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83
#1782.
격돌하다 (2)
그건 기괴한 광경이었다.
장력 하나하나가 마치 부유하는 악령과도 같다. 생전 처음 보는 그 압도적인 광경은 천하의 강진호조차 잠시나마 넋을 놓을 정도였다.
‘지옥에라도 온 것 같군.’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강진호도 모른다. 그 역시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해보았을 뿐, 사후 세계를 겪어본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지옥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눈앞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치 그가 죽인 영혼들이 복수를 위해 그를 갈구하는 것 같은 광경이지 않은가.
하나…….
우둑.
저게 장력이 아니라 실제로 악령이라 해도 강진호는 순순히 죽어줄 생각 따윈 없다.
있는 대로 마기를 끌어 올린 강진호의 적루와 청루가 쏟아지는 장력을 후려치고 또 후려친다. 검끝에 실린 검기가 마치 검은 유성처럼 길게 꼬리를 남기며 하늘로 솟구친다.
유성우.
검은 유성의 비가 하늘로, 또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러자 그 유성의 비를 귀곡성을 내지르는 악령들이 깨물고 물어뜯는다.
그건 더 이상 무학이라 부를 수 없는 광경.
상식을 초월하고, 인지를 거부하는 초월자들의 영역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연이어 거친 폭음이 터져 나온다. 하늘 위에서 폭격이 쏟아질 때보다 더 큰 폭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파가 그들의 주변을 휩쓸었다.
후폭풍만으로 몸이 찢겨 나가고, 뼈가 으스러질 만한 충격.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지켜보던 이들이 기겁을 하며 바닥에 엎드린다.
이현수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미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숲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없었다.
나무가 모조리 뽑혀 나가고 바닥이 모두 파여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땅을 누가 숲이라 부르겠는가.
세상을 지배하던 절대자들 간의 정면충돌은 말 그대로 지형을 바꾸고, 세상을 뒤집어놓았다.
감탄을 넘어 공포가, 공포를 넘어 경외가 치밀어 오른다. 서로가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저 두 사람은 확연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정점에 있었다.
창왕을 증오하는 자도 경외하지 않을 수 없고, 강진호에게 분노하는 자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부유하는 백색의 장력과 솟구치는 검은 검기.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화려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살기와 악의는 끔찍할 지경이었다.
“큭!”
창왕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뒤틀린 내장이 과도한 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연신 피를 뿜어낸다. 이러다가는 공격하다가 그의 속이 먼저 으스러질 지경이다.
하지만 창왕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남은 진기를 한 방울까지 모조리 끌어내어 퍼붓고 또 퍼붓는다.
뿌드드득.
근육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육체에 남아 있는 기운을 모조리 끌어다 쓰고 있는 탓인지, 어린아이의 살결처럼 부드럽던 그의 피부가 고목나무처럼 말라가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혀는 갈라져 피를 흘려 댔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생명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창왕은 장력을 뿜어내고 또 뿜어냈다.
한 번.
오직 한 번이다.
근육이 한 올, 한 올 끊어져 나가고, 신경을 바늘로 긁어 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창왕은 의지를 잃지 않았다. 이런 고통을 참아내는 것 따위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짜낸다! 더!’
손끝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흐아아아아아아앗!”
창왕이 고함을 내지르며 장력에 힘을 더했다.
세상이 모두 하얗게 바뀌어간다.
눈에 보이는 곳은 모조리 그가 내뿜은 장력으로 뒤덮였다. 마치 눈 내린 설원을 보는 것처럼 하얗고 또 하얗다.
하지만 창왕의 시선은 그 광경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이 새하얀 세상 너머에서 검게 불타는 화염에 고정되어 있었다.
주르르륵.
양쪽 코에서 선홍빛 피가 흘러내린다.
단전이 뒤틀리고, 뼈가 석회처럼 으스러진다. 그럼에도 창왕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공격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생명을 건 장력을 받아내는 강진호의 상황 역시 그리 좋지는 않았다.
우드드득.
손목에서 뼈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미 옷의 양쪽 소매는 압력에 으스러져 가루가 된 지 오래였다.
상반신의 피부가 퍼렇게 멍들다 못해 검게 죽어간다.
장력과 장력이 겹쳐지고, 또 겹쳐진다. 그 하나하나는 별게 아닐지 모르나, 수백, 수천 번 중첩된 장력은 그 강진호의 무릎조차 휘청이게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압력.
모세혈관이 모조리 터져 나가고, 짓눌러 오는 압력에 눈을 뜨기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강진호는 검을 휘둘렀다.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 같다.
아니, 녹은 납 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기분이다.
평소라면 그 무게를 느끼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검이 지금은 천근만근이 되어 그의 손목을 꺾어온다.
“으…….”
으드드득.
이가 부러질 듯 갈렸다.
무겁다.
너무도 무겁다.
홍왕도 아닌 창왕에게서 이런 무거움을 느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압력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손을 통해 파고드는 이 한기가 점점 더 그를 둔하게 만든다.
검을 잡은 손에 새하얗게 성에가 어린다.
손끝에서 시작된 성에가 손을 모두 뒤덮고, 손목을 지나 팔뚝까지를 모조리 새하얗게 물들인다.
‘대체 몇 가지나…….’
구음백골조, 소수마공, 거기에 유령장에 고루마공?
아니, 아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시작은 강진호가 아는 무학이었을지 모르지만, 이건 더 이상 그런 이름으로는 부를 수 없다. 창왕의 무학은 기존을 넘어 새로움에 이르렀다.
더 강해졌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진호는 그제야 창왕 역시 패배를 경험하지 못한 무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평생에 걸쳐 단 한 번도 목숨을 건 진검 승부를 해본 적이 없는 이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런 경지에 오르고부터는 말이다.
그런 그이니만큼 강진호와의 생사결은 분명 커다란 심득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수십 년간 답보 상태에 머물던 그를 진일보시킬 만큼.
그래.
마치 홍왕처럼.
홍왕이 할 수 있다면 창왕도 할 수 있다.
가진 무학을 모두 집대성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다. 오로지 강진호를 상대하기에 가장 적합한 무학으로 자신이 가진 틀을 바꿔낸다.
“흐…….”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영광인데.’
이건 그의 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압력이다. 그 말인 즉, 지금 눈앞에 있는 창왕은 과거 그가 적천마존으로 살아갈 때부터 지금까지를 통틀어 최강의 반열에 오른 무인이라는 의미였다.
우습지.
무가 그리도 번성하던 때에도 만나지 못한 적수를 이 척박한 시대에 조우하다니.
아니.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가 생에 마지막으로 피워내는 꽃은 더욱 아름다운 법이니까.
우스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강진호는 창왕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가 추구하는 무학과는 너무도 다른 길을 가는 이다.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서 무인으로서의 강진호는 무인으로서의 창왕을 인정할 수 없다.
한데 어째서인가.
그가 가장 경멸하는 종류의 인간이 지금껏 보지 못한 무위를 보여주고, 그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심장을 파고드는 살기를 내뿜는다.
‘너 역시 무인이라는 건가.’
강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끔찍하다.
그리고 경멸스럽다.
하지만…….
누군가는 강진호의 방식을 경멸하고 욕할 터.
드높은 산을 오르는 방법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어떤 방식이든 한계를 넘어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다면, 결국에는 같은 곳에 도달하는 법.
강진호가 피에 젖은 이를 드러냈다.
우습지도 않다.
자신 안의 신념을 강철처럼 세우고, 상대의 신념을 짓밟아야 하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게.
강진호였다면 어찌했을까.
도저히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이가 그의 가족을 노리고, 그의 친우를 노린다면, 정정당당히 맞붙어 실력으로 승부를 겨루고 패한 뒤에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겠는가.
‘개 같은 소리.’
실력으로 안 된다면 바짓가랑이라도 물고 늘어진다. 눈에 흙을 뿌리고, 발목에 독 바른 단검을 박아 넣는다. 그래도 안 된다면 수하들을 동원하여 차륜전을 펼치고, 그걸로도 모자라다면 군대라도 동원해야 한다.
그래.
뭐가 다른가.
잃지 않기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는 그가 잃지 않기 위해서 뭐든 한 창왕을 무슨 수로 비난할 텐가.
무인으로서 강진호와 창왕은 조금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강진호와 창왕은 다를 게 없다.
강진호가 지금까지 그 나름의 선을 지킬 수 있던 이유는 언제나 강자의 입장에서 물러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할 수 없는 강자가 한국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면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누가 알겠는가.
뿌드드득.
압력에 눌려 바닥을 파고든 발목이 뒤틀리며 뼈가 으스러진다. 몸을 지탱하던 허벅지가 터져 나가며 피가 솟구쳤다.
으득, 으드득.
부어오른 손에서 손톱이 절로 뽑혀 나가고, 손가락의 뼈가 조각조각 부서진다. 언제나 굳건하던 적루와 청루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져 떨어 댔다.
육체는 한계에 이르렀다.
압력이 금방이라도 그를 짓뭉개 버릴 것 같다.
하지만 강진호의 눈빛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흐아아아아아앗!”
고함 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온다.
창왕 역시 허공에서 몸을 계속 띄워 올리기가 힘겨웠는지, 어느새 바닥에 내려선 뒤였다.
하지만 변함은 없다. 이 압력은 사방에서 그를 조여오니까.
파아아아앙!
그 순간, 청루가 강진호의 손에서 벗어나며 맹렬한 속도로 튕겨 나갔다.
우둑.
두 손으로 남은 적루를 움켜잡은 강진호가 코와 입으로 연신 피를 토해내며 한 발을 앞으로 뻗었다.
우드득!
신발의 끝이 가루가 되어 휘날린다. 고작 한 걸음을 내딛는 대가로 발가락의 끝이 모조리 부러져 나가고 피부가 뜯겨 나간다.
쿠웅!
하지만 강진호는 멈추지 않고 한 발을 더 내뻗었다.
머리카락의 끝이 가루가 되어 휘날린다. 코와 입에서는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것마냥 피가 끝없이 흘러나온다.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고, 이미 고막은 예전에 그 기능을 잃었다.
그럼에도 한 발 더.
쿠웅!
앞으로 내뻗은 적루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들썩이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한다. 아니, 그 광경은 차라리 용이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모습 같았다.
한 발.
쿵!
또 한 발!
쿠웅!
우드득.
코뼈가 주저앉는다.
눈 밑의 뼈도 으스러진다.
입술은 이미 터지다 못해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손가락의 끝은 바스러져 허연 뼈가 튀어나와 있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강진호는 전진했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릿속은 더 이상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다. 그저 나아갈 뿐이다.
창왕 역시 다를 게 없었다.
준수하던 그의 얼굴은 이미 미라처럼 말라붙었다. 머리는 새하얗게 새어 바스러졌고, 고목나무를 연상케 하는 손은 금방이라도 꺾여 버릴 것 같지만…… 용케도 아직 장력을 내뿜어낸다.
몸 안에 생명을 담는 샘이 있다면, 그의 샘은 이미 말라붙었다.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그저 의지.
패하지 않겠다는,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의지뿐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앗!”
“하아아아아아아압!”
마지막 생명의 불꽃까지 끌어낸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모든 것을 걸고.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