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9
#178.
알바하다 (3)
“순진한 애라서 조금만 더 건드려 주면 됩니다.”
“……야, 근데 강세아가 순진하다는 건 그냥 착각 아니냐? 걔 성깔 있다고 유명하던데.”
“이번에 그 동영상 못 보셨습니까? 그 미친놈 하나가 난입한 영상요.”
“뭐? 그 강세아 오빠가 생방송 중에 강세아 끌고 간 거 말하는 거야?”
“예.”
한선구가 얼굴을 찡그렸다.
“야, 확실히 힘 있는 기획사가 좋기는 좋더라. 그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는데 방송 정지 하나 안 떨어지는 것 봐. 우리가 그랬으면 방송사 출입도 못할 텐데.”
“사장님은 그 상황에 그런 것만 보십니까?”
“그럼 뭐?”
“보통 그런 상황에서 오빠가 내려오라고 한다고 내려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 그러네?”
그것 보라는 듯 준영이 웃었다.
“성격이 있는 애면 오빠가 내려오라 한다고 그렇게 고분고분 내려가지도 않죠. 그거 다 루머라니까요.”
심각한 오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오빠란 놈 얼굴 봤냐? 와, 나는 깜짝 놀랐다. 동생이 아니라 오빠가 연예인을 해야 할 것 같던데?”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드만요.”
“야, 그거 진짜 잘 먹히는 얼굴이야.”
“요즘 여자애들은 그런 얼굴 안 좋아해요.”
한선구는 피식 웃고 말았다.
다른 남자 잘생겼다고 말하는데 질투하는 꼴을 보니, 이놈도 웃기기는 웃긴 놈이다.
“여하튼 그래서? 진짜 해볼 거지?”
“예.”
“……알았다. 나는 이제 모르는 일이니까, 니가 알아서 해라.”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수시면 됩니다. 대신에 좀 도와주셔야 할 게 있는데요.”
“뭐.”
“그날 이후로 강세아가 소속사에도 안 들어오고 있다는 거 같은데, 어디 있는지 아세요?”
“글쎄…….”
“나중에 기자들 오면 그거나 슬쩍 물어봐 주세요. 아무리 제가 난놈이라도 얼굴은 봐야 어떻게 해볼 거 아닙니까.”
“알았다. 그건 내가 알아봐 줄게.”
“예, 사장님.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준영이 나가자 한선구는 한숨을 쉬었다.
“하, 이거…… 욕하려고 불렀다가 내가 설득됐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준영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재경에서 그들을 압박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도 방송에 잘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방송사에 압력을 가한다고 그리 달라질 것도 없었다.
‘언론사 쪽이나 포털 쪽까지 막는다면 무섭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할 거야.’
거기까지 감싸기 시작한다면 언론에서도 재경과 강세아의 관계를 파고들려 할 것이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본 결과, 준영의 말 대로 하는 것이 이득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생 뭐 있나. 가보는 거지.”
자신의 인생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창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 못하는 한선구였다.
* * *
“많이 먹어, 응? 많이!”
“학생, 힘 많이 썼는데, 밥이라도 많이 먹어야지!”
“예.”
강진호는 태연한 얼굴로 식판에 밥을 받았다.
보통 일용직 근무자의 경우에는 정직원들이 밥을 다 받은 후에 남은 밥을 먹기 마련이지만, 강진호는 소장이 직접 정직원들의 앞에 줄을 세웠다.
“쟤는 뭐야?”
다른 라인에서 일한 정직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강진호를 끌어내려 나섰으나, 같은 라인에서 일을 한 직원들이 얼른 그들을 만류했다.
“냅 둬.”
“쟤는 밥 열 끼 먹어도 돼.”
“응?”
“사람 아니다. 건드리지 마라. 너 하나 정도는 잡아서 옥상까지 던져 버리고도 남는다.”
“……그게 뭔 소리예요, 형?”
침을 꿀꺽 삼킨 직원 하나가 강진호의 활약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쌀 포대 컨테이너를 10분 만에 작살? 시멘트 컨테이너를 솔플로 했다고?”
전설의 게이머가 현질 만땅한 장비를 전신에 둘둘 말고 레이드를 혼자 뛰었다는 영웅담을 듣는 것처럼 듣는 이들은 하나같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진짜야. 쟤 혼자 열 명분은 했다. 쟤는 사람 일당 치면 안 돼. 지게차 시급으로 계산해도 더 싸게 먹힌다.”
“지게차는 옮기기만 할 수 있잖아. 근데 쟤는 하차를 한단 말이야. 지게차 들어갈 수 없는 데서 지게차처럼 일하는데, 더 줘야지.”
“그럼 얼마? 시급 4만 원?”
“그건 7톤이고, 새끼야. 16톤짜리로 쳐줘야 한다니까.”
“와, 쩐다.”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쌀 포대를 네 개씩 들고 날랐다고? 허리 안 나가나?”
“안 나가더라고. 한두 번 하고 허리 아프다고 못하겠다 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그냥 하더라.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나는 중간에 척추 나가서 실려 갈 줄 알았어.”
“……탈북자 아냐? 아오지에서 일하던 애면 그럴 수도 있잖아.”
“야, 이 새끼야! 아오지가 무슨 괴물 양성소인 줄 아냐? 피죽도 못 먹은 놈들이 무슨 수로 쌀 포대를 날라?”
“아, 그렇겠네.”
모든 직원들이 이제는 무슨 괴물을 보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진호는 딱히 거들먹거리는 것도 없이 묵묵히 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한 다섯 판은 먹어야 하는 거 아냐?”
“저기 소장님이 한 판 더 떠 오시는데?”
“첫 출근 한 애가 소장님이 타다 주는 밥을 다 먹네. 거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강진호가 일하는 것을 보지 못한 이들은 대체 왜 저리 호들갑들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툴툴댔고, 강진호가 일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강진호가 일하는 걸 본 사람들은 소장이 강진호의 밥을 타 오는 게 아니라 물을 떠 와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게다가 같은 라인에 있던 이들은 강진호가 해치운 일 덕분에 자신들의 일이 줄어들었으니, 강진호가 고까울 리 없었다.
“자자, 이거 더 먹어.”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그만큼이나 일을 했는데 밥이라도 많이 먹어야지! 그래, 내일도 또 나올 거지?”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 남아돌아서 하루밖에 일 못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사람이 남아돌아? 누가? 누가 그래! 어느 놈이 그런 소리를 했어!”
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말을 이었다.
“하하, 그리고 세상에 사람은 많아도 자네 같은 사람이 흔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어때? 내일도 나올 거지?”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일당 두 배 쳐주겠네. 아니, 내가 세 배 쳐주지. 거, 중간에 떼먹는 거 다 치우고 깔끔하게 하루 십만 원 쳐서 삼십만 원 주겠네. 어떤가?”
“칠만 원 아니었나요?”
“그거야 내 마음이지!”
강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 일을 못해도 보름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야간 출근이다 보니 집이 멀어서 오래 일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걱정 안 해도 되네. 우리 회사에 셔틀버스가 있네. 자네 집을 알려주면 집 앞으로 셔틀버스를 보내줄 거야.”
“그렇다면 뭐…….”
강진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소장을 보며 남은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알바 하나 때문에 셔틀버스 노선이 변경되는 건가?”
“……어마어마한 알바네.”
식사 시간이 끝나자 강진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박스 카가 도착하면 문을 열고 그 속에 담긴 짐을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리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일이 조금 능숙해지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자, 잠깐만. 너무 빨리 올리지 마! 분류 쪽에서 물량 터진다고 살려 달라는 소리 나왔어.”
“예?”
강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에 일을 천천히 하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심지어 그 군대에서조차 강진호더러 일을 천천히 하라고 한 경우는 없었다.
상황을 전해 들은 소장이 부리나케 뛰어왔다.
“방법을 바꾸면 되잖아! 너랑 너! 라인 놔두고 여기에 서. 진호 학생, 컨베이어로 바로 올리지 말고 짐을 여기다 내리게. 여기다 내려놓고 가기만 하면 돼. 그럼 다른 사람들이 컨베이어 위에 짐을 올릴 거야.”
중간 집하처가 만들어지고 강진호가 일단 짐을 한 번 옮기고 나면 남은 이들이 벨트 위에 나눠 올리는 것으로 일이 짜여졌다.
쓸데없는 것을 고려하지 않게 된 강진호가 무심한 얼굴로 짐을 날라 오기 시작했다.
“저거…… 사람인가?”
인간에게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집하장의 인원들은 그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세상에는 지게차보다 빠르게 짐을 옮길 수 있는 인간도 있다.
강진호의 무지막지한 속도에 다들 지쳐 갈 때쯤, 어이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끝났어.”
“응?”
“다 들어왔대.”
“지, 지금 몇 신데?”
“세 시네.”
“헐.”
평소라면 다섯 시는 되어야 끝나는 일이 두 시간이나 빨리 끝나 버린 것이다.
다소 고까운 느낌을 받고 있는 이들도 다들 깜짝 놀란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와, 쩐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소장이 강진호에게 가서 물었다.
“자네 덕분에 일찍 끝났네. 어떻게? 셔틀이 6시에 나올 건데 세 시간 동안 할 일이 있나? 기다리려고?”
“오늘은 차 타고 나왔습니다. 제 차 타고 퇴근하면 됩니다.”
“아아, 그렇군.”
소장이 조금 아쉽다는 듯 몰래 한숨을 쉬었다.
자기 차가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라면 앞으로 꾸준히 이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천직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본인이 하기 싫다고 하면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오늘 일당일세.”
소장이 돈을 넣은 봉투를 내밀자 강진호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그 돈을 받았다.
“그럼 조심해서 가고, 내일도 꼭 나와주게.”
“예.”
강진호가 멀어져 가자 옆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
“요즘도 일당 그거 현금으로 주십니까?”
“야, 계좌로 쏜 지가 언젠데. 요즘이 어떤 시대라고 그걸 현금으로 주겠냐?”
“그런데 왜 쟤한테는 현금 주십니까?”
“……쟤가 돈 궁해서 이 일 하는 거 같이 보이냐?”
“아니요.”
“그냥 지 나름 경험 삼아 보람 한 번 느껴보겠다고 온 애잖아. 그러니 보람을 안겨줘야 할 거 아냐. 너도 계좌로 받는 것보다는 현금으로 받는 게 뭔가 더 뿌듯하지 않냐?”
“그건 그렇습니다. 옛날에 현금으로 돈 받을 때는 일했다는 느낌이 확 들었죠.”
“그러니까 현금으로 준 거다. 보나마나 지금쯤 감동해서 부르르 떨고 있을 거다.”
“하기야 하루 일해서 현금으로 30만 원 받았으면, 내일부터는 일 안 나오기도 힘들죠. 근데 그거 다 뽑아내실 수 있겠습니까?”
“마, 열 명분 하는 애다. 30으로 퉁 칠 수 있으면 이득이지. 당장은 좀 그래도, 앞으로 일용직 오는 애들 세 명만 덜 받아도 남는 거야.”
“근데…… 저거 뭡니까?”
“응? 뭐?”
부우우우웅!
땅을 울리는 듯 낮고 웅장한 배기음과 함께 그들의 앞에 빨간색 람보르기니가 천천히 입구를 향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끼이익.
차가 멈춰 서고 창문이 내려가더니, 강진호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부우우웅!
람보르기니가 출발하고 나자 옆에 있던 직원이 소장에게 가만히 입을 열었다.
“보람이요?”
“…….”
“기름 값도 안 나올 거 같은데요?”
소장은 저 멀리 사라져 가는 람보르기니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거, 대체 뭐하는 새끼야?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