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95
#1794.
도착하다 (4)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회주님이 총회를 떠나기라도 할 거라는 소리십니까?”
“떠나긴 뭘 떠나?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장민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쳐 댔다.
“잘 들어라.”
“예.”
“마존께서 지금까지 무리를 하신 이유가 뭐냐?”
“그야…….”
대답을 하려던 방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뭔가 머릿속에서 알음알음 그려지기는 하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려니 쉽지가 않다.
“원래 사람 성향이 좀 그렇죠.”
“…….”
장민이 담을 수 있는 모든 모멸심을 담아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받은 방진훈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슬쩍 돌리고 말았다.
“멍청한 것들아, 마존께서 무리하신 이유는 단 하나다. 네놈들이 모두 뒈질까 봐서지.”
그 말을 들은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마존께서 지금껏 무리를 하지 않으셨더라면 너희는 이미 말린 생선 꼴이 되어 있을 것이다. 홍왕에게 뒈졌든, 일본 놈들에게 뒈졌든, 창왕에게 뒈졌든!”
“크흠.”
이사들이 다들 낮게 헛기침을 했다.
“못난 놈들을 어떻게 좀 살려보겠다고, 그렇게 맨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신 분이, 이제 좀 안전해져서 쉬겠다는데, 그게 이상하다고? 이런 염통을 꺼내서 불질러 버릴 것들 같으니.”
“……굉장히 창의적으로 욕을 하시네요, 장로님.”
“닥치거라!”
“네.”
이현수가 찔끔하여 고개를 숙였다.
장민이 서늘한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지금 너희는 마존께서 그동안 너희에게 베풀어주시던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
“본래 교란 그런 것이 아니다. 따르는 이들이 모든 것을 바쳐 교주님을 편히 모셔야 하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느새 받아먹는 것에 익숙해져서 배부른 돼지처럼 굴고 있구나.”
이현수가 빙긋 웃었다.
‘저희는 마교도가 아닙니다만…….’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노기를 뿜어내는 장민을 상대로 장난을 칠 담량은 없다. 그런 여기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강진호는 장난을 치면 장난으로 받는 사람이지만, 장민은 장난을 치면 목을 잘라놓고 장난이라고 응수할 사람이니까.
“하기야…….”
다행히 위긴스가 이현수 대신 말을 이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회주님은 무리하다 못해 과로로 쓰러지지 않은 게 이상할 지경이지요. 경지가 그토록 높지 않았더라면, 쓰러져도 벌써 몇 번은 쓰러졌겠지.”
이사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강진호가 얼마나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무학을 익히는 걸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의 수련까지 봐준다.
‘사람이 아니지.’
거의 총회에 가져다 던져 버린 삶이다.
그런 삶을 지속해 왔으니, 이제는 지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습니다.”
“뭐가?”
위긴스가 눈을 좁힌 채 말했다.
“분명 우리는 창왕을 쓰러뜨렸고, 지금 창왕계는 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
“홍왕계 역시…… 경계는 해야겠지만, 더 이상 총회를 위협하는 적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의욕적인 측면도 그렇고, 능력적인 측면도 그렇지요.”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협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닙니다. 이미 저희는 두 눈으로 흑왕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흑왕이라는 말이 나오자 이현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흑왕이 버젓이 제 세력을 가지고 살아 있는데, 로드께서 마음을 놓으신다? 저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나는 알 것 같다.”
위긴스의 말에 대답한 것은 다름 아닌 바토르였다.
“바토르 님?”
바토르가 그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게 말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은 건데, 무인의 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 무인의 감을 함께 좀 느껴봤으면 좋겠군요.”
“보채지 마라, 설명할 테니까.”
할 말을 정리할 바토르가 난감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흑왕이라는 놈…….”
“예.”
“우리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어.”
위긴스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그만한 절대자가 우리 정도를 신경 쓸 이유는 없잖습니까.”
“말 참 예쁘게 하는군.”
바토르가 짜증을 한 번 부린 뒤, 말을 이어갔다.
“그것과는 좀 다르다. 홍왕이나 창왕 같은 경우에도 절대지경에 든 무인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완전히 배재하지는 않았어. 결국 세력과 세력의 싸움을 결정짓는 건 우리 같은 놈들이니까.”
“흐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흑왕은 달라. 그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주인에게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야. 우리는 병풍 취급을 했다, 이 말이지.”
바토르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가 느낀 것은 정말 그랬다. 그 장소에서 흑왕은 단 한 번도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강진호만을 그 시선 아래 두었을 뿐이다.
“주인은 아마 나보다 더 확연하게 그 사실을 느꼈겠지.”
“잠시, 잠시만요.”
방진훈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무슨 의미입니까? 이해가 가게 좀 말씀을 해보십시오.”
“그러니까…….”
바토르가 설명하기를 난감해하자, 이현수가 대신 입을 열었다.
“흑왕이라는 놈은 총회가 아닌, 오직 회주님만을 목표로 한다. 그러니 우리가 그놈의 공격에 노출될 일은 없다. 이 말씀이신 거죠?”
“그렇지.”
“……그리고 회주님은 바토르 님보다 그런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느꼈을 테니, 더는 우리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현수가 턱을 긁었다.
뭔가 궤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다시 말하자면, 회주님은 총회가 이제는 안전하다고 판단한 거로군요. 그게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든, 그게 아니면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든.”
“후자에 가깝겠지. 로드께서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고민하시는 타입은 아니니까.”
“그러니 더는 과할 필요가 없다라…….”
이현수의 표정이 묘해진다.
“이거, 기분이 좀…….”
뭔가 말을 하려던 이현수가 헛웃음을 지어버렸다.
“아니. 물론 이건 그냥 우리끼리 추측한 것에 지나지 않고, 꼭 맞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만…….”
이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좀 이상한 기분입니다. 사실 더는 회주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을 상황이 되었으면 뿌듯해야 할 텐데.”
그 말을 들은 바토르가 쿡쿡 웃어 댔다.
“왜?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 같은 기분인가?”
“……엄청 신랄하게 받아치고 싶은데, 부정을 못 하겠네요.”
“자립이란 그런 법이지.”
못마땅한 얼굴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장민이 입을 열었다.
“상황은 이해한 모양이로군.”
“…….”
모두가 장민을 바라보았다.
늙은 생강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인지, 장민은 그들 중 가장 먼저 강진호의 상태를 알아냈다. 그러니 그 말에 힘이 실리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데…….”
“노파심이 아니라 노파가 맞지.”
“이놈이?”
장민이 눈을 부릅뜨자, 바토르가 낄낄대며 웃어 젖혔다.
“크흠, 여하튼 그렇다고 해서 마존께 달려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는 말아라. 그분은 왜 총회에 신경을 쓰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다시 일을 시작하려 드실 테니까.”
“……그렇겠네요.”
“너희도 양심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분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못할망정 쉬는 걸 방해하지는 말아야지. 어설프게 나서는 놈이 있다면 내가 그 목을 분질러 놓겠다.”
장민의 말에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회주님이 처리해 주셔야 할 일들이…….”
“이 멍청한 놈이!”
장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터져 나온다. 그 위세에 이현수가 학을 뗐다.
“지금까지 마존께서 하신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중 정말 마존께서 하셔야 할 일들이 몇이나 되느냐!”
“…….”
“무능하기 짝이 없는 놈들! 너희가 제 일만 잘 알아서 해도 총회는 문제 없이 돌아간다. 내 말 명심하거라!”
“알겠습니다.”
“예, 장로님.”
“끄응.”
이사들이 각기 다른 표정을 지으며 침음을 흘렸다.
장민이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마존께서는 현세에 강림한 신이시다.”
“……그 광신도 같은 말 좀 하지 마라, 영감.”
“끝까지 들어.”
장민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또한 인간이시기도 하지. 사람이란 영원히 달릴 수 없다. 뛰다 보면 언젠가는 지쳐 쉬게 되지. 마존께서는 충분히 달리셨다. 이제는 좀 쉬어야 할 때가 되었어.”
“으음.”
이사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거운 분위기를 보며 이현수는 새삼 강진호라는 사람이 이 총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아주 안 나오시는 것도 아니고, 잠시 손을 뗀다는 것만으로도 이런 반응이라니.’
그나 방진훈, 그리고 위긴스까지는 그렇다고 칠 수 있다. 하지만 저 바토르마저 울상을 짓는 것은 꽤 의외였다.
“끄응, 그럼 기다리고 있던 일들을 그냥 처리해야겠군.”
“이 실장.”
“예.”
“MK 쪽은 그럼 이 실장이 우선 결재하게. 나중에 로드께서 오시면 따로 보고드리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방진훈이 콧김을 뿜었다.
“그럼 애들 치료하는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돌아보고 퇴원도 시켜야 할 판이라.”
“그러지.”
짧은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 회의를 지켜보고 있는 이현수는 그리 명쾌한 표정이 아니었다.
‘회주님이 없는 총회라…….’
정확하게는 강진호가 손을 뗀 총회라고 해야겠지. 그곳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이현수조차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거, 문제가 좀 생길 수도 있겠는데…….’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총회에는 이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총회의 회원들은 실질적으로 이현수를 이인자라 인식하고 있지만, 이현수는 그 말이 얼마나 의미 없는 공염불인지 잘 알고 있다.
그가 나서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뒤에 강진호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호가호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타입이지, 홀로 뭔가를 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강진호가 버텨주지 않는다면 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물론…….
이현수가 살짝 불안한 눈으로 이사들을 바라보았다.
‘저 양반들이 갑자기 권력을 잡겠다고 서로 싸워 대지는 않겠지만.’
강진호가 건재한 이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사들 역시 딱히 권력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그런 부분이 아니라 저들 하나하나의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회의를 할 때마다 헛소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강진호가 있을 때는 바로 눈빛으로 무안을 먹고, 심할 때는 얻어맞으며 교통정리가 되었는데, 이제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였다.
“아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떠올린 이현수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군.’
장민이 경고를 하기는 했지만, 총회를 위해서는 강진호를 따로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이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