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40
#1839.
공격받다 (4)
서걱! 서걱! 서걱!
내뻗은 팔에 순식간에 십여 개의 자상이 생긴다.
응축된 근육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한 피가 주사기로 짜낸 것처럼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바토르가 이를 악물며 벼락 같은 연격을 날렸다.
그 커다란 덩치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영활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 연격을 받아내는 백연홍의 눈에는 그 빠른 권격조차 느려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의 몸이 마치 바람을 맞는 버드나무처럼 슬쩍슬쩍 뒤로 밀려난다. 그때마다 바토르의 권이 그의 몸 조금 앞에서 멈추기를 반복했다.
마치 미리 합을 맞춘 대련을 펼치는 것 같아 보일 정도지만, 이건 결코 대련 같은 게 아니었다. 백연홍의 바토르의 권이 멈출 곳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완벽한 방어를 해내고 있기에 마치 연극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익!”
바토르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와 동시에 그에게서는 웬만해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허망함의 기색도 엿보였다.
‘이렇게나 멀다고?’
삼왕급.
그 말이 가지는 의미를 딱히 실감하지 못했다. 그는 홍왕에게 도전하던 이고, 강진호와 대련을 해오던 사이였으니까.
격차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노력과 근성이면 언젠가는 그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백연홍을 앞에 둔 순간, 바토르는 지금껏 자신이 생각해 오던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뼈저리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있는 내력을 모두 실어 날린 권력이 백연홍의 손짓 한 번에 밀려난다.
달려들어 순간적으로 일백 번에 가까운 권격을 폭포처럼 쏟아냈지만, 그 권 중 어느 하나도 백연홍의 옷자락조차 닿지 못했다.
그 아연하기까지 한 격차가 바토르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반면, 그를 상대하는 백연홍에게서는 여유가 넘쳐 났다.
“흐음.”
백연홍이 느릿하게 몸을 젖히며 말한다.
“아무리 강해봐야 닿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의 검이 날아드는 바토르의 손목을 여지없이 베어낸다.
서걱!
강철보다 더한 경도를 가진 바토르의 육체가 장난감 같은 백연홍의 검에 여지없이 베어진다. 웬만한 이의 허벅지보다 더 굵은 바토르의 손목이 뼈가 보일 정도까지 깊게 베인다.
가가가각!
검끝이 바토르의 뼈와 부딪치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끄윽.”
그 고통만은 바토르도 어찌할 수 없었는지, 그의 입에서 드문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가진 이점이 뭔지도 모르고 곰처럼 공격해 댄다? 아직 살아 있는 게 용하군.”
“닥쳐라!”
“이런이런, 듣기 싫은 모양이군. 그럼…….”
백연홍이 비틀린 미소를 입에 담는다.
“내가 말을 하지 않기는 어려우니, 네 귀를 파내 버리는 쪽으로 하지.”
검의 기세가 일변한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전념하던 백연홍의 검이 일순 공세로 전환되더니, 빛살 같은 검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파아아앗!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더없이 날카로운 검기가 바토르의 육체 곳곳을 꿰뚫고 들어온다.
카가가각!
그건 ‘벤다’기보다는 ‘파낸다’ 쪽에 가까웠다.
검기를 실은 검이 바토르의 육체에 작은 구멍을 뚫어낸다. 육체가 워낙 커서 작아 보일 뿐, 그 구멍 하나하나가 어린아이의 주먹만큼이나 커다랗다.
울컥!
뚫린 구멍으로 피가 꿀렁꿀렁 토해져 나온다. 피를 너무 흘렸는지, 바토르의 안색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다.
“흐아아아앗!”
바토르가 전신으로 기운을 뿜어낸다.
직선적인 공격으로 상대를 잡을 수 없다면, 상대가 존재하는 공간 전체를 덮어버리겠다는 발상이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혈기가 마치 거대한 헤일처럼 일어나 백연홍을 덮쳐 갔다.
하지만 그 순간.
스르륵.
백연홍의 검이 느릿하게, 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게 회전하여 하늘을 겨누었다.
그러고는 마치 나무꾼이 장작을 패듯, 위에서 아래로 선명하게 내리그어졌다.
촤아아아아아악!
파도가 갈라진다.
아니, 바다가 갈라진다.
막는 것은 무엇이든 뒤덮어 휩쓸어 버릴 듯 과격하게 달려들던 파도가 백연홍의 몸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듯 깔끔하게 양단당한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한 검기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바토르에게 달려들어 그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바토르의 가슴을 파고든 검기가 그의 육체를 갈라낸다. 신이 내린 육신마저도 검의 극의에 오른 이가 날린 검기를 버텨내지는 못했다.
그의 왼쪽 목부터 오른쪽 다리까지 기다란 자상이 생겨나더니, 상처가 쩌억 벌어졌다.
“쿨럭…….”
절로 열린 바토르의 입에서 선지피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육체의 상처보다 바토르에게 더 큰 대미지를 입힌 것은 바로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이었다.
통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상대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게 너무도 분명함에도 바토르는 그에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없었고, 그의 공격을 막아낼 수도 없었다.
압도적인 격차.
대체 어떻게 좁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너무도 압도적인 격차였다.
“묘한 표정이군.”
백연혼이 검을 내리며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용기인 줄 알았더니, 만용이었나? 설마 정말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
“이상하군. 아무리 그래도 개는 아니라 곰은 될 텐데. 본능적으로 상대와의 격차를 느껴야 하…….”
말끝을 흐린 백연홍이 고개를 들어 총회의 건물 쪽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담배를 입에 물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알겠군.”
백연홍이 빙긋 웃었다.
“격차를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바로 옆에 언제나 저자가 있었을 테니까. 익숙해진 거로군. 한데…….”
백연홍이 고개를 갸웃하며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상식적으로는 바로 옆에 있는 이와의 격차를 좀 더 많이 실감해야 할 텐데 말이야. 적천마존이 대체 너를 얼마나 예뻐했기에 주제도 모르고 날뛰게 된 거지?”
“……닥쳐.”
“너에게는 이곳이 너무 안락한 곳이었군.”
“닥치라고 했다!”
바토르가 이를 부러질 듯 갈아댔다.
“알려주지.”
백연홍의 검이 바토르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제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는 짐승은 온몸이 찢겨 죽는 법이지.”
그의 발이 바닥을 박찼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모습을 본 바토르가 가슴을 움켜잡고 있던 손으로 백연홍을 후려쳤다.
하나 그 순간, 백연홍의 검이 슬쩍 움직여 날아드는 바토르의 손에 가닿았다.
그와 동시에…….
빙글!
바토르의 거대한 동체가 마치 장난감처럼 허공으로 튀어 오르더니, 이내 가공할 속도로 아래로 내려박혔다.
콰아아아아앙!
바토르의 허리가 새우처럼 꺾였다.
“알고 있으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백연홍이 자신의 발아래 쓰러진 바토르를 보며 비웃음을 짓는다.
“알아도 막지 못하는 것을 강함이라고 하지. 나약한 자여, 다음 생에는 착각하지 마라.”
그의 검이 빛살처럼 날아들어 바토르의 심장을 내찔렀다.
하나 그 순간.
화르르르륵!
바토르와 백연홍의 사이에서 거대한 화염이 피어오른다. 순간 당황한 백연홍이 바토르를 찌르려던 검을 회수하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콰르르르르르르!
유전이라도 터진 듯 소용돌이치는 화염의 폭풍이 백연홍을 뒤로, 또 뒤로 밀어낸다.
“……이건 신기하군.”
백연홍이 흥미롭다는 듯 화염을 바라보았다.
위력 자체는 딱히 그가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화염이 피어오르기 직전까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는 게 신기하다.
“그렇군. 이게 마법이라는 거로군. 이만한 걸 직접 겪어본 건 처음이라.”
백연홍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닿은 이는 당연히 위긴스였다.
그가 양손을 천천히 내리며 말했다.
“승부에 끼어든 건 동양의 미학에 어긋나는 일입니까?”
“미학 같은 건 예전에 버렸지.”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바토르를 한 번 바라본 백연홍이 미련이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딱히 반드시 지금 죽여야 할 만큼 대단하지도 않고.”
“…….”
위긴스는 바토르가 지금 이 말을 듣지 못했길 바랐다. 이건 바토르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굴욕적인 말이다.
“몇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이니까.”
백연홍이 쿡쿡대며 웃었다.
“좋지. 물어봐. 나름 재미가 있었으니, 그 보답이라고 하지.”
“……당신은 귀환자입니까?”
“그렇다.”
백연홍이 생각 이상으로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과거 당신의 신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흐음.”
백연홍이 뭔가 고민하는 듯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왜요?”
“흐음.”
“어휴, 거 직접 말하시면 되지! 뭐 그걸 남한테.”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곽소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백연홍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께서는 과거 중원에서 태극검공이라 불리던 분이오! 당대의 천하제일인이시자, 무당 검학의 끝을 보았다 전해지는 분이시지!”
“공치사는 빼고 하자꾸나.”
곽소가 어이가 없다는 듯 돌아보자, 백연홍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태극검공이라…….”
위긴스의 시선이 장민에게로 향했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로군. 무당 유공(柔功)을 완성했다 불리는 절세의 검수.”
위긴스는 그 이름에서 딱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장민에게는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유명합니까?”
“강호사는 길지.”
장민이 씹어뱉듯 말했다.
“중화의 역사에 이름을 날린 장수들을 뽑자면 그 끝이 없는 것처럼, 강호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그 수가 적지 않다. 하지만 태극검공이라는 이름은 분명 그중에서도 특출나지. 무당 검학을 완성한 자. 검으로 따진다면 강호사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평해진다.”
백연홍이 혀를 찼다.
“한 손가락이라고 해주게. 그런 어중이떠중이들과 같은 취급을 하면 내가 섭섭하지.”
위긴스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몇 개 더 물어도 괜찮네.”
“그럼…….”
위긴스가 순간 고민에 빠졌다.
이 사실은 반드시 물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 이걸 물어도 되는 걸까? 차라리 듣지 않는 쪽이 낫지 않을까?
“……당신은 흑왕을 모시는 자입니까?”
“당연한 걸 묻는군.”
“그렇다면…… 흑왕의 아래에 당신 같은 사람이 몇이나 더 있습니까?”
백연홍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나 같은 자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군. 나는 특별하지. 그런 놈들과 나를 같은 취급할 수는 없어.”
“…….”
“하지만 원하는 대답이 그게 아닌 것 같으니, 으음…….”
백연홍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해주지. 흑왕을 모시는 이들에게는 딱히 명칭이 없네. 하지만 우리끼리는 서로 편하게 십이비(十二匕)라는 호칭을 쓰고 있지. 그 하나하나가 한 시대를 지배했던 자들이다.”
위긴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그럼…….”
“그래.”
백연홍의 입가에 더없이 잔혹한 미소가 맺힌다.
“흑왕을 모시는 이의 수는 모두 열둘이다. 왜 내가 이곳까지 온 것이 한낱 유흥에 지나지 않는지 잘 알겠지?”
세상이 싸늘하게 식어간다.
‘열둘……?’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숫자.
평소에는 단 한 번도 많다고 느껴본 적 없는, 열둘이라는 숫자가 지금 위긴스의 영혼을 차갑게 짓밟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 앞에 위긴스의 몸에서 힘이 풀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