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1
#180.
알바하다 (5)
“자자, 너도 놀지 말고 어서 옷 갈아입고 나오너라.”
“……저두요?”
“그럼 너는 놀려고 했니?”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빤히 구경을 하는 것보다는 음료라도 나르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 SNS…….”
“어서! 어서 갈아입고 나오라니까! 손님들이 기다리시잖니.”
“예.”
강진호는 의혹에 찬 눈길을 보냈지만, 강유환은 끝내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옷이 있나요?”
“내가 미리 사놨지.”
흐뭇하게 웃는 아버지를 보니 이 모든 것이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SNS에 강은영이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범인을 찾은 듯한 기분은 왜일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탈의실로 향한 강진호는 고풍스러운 턱시도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불편한데.’
나름 풍덩한 옷에 적응이 되어 있는 강진호였다. 그러다 보니 이런 딱 붙는 옷은 언제나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사이즈까지 알아가서 맞춰둔 옷인데 불편하니 못 입겠다고 했다가는 아버지의 입이 툭 튀어나오고 말 것이다.
강진호는 옷을 갈아입고 매장으로 나왔다.
‘그새 뭔가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매장 안은 여전히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끼리 합석을 해서까지 빈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주문 받아야지! 은영이 혼자 뛰어다니는 것 안 보이니?”
“……예.”
강진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여기 주문은 셀프 아니었나?’
지금이 90년대도 아니고, 무슨 종업원이 가서 주문을 받는단 말인가. 분명 저번에 왔을 때만 해도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시스템이었는데, 그새 뭐가 바뀌었다고…….
뭔가 아버지의 수작이 있다고 느꼈지만, 이제 와 항의를 하기에는 늦은 느낌이었다.
“저…… 주문.”
“진호야.”
“네?”
“너는 그쪽이 아니고, 저쪽이다.”
“네?”
아버지가 가리킨 곳에는 여자 손님들이 꺅꺅거리며 그를 보고 있었다.
강진호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 * *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조규민은 SNS에 폭주하고 있는 글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 강세아, 현재 카페에서 알바 중. 카페 위치.
― 음료 한 잔에 30분! 거저먹는 팬미팅.
― 어디예요? 링크 좀 줘보세요. 강세아가 알바한다는 데가 도무지 어딘지 알 수가 있나.
― 강세아 아버지가 하는 카페예요. 위치는 지도 첨부했구요. 몇 번 언론도 탔는데, 아버지가 카페 한다고…….
― 한잔에 30분? 완전 폭리 아닌가? 연예인 얼굴이나 보자고 음료 한 잔 먹고 30분 만에 쫓겨나느니, 안 가고 말겠음.
― 개이득. 안 그래도 지금 웨이팅이 세 시간인데 안 오면 땡큐. 보실 분들만 빨리 오세요.
― 강세아 오빠도 알바 중. 얼굴에서 광이 남. 이 집안사람들 유전자가 이상해요.
― 아버지는 평범하게 생겼던데……. 엄마가 미인인가 봄.
“카페 알바?”
택배 상하차 하러 간다더니, 카페는 또 무슨 놈의 카페란 말인가. 아무리 강진호의 몸이 강철로 만들어져 있다지만, 새벽에는 택배 상하차를 하고 아침부터 카페 알바를 할 수가 있나?
“끄응.”
SNS에서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조규민은 앓는 소리를 내며 엑셀을 밟았다. 아무래도 이건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았다.
한참 차를 몰아 강유환의 카페에 도착한 조규민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이렇게 되지.’
현역 톱 아이돌이 카페에서 서빙을 하고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단 말인가.
그나마 여기가 외진 곳이라서 망정이지, 길가에 있는 카페였다면 교통 통제를 위해 경찰이 출동해야 할 상황이었다.
‘현수막은 또 뭐여?’
공식 팬클럽도 출동했는지 ‘우유 빛깔 강세아’니, ‘은퇴 반대 백만 서명’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현수막과 피켓이 보였다.
“좀 들어가겠습니다.”
“뒤로 안 가요?”
“이 양반이 눈이 없나? 줄 안 보여? 난 지금 두 시간째 줄 서 있다고.”
조규민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강세아 씨 매니저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조규민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래서?”
“…….”
“뒤로 갈래요, 맞을래요?”
“……뒤로 가겠습니다.”
힘없이 뒤로 가는 조규민의 어깨가 축 처졌다.
‘요즘 나 뭐랄까, 조금 인생이 불쌍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서글픔에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조규민이었다.
“오셨어요?”
“예.”
반쯤 탈진한 조규민이 힘겹게 자리에 앉았다.
“기다리신 거예요?”
“안 들여보내 주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기다렸습니다.”
“예? 전화 한 통 주셨으면 데리러 나갔을 텐데.”
“아…….”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조규민을 보며 강진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이상 말을 하는 것은 사람 하나를 완전히 보내버리는 일이다.
“그, 그런 수가…….”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 예전에는 뭐랄까, 매우 유능하면서도 칼날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기 시작하더니 유능하기는 한데 좀 맹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가 시키셔서요.”
조규민은 카페를 돌아보았다.
‘가게 터지겠네.’
테이블마다 빈자리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커피 한 잔 해봐야 만 원도 안 하는데, 그 만 원을 내고 현역 아이돌을 삼십 분 동안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할 사람은 넘쳐 날 것이다. 게다가 강세아는 그저 그런 아이돌도 아니고, 그룹의 일원도 아니다.
‘회사원도 보이는 거 같은데…….’
출근했다가 조퇴를 한 건지, 아니면 외근 나간다고 구라 치고 왔든지…… 여하튼 회사원들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하시겠어요?”
“아메리카노요. 달달하게.”
“시럽 넣어 드릴까요? 몇 번 넣어 드릴까요?”
“세아 씨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점장님! 여기 블랙이요!”
시무룩.
강은영이 손님을 응대하는 것을 보니 나름 일머리는 있는 듯 했다.
가끔 짓궂은 손님도 있지만, 영업용 미소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는 예상을 했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는 부분도 있었다.
“학생이세요?”
“……예.”
“휴학 중?”
“예. 전역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복학 안 했습니다.”
“어머, 군대도 다녀오셨구나! 얼굴은 엄청 어려 보이는데.”
“…….”
조규민은 미묘한 시선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 손님들은 뭐지?’
처음 그가 줄을 섰을 때만 해도 여자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그와 같이 줄을 서는 여자들이 늘어난다 싶더니…… 지금은 거의 테이블의 반을 여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능숙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강은영과는 다르게 강진호는 손님을 응대하는 데 쩔쩔매고 있었다.
“주문하신 모카 프라프치노 나왔습니다.”
“생크림 올려 달라고 했는데요?”
“……주문하실 때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
“응? 난 분명 말했는데. 에이, 잊어버리셨으면 그렇다고 하면 되죠.”
“죄송합니다.”
조규민은 고개를 저었다.
강진호의 기억력을 감안한다면 주문을 잘못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강진호와 말하는 시간을 늘려보려는 손님들이 많았다.
‘동영상이 이런 식으로 파급효과를 일으킬 줄이야.’
그저 인터뷰 한 번 했을 뿐인데 팬이 생기다니.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조규민이었다.
“커피 마셨나?”
“아, 예. 주문하겠습니다.”
“자, 아메리카노지?”
“감사합니다.”
자신에게 잔을 내미는 강유환을 보며 조규민은 빙그레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예전부터 꿈이었거든.”
“꿈이라면?”
강유환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카페를 하고, 아들딸이 거기서 서빙을 보는 거지. 항상 꿈처럼 생각하던 일인데 실제로 보니 뭐랄까, 감개가 무량하달까?”
강유환이 흐뭇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내 자식 놈들이긴 하지만, 참 그림이 나오지 않는가?”
“그건 그렇습니다.”
왜 아버님의 아래에서 저런 미남미녀가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조규민은 이 사태에 파국을 일으킬 만한 내심을 꼭꼭 숨기며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그리고!”
“예?”
“매출이! 매출이 오르고 있다네! 다른 날 삼 일 치를 오전 만에 다 쳐냈어! 이대로라면 더 이상 적자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흑자야! 이제 나도 마누라한테 자식 놈 돈 까먹는다고 타박을 받지 않아도 될…….”
그거였군요.
조규민이 미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강유환은 헛기침을 하고는 잔을 쭉 밀었다.
“들게, 들어.”
“……예.”
조규민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오늘따라 아메리카노가 씁쓸하다.
아니, 아메리카노는 원래 쓰던가?
* * *
차이커창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 그런 애송이 놈을 어쩌라는 말입니까?
“홍왕께서 지시한 일이시다.”
홍왕이라는 말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 거물이 납셨군요.
차이커창은 입에 문 담배를 비벼 끄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네 임무는 타깃이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성향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방법은 상관없다. 단, 가족은 건드리지 말도록. 홍왕께서 분노하실 것이다.”
― 사람이 어떤 놈인지 알아볼 때는 주변 사람을 건드려 보는 게 제일 간단하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시겠지요?
“역시나 홍왕의 지시다.”
― 썩을.
전화기 너머로 툴툴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일은 쉽게 부려 먹으면서 조건이 너무 많군요. 뭐,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돈만 받으면 되니까요. 얼마 주실 겁니까?
“다섯 배.”
― 진심입니까?
차이커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가장 즉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
― 그 정도면 해볼 만하지요.
“명심해라.”
차이커창은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홍왕께서 주시하고 계신 인물이다.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홍왕의 분노가 너를 향할 것이다.
― 그쪽도 명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일을 맡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일을 맡았으면 최선을 다해서 처리하는 것이 이쪽의 모토지요. 제가 지금까지 허술하게 일처리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건방진 발언이군. 하지만 그래서 마음에 들어. 타깃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모두 보내주지. 빠른 소식 기다리겠네.”
― 입금되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재수 없는 놈.”
― 아, 그리고 한 가지…….
“말해라.”
― 죽여도 됩니까?
차이커창이 미간을 좁히고는 대답했다.
“네놈에게 죽을 정도라면 홍왕의 관심을 끈 것마저 과분한 거겠지. 마음대로.”
― 그럼 편하겠군요. 금방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차이커창은 전화를 끊고는 새 담배를 꺼내 입을 물었다.
‘이런 돈 귀신 놈의 손을 빌리고 싶지는 않지만…….’
무인에게 있어 타국에서의 움직임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국가의 무인들이 반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국의 현재 상황 상 홍왕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놈은 돈 귀신이기는 하지만 일처리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너무 확실해서 때로는 과하게 일을 벌이는 것이 단점이기는 했지만.
“강진호라…….”
차이커창은 빙긋 웃었다.
어쩌면 이제 다시는 그 이름을 들을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