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20
#1819.
재회하다 (4)
“다녀왔습니다.”
“왔니?”
백현정이 고개를 돌려 현관으로 들어오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머금어진 미소를 본 백현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네? 왜요?”
“아니, 실실 쪼개며 들어오길래.”
“…….”
아들한테 실실 쪼갠다니.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 이런 표현을 면전에서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냥 친구 만났어요.”
“응? 그래? 유민이?”
“아니요.”
신발을 벗은 강진호가 빙긋 웃었다.
“유민이보다 더 오래된 친구요.”
“별일이네. 네가 유민이도 아닌 애를 따로 만나고.”
“그러게요.”
강진호가 방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밥은 먹었니?”
“네. 먹고 왔어요.”
“응. 그래, 얼른 쉬어라.”
“네.”
방 안으로 들어가는 강진호를 보며 백현정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하네.’
웃고 있는데…….
웃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방 안으로 들어온 강진호가 옷을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드러누웠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강진호가 조금은 과격하게 자신의 얼굴을 주물렀다.
‘청마.’
긴 시간을 넘어 다시 만난 청마는 그가 알던 청마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청마다. 그건 의심의 여지조차 없다.
강진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청마.”
배 속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은 기분이다.
이 기분이 청마의 도발 때문인지, 아니면 어느새 그조차 경계할 정도의 실력을 쌓은 청마의 힘 때문인지, 아니면 비틀려 버린 그들의 관계 때문인지는 강진호조차 알 수 없었다.
“제 말 명심하시길. 당신과는 적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건방진 놈이.’
강진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어떤 이도 감히 그의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없다. 그리고 청마라면, 다른 이도 아닌 청마라면 그 말이 강진호에게 얼마나 큰 도발이 되는지 절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말을 당당히 지껄인다?
‘웃기지도 않는군.’
“당신을 위해 내가 마련해 둔 새장 안에서 당신의 세상을 지켜내십시오.”
말과 행동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조금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던 강진호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대체 그놈은 뭘 하려는 거지?’
그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강진호의 삶을 뒤틀지 않을 거라 말했다. 강진호가 아는 청마는 필요하다면 거짓을 말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굳이 이런 상황에서 거짓을 읊을 사람은 아니다.
청마.
바로 그 청마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
과거의 강진호였다면 그 사실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강진호 역시 알고 있다.
그 청마가 얼마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지 말이다.
‘놈이 움직인다면…….’
아무것도 없던 마교의 일개 교도에서 마교를 장악하고 전 중원을 짓밟은 이가 바로 그와 청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 대업을 이룬 이가 그가 아닌 청마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싸우라면 싸우고, 죽이라면 죽였을 뿐.
그저 미친놈처럼 대항하는 이를 모조리 쳐 죽였을 뿐이다. 그가 혼자였다면 아무리 강했다 해도 언젠가는 그를 두려워한 이들의 협공을 맞아 비명횡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놈의 머리는 천재적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청마는 결코 단기간을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이미 강진호와 처음 접촉할 때부터 중원을 지배할 계획까지 세워둔 미친 인간이 바로 청마다. 그가 정말 뭔가를 꾸몄다면 이미 그 계획은 막바지에 다다랐을 확률이 높다.
강진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적을 맞아 싸웠다.
개중에는 강진호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적도 있고,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놈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틀어 가장 적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를 단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강진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청마를 고를 것이다.
그런데…….
그 청마가 과거에는 없던 무력마저 갖췄다.
그것도 강진호조차 일순 움츠러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무력을.
“…….”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진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습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그는 과거 마교를 상대한 이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절절히 체감하고 있었다.
마교라는 미지의 세력.
그리고 인간을 농락하는 악마적인 두뇌를 가진 군사.
마지막으로 그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는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교주.
지금의 청마는 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마교를 키워낸 능력으로 흑왕계를 키워냈을 것이고, 그 머리는 과거와 다름 없이 영활하게 움직인다. 거기에 과거의 적천마존을 능가할 정도로 힘마저 갖췄다.
헛웃음이 난다.
대체 이런 괴물을 무슨 수로 상대하라는 건가.
홍왕과의 싸움은 힘겨웠다.
창왕과의 싸움은 그를 거의 끝까지 몰아넣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들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단 한 번도 그들을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 오직 그의 주변이 다칠 것을 걱정했을 뿐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주물렀다.
그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어두운 감정이 강진호의 육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하나 남은 친구를 제 손으로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그 말이…….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는 사실이 강진호의 배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으드득.
이를 갈아붙인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마기를 서둘러 갈무리했다.
“……빌어먹을.”
강진호가 담배를 챙겨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의 눈에 소파에 앉아 있는 백현정과 강은영의 모습이 들어온다.
“어디 가니?”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지금 들어왔잖아.”
“금방 와요.”
백현정이 영 모르겠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무 멀리 가진 말고.”
“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강진호가 현관을 나섰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어머니가 걱정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이 답답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찰칵.
밖으로 나온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쓰디쓴 연기가 폐를 한 번 훑고 나가자 뒤집힌 속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런 담배 따위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후우.”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짙은 어둠이 내린 하늘이 검디검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때.
그와 청마는 이 하늘이 아닌 다른 하늘 아래를 살아갔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그들을 바라보는 하늘이 변해 버렸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를 살아간다.
“지금의 당신은 겨우 이것만 지키면 만족하는 경비견입니다.”
“이…….”
강진호가 이가 절로 갈리며 물고 있던 담배가 찢어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조리 강진호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틀리는 감정 속에서 강진호는 모순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강진호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청마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그는 예전부터 항상 말해왔다.
싸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라고.
그리고 또 생각했다.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 지금 싸우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청마는 그의 삶을 보호해 준다고 했다. 그의 영역에는 결코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강진호가 지키려 하는 이들은 결코 청마의 손에 해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청마는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을 쉽사리 어길 이가 아니니까 그의 프라이드를 감안한다면, 그 말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모두 지킬 수 있고,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된다. 이제 더는 사람을 죽여 대며 싸움밖에 없는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그래.
그거면 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강진호의 속이 이리 끓어오르는가.
찰칵.
새 담배를 입에 문 강진호가 가라앉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을.’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그는 과거와는 다른 것을 정립해 왔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이제야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좋습니다. 그게 당신이 택한 삶이라면.”
청마는 겨우 말 몇 마디로 그런 강진호의 생각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버렸다.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대화만으로 말이다.
‘나는 무얼 불안해하는 거지?’
청마가 자신의 목적을 모두 이룬 뒤에 강진호와 그의 주변을 내버려 둘 것 같지 않아서?
그게 아니면…….
‘어이없군.’
강진호도 자신을 잘 모르는데, 청마는 그런 강진호를 손바닥 위에 올려둔 것처럼 굴고 있다. 더 열이 받는 것은 그런 청마의 말에 강진호가 딱히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뭘 원하지?’
진정 물어야 할 것은 그것뿐이다.
그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건가.
강진호가 등을 벽에 기댔다.
이상하게도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할 힘이 없다. 마치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을 끝도 없이 헤쳐 나온 것처럼 말이다.
강진호가 멍하니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우우우우우웅!
그때,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조금 늦게 휴대폰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강진호가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보았다.
이현수.
액정에 뜬 이름을 본 순간, 강진호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한참 동안 액정을 들여다보던 강진호가 느릿한 손길로 통화를 연결하고는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
“무슨 일이야?”
[그냥 전화해 봤습니다.]“……뭐?”
[그냥 했다고요, 그냥.]“…….”
강진호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이상하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말이 그의 어깨를 밀어주는 것 같다.
[하실 일 없으면 치킨 시켜서 맥주 한잔 안 하시렵니까? 지금 딱 현주가 집에 없는 기간이라 좀 심심한데.]“……미친놈이.”
강진호가 옅게 웃었다.
“어디야?”
[저희 집입니다. 모시러 갈까요?]“아니. 내가 가지.”
[진짜 오십니까?]“오라며?”
[그래도 진짜 오실 줄은 몰랐죠.]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간다.”
[예. 그럼 오실 때 맥주 좀 사 오시죠. 제 취향 아시죠?]“끊어, 미친놈아.”
전화를 끊어 주머니에 쑤셔 넣은 강진호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병신 같군.’
조금 전까지 그를 몰아넣은 고민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예전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혼자 해결하려 했어.’
그는 과거와는 다르다.
이제 그는 함께 고민해 줄 사람들이 있고, 함께 걱정해 줄 이들이 있다. 그의 어깨를 누르는 짐을 굳이 그가 홀로 온전히 짊어질 필요가 없다.
담배를 비벼 끈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차로 향했다.
그런데…….
“무슨 맥주를 사 오라고 했지?”
모르겠다. 대충 사 가면 알아서 먹겠지, 뭐.
차 문을 열어젖힌 강진호가 조금은 가벼워진 동작으로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