 모습을 본 이현수가 앞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불지옥.
그 말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의 눈에 불타오르는 화마(火魔)와 하늘을 뒤덮을 듯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의 모습이 들어온다.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그런 이현수의 주변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속속들이 합류한다.
이현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얼굴이 불타 진물이 흐르는 놈이 제 걱정은 안 하고 이현수의 안위부터 살핀다. 어딜 어떻게 다쳤는지, 다리를 절뚝이는 놈도 시선은 이현수에게 고정되어 있다.
‘병신 같은 것들이!’
알고 있다.
이건 단순히 누군가를 위하고 말고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저들에게 있어서도 이현수는 반드시 필요한 이다. 승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하지만 이현수는 이 상황을 단순히 그렇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빌어먹을.’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과거, 영남회에 있을 때, 이현수는 영남회의 회원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그리고 영남회의 회원들 역시 이현수가 죽든 말든 아무 관심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현수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환호할 이들이 더 많았겠지.
그때와 지금은 대체 뭐가 달라졌는가.
그는 여전히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목적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도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머저리 같은 놈들은 제 안위도 돌보지 않고 그를 지키려 드는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울컥함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뭘 지키겠다는 거야!’
결국은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했는데, 대체 그를 지켜 뭘 하겠다는 건가.
“이현수!”
그때, 그의 귓가에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더 빨리 뛰어! 너 때문에 모두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차이커창의 고함 소리에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피해가 줄어든다.
“빌어먹을, 화염이 거세진다!”
이현수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가자, 이 새끼들아! 더 빨리 뛰어!”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들의 등 뒤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소리가 나더니, 타오르던 화염들이 광풍에 뒤흔들렸다.
“뭐, 뭐야!”
“엎드려!”
달리던 이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바짝 엎드린다. 이 몰아치는 광풍은 무학을 익힌 그들조차 놀라게 만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불타오르는 나무를 통째로 뽑아버릴 것 같은 광풍이 화염을 꺼뜨리기 시작했다. 강풍을 만난 불꽃은 더 크게 타오르기 마련이건만, 지금 불어오는 광풍은 그런 상식조차 무시하고 있었다.
타버린 나무들이 부러지고 휘어진다.
과격하게 몰아치던 광풍이 잦아들자, 겨우 버텨낸 나무들이 제 자리를 되찾았다.
검게 불탄 나무들이 새하얀 연기를 내뿜지만, 조금 전까지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타오르던 불꽃들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게 뭔?”
저벅.
이현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손을 늘어뜨린 홍왕이 가만히 그들을 향해 걸어온다.
“내가 조금 늦었군. 미안하다.”
이현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살면서 여러 일을 겪어봤지만, 저 거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날이 올 거라고는 천하의 이현수조차 생각해 보지 못했다.
“홍왕이시여!”
차이커창이 홍왕을 보며 소리쳤지만, 홍왕의 시선은 차이커창에게 닿아 있지 않았다.
그가 가라앉은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계속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텐가?”
“……그럴 리가요.”
이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행동이 마음에 든다는 듯 홍왕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움직여라.”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앞쪽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불이나 마저 처리해 주시죠.”
“얼마든지.”
홍왕이 가볍게 걷는다. 보기에는 천천히 걷는 것 같은데, 그의 몸은 한 걸음에 몇 미터씩 쭉쭉 나아갔다. 그 모습을 본 총회의 회원들도 힘이 나는지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상황이 우습네.’
홍왕의 무위를 보고 힘을 얻는다니.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홍왕이 더없이 든든했다.
“가자!”
“예!”
이현수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뭐지?”
이현수가 당황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몰려 있는 총회의 회원들이 보인다. 그보다 앞쪽에 있던 이들이 더는 전진하지 않고 우르르 몰려 넋을 놓은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콰아아아아아아앙!
앞쪽에서 들려온 충격음이 이현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순간, 이현수는 지금 저 인의 장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잡았구나!’
이현수의 눈에 희열이 어렸다.
이 가공할 충격은 삼왕급의 격돌이 아니고서야 만들어낼 수 없다. 그 말인즉슨…….
“일단 달아나는 건 막았군!”
차이커창이 그 대신 말을 해준다.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비켜봐!”
앞쪽에 몰린 인원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넋을 놓고 앞쪽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이현수를 확인하고는 바로 길을 터주었다.
앞쪽으로 달려 나간 이현수의 눈에 그가 더없이 바라던 광경이 들어왔다.
콰아아아아앙!
강진호의 적루가 한눈에 보아도 끔찍할 만큼의 마기를 두르고 창왕을 내려친다.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창왕의 몸이 바닥으로 내리꽂혀 땅을 뚫고 들어간다.
쿠르르릉!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산 전체가 진동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창왕이 뚫고 들어간 바닥이 말 그대로 뒤집히더니, 그 안에서 옅은 우윳빛을 띤 강기들이 대공포처럼 쏘아지기 시작했다.
쾅! 콰앙! 쾅! 쾅!
날아드는 장력들이 강진호의 검에 튕겨 나간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진호라고 해도 살아 있는 것처럼 제 스스로 방향을 틀며 사방을 덮쳐 오는 장력들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스슷.
흐물거리는 장력들이 강진호의 검에 닿기 직전, 빙글 회전하며 검을 피하며 안으로 파고든다.
천하의 강진호조차 그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콰아아아앙!
유령 같은 장력이 강진호의 옆구리를 파고든다. 늑골이 모두 으스러지는 것 같은 충격에 강진호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멈춘다. 하지만 그를 호시탐탐 노리던 장력들은 그 작은 틈조차 놓치지 않았다.
강진호의 전신으로 장력이 비처럼 떨어진다. 허공에 떠 있던 강진호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그 위로 장력의 비가 쏟아졌다.
마치 폭설이 내리는 것 같은 광경.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이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저 하나하나가 모두 강기.
웬만한 고수는 단 하나도 만들어내기 어려워하는 강기가 눈처럼 쏟아진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인간이 과연 저걸 받아낼 수 있을까 싶은 광경이다.
‘저런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가 절로 갈린다.
“무시무시하군.”
홍왕 역시 이 광경에는 놀랐는지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다.
한 방, 한 방의 파괴력은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홍왕은 저만한 내력을 담은 강기를 수없이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새 더 강해졌는가.’
지금 창왕이 보여주는 무위는 그와 싸웠을 때와도 다르고, 강진호와 맞붙었을 때와도 다르다.
콰아아아아앙!
마지막 일격이 떨어지고 나서야 창왕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얼굴에 점점이 번진 땀방울이 코끝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홍왕이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랫동안 창왕이라는 이를 알아왔지만, 창왕이 저토록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껏 없던 전력을 뿜어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순간, 창왕이 고개를 들고 흙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전방을 바라보았다.
“엄살은 그 정도면 됐어, 마왕.”
그그극.
흙먼지 속에서 귀를 긁어 대는 쇳소리가 흘러나오더니, 검은 형체가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기로 전신을 두른 강진호가 흙먼지 밖으로 걸어나와 마기를 풀어냈다.
“아…….”
그 모습을 본 이현수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입술이 터지고, 얼굴이 찢겨 나갔다. 몸 곳곳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다.
마기로 방어했음에도 창왕의 공격이 강진호를 상처 입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퉤.”
강진호가 바닥에 침을 뱉어냈다.
그러고는 가라앉은 눈으로 창왕을 바라보았다.
“힘을 숨겼나?”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하지.”
“…….”
창왕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건 멍청한 짐승의 경우지. 어찌 될지 모르는 이를 상대로 전력을 내보일 리가 있나.”
강진호가 낮게 웃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인가?”
“…….”
“아니겠지.”
강진호가 적루를 움켜잡았다.
“아무래도 좋아. 모조리 끌어내 주지. 네게 남은 카드가 사라지는 순간, 너는 죽는다.”
“그전에 네 목이 잘려 나갈 거다, 마왕.”
“그것도 좋겠지.”
이를 드러낸 강진호가 지체없이 창왕에게 달려들었다.
파아아앗!
낮게 자세를 낮춘 채 거의 바닥을 비행하듯 달려든 강진호의 머리를 향해 창왕의 장력이 날아들었다.
일검에 장력을 베어낸 강진호가 두 눈에 광기를 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느려!”
검이 창왕을 후려친다.
카아아앙!
투명하게 물든 창왕의 손이 날아드는 검을 튕겨낸다.
하지만 그 순간, 강진호가 그 반동을 이용해 빙글 회전하더니, 검을 접은 주먹으로 창왕의 턱을 후려 갈겼다.
쾅!
짧고 커다란 폭음과 함께 창왕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간다.
“하핫!”
전신으로 불타오르는 듯한 마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괴조가 먹이를 향해 강하하듯 마기로 타오르는 두 날개를 펼쳐 내며 창왕을 덮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