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41
#1840.
공격받다 (5)
“……열둘이라고?”
“그렇다.”
“…….”
위긴스는 스스로를 달변가라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만큼은 도무지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처음 떠올린 생각은 백연홍의 말이 거짓일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자가 굳이 자신들에게 거짓을 논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가 굳이 스스로를 포장할 필요가 있겠는가.
더구나…….
‘저자는 다른 이들이 자신과 같은 급으로 엮이는 것에 불만이 있다.’
그런 이가 자신과 동급이라 불리는 이들의 수를 부풀릴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정말 열둘이나 된다는 건가?’
삼왕급이?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런 위긴스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옆에서 들려온 장민의 담담한 목소리였다.
“열둘이라…….”
장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많군.”
삼왕급이 열둘이나 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장민은 딱히 동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그중의 하나는 확실하게 줄여둬야겠군.”
장민의 말에 백연홍이 큭큭대며 웃어젖혔다.
“늙은 마두가 노망이 난 모양이로군.”
그의 눈에서 새파란 광망이 흘러나왔다.
“감히 내 앞에서 그딴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니!”
위긴스와 바토르를 상대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기세였다.
“끌끌끌, 마두라…….”
장민이 낮게 웃어젖혔다.
“오랜만에 듣는 말이로군.”
장민의 눈에서 시뻘건 광망이 쏟아져 나왔다.
딱히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공을 익힌 이가 마공을 익힌 이를 증오하고, 마공을 익힌 이가 정공을 익힌 이를 증오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니까. 그 모두가 어우러져 살고 있는 이 총회가 이상한 것이다.
“그 주둥아리가 뭉개지고도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알고 싶군.”
“하하하핫!”
백연홍이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마두 놈에게 이런 도발을 받아보는 게 얼마 만이던가.”
백연홍의 두 눈에 살기가 어렸다. 마음속에 살심이 동한다는 듯 그가 연신 입술을 혀로 핥았다.
살기 어린 눈으로 장민을 노려보던 백연홍의 표정이 일변하더니,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마교의 후예였지?”
“…….”
“마교라…… 그래.”
백연홍이 재미있다는 듯 장민을 바라보았다.
“내 때는 아직 마교 놈들의 기세가 지금과 같지 않은 때였지.”
“…….”
“이봐, 노마두.”
백연홍의 얼굴에 흰 웃음이 피어났다.
“내 시대에 가장 많은 마두들의 목을 벤 이가 누구인 것 같으냐?”
으드드득.
장민이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그에 대한 도발은 참아 넘길 수 있었지만, 교에 대한 도발은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장민이 얼마나 많은 교도들의 죽음을 보았겠는가. 그 융성했던 마교가 나락으로 처박혀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가는 모습을 그 두 눈으로 목격했던 장민이다.
당연히 교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흥분할 수밖에.
“잘도 지껄여 대는군.”
“좋은 세상이야.”
백연홍이 뜻 모를 말을 해 댔다. 하지만 이내 모두가 그가 하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 같은 마두가 감히 내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야. 과거의 나는 비명을 지르는 마두와 살려달라고 비는 마두, 그리고 목이 잘려 있는 마두밖에는 보지 못했는데.”
“이…….”
“세상 흉악한 것처럼 굴던 마두 놈들이 계집아이처럼 비명을 질러 대는 꼴은 정말 재미있었지.”
꽉 움켜쥔 장민의 손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백연홍은 되레 더 크게 웃을 뿐이었다.
“왜? 너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나?”
“…….”
“너도 똑같은 비명을 지르게 해주마.”
장민이 헛웃음을 흘렸다.
기이한 일이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장민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기이한 일이었다.
저들은 항상 저런 식이다.
도를 숭상하고 활인을 추구한다는 이들이 마인들을 상대로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잔인해진다.
심지어 저건 위선조차 아니다.
저들에게 있어서 마인이란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하는 암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설사 그 마인이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의 눈에 죄를 짓지 않은 마인은 그저 아직 죄를 짓지 않은 것에 불과할 뿐, 언젠가는 반드시 죄악을 저지를 이들이니까.
그 인식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나는 통하는군.”
“음?”
“안 그래도 네놈의 입에서 어떤 비명이 나올까 궁금하던 차였으니까.”
상대에 대한 증오를 버릴 수 없는 것은 장민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장민과 백연홍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글거리며 불타오르는 장민의 눈과 가라앉은 살기를 내뿜는 백연홍의 눈이 허공에서 서로 충돌한다.
이윽고…….
파아아앗!
먼저 뛰어든 것은 장민이었다.
장민이 짐승의 발톱과도 같은 길고 거친 조강(爪剛)을 1미터도 넘게 뽑아냈다. 마치 피로 조각한 것처럼 섬뜩하기 짝이 없는 색의 조강이 대기를 찢어 발겼다.
백발을 깔끔하게 넘긴 노인이 양손에 조강을 뿜어내며 혈기와 함께 돌진하는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섬뜩함을 전해주었다.
“웃!”
그 속도가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었는지, 백연홍의 입에서 경호성이 흘러나왔다.
카아아아아아앙!
장민의 조강이 백연홍의 얼굴을 찢어낼 듯 날아들었다. 백연홍이 검을 들어 그런 장민의 조강을 막아낸다.
가가가각!
검과 조가 서로 얽혀든다.
“흐음?”
가가가가각!
조가 조여지며 백연홍의 검을 내리눌렀다.
검과 조가 맞물린 곳 너머로 장민의 얼굴을 본 백연홍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장민의 얼굴에서 득의함이 느껴졌다.
“앞의 멍청이와는 다르다는 건가?”
밀어내려 하지 않는다.
저 조는 백연홍의 검을 옭아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괜한 힘을 주어 상대가 이화접목의 묘리를 활용하게 해주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당기겠다는 생각이다.
‘나이를 괜히 먹은 건 아니로군.’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저 덩치와 이자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밖에 모르는, 저 바토르란 자에 비하면, 이자는 백전의 노장. 상대의 성향에 맞춰서 자신의 방식을 바꿀 줄 아는 자였다.
물론 타고난 것의 차이도 있겠지만 말이다.
‘재미있군.’
백연홍이 입가를 뒤틀었다.
이럴 때면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자신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았을 때.
자신의 위에 설 수 있다는 무모한 만용을 보았을 때.
그 자신감을 짓밟아 상대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보다 살아 있음을 느낄 때가 없다.
“너무 자신만만한 것 같은데.”
백연홍이 가볍게 검을 뒤틀었다.
장민은 한순간에도 기운의 방향을 수십 번 바꾸며 백연홍의 반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백연홍의 수는 그 위에 있었다.
사량발천근(四兩拨千斤).
상대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면 단 한 줌의 힘으로도 천 근의 힘을 낼 수 있는 법. 장민의 몸이 중력이 없는 것처럼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큭!”
하나 장민은 장민.
세상이 뒤집히고 기운이 엉망진창으로 휘도는 와중에서도 그는 자신을 놓지 않았다.
가아아아아악!
장민의 조가 대기를 찢어발긴다.
불어오는 삭풍처럼 과격하게 휘둘러지는 조의 잔영들이 허공을 뒤덮으며 백연홍을 향해 쏟아진다. 그 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만 해도 전신이 믹서에 갈린 듯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백연홍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조강의 폭풍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대단하군.’
과거, 그가 상대한 마두들 중에서 이만한 힘을 보여준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무학이 약해진 시대에 이만한 이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나…….
“그래 봐야 마공. 거칠기 짝이 없군.”
백연홍의 검이 소용돌이치는 조강의 폭풍 속 한가운데를 찔러 들어갔다.
마치 그물처럼 얽혀 있는 조강이건만, 백연홍의 검은 허공을 찌르듯 그 그물의 틈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갔다.
자신이 펼쳐 낸 조강 속에서 뭉툭한 검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본 장민은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큭!”
하지만 그 놀람을 채 느끼기도 전에 장민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었다.
서걱!
백연홍의 검이 장민의 옆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검의 날이 닿지 않았음에도 그의 목 피부가 쭈욱 갈라진다.
“흐아아압!”
장민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아래로 장력을 내뿜었다. 허공에 얽혀 있던 조강들이 그 장력의 기세를 더해 백현홍을 향해 비처럼 쏟아진다.
“흐음.”
백연홍이 들어 올린 검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쏟아지던 조강들이 마치 원래 그러려던 것처럼 방향을 뒤틀어 백연홍의 몸을 비껴 나간다.
마치 마법처럼.
단단한 강철이라도 두부처럼 갈라 버릴 예기를 품은 조강들이지만, 닿지 않는다면 베어낼 수 없는 법. 무수히 쏟아진 조강들 중 백연홍의 몸에 닿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그 옷자락조차 베어내지 못했다.
여유롭다 못해 게을러 보이기까지 하는 검짓으로 장민의 공격을 모조리 흘려낸 백연홍이 검을 회수하고는 뒷짐을 지었다.
탁.
그런 후, 바닥에 내려선 장민은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백연홍을 바라보았다.
그건 어찌 말하자면 경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강자는 이미 충분히 겪어봤다.
그는 마존을 모시는 자이며, 창왕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았고, 홍왕의 힘도 전신으로 실감했다.
하나…….
그중 어떤 이도 그에게 이와 같은 이질감을 주지는 못했다.
고고하다.
백연홍의 검이 이룩한 경지는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무학을 완전히 부수어놓았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상대의 힘을 이용한다.
그건 무학의 진리와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진리라는 것은 실현할 수 없기에 진리인 법이 아니던가.
속도와 파괴력을 지상과제라 여기며 살아온 그에게 있어 백연홍의 검은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뭐가 그리 놀라운가.”
백연홍이 빙긋 웃는다.
“무학이란 단순히 힘의 향연이 아니지. 무학이란 애초에 더 약한 이가 더 강한 이를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용력을 타고난 이들이 더 강해지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용력으로는 적을 이겨낼 수 없던 이들이 이길 방법을 찾아낸 것이지.”
“…….”
“그러니 본디 무학이란 더 강하고, 더 빠른 것을 상대하는 법이라는 의미네. 그러니 너희의 무학…… 과연 그걸 무학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희의 무학은 본질에서 벗어난 게지.”
백연홍의 눈이 차게 빛났다.
“알겠는가? 그렇기에 마도(魔道)라 불리는 것일세.”
백연홍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장민에게 다가갔다.
“그럼 어디…….”
“…….”
“그 몸으로 확실하게 알아두고 죽는 게 좋을 걸세. 왜 그대들의 길이 잘못되었는지 말일세.”
백연홍의 얼굴에 살심이 피어올랐다.
그의 검이 허공에 부드러운 반원을 그리고는 물결치듯 그 반원을 갈라낸다.
모든 것은 음과 양이 나뉘어 태극을 이루며 시작하는 법.
허공에 완연한 태극을 그려낸 백연홍의 검에서 더없이 도도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