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09
#1808.
이어지다 (3)
“장가간다.”
“…….”
강진호가 떨리는 눈으로 주영기를 바라보았다.
“뭐야, 그 눈은?”
“아, 아니.”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야.
“자, 청첩장.”
“아니, 뭐가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
“내가 말 안 했나?”
“응?”
주영기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됐어. 이제 일곱 달 남았다.”
“응?”
강진호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박유민은 주영기의 말을 재깍 이해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 와! 영기야! 축하한다!”
“하하, 좀 쑥스러운데.”
“아냐! 이게 뭐가 쑥스러울 일이야. 축하할 일이지!”
“으으응?”
강진호가 영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박유민이 빠르게 설명을 해주었다.
“영기, 아빠 된다는 것 같은데.”
“뭐?”
강진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 아빠?”
“그렇게 됐다.”
주영기가 쑥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미소를 입에 담았다.
“네 나이가 몇인데 벌써?”
“새꺄. 조선 시대였으면 지금 애가 장성해서 돈 벌어 올 나이다.”
아니…… 그건 조선 시대고.
주영기가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 계획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리된 이상 어쩔 수 없지!”
“…….”
자랑스럽다, 내 친구.
진짜 아무 생각이 없구나.
하지만 멍한 강진호와는 다르게 박유민은 그게 맞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영기면 그래도 되지. 영기 같은 타입은 빨리 안정된 가정을 가져야 돼. 그래야 사고 안 치지.”
“……친구야, 그거 축하하는 거 맞지?”
“그럼.”
해맑게 웃는 박유민을 보며 주영기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새끼, 칭찬해 주는 것 같으면서 은근히 까는 것 같은데…….
“3개월이라니, 정신 없었겠네?”
“아냐. 뭐, 나름 슬슬 결혼하려고 준비 중이었잖아. 생각보다 조금 빨라진 것뿐이지, 뭐.”
주영기가 머리를 긁었다.
“결혼이라니, 뭔가 남 이야기 같았는데.”
박유민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주영기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때? 어떤 기분인지 상상이 안 가는데.”
“어떻긴 뭘.”
주영기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실감이 안 나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청첩장까지 나왔는데도 아직 남 이야기 같다.”
“야,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뭐 바뀐 게 있어야 실감을 하지.”
주영기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바뀐 거라고 해봐야 마누라 잔소리가 좀 늘고, 외출하는 시간 좀 줄고, 이제 술 반만 먹으라 소리 좀 듣고, 고기 너무 퍼먹으면 통풍 온다고 야채 좀 먹으라 소리 듣는 거랑…… 주말에 놀러 나가던 거 금지당하고, 태교해야 한다고 심부름이랑 또…….”
주영기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는 행복했었다. 박유민, 이 새끼야…….”
“아냐. 그건 내 탓이 아닌 것 같아, 영기야.”
“닥쳐, 좀.”
주영기가 앞에 놓인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야야, 영기야! 제수씨가 반만 마시라잖아.”
“으아아아아!”
주영기가 맥주잔을 던지듯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니가 친구냐, 이 새끼야?”
“친구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지. 네 안정적이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우리도 도와야지.”
“……웃냐?”
“에이, 기분 좋아 그런 거지.”
강진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사람을 잘 갈궜지?’
요즘 합숙 생활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월드 챔피언 먹고 자신감이 확 붙어서 그런가. 능글능글 갈구는 박유민이 악마처럼 보이는 강진호였다.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
‘결혼이라니.’
그의 친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본적으로 첫 번째 삶에서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고, 두 번째는…… 그건 그냥 넘어가고.
‘생각해 보니 정말 삭막하게 살았구나.’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삶이 이리 신기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아.”
“응?”
주영기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니들도 다 결혼해라.”
“…….”
결혼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박유민이 신속하게 강진호의 눈치를 살피고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박유민이 아무리 쾌속하다 해도 강진호의 눈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 하하, 그건 나중에 이야기…….”
“나중에는 뭔 나중에야, 이 새끼야. 지금 같은 저출산 시대에 빨리빨리 결혼해서 애 낳는 게 애국이지!”
“…….”
“그러니까 빨리빨리해. 어차피 니들 뭐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사는 데 별 지장 없잖아. 뭐 한다고…….”
“그, 그만하라니까…….”
“응?”
주영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박유민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강진호에게로 슬쩍 돌렸다.
“아, 맞다. 너, 진호 동생이랑 사귄다 그랬지?”
“…….”
“…….”
주영기가 흐뭇하게 웃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잘됐네. 너도 지원해. 동생 시집보내고 친구 장가보내고를 한 번에 할 수 있는데,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냐?”
……이 새끼, 맥이는 것 같은데?
“안 그러냐?”
주영기의 물음에 박유민이 움찔하여 강진호의 눈치를 살폈다.
강진호의 이마에 조용히 핏대가 섰다.
“그건 본인들의 의사가…….”
“저번에 보아하니 죽고 못 살드만, 물어는 봤냐?”
“…….”
“거, 시간 끌지 말고 얼른얼른 해.”
“아니야.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왜? 니 동생이 고생할까 봐? 야, 유민이가…….”
“아니. 박유민이 고생할까 봐.”
“…….”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던 주영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그건 니들 알아서 하고.”
뭔가 강진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이 이야기를 더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근데…….”
“응?”
“유민이는 그렇다 치고…… 진호, 너는? 너도 이제 슬슬 장가가야 하는 것 아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진호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영기야.”
“응?”
“모두가 일찍 갈 필요는 없잖아.”
“아니. 너야 그렇지. 근데 연하 씨는 이제 슬슬 시집갈 나이 아니냐고.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텐데.”
“…….”
“글고 인마, 결혼을 망설이는 건 혹시라도 이게 인연이 아닐 수도 있어서 그런 거잖아. 세상에 최연하를 마다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
“…….”
“예쁘지, 돈 잘 벌지, 사람 멋있지, 성격……. 뭐,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마무리가 이상하다?”
“솔직히 성격은 문제 있잖아?”
아니, 영기야.
그렇게 당당하면 자꾸 뒤돌아보지 말아야지.
설마 여기까지 오겠니…….
강진호가 새로 온 맥주 잔에 맥주를 채우고는 한 모금 홀짝댔다.
‘결혼이라…….’
지금까지야 반쯤 농담으로 생각하던 일이지만, 주영기가 스타트를 끊어버리니 느낌이 확 달라졌다.
“그럼…….”
강진호가 주영기를 가만히 보며 입을 열었다.
“애를 키우려고 결혼하는 건가?”
“여하튼 이 새끼는 옛날부터 핀트를 못 맞춘다니까.”
주영기가 혀를 찼다.
“그게 아니고, 새끼야. 내가 이 여자랑 평생 같이 살 건데! 그 와중에 애가 생겨서 좀 일찍 결혼을 하는 거라고.”
“으음.”
“결혼이, 인마, 애 때문에 하는 거냐? 좋으니까 하는 거지.”
“……말하는 걸 듣다 보면 별로 안 좋아 보여서.”
“엄살이지, 새꺄!”
주영기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머쓱한지 맥주를 쭉 들이켰다.
“하, 속이 시원하네.”
“……반만 마시랬다.”
“알았어! 알았어, 인마! 알았다고! 아니, 박유민, 저 새끼는 예전에 안 그랬는데, 어떻게 날이 갈수록 애가 뺀질거리냐?”
“사람은 다 변하는 거지.”
“아오!”
속이 탄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주영기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음.”
“결혼이라는 건 그냥 친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거랑은 다른 거잖아. 여차 친구를 사귀는 것과도 다르고. 뭐랄까…… 가족이 되는 거지.”
“…….”
“‘결혼을 하면 좋겠다’, ‘뭐, 내가 결혼을 하고 싶다’ 이런 것보다 ‘나는 이 여자 놓치면 평생 후회하겠다’ 싶은 거다.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거면, 굳이 안 할 이유도 없지!”
박유민이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영기는 주관이 뚜렷해서 좋아.”
“공치사하지 마, 인마. 조금 전까지 그렇게 딜 때려 박아놓고는.”
주영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어린놈의 시키들아, 나 결혼하고 나면 존댓말 써라. 하, 이 핏덩어리들. 진짜.”
“미친놈.”
“미친놈.”
욕을 먹고도 좋다고 웃고 있는 주영기를 보니, 강진호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리저리 우는소리를 해 대기는 하지만,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꽤 즐겁고 행복한 모양이었다.
‘결혼이라…….’
뭔가 등골이 살짝 서늘한 느낌이었다.
웃는 표정이지만 어쩐지 먹이를 노리는 맹수 같은 느낌이 나던 최연하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근데 영기는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애를 낳아 키울 생각을 하지? 나는 무서워서 못하겠는데.”
“닥치면 하는 거지.”
주영기가 살짝 입을 내밀었다.
“그럼 뭐 어떻게 하냐. 생겼는데.”
“……아니.”
“그따위로는 안 키워.”
“응?”
뜬금없는 말에 강진호와 박유민이 주영기를 바라보았다.
“생겼으니 키운다. 그냥 대충 키우면 된다. 애 앞에서 이딴 말을 하는 애비는 안 될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줄 거야.”
“…….”
“우리 아버지처럼은 안 되어야지.”
단호한 결심이 느껴지는 그 말에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맙다.”
“진심으로.”
“…….”
주영기가 그답지 않게 살짝 머뭇거렸다.
“말은 이렇게 하는데…….”
미묘하게 어색해하는 얼굴로 주영기가 뒷머리를 긁었다.
“모르겠다. 나도 아버지는 처음이라.”
“……누군 해보고 하나.”
“걱정된다, 이거지.”
주영기가 허리를 쭉 폈다.
“아오, 몰라!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 일도 두 배로 열심히 하고! 손님도 두 배로 친절하게 대하고! 마누라한테도 두 배로 잘하고.”
“술은 반으로 줄이고.”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아까부터 진짜!”
투닥거리는 박유민과 주영기를 보며 강진호가 피식대며 웃었다.
이상하지.
그가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아버지가 된다는 데 이상하게 그가 뿌듯한 느낌이다.
‘다들 바뀌어가는구나.’
나아간다.
다들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이란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모양이다.
맥주를 한 모금 머금은 강진호의 귓가에 퉁명한 주영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호야.”
“……응?”
“고맙다.”
“…….”
주영기는 그 말을 하고는 어색한지 맥주를 죽 들이켰다. 그리고 강진호도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냥 그걸로 충분하니까.
“크으, 맥주 좋네! 오늘 기분 좋은데, 이차 가야지!”
“어디? 고기 구울까?”
“고기는 뭔! 맥주를 이리 처먹고! 노래방 어떠냐? 오늘 아주 죽도록 지르고 싶은데!”
“콜! 가자!”
응?
어디?
“뭐 하냐? 일어나! 노래방으로 가자!”
저기…….
얘들아?
나 오늘은 노래방이 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강진호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얘들은 노래를 잘 불렀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게 강진호의 불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