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38
#1837.
공격받다 (2)
검을 든 이의 마음이 어떻든, 그 손에 들린 검은 더없이 무정(無情)해야 하는 법이다.
백연홍은 그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듯, 더없이 무정한 검을 휘둘렀다.
슈우욱!
딱히 강렬한 소음이 울려 퍼지는 것도 아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미약한 소음이 울릴 뿐이다.
하지만 그 미약한 소음의 결과는 결코 미약하지 않았다.
서걱!
달려들던 마교도의 목젖에 아주 작은 상처가 생겨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기에 물린 것처럼 작은 상처에 불과하지만, 그 상처를 뚫고 들어간 검기는 그들의 목 안을 완전히 헤집어놓았다.
“끄르륵…….”
목으로 역류하는 피를 어쩌지 못하고 손을 내젓던 마교도들이 바닥으로 털썩털썩 쓰러진다.
“이 개 같은 놈이!”
총회의 회원들이 그 광경을 보고 눈을 까뒤집었다.
아무리 시작은 달랐다고 한들, 마교도들은 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들이다. 그런 이들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데,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다.
“흐아아아아아악!”
총회의 회원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백연홍에게 달려들었다.
“쯧쯧쯧.”
백연홍이 혀를 차며 검을 살짝 내리누른다.
“무인이란…….”
파아아앗!
그의 검이 빛살처럼 허공을 가른다.
“언제고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는 법.”
달려들던 이들이 그 빛살 같은 검기에 꿰뚫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추락한다.
“아직 모자라구나.”
가볍게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백연홍이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는 쓰러지면 쓰러지는 대로 자리를 채우던 이들이 이제는 감히 백연홍의 앞길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숨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아니던가.
“흐음.”
백연홍이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언덕을 오른다.
차마 달려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물러설 수도 없는 이들이 서서히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백연홍을 보며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다, 달아…….”
“닥쳐!”
누군가 마음 약한 소리를 하려는 순간, 바로 칼날 같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여긴 우리 안 방이다! 집에서 달아나는 주인이 어디에 있냐, 이 병신아!”
이를 악문 이들이 병기를 움켜잡는다.
막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연하다.
그 눈빛을 본 백연홍이 미소를 머금었다.
“좋은 눈이군.”
공포에 떠밀려 싸우려 드는 이들은 많이 보았다.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달려드는 이들도 충분히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제 의지로 제 발을 바닥에 붙인 채 그를 기다리는 이들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조금 향수가 일 만큼 말이야.’
과거에는 많았다, 이런 이들이.
물론 그도 과거를 완전히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가 중원을 살아가던 그 시절에도 이득에 목을 매는 이들은 넘쳐 났고, 지금보다 더 잔인하고 사악한 이들은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은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걸 줄 아는 낭만지사들이 살아가던 세상이었다.
최근에는 거의 찾아보지 못한 예전의 향취를 이국의 땅에서 느끼게 된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대충 상대하면 내가 너희를 모독하는 게 되는 건가?”
백연홍이 검끝을 까딱였다.
살짝 입술을 핥은 그가 차가운 눈으로 그의 앞에서 버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본다.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막아봐라!”
백연홍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두르려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
“흠?”
위쪽에서 날아드는 과격한 권력(拳力)에 백연홍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그의 검이 가볍게 튕겨 올라가더니, 붉은 기운을 띤 권력이 옆으로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빙글!
더없이 부드러운 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권력을 옆으로 부드럽게 밀어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백연홍의 몸에 스치지도 못한 권력이 뒤로 날아가 바닥을 으스러뜨렸다.
“굉장한 위력이군.”
백연홍이 고개를 들어 권력을 날린 이를 바라보았다.
“……철탑거인인가?”
평범한 사람보다 세 배는 더 큰 체구의 사내가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무표정이어도 험상궂기 짝이 없을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고, 그 머리 위로 지렁이 같은 핏대가 서 있다.
“이…… 찢어 죽일 놈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바토르가 죽어 쓰러진 이들과 의식을 잃고 기절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죽여 버리겠다!”
노호성을 내지르며 뛰쳐나가려는 바토르를 주름진 손이 막아선다.
“뭐야, 영…….”
“침착해라.”
장민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서는 피해가 크다.”
“그런 걸 따질…….”
“침착하라고 했다.”
바토르가 입을 닫았다.
그의 앞으로 뻗어져 있는 장민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감.’
하기야.
지금 피를 흘리며 죽은 이들은 대부분이 마교도이다. 마교를 이끄는 장민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순식간에 수십이나 고혼이 되어버렸다.
지금 장민이 얼마만 한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굳이 입으로 말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저 개 같은 새끼가…….”
하지만 눈이 뒤집힌 건 방진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핏줄이 터질 정도로 움켜쥔 그의 손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거, 요란한 방문자로군요.”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이가 바로 위긴스였다.
“중국어는 아직 약한데.”
가스라니 자라난 턱수염을 한 손으로 쓸어내린 위긴스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오실 줄 알았으면 마중이라도 나갔을 텐데, 성질이 무척 급하신 분이군요.”
그 말에 백연홍이 고개를 들어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러고는 영 불만족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절차가 복잡하군. 이쯤 했으면 적천마존이 직접 나올 법도 한데 말이야.”
“흑왕쯤은 되어야 그럴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개는 개답게 대접을 해드려야 하는 법이죠.”
“개?”
“예. 흑왕의 개, 아닙니까?”
백연홍이 그 말을 듣더니 껄껄 웃었다.
“그래, 맞지. 나는 흑왕의 개지. 그런 말을 들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위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흥분하지 않는군.’
단순한 격장지계다. 하지만 더없이 효율적인 격장지계일 수밖에 없다. 저만한 실력자는 무시받는 것을 결코 참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묘하군.’
보면 볼수록 이상한 느낌이 드는 자였다.
더없이 날카롭고 염세적으로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말하는 투나 행동하는 것은 허허롭기 짝이 없다. 마치 두 사람의 인격을 뒤섞어놓은 것처럼.
“그러는 너희는 적천마존의 개가 아닌가?”
“맞습니다.”
위긴스가 빙긋 웃고는 말했다.
“개는 개와 어울려야 하는 법이지요. 위로 올라오십시오. 좀 더 넓은 데서 상대해 드리죠.”
“흠.”
백연홍이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안내해라.”
백연홍을 빤히 바라보던 위긴스가 말없이 몸을 홱 돌렸다.
“가십시다.”
“…….”
“여기서는 피해가 커집니다. 가십시다.”
다른 이사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총회의 중앙 연무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노기가 끓어오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우선 더 이상의 피해를 막는 게 우선이니까.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본 백연홍도 검을 검집에 밀어 넣고는 느긋하게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따라가십니까?”
곽소의 말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오라잖느냐.”
“위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따라가십니까? 함정이면 어쩌시려고요!”
“무슨 함정으로 나를 막아?”
“…….”
“그리 멍청한 놈들은 아니겠지. 너처럼 말이다.”
“끄응.”
곽소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가 보기에는 지금 나타난 이들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고수들이다. 지금껏 백연홍이 상대한 이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그럼에도 백연홍은 저들을 상대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 오만함이 백연홍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아, 같이 가십시다.”
휘적휘적 걸어 올라가는 백연홍을 지켜보는 총회의 무인들이 이를 악물었다.
금방이라도 그의 등을 향해 달려들 것 같던 이들에게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 새끼들아!”
“…….”
“부상자부터 빨리 옮겨! 아직 살아 있는 이들도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돼!”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이들이 이를 악물고 쓰러진 이들에게 달려들었다.
“흐음.”
연무장 위로 올라온 백연홍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낮군.”
딱히 높은 건물이 들어설 만한 곳은 아니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총회의 건물은 영 그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았다. 한국의 무인계를 일통한 총회가 사용하기에는 과하게 낡고, 과하게 낮은 건물이다.
“안 맞아.”
백연홍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건물의 주인이 그와 얼마나 다른 성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래.”
연무장 중앙에서 백연홍과 마주 선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백연홍이 심드렁하게 입을 열었다.
“적천마존의 목을 치러 왔다.”
“혼자 말입니까?”
“둘이지.”
백연홍이 곽소의 어깨를 툭, 쳤다.
“쓸모는 없지만.”
“……거, 남들 앞에서.”
더없이 여유롭다.
적진 한가운데에서 포위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형국인데도 백연홍에게서는 위기감이라는 게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유가 위긴스의 심기를 거슬렸다.
“뭔가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이쪽은 그리 정정당당한 곳이 아닙니다.”
“착각을 하는 건 그쪽이지.”
“…….”
백연홍이 입꼬리를 뒤틀었다.
“너희가 한 번에 달려든다고 해서 날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저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조리 끌어온다고 해서?”
“…….”
“주제도 모르는 놈들이군. 이 작은 나라에서 대장 놀음을 하고 있으니 너희가 왕이라도 되는 것 같은가?”
백연홍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가치 있는 이는 오직 한 명밖에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그것뿐이야. 그러니 시간 끌지 말고 적천마존을 불러와라. 아니면 네놈들의 단말마로 그놈을 불러들일 테니까.”
“입을…….”
“됐어!”
바토르가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로 위긴스의 말을 끊었다.
“미친놈은 말이 통하지 않는 법이지. 그냥 대가리를 으깨 버리면 그만이야!”
위긴스도 더는 그런 바토르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자, 백연홍이 심드렁한 눈으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뭘 어쩔 셈이지?”
“귀가 막힌 모양이군. 내가 너를 쳐 죽이겠다고 했다.”
“네가?”
백연홍이 피식 웃는다.
“적천마존은 농담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 갑갑했는데, 너희는 농담이 과하군. 네가 나를 무슨 수로 막겠다는 거냐?”
바토르의 두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한다.
“그건 어디 겪어보면 알겠지!”
마공을 끌어올린 바토르의 상체의 셔츠가 터져 나가며, 그의 전신이 붉게 물들었다.
“호오.”
백연홍이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잡스러운 짓거리를.”
그그극.
그의 검집에서 검이 천천히 뽑혀 나왔다.
“좋다, 덤벼봐라. 적천을 상대하기 전의 몸 풀기로는 적당하겠지.”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린 바토르가 성난 곰처럼 백연홍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