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0
#179.
알바하다 (4)
“복학 전에는 딱히 계획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으음.”
황정후는 마뜩치 않다는 듯이 재떨이에 재를 떨었다.
“놀고먹겠다는 건가?”
“그런 의도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바로 복학할 것이 아니라면 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 보통 학생들은 이럴 때, 어학연수를 가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합니다만, 강진호 씨는 그런 데는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군.”
황정후는 길게 연기를 내뿜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또 젊은 놈이 놀고먹는 꼴은 못 보는 사람 아닌가.”
“강진호 씨가 놀고먹을 수 있도록 막대한 돈을 지급하고 계신 분이 회장님이십니다만.”
“그거랑은 다르지.”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르다고 하니 다른 것 같았다. 황정후가 하늘이 노랗다고 하면 노란 것이다.
“슬슬 녀석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조규민이 머뭇거리는 사이, 백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지요.”
백영기는 이미 황정후가 내심 강진호를 후계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미리부터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곳인지를 배워두면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조규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진호 씨는 회사에는 관심이 없으시잖습니까.”
“……그게 문제지.”
말을 하면서도 조규민은 어이가 없었다.
‘재경을 마다하는 사람이 있다니.’
다른 사람이 강진호의 입장에 있다면 황정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할 것이다. 후계가 사라진 황정후가 총애를 준다는 것은 재경이라는 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바로 입 앞까지 재경을 가져다줘도 마다하고, 떠서 입에 먹여줘도 뱉어내고 있었다.
‘사람이 야망이 없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돈이 많고 앞으로 일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해도 이만한 회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규민이 보기에 강진호는 분명히 재경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고얀 놈 같으니.”
황정후가 역정을 내자 백영기가 고개를 돌려 살짝 웃었다.
그가 아는 황정후는 고양이 같은 기질이 있었다. 만약 강진호가 재경에 욕심을 내고 달려들었다면, 황정후는 절대 맡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경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되레 황정후가 강진호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뭐, 방법이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영기의 말에 황정후가 반색했다.
“좋은 방법이 있는가?”
“……제게 물으실 일이 아니지요. 강진호 씨에 대한 일은 비서실장에게 모두 일임되지 않았습니까.”
“예?”
조규민이 ‘왜 나를 물고 넘어지십니까’라는 시선을 애처럽게 보냈지만, 백영기는 단호했다.
“딱히 크게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이런 일도 해결 못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젊은 나이에 비서실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니 능력을 보여야지요.”
“…….”
조규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안 그래도 회장을 직접 수행하지도 않으면서 비서실장이라는 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내부적으로 말이 많은 상황이다.
황정후가 직접 임명한 자리라 대놓고 불평을 터트리지는 못하지만, 등 뒤에서 그를 씹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조규민 역시 느끼고 있는 바였다.
그러고 보면 회사도 과거의 왕실과 비슷했다.
오직 한 명인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경쟁하고, 총애를 받는 이는 질투를 받기 마련이었다.
‘나를 향한 총애가 아니란 말이다!’
조규민이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총애를 받는 대상이 조규민 자신이 아니라 강진호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모르는 이들에게까지 강진호의 존재를 알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덕분에 조규민은 강진호가 받아야 할 질투까지 덩달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 생각하는가?”
황정후의 말에 조규민이 심호흡을 했다.
‘질투를 받든 어쨌든…….’
지금의 자리를 꿰차는 것 역시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조규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운을 유지하는 것은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이 바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조규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강진호 씨는 재물이나 권력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강진호 씨를 움직이는 것은 가족에 대한 애정과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의무감입니다.”
“그래서?”
“원치 않는 사람에게 원치 않는 자리를 주고 싶으시다면, 그만큼 달콤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지요.”
“그 대가가 뭔가?”
조규민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학점이요.”
“……응?”
황정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카페에요?”
“그래. 네 아버지가 데리고 갔다.”
강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바를 시킨다고 하시더니, 카페 알바를 시킬 모양인가 보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이 사장으로 있는 곳보다는 아버지가 하시는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다.
연예인이라는 신분이다 보니 이제 와 별 탈 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출근 안 하세요?”
“나야 잠깐 밥한다고 들어왔지. 얼른 밥 먹어라.”
강진호는 고봉으로 쌓여 있는 밥그릇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눈 뜨자마자 미션인가.’
물류 창고에서 택배를 모두 나르는 것보다 저 밥 한 그릇을 비우는 것이 더 큰일같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강진호는 결연한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잠깐만 진호야.”
“네?”
“거기, 자리 좀 만들어보거라.”
어머니가 거대한 전골냄비를 들고 오는 것은 본 강진호는 살짝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뭐하니?”
“……예.”
반찬 그릇을 치워 자리를 만들자 어머니가 전골냄비를 식탁 위로 올려두었다.
“일하는 사람은 많이 먹어야지.”
저는 군대에서도 이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
“네 아버지도 참 쓸데없는 일을 잘 벌이신다니까. 알바는 무슨 알바라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군대에서 전역한 애를 또 일을 못 시켜서 안달이시라니. 에휴, 내가 못산다.”
“좋은 뜻으로 하시는 거잖아요.”
“뜻만 좋으면 뭐하니! 결과가 안 좋은데!”
강진호는 쓴웃음을 머금고 국을 한술 떴다. 아무래도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너는 일은 힘들지 않니?”
“괜찮아요.”
“택배 상하차하면 몸도 다 버린다던데.”
“진짜 괜찮아요.”
“말이 그렇지, 괜찮을 리가 있나.”
강진호는 왠지 미묘한 기분이었다.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왜 믿어주지를 않는단 말인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증명할 수도 없고. 생각해 보니 동영상으로 일하는 모습을 찍어오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할 분이 어머니시다.
“많이 먹어.”
“예.”
강진호는 빙긋 웃고는 꾸역꾸역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강진호가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머니가 주방으로 향했다.
“응?”
삐비빅.
밥솥 열리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강진호였다.
“소화가…….”
강진호는 배를 움켜잡았다.
이제 만독불침(萬毒不侵)은 몰라도 백독불침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과식으로 괴로움을 겪어야 하다니.
‘예전에는 이런 분이 아니셨던 것 같은데?’
과거에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한없이 그를 위해주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먹을 것으로 사람을 폭격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기억이 짧아 모르는 걸지도…….’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기 전까지 강진호는 학생이었기에 실질적으로 어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맞벌이를 하시느라 집을 비우시는 일도 잦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부모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구나.’
여유가 생기고 자주 얼굴을 마주하게 되니 새로운 면을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이것도 새 삶을 얻게 되어서 생긴 기쁨 중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예전에는 얼마나 여유가 없었기에 이런 면도 모르고 있었는가 하는 반성이 동시에 들었다.
‘손을 뻗는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만 할 것이 아니구나.’
과거의 강진호가 조금 더 부모님께 다가섰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절로 반성하는 기분이 드는 강진호였다.
“우…….”
하지만 이런 면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부푼 배를 꾹 누르며 강진호는 아버지의 카페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으응?”
강진호는 카페 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 밀지 마요!”
“안에 사람 안 나온 지 한참 됐는데! 이제 슬슬 나옵시다! 전세 냈나?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얼마나 있으려고 하는 거예요!”
“아, 밀지 말라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강진호는 뜻밖의 상황에 놀라 멀뚱히 서 있다가 표정을 굳히고는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 뭐예요! 새치기하지 마세요.”
“좀 들어가겠습니다.”
“사람들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요?”
강진호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누군가 소리쳤다.
“그 사람, 강세아 오빠예요!”
“어?”
“맞다. 동영상 나온 사람이네. 그 상남자.”
“맞네! 실물이 더 잘생겼는데?”
강진호는 과거 마교의 교주일 때, 수만의 신도들 앞에서도 결코 당황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이 순간만은 왠지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비켜줍시다.”
“좀 붙어봐요.”
사람들이 우르르 좌우로 길을 만들어주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인파를 갈라낸 강진호가 알 수 없는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천천히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테이블마다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게 웬…….”
“진호 왔냐?”
“오빠! 왔어?”
아버지와 은영이가 동시에 그를 반겼다.
“이게 뭔 상황이에요?”
강은영이 난감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속삭였다.
“아침에 온 사람이 내가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고 SNS에 올렸나 봐. 갑자기 사람들이 들어차더니, 이렇게 됐어.”
“으음…….”
강진호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현대사회에서 SNS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정도인 줄은 몰랐다. 평일 낮부터 강은영을 보기 위해 이곳까지 올 사람이 이리 많다는 것도 놀라웠고.
“이러면 아르바이트하기는 곤란할 테니…….”
“뭐가 곤란하냐?”
“…….”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보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간만에 손님이 꽉꽉 들어차니 좋구나. 너 이거 일단 문 앞에 붙이고 와라.”
“네?”
아버지가 건넨 A4 용지에는 ‘1인 1음료. 30분 초과 시 음료 1잔 추가’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
“왜왜? 나는 커피 팔아서 좋은 거고, 저 사람들은 은영이 보니까 좋은 거고, 은영이는 사회 경험할 수 있으니 좋은 거 아니냐. 모두가 다 좋은 일인데.”
강진호는 의혹에 찬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한 가지를 묻고 말았다.
“혹시 SNS 하세요?”
“…….”
강유환은 대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