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
#17.
강림하다 (4)
“……?”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들어온 이를 바라보았다.
분명 기억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 기억나냐?”
“예.”
그는 분명 과거 인질극 사건 때 강진호를 나무랐던 강력계 이종인 형사였다.
“무슨 일이야, 박 형사? 이야기 좀 해봐.”
자초지종을 들은 이종인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진호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어이, 박 형사. 나 얘 좀 데리고 나갔다 올게.”
“조사 중인데…….”
“내가 해줄게, 조사. 내가.”
“아니…….”
하지만 이종인 형사는 박 형사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강진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구석진 곳으로 간 이종인 형사는 강진호에게 말했다.
“담배 피워?”
“아뇨.”
“지랄 안 할 테니까 그냥 말해. 담배 피워?”
“한 개비씩.”
“자…….”
이종인 형사가 담배를 내밀었다. 강진호는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그러자 이종인 형사가 불을 붙여주었다.
자기도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이종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지?”
“예.”
“그래, 니가 그럴 놈이면 거기서 목숨 걸고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 조금 있으면 용감한 시민상도 나올 텐데.”
“…….”
“대충 알겠다. 그 애새끼 할애비가 동명 재단 이사장이라며? 안 그래도 그 재단 말 많아. 그 할애비란 놈도 개 같다고 소문이 자자해.”
“예.”
“그러니까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이번은 내가 어떻게 한 번 해볼 테니까. 알았어?”
“예.”
강진호는 길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었다.
자신이 과거에 왜 담배를 폈는지 기억이 났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담배가 썼다.
안으로 들어온 이종인 형사가 박 형사를 붙들고 말했다.
“조사 끝났으면 대충 보내지? 해 곧 질 텐데.”
“안 됩니다. 피해자가 전치 6주가 나왔어요. 재판 넘기려면 할 게 많습니다.”
“재판?”
“예.”
“죄목이 뭔데?”
“폭행치상이죠.”
“뭔 씨발, 애새끼들 싸움에 폭행치상을 가져다 대? 너 이 새끼, 그러는 거 아냐.”
“아, 원래 그런 거예요.”
“그래서? 어느 병원에서 진단서 들어왔는데?”
“진단서는 아직…….”
“아직 뭐? 아직 뭐, 이 새끼야! 너 진단서도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전치 6주 나왔다는 건 알고 있는데?”
“…….”
“좋게 말할 때 애 보내라. 알았어?”
“저 서장님한테 박살 납니다.”
“내가 보냈다고 해!”
“안 되는데…….”
이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진호를 향해 말했다.
“얼렁 가봐.”
“…….”
“아, 걱정하지 말고 가라니까 그러네.”
강유환이 안으로 들어왔다.
“끝났습니까?”
“예, 끝났어요. 얼른 가세요. 다시 안 오셔도 됩니다. 기소유예나 훈방으로 끝날 겁니다.”
“그래도 6주라는데…….”
“정 운 나쁘면 구약식 50만 원 나올 수도 있는데, 내가 그 꼴은 못 보니까 걱정 마세요. 검찰청 가서 뒤집어엎더라도 기소유예로 끝낼 겁니다.”
“…….”
이종인이 강유환을 향해 말했다.
“아버님 되십니까?”
“예.”
“저번에 어머님과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버님은 처음 뵙네요. 아드님 덕분에 피해 없이 연쇄살인범을 잡았습니다. 아드님이 아니었다면 인질로 잡혔던 어린애도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릅니다. 이번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댁의 아드님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럴 생각입니다.”
“자랑스런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진심으로요.”
강유환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꾸나.”
“……예.”
강진호는 강유환의 차로 갔다.
“진호야.”
김성주 선생이 그를 불렀다.
“예.”
“걱정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 정학은 없도록 해주마.”
“괜찮습니다.”
“이거 생활기록부에 올라가면 학교 가는 데 문제가 있다. 이 더러운 꼴을 어떻게 보고 있겠냐! 내가…….”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히 그랬다가 선생님이 피해를 보십니다. 그러니까 그냥 놔두세요.”
“…….”
김성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제자가 돈과 권력의 힘 앞에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데,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미안하다.”
“아뇨,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강유환도 김성주 선생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경 써주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뭘 했습니까, 제가…….”
김성주는 자조하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는 소리라도 질러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강유환은 강진호를 차에 태우고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간 강진호를 보고 어머니와 강은영이 뛰어왔다.
“괜찮아?”
“서에서는 뭐래?”
강유환이 그들을 만류했다.
“애 좀 쉬게 내버려 둬.”
“아니, 그래도!”
“아빠는. 지금 궁금하니까 그렇지!”
“내버려 두라니까!”
강유환의 목소리가 커지자 어머니와 동생은 찔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먼저 들어가서 좀 쉴게요.”
“그래, 그러거라.”
강진호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은 어둑하기만 했다.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충동을 억누르는 데 모든 힘을 다 쏟고 있었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참아내지 못한다면 강진호는 이사장과 최영수를 죽여 버릴지도 몰랐다.
‘이곳은 다른 세상이다.’
강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살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가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진호는 자신의 수혈을 눌렀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충동은 커질 것이고, 그의 안에 억눌러져 있는 적천마존이 깨어 나온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은 얌전히 자야 했다.
“예? 해고요?”
다음 날 아침, 출근을 준비하던 강유환은 휴대폰을 붙들고 소리쳤다.
“어제까지 잘 있다가 갑자기 왜 해고라는 겁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신호 위반 또 했더군.]“그럼 애가 학교에서 사고를 쳤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마음은 급하고, 그리고 제가 언제 신호 위반을 했다고 또입니까!”
[그리고 자네 택시로 민원이 들어왔어. 그것도 한두 통이 아니네.]“지금까지는 그런 말씀이 없었잖습니까!”
[그럼 그걸 미리 말해서 뭐하나! 두고 보다 안 된다 싶으면 자르는 거지. 여하튼 자네는 해고네. 출근 안 해도 되네.]“부장님! 이건 부당 해고입니다! 저도 가만히 안 있겠습니다!”
[소송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게. 그리고 나라고 마음이 편하겠나. 어쩔 수 없었다는 것만 이해해 주게.]전화가 끊겼다.
강유환은 굳은 얼굴로 전화기를 바라보다가 거칠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여보,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일단 상황 좀 알아보고 올 테니 기다려요.”
“아니, 그래도…….”
방 안에서 강유환의 통화 내용을 들은 강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사장이 무슨 짓을 한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 하루아침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었다.
익숙한 방식이었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조여들며 상대의 고통을 즐기는 것.
과거 그가 많이 보아왔던 방식.
정파인들이나 환관들이 이러한 방식을 즐겨 썼다.
마지막에는 쥐꼬리 같은 희망을 남겨두고 그것에 매달리는 것을 즐기다가 그 희망마저 치워 버린다.
같지 않을 수는 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강진호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 많이 참았잖아?
강진호는 자신을 부르는 적천마존의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그가 어느새 강진호를 부를 만큼 커져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강진호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가 적천마존이고, 적천마존이 그이니까.
그는 지금 모든 것을 부숴놓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있는 것이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강진호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지나자 어머니가 다니시던 청소 업체에서 해고 통보가 날아들었다.
다음 날에는 동명 여중에 다니던 강은영이 선생님이 갑자기 자기를 괴롭힌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그들이 사는 집 주인이 갑자기 월세를 올리겠다고 말을 해왔다.
정학을 당해 학교에 나가지 않는 강진호는 집에서 그 모든 것을 들으며 무거운 분위기를 실감해야 했다.
하루에 하나씩.
이사장의 마수는 조금씩 강진호를 조여들고 있었다.
하늘 위로 어둠이 내리고…….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강진호와 강은영이 크면서 개인 방이 있어야 한다고 무리를 해 이사 온 방 세 칸짜리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그 마루에 아버지가 앉아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디 가니?”
“잠깐만 나갔다가 올게요.”
“그래.”
강진호가 신발을 신고 문을 열자 강유환이 그를 불렀다.
“진호야.”
“예?”
“미안하다.”
“아버지가 왜요?”
“너는 잘못한 게 없어.”
“…….”
“내가 아비라면 칭찬을 해줘야지. 잘했다, 내 자식. 걱정 말거라. 그런데 내가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네가 잘한 일을 잘했다고 해주지 못하는구나. 내가…… 내가 미안하다, 아들아…….”
현관 손잡이를 잡은 강진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말씀 마세요.”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강진호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집을 나와 고개를 돌리면 가파른 경사를 타고 올라가는 달동네가 보인다.
강진호는 달동네를 올라갔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르자 큰 달이 떠 있는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뭐가 잘못된 걸까?’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웃고 떠들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 삶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참지 못한 것?
그 순간, 강진호가 최영수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평범한 삶을 누리고 있을 수 있었을까?
다른 이들을 믿은 것?
최영수를 건드려도 다른 이들이 본 것 그대로 말해줄 거라고 믿었던가?
아니면 멍청하게 상황을 방관했던 것?
좀 더 기민하게 닥쳐올 위협에 대처했어야 하나?
쾅!
강진호의 주먹이 바닥을 내려쳤다.
강진호는 미소 지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원인은 아니다. 원인은 단 하나였다.
‘여기도 다르지 않아.’
칼이 오가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오가지 않는다 해서 이곳이 다를 거라 믿은 것이 착각이었다.
여기 역시 사람이 사는 곳.
그 어디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힘.
강진호는 애써 외면하던 것을 받아들였다.
강호도, 현대도 약육강식.
강한 자는 모든 것을 누리고, 약한 자는 먹이가 되고 유희거리가 된다.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해도 강자가 마음먹으면 그 삶이 어긋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게 이 세상의 진실이었다.
강진호는 깨달았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원한다면 단순히 바라서는 안 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그게 삶의 진리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그렇다면 평범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강진호가 짧은 기간 동안 느낀 것은 단 하나였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
강진호는 웃었다.
그의 하얀 이가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것처럼 섬뜩하게 빛났다.
“난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하지만…….”
강진호는 하늘을 바라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날 건드린 건 너희들이야.”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의식 깊숙한 곳에 머물러 있던 존재가 천천히 강진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