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796
#1795.
도착하다 (5)
우적우적.
“…….”
“하암~”
“…….”
강은영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저거, 아무리 봐도 우리 오라비가 아닌데…….’
강진호가 어떤 사람이던가.
한때나마 그녀가 세상에 존재하는 남자들을 오징어로 보게 만든 사람이다. 물론 나이가 들고 강진호를 좀 더 알게 되면서 그런 부분은 사라졌지만, 여하튼.
그런 강은영에게 소파에 드러누워 과자를 퍼먹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야 ‘그런 날도 ’있겠지‘라고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날이 가도 뭔가 달라지는 게 없다.
“참 희한하단 말이야.”
강은영이 눈을 찌푸리고 강진호를 바라본다.
말려 올라간 강진호의 셔츠 아래로 그의 복근이 보인다.
‘왜 저렇게 드러누워서 과자만 퍼먹고 있는데 살이 안 찌지?’
강은영이 저리 드러누워 과자를 흡입했으면 뱃살이 미친 듯이 붙었을 텐데, 저 인간은 소파에서 꼼짝도 안 하고 과자만 퍼먹는데 복근의 데피니션이 사라질 줄을 모른다.
아무리 세상은 불공평한 곳이라지만, 이건 불공평의 정도를 넘지 않았는가.
“은영아.”
“왜?”
“냉장고에서 콜라 좀 가져다줘.”
강은영이 입을 쩌억 벌렸다.
“아니, 이 오라비가 미쳤나? 진짜 드러누워서 숨만 쉬려고 하나?”
“……부탁 좀 하자.”
“헐.”
강은영이 눈을 끔뻑거렸다.
“오라비.”
“왜.”
“만날 추리닝만 입고 다닌다고 구박 안 할 테니까, 제발 일어나서 밖에 좀 나가…….”
“그러니까 콜라 좀.”
“으아아아! 이 빌어먹을 인간아!”
강은영이 강진호에게 달려들어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아악! 뭔 놈의 사람 등짝이 이리 단단해?”
하지만 그녀의 공격력으로는 강진호의 방어력을 뚫을 수가 없었다. 때린 손만 아프다.
“에이!”
강은영이 몸을 홱 돌려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와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자!”
“고맙다.”
“……오라비.”
“응?”
누운 채로 콜라를 딴 강진호가 슬쩍 강은영을 바라본다.
“언제까지 놀 건데?”
“……내가 생각을 좀 해봤거든?”
“응.”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뭐 빤한 소리를 하고 있어. 돈 벌려고 그러는 거 아냐?”
“그렇지?”
“당연하지.”
강진호가 그것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가 돈이 많잖아.”
“…….”
“이러고 평생 있어도 다 못 쓰거든.”
“…….”
“그럼 왜 일을 해야 할까?”
강은영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진짜 재수없네.’
속이 뒤집어질 만큼 재수가 없는데, 반박할 수가 없다는 게 더 짜증 난다.
“오라비.”
“응.”
“나도 오라비가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다는 건 알거든. 며칠 드러누워 있었다고 구박하는 게 이상하다는 것도 아는데…….”
“응.”
“오라비는 지금 쉬는 게 아니라 퍼질러져 있다는 게 문제야!”
강진호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우, 잔소리.”
“……이 인간이 진짜 미쳤나?”
강은영이 두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강진호는 깔끔하게 돌아누워 그런 강은영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등에 종기나 나버려라!”
강은영이 씩씩거리며 방으로 들어가자, 강진호가 슬쩍 고개를 들고는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콜라 캔을 챙겨 든 강진호가 자신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흐음.”
강진호가 한 손으로 볼을 가볍게 긁었다.
“의욕이 안 생기는데.”
적당히 바닥을 치고 나면 다시 의욕이 솟아오를 거라 생각했다. 그가 생각해도 그는 지금껏 많은 무리를 해왔다.
창왕과의 싸움에서는 거의 죽을 뻔했다. 그 이전이라고 목숨의 위기가 없던 게 아니다. 이전 생을 포함한다면 대체 몇 번이나 사선을 넘어왔던가.
그러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건만…….
털썩.
강진호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본다.
‘힘들어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면 원인이라고 할 건 하나밖에 없다.
“그놈인가…….”
흑왕.
갑작스레 나타나 마치 그를 아주 잘 안다는 듯 지껄여 댄 사내. 그리고…….
‘청마일지도 모르는 놈.’
머리가 복잡하다.
“귀환자라…….”
창왕은 그에게 귀환자는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할 것들이 갑자기 지금의 시대로 다시 돌아와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고.
‘틀린 말도 아니지.’
강진호는 원래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다.
과거로 돌아가 새 삶을 살지 않았다면 세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홀로 쓸쓸히 죽는 걸로 끝이 났어야 한다.
그런 강진호가 적천마존으로서의 삶을 살고, 현대로 돌아온 덕분에 세상이 얼마나 많이 뒤틀렸는가.
창왕이 내지른 노호성을 이해 못 할 게 아니다. 거꾸로 강진호가 그 입장에 처했다면 부조리함을 참아낼 수 있었겠는가. 막상 지금 그와는 또 다른 귀환자가 그의 삶을 뒤튼다면, 강진호 역시 분노할 게 분명하다.
강진호의 시선이 멍하게 천정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미 세상을 뒤틀었다.
원래는 이중걸과 방진훈의 승부로 주인이 가려졌을 총회는 그의 것이 되었고, 최종적으로 한국 무인계의 승자가 될 확률이 높던 영남회는 무너졌다.
원탁은 그의 지배하에 들어왔고, 일본의 무인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고, MK라는 이름으로 바깥세상마저 뒤흔들고 있다.
그가 귀국하는 곳에 총리가 직접 나와 마중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은 아냐.’
그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하지만 저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서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더는 싸우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가버리면 이건 변명일 뿐이야.’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된다. 더는 그의 주위를 지키기 위해서 강함을 추구할 필요가 없고, 총회인들을 몰아붙이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같은 삶의 방식을 견지한다는 건 스스로 싸우기 위해 상황을 만들어왔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 아닌가.
강진호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명제는 하나였다.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뭐지?’
과거를 직면한 순간, 강진호의 안에서 누군가가 물어왔다.
너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거냐고,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정말 그걸 위한 것들이었냐고 말이다.
“흐음…….”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뭐, 그렇게 치열한 고민은 아니다. 더는 치열할 필요가 없고, 더는 과격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저 느긋하게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을 되새겨 볼 뿐이었다.
언젠가 결론이 날 때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그의 평온함을 원치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벌컥!
“오라비!”
“……너는 노크라는 걸 모르냐?”
“노크는 뭔 노크야? 나와. 손님 왔어.”
“응? 손님?”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이현수가 뭔가 떨떠름하다 못해 짜증까지 섞인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새집 지은 머리와 목 늘어난 트레이닝복…….
‘동네 백수네.’
총회의 회주이자 MK의 회장이 동네 백수 꼴로 굴러다니고 있다니…….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입니다.”
“……뭐.”
“이사님이 더는 안 만나준다고 했다든가?”
“논다고 좋아하던데?”
“……그럼 일단 실연은 아니고.”
이현수가 이유 중 하나를 제거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편하십니까?”
“……네가 오기 전까지는 편했어.”
“그럼 좀 불편하십시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말도 없이 남에 집에 쳐들어와 놓고는 저 뻔뻔한 태도라니. 너무나 이현수다워서 딴지를 걸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잠깐 나가시죠.”
“그냥 여기서 이야기해.”
“담배 피우셔야 할 것 아닙니까.”
“……나가지.”
이현수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나갔다 올게.”
“그래. 제발 좀 나가, 제발.”
“…….”
동생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강진호가 이현수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찰칵.
적당한 골목에 자리잡은 강진호가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런데…….
쉬이이이이이.
그와 마주 선 이현수는 이상한 기계 같은 걸 입에 물고는 빨아대고 있었다.
“……천식이라도 생겼어?”
“전자 담배입니다, 전자 담배!”
“……뭔 담배가 전자가 있어?”
이현수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강진호가 현대 문물에 약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 몰골로 말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감히 생각도 해선 안 될 ‘한심’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고 말았다.
“그래서…… 쉴 만큼 쉬셨습니까?”
“딱히 쉰 건 아니고.”
“그럼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한 거지.”
“…….”
“…….”
새삼 이현수의 표정이 무척이나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하는 강진호였다. 예전의 이현수는 거의 표정이 없었는데, 이제는 얼굴만으로 수많은 감정을 확실하게 전달한다.
그 감정이 무엇이냐가 문제였지만.
“끄응.”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할 말은 많고, 버럭대고 싶은 심정은 간절하지만, 뭔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고 나서야 이현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정말 잘 어울리네.’
무인으로서 강진호는 칼날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선두에서 적과 맞서 싸웠고,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을 멈출 줄 모르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무인 강진호다.
무인이 아닌 강진호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이현수는 지금 그 해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기야 그랬지.
때때로 그와 낄낄댈 때나 최연하를 만날 때,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의 강진호는 한 번씩 이런 모습을 보였다.
조금은 얼이 빠진 듯 밍숭맹숭한.
이현수는 어쩌면 이 모습이 무인이 되지 않은 강진호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회주님.”
“음?”
이현수가 가만히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할 말을 정말 많이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한 답변들. 그럼 회주님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 등등.”
“…….”
“그런데 지금 회주님을 보고 있으니, 그게 다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대신에 다른 질문 하나가 떠오르네요.”
“뭔데?”
이현수가 강진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할 생각이십니까?”
“……뭘?”
“무인이요.”
“…….”
이현수가 가만히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지금 회주님을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회주님은 쉬고 싶은 것도 아니고, 지친 것도 아니고, 그냥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총회와 얽힐 필요도 없고, 굳이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공할 필요도 없는 인간 강진호로 말입니다.”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본다.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일까.
대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이현수가 그런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는 알겠습니다.”
그의 눈가가 조금 일그러졌다.
“당신이 그동안 얼마나 무리를 해왔는지를요.”
강진호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천천히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