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4
#183.
습격받다 (3)
“밥 먹고 해야지.”
“예.”
강진호는 크레인에서 건물 옥상으로 넘어갔다.
“너, 안 떨리냐?”
“뭐가요?”
조상필은 강진호를 보면서 얼떨떨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안 떨리나?’
조상필이 처음 이 일을 할 때는 아래를 보지도 못했다. 아무리 담이 좋은 사람이더라도 아차 하는 순간 목숨이 달아난다는 압박감을 실제로 받으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잘 움직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강진호라는 이놈은 마치 크레인 위가 평지라도 된 것처럼 너무 태연하게 행동했다.
“여기 빌딩에 구내식당 있나?”
“구내식당 밥이 다 그렇죠. 그냥 나가서 먹으면 안 됩니까?”
“이동조 있잖아.”
“아, 그렇네요.”
조상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동조인데, 네가 까먹으면 어떻게 하냐?”
“에이, 좀 까먹을 수도 있는 거죠.”
조상필이 너스레를 떨고는 말했다.
“그런데 소장님.”
“왜?”
“오후 이동 갈 때, 신입 데리고 가도 됩니까?”
“뭐? 신입을 데리고 가?”
“예.”
소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뭐 며칠 일했다고 그런 데 애를 데리고 가? 안 돼.”
“애가 담도 좋은데, 이번에 제대로 가르쳐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된다니까.”
조상필이 소장의 팔을 잡고 말했다.
“쟤 너무 겁이 없어서 이대로 데리고 일하다 보면 사고 날 것 같아서 그럽니다. 겁을 한 번 먹어봐야 정신 차리죠.”
“……이 새끼가 뭔 수작질이야?”
소장이 버럭하려고 하자 조상필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정말이라니까요. 뭔 평지처럼 다니는데, 저런 애들이 나중에 안전줄 풀고 다니다가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으음…….”
“개인 줄 한 번만 태우고 나면 다시는 안 그럴 겁니다. 적당히 겁만 주고 바로 올릴게요.”
“끝까지 맡기는 건 아니지?”
“에이, 쟤를 뭘 믿고 일을 맡깁니까. 쟤가 한 구역 다 다시 해야 할 텐데요.”
“그럼 안전은 니가 확실하게 책임져. 뭔 소린지 알지?”
“그럼요.”
강진호가 모르는 곳에서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안 돼, 인마.”
“소장님이 괜찮다고 했다니까요.”
“아, 글쎄, 안 된다면 안 돼. 이 미친놈이 정신이 나갔나? 어디 처음 출근한 애를 의자에 앉혀?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니가 책임질 거야? 절대로 안 돼.”
“에이, 사고는 무슨 사고예요?”
“이거, 큰일 날 놈이네? 너 같은 놈이 사고를 내는 거야. 여하튼 절대 안 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조상필은 한숨을 쉬었다.
‘에라이, 꼰대.’
소장도 허락했다고 하는데 자기가 뭐라고 이리 막아서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직급이야 그보다 높으니 저리 나오면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럼 트레이는 괜찮죠?”
“……트레이 설치할 거야?”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트레이 정도는 괜찮을 거 아니에요. 제가 데리고 갈게요. 그럼 되죠?”
“뭔 짓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사고 나면 너 가만히 안 둔다.”
“예예.”
조상필이 고개를 슬쩍 숙였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외벽 청소를 다들 줄에 매달려 했지만, 요즘은 점차 크레인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였다. 한 번에 5~6명이 올라탈 수 있는, 좌우로 길쭉한 탈것에 올라타 아래로 내려가며 청소를 하는 것이다. 무게가 무거워진 만큼 바람에도 덜 흔들리고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크레인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 크레인이 크고 무거운 만큼 설치할 수 없는 곳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런 곳에서는 여전히 의자를 매달아 청소를 하거나 2인용 트레이에 몸을 싣고 청소를 했다.
“의자가 제대론데.”
아무리 담력이 있는 놈이라고 하더라도 상공 200m에서 외줄에 매달리는 순간,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공포와 직면하게 된다.
저 무표정한 놈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꼴을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어 너무 아쉬웠다.
‘아니지.’
생각해 보면 아무리 강진호가 무서워한다고 해도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그 감정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관찰하기에는 트레이가 훨씬 나을 수 있었다.
200m 상공에서 강풍에 흔들리는 트레이 맛을 보면 아마 눈물이 찔끔 나올 것이다.
조상필은 낄낄대며 트레이를 설치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여기 타면 됩니까?”
“그래.”
강진호는 건물 옥상에 매달려 있는 커다란 바구니 같은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해?”
“아닙니다.”
강진호가 훌쩍 트레이 안으로 들어갔다. 가슴팍까지가 모두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옆으로 좀 가봐.”
“예.”
강진호가 옆으로 붙자 조상필도 조심스레 몸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안전 고리 연결하고.”
가르쳐 주는 대로 안전 고리를 연결하자 조상필이 안전 고리가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을 하고는 안전모를 내밀었다.
“자.”
강진호는 두말없이 안전모를 머리에 썼다.
“이건 아까 탔던 거랑은 달라서 많이 흔들린다. 당황하지 말고 꽉 잡기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럼 내려주십시오.”
“알았다.”
와이어와 물 호수까지 모두 점검을 마치자 트레이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오전에 탔던 거대 트레이와는 다르게 2인승 트레이는 그저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크게 흔들렸다.
“쫄지 마.”
“예?”
“겁먹지 말라고.”
“예.”
강진호가 가볍게 대답을 하자 조상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니, 이 새끼는 진짜 겁대가리를 어디다 팔아먹었나?’
이 정도까지 됐으면 겁먹는 시늉이라도 해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어쭈? 이제 아주 편안하다는 듯이 등까지 기대고 있네? 저 등 뒤가 200m 상공이라는 걸 알고 저러는 건가?
“이 위에 서본 느낌이 어때?”
“음, 생각보다…….”
“생각보다?”
“시원하네요.”
“…….”
조상필은 강진호라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인간의 분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선천적 겁대가리 상실증에 걸려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청소나 하자.”
“예.”
물뿌리개로 물을 뿌리고 세제를 칠한 다음, 묵은 때를 닦아낸다. 시커멓던 유리가 한 번 닦아내고 나면 ‘나는 원래 이런 색이었다’고 항변하듯이 투명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엄청 더러웠네요.”
“외벽이라는 게 언제든 청소하고 싶다고 청소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스케줄도 맞아야 하고, 요즘은 이런 거 하겠다는 업체도 많이 없어. 덕분에 단가가 올라가서 우리는 편하지만.”
“그렇군요.”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회는 이런 이들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건물 유리창을 닦고 있으려니 안쪽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잉!
그 순간, 돌풍이 불자 위아래 와이어로 단단히 고정해 놓은 트레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숙여!”
“예.”
강진호가 조상필의 말에 따라 몸을 숙였다. 트레이는 한참 동안 흔들리다가 다시 잠잠해졌다.
“엄청 흔들리네요.”
“야, 이건 별것도 아냐. 너도 나중에 길 가면서 잘 봐라. 고층 빌딩에 로프 하나로 몸 묶고 일하는 사람들 있을 거다. 그건 바람 불면 십 미터씩 빌딩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붙고 그래.”
“음…….”
“우리뿐만 아니라 아파트 외벽 페인트칠하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일해.”
강진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그 많은 아파트에 페인트를 칠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던 부분 하나하나까지 사람들의 노력이 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확실히 생각할 만한 점이었다.
덜컹!
그때, 트레이가 다시 덜컹대기 시작했다.
“에이, 오늘따라…… 잠깐만? 바람 안 부는데 이거 왜 덜컹거리지?”
조상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와이어들을 하나하나 흔들기 시작했다.
“어?”
트레이의 우측을 지탱하던 와이어 하나가 다른 와이어들만큼 팽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낸 조상필이 무전기를 들었다.
“정현이 형, 여기 와이어가 느슨해요. 위에서 좀 당겨줘야 할 것 같아요.”
취익― 소리와 함께 무전이 넘어갔음에도 무전기에서는 답변이 오지 않았다.
“아, 씨! 내가 무전 대기 하라고 그만큼 이야기를 했는데.”
조상필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트레이에 타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트레이를 내리고 올리는 것이야 이쪽에서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정비 같은 것들은 위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더라도 반드시 무전기는 지참하고 가는 것이 이쪽의 룰인데, 무전기를 놓고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여하튼 저 형은 이게 문제라니까.”
조상필이 툴툴대더니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건 조상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이고 액정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상하네? 왜 전화 안 받지?”
무전 대기야 안 할 수도 있지만 보통 전화기는 손에서 잘 떼지 않는 법인데, 전화까지 되지 않고 있었다.
“이 양반이 진짜 왜 이러지? 아, 이거 와이어…….”
덜컹!
그 순간, 트레이가 크게 요동을 쳤다.
“뭐, 뭐야!”
기겁을 하며 손잡이를 꽉 움켜잡은 조상필의 눈에 허공에서 뭔가 기다란 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이, 이 씨발!”
네 구석에 연결되어 트레이를 지탱하고 있는 와이어 중 하나가 지금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끄, 끊어졌나?”
조상필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강진호의 어깨를 꽉 눌렀다.
“진정해. 별일 아냐.”
“예.”
강진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위를 바라보았다.
“와, 와이어가 끊어진 것 같은데, 점검을 아무리 해도 이런 일이 한 번씩은 벌어지는 거야. 남은 세 곳이 멀쩡하니까 위로 올라가서 와이어 교체하고 다시 돌아오면 돼. 그러니까 쫄지 마.”
“예.”
조상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은 쉽게 했지만, 그도 작업 중에 와이어가 끊어진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명과 직결된 일이기에 최대 하중에 맞춰서 와이어를 쓰는 게 아니라 톤 단위가 넘어가는 하중을 버티는 와이어로 트레이를 고정한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지금까지는 와이어가 끊어진 적이 없던 것이다.
‘몇 번 들었잖아.’
작업을 하면서 와이어가 끊어졌다는 경험담은 몇 번이나 들었다.
조상필이 낮게 심호흡을 하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정현이 형! 정현이 형! 거기 있어요? 지금 이쪽에 와이어가 끊어졌는데…… 이대로 위로 올려도 되나, 아니면 대기 해야 되나?”
무전기에서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아, 씨발! 어디 갔냐고! 사람 짜증나게!”
트레이의 선이 하나 끊어졌다는 것을 알았는지, 건물 내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구경났나, 씨발.”
걱정되는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조상필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 씨발! 어디 갔냐고?”
조상필이 고개를 들어 옥상을 바라보았다.
“어?”
그런 후, 곧 조상필의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누군가가 옥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 정현이 형이 아니었다.
“누, 누구?”
덜컹!
그 순간, 또 하나의 줄이 끊어지며 트레이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