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37
#1836.
공격받다 (1)
“이게 뭔 소리야!”
폭음을 듣고 밖으로 뛰쳐나온 이들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이사님들이 수련하시는 건가?”
“아니야! 저쪽이다!”
그들의 눈에 언덕 아래의 도로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똑똑히 들어왔다. 총회에 적을 둔 이들 중 저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적이다!”
“침입이다! 다들 불러와!”
“빌어먹을, 무기 넣어, 새끼들아! 그냥 교통사고일 수도 있잖아!”
상황을 확인한 이들이 몸을 날려 도로로 뛰쳐나간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산책이라도 하는 듯, 한가롭게 도로를 걸어 올라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뭐야, 이게?”
“두 명?”
외부자.
정확하게는 침입자라 명명해야 할 이들을 발견하고도 총회의 회원들은 섣불리 그들을 제압하러 달려들지 못했다.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이 어디인가.
대한민국의 무인계를 일통한 총회의 본산이다. 이곳이 어딘지 아는 이라면 감히 둘만으로 이곳을 공격할 리가 없다.
“사고인가?”
“……이게 뭔 상황이야?”
순간, 대응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이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길을 올라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입을 열려니 할 말이 궁했다.
뭐라고 물어야 하겠는가.
혹시 이곳을 공격하는 중이십니까?
저기서 왜 폭발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물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건 이들이 멍청해서도 아니고, 이현수가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도, 이현수의 머릿속에도 총회의 본진이 소수에게 습격당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들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백연홍이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아.”
백연홍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대처는 좋지 않군. 적이라 생각하는 이가 눈에 보이면 일단은 제압을 해야 하는 법이지. 사과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사고는 수습이 불가하니까.”
“뭐라는 거야?”
“중국인인가?”
“…….”
백연홍이 살짝 허망한 표정을 짓자, 곽소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뭐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 기운 빠지게.”
“……한국이라는 걸 잠시 잊었군.”
백연홍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말은 안 통하지만, 검은 통하겠지.”
백연홍이 검을 뽑는 모양새를 본 총회의 무인들이 안색을 굳혔다.
“싸우겠다는 건가?”
“자, 잠시만. 저거, 철이 아닌데?”
“응?”
“장난감 칼이야. 플라스틱이라고.”
“……그러고 보니?”
백연홍의 주위를 넓게 포위한 이들이 하나같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 진지하게 상대하자니 뭔가 어색하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자니 껄끄럽다.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군.”
백연홍이 피식 웃고는 검을 들어 올렸다.
“나보다 뒤에 태어난 이들이 나보다 시대를 따라오지 못해서야 쓰나.”
그의 검끝에 새파란 검기가 어렸다.
“어떤 플라스틱은 쇠보다 더 강하지.”
파아앗!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딱히 날카로운 검격도 아니고, 쾌속한 쾌검도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달인의 경지를 보여주는, 깊이 있는 검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스러운 궤적.
어린아이가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도 같고, 아직 어린 학생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도 같은, 그저 흔하디흔한 궤적이었다.
하지만 그 궤적이 만들어낸 결과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뭐 하…….”
의혹 어린 얼굴로 말을 하던 이의 눈이 순식간에 풀린다. 동공에 빛을 잃은 이의 몸이 힘없이 꺾이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털썩.
털썩, 털썩.
백연홍의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이들 중 적어도 서른이 넘는 이들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져 처박혔다.
“뭐…….”
이 이해할 수 없는 기사에 지켜보던 이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그들의 시선이 앞쪽에 쓰러진 이와 태연하게 검을 들고 있는 백연홍을 오고 갔다.
‘검이 닿지도 않았는데…….’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들이 좋은 의도로 이곳을 방문하지는 않았다는 것 말이다.
그 사실을 이해했다면 그들이 해야 할 것은 단 하나였다. 단숨에 달려들어 저 백연홍이라는 자를 구속하는 것.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그들은 백연홍이 앞에 있는 이들을 어떻게 쓰러뜨렸는지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그 사실이 그들의 발을 묶어둔다. 상대의 수를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보고도 알아채지 못한다는 건 그들과 상대 사이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제, 제압해라!”
“막아!”
정제된 이성이 금세 움츠러든 본능을 이겨냈다.
사고를 전환하는 데는 단 한 사람의 용기 어린 외침이면 충분했다.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 든 총회의 회원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백연홍에게 달려들었다.
“호오.”
두려움 없이…… 아니, 두려움을 억누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보며 백연홍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운 광경이로군.”
이 생에서 그는 딱히 제대로 된 제자들을 받지 않았다. 수하라 하는 이들 역시 적당히 써먹을 수 있는 놈들을 대충 끌어모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기꺼웠다.
저 두 눈에 어린 정광.
자신이 걷는 길이 정도임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저 눈빛이 말이다.
‘이런 걸 보면 약해진다니까.’
기꺼운 미소를 입에 담은 백연홍의 검이 환상처럼 허공을 누볐다.
화아아악!
허공을 잘라내는 소리가 마치 불이 타오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검이 아닌, 검이 뿜어낸 기세에 베인 총회의 무인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털썩 털썩 쓰러진다.
“으아아아!”
“틈을 주지 말고 몰아붙여!”
바로 앞에서 동료가 쓰러지고 있음에도 달려드는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백연홍의 검 역시 멈출 생각은 없었다.
파아아아앗!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십여 명이 넘는 이들이 하나같이 바닥에 쓰러진다.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쓰러진 이들 중 죽은 이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쪽이 더 쉽겠는가, 아니면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하게 기절만 시켜 쓰러뜨리는 쪽이 쉽겠는가.
압도적인 무위.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는 검이었다.
백연홍이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아해들이 꽤 거칠군. 완전한 정의 느낌은 아니야.”
“그럼 죽이시지.”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오히려 지금 중원에서 정도를 찾아보는 게 더 어려우니까.”
백연홍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무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세상에 깔끔한 마지막은 없는 법이지. 살아남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악하며 변질되다가 결국에는 도태되는 법이지. 아쉽게도 말이야.”
백연홍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가 입에 담을 일은 아니다. 변해가는 시대 때문에 협의를 잃고 변질된 것은 그도 마찬가지니까.
아니, 시대 때문이라는 것도 변명에 불과하겠지.
“와봐라.”
백연홍의 검이 부드럽게 달려드는 이의 옆구리를 밀쳐 낸다.
투웅!
가죽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이가 배는 더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간다.
“속도도 좋고, 강맹함도 좋지. 하지만 본질은 높이다.”
백연홍의 검은 빠르지 않았다. 딱히 대단한 힘을 싣고 휘둘러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백연홍의 검은 더없이 강하고, 더없이 드높았다.
저벅저벅.
걸어 오른다.
동시에 수십 명이 막아서기 위해 달려들고 있지만, 산보를 하듯 걷는 백연홍의 발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볼 때마다 뭔 게임 같다니까.”
그 뒤를 따라 오르는 곽소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백연홍만큼 특이한 이가 세상에 또 있을까?
이제는 삼류 파락호처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진 사람이지만, 그 검은 말 그대로 정도의 극의(極意).
더없는 진리를 담고 신선처럼 검을 휘둘러 댄다.
그 모습을 보고도 의지를 잃지 않는 이들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솔직히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다. 저런 어중이떠중이들은 백이 아니라 천, 혹은 만이 와도 백연홍을 쓰러뜨릴 수 없다.
그리고 그 순간.
“지원한다!”
“막아라!”
중앙으로 난 길 좌우에서 이제까지와 다른, 검은 복장을 한 이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음?”
곽소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잠시 본 것만으로 평가를 하는 게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타난 이들이 달려드는 방식은 확실히 이전에 백연홍을 상대하는 이들보다 체계적이었다.
하나하나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조금 낮을지 모르겠지만, 뭔가 하나의 생물체처럼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끈적하고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곽소의 눈이 백연홍의 등에 꽂혔다.
“흐음?”
백연홍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죽어라아아아아!”
“으아아아앗!”
백연홍의 검이 환상처럼 허공에 동그란 호선을 그린다.
파아아아아아앗!
빛살처럼 뻗어져 나간 검의 형상들이 달려드는 마교도들의 목을 일제히 꿰뚫었다.
“…….”
정적.
세상이 멈춘 듯 모두의 동작이 한 순간 멈춰 선다.
그러고는…….
푸우우우웃! 푸우우웃!
검에 꿰뚫린 이들의 목에서 일제히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르륵.”
“꺽…….”
필사적으로 목을 부여잡아 보지만, 구멍이 뻥 뚫린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막을 도리가 있겠는가.
털썩!
순식간에 절명한 마교도들이 채 눈을 감지도 못한 채 바닥으로 쓰러진다.
“너희에게는 자비가 필요 없지.”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아스팔트를 타고 흘러내린다. 그 광경을 지켜본 이들이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실감이 난다.
지금 그들이 사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총회에 든 이후 그들은 언제나 사냥을 하는 입장이었다. 적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역으로 공격을 했고, 상대를 무찌르기 위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그들을 사냥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사냥을 당하는 입장에 처한 것이다.
“으…….”
주먹을 움켜쥔 총회의 무사들이 이를 악물며 자세를 낮췄다.
몸에 무게를 실어 절로 물러서려는 다리를 부여잡은 것이다.
“흐으음.”
그 모습을 본 백연홍이 빙그레 웃었다.
“아직 달아나지 않는다라……. 적천마존이 훈련은 제대로 시켰군. 뭐, 예전에도 워낙에 유명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기특하다는 듯 웃어준 백연홍이 검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자, 그럼 몇이나 더 죽여야 상대할 만한 놈들이 나올까?”
세상에 수많은 말이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섬뜩하게 들릴 말이 있을까.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총회의 회원들도 급속도로 식어가는 마교들의 얼굴만으로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일단은 너희부터 다 죽여보지. 제대로 된 놈이 나올지, 아니면 달아날지.”
백연홍이 더없이 산뜻한 미소를 머금고 마교도들을 향해 가볍게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