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45
#1844.
응전하다 (4)
“실드!”
검이 빛을 발함과 동시에 위긴스의 전면에 수십 겹의 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기이이이잉!
검기가 막과 충돌하는 순간, 막이 이지러지고 뒤틀렸다.
‘포격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력을…….’
그걸 수십 겹이나 겹쳐 냈음에도 백연홍의 검은 너무도 간단하게 그의 방어막을 꿰뚫고 들어왔다.
서걱!
어깻죽지가 검에 갈리고…….
서걱!
옆구리가 찢겨 나간다.
위긴스가 백연홍이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을 공략한다면, 백연홍의 무위는 언제나 위긴스의 계산을 상회했다.
‘빌어먹을!’
계산이 틀렸다고?
이 이상 어떻게 상대를 고평가하란 말인가.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상대의 공격이 주는 정신적 충격이 더 크다. 물 흐르듯 부드럽게 흐르던 검이 이제는 성난 바람처럼 쾌속하게 그를 덮쳐 오고 있었다.
기이이잉! 카앙!
실드가 이지러지다 못해 찢겨져 나간다.
‘블링크!’
위긴스의 몸이 그 자리에서 퍽, 꺼지더니, 원래 있던 곳에서 십여 미터 옆쪽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동한 그가 본 것은 저 멀리서 남겨진 실드를 찢어내고 있는 백연홍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 바로 앞까지 날아든 백연홍의 검이었다.
위긴스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파아아앗!
날카로운 검이 귀의 살점을 뜯어낸다.
욱씬하게 밀려오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위긴스가 블링크를 연이어 시전하여 백연홍의 거리에서 벗어났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이 토해져 나온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거기에 연이어 블링크를 시전하다 보니 몸 안의 마나가 모조리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다.
정신의 충격은 몸을 뒤트는 법.
땀으로 흠뻑 젖은 그의 육체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잔재주라는 건…….”
백연홍의 검을 내린 채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한 번 파악만 하면 대처가 되기 때문에 잔재주라 하는 거지. 두 번은 당하지 않을 수작을 반복한다고 해서 네가 강해지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충고 고맙군요.”
아득하다.
온갖 수를 다 썼음에도 저 백연홍이 오른 경지를 어찌해 볼 수가 없다. 그가 적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경탄하고 존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백연홍은 그의 적이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상대였다.
“후욱.”
얼굴에서 완전히 여유가 사라진 위긴스가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남은 마나는?’
절반 정도.
한 사람을 상대하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의 마력을 충전해 뒀다고 생각했건만, 연이어 마력 소모가 큰 마법을 퍼붓 듯이 사용하다 보니 마력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남은 마력으로 가능할까?’
위긴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또 나쁜 버릇이.’
계산하고 또 계산한다.
백연홍의 말대로 그는 계산이 너무 빠르고, 생각이 너무 많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게 위긴스의 장점이 되지만, 전투에 돌입한 순간부터는 그의 발목을 잡는 단점이 된다.
자신의 길을 버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상대에게서 배우는 것이 없다면 언제나 제자리일 뿐이다.
‘머리를 비워.’
그리고 육체와 감각에 자신을 맡긴다.
“어디! 이것도 한 번 받아보십시오!”
바닥을 박찬 위긴스가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백연홍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일반적인 무학의 상식으로는 상대의 자세가 무너지지 않았을 때, 저렇게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경지에 오른 이들이 허공에서도 몸을 수발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을 때보다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아는 무학의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자.
상대를 무시하는 것과 상대와의 격차를 확신하는 것은 다르다.
그의 검이 천천히 중앙을 겨누었다.
중단세.
모든 검의 시작점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
검을 익히는 자라면 수천수만 번을 보게 되는 자세이지만, 백연홍의 중단세는 지금까지 보던 중단세와는 뭔가 달랐다.
그저 양다리를 조금 벌리고 검을 가운데로 겨눈 것뿐이건만, 그 자세 하나만으로도 태산 같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우오오!”
위긴스의 입에서 거대한 고함성이 터져 나왔다.
평소와 다른 열기가 그에게서 느껴진다.
우우우우우웅!
그의 검이 미친 듯 떨리며 위긴스의 마나와 공명한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검에서 지금까지 뿜어져 나오던 빛과는 다른 새하얀 연기처럼 보이는 기운들이 사방으로 뻗쳐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에 쩌적쩌적, 금이 가는 것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그런 후…….
채애애애애앵!
거대한 유리가 깨지는 것과 같은 굉음과 함께 찢겨진 하늘에서 거대한 눈보라가 몰아치더니, 한눈에도 날카롭기 짝이 없어 보이는 얼음의 창들이 폭우처럼 백연홍을 향해 쏟아졌다.
맑은 하늘 아래 먹구름이 피어나고, 그곳에서 얼음의 창이 쏟아지는 광경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형용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느낌을 받든, 그 얼음의 창들을 상대해야 하는 백연홍만큼 당황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완벽한 중단세를 유지하고 있던 백연홍의 눈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별…….”
하나 그도 잠시.
이내 평정을 되찾은 백연홍의 검이 허공에 부드러운 원을 그려낸다.
빙글, 빙글.
마치 하늘이라는 거대한 솥을 휘젓는 것처럼 그의 검이 원을 그리고 또 그려낸다.
처음에는 하나로 뭉쳐 있던 회색의 탁한 기운들이 원이 이어지고 이어질수록 백과 흑으로 나뉘어 커다란 태극의 문양을 만들어냈다.
콰아아아아아!
쏟아지는 얼음의 창들이 태극의 방패에 부딪친다.
카카가강!
튕겨 나가 잘게 부서진 얼음 조각들이 그 기세를 잃지 않고, 다시금 내리꽂힌다.
아래에 있는 무엇이든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듯, 뿜어져 나오는 한기로 무엇이든 얼려 버리겠다는 듯.
쏟아지는 한기가 태극의 방패를 꿰뚫고 백연홍에게 쏟아진다. 검끝이 새하얗게 얼어붙고, 검을 들고 있는 백연홍의 손에도 하얀 서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연홍의 두 눈만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진짜 공격은 얼음이 아니라 이 한기로군.’
살을 찢어내고 뼈를 얼릴 것 같은 한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백연홍의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원을 그려냈다.
원이란 곧 근원.
세상의 모든 것은 태극에서 발현하는 법.
우직하게 그려낸 원이 천천히 쏟아지는 얼음의 창을 좌우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방패에 부딪쳐 깨어지던 얼음의 폭우가 천천히 뒤틀리고 휘어지더니, 이내 방패에 닿지 못한 채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하지만 위긴스는 그 광경을 보고도 있는 마력을 모두 짜내 얼음을 더욱 쏟아냈다.
일견 무모한 짓.
의미 없어 보이는 발악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보이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휘이이이이잉!
바닥에 처박힌 얼음의 창이 부서지며 주변을 휩쓸어 댄다. 얼음의 파편이 말 그대로 눈보라가 되어 백연홍의 육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백연홍의 다리가 얼어붙는다.
그의 바지 자락이 순식간에 서리로 뒤덮이더니, 유리처럼 깨져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음…….”
백연홍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놈이?’
그의 검은 쏟아지는 얼음의 창을 막아내고 있다. 여기에서 손을 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말인즉…….
‘처음부터 이 구도를 그렸다는 건가?’
전투의 와중에?
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를 눈으로 보고 그의 무공이 가진 특징과 그가 무공을 사용하는 경향을 모두 계산하여 단번에 가장 체계적인 공격법을 찾아냈다는 의미다.
‘귀신같군.’
힘으로 맞상대하는 자는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지속적으로 노려오는 이를 상대하는 건, 천하의 그조차도 신음하게 만들었다.
“아쉽군.”
우우우웅.
그의 육체에 내력이 휘돌기 시작한다.
더없이 맑고 웅혼한 기운이 전신을 휘돌며 몸 안으로 파고드는 한기를 밀어낸다.
“위력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나도 낭패를 보았을 텐데.”
그의 태극청현신공(太極淸賢神功)은 도가문인 무당이 천하에 자랑하던 신기.
겨우 이런 한기를 버텨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몸이 굳고 이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상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흐아아아아아압!”
위긴스의 입에서 이제껏 단 한 번도 없던 거대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손에 잡혀 있는 검에서 어마어마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남은 마력을 모조리 검 안으로 밀어 넣은 위긴스의 두 눈이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죽어라아아아앗!”
허리를 부러질 듯 뒤튼 위긴스가 몸을 되튕기는 반동을 있는 대로 담아 검을 던져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남은 마력을 모조리 실은 검이 가공할 속도로 백연홍을 향해 날아갔다. 그 기세에 주변 공기가 찢기고, 세상을 채우고 있는 기운들이 으스러져 비명을 질러 댄다.
‘멍청한!’
백연홍이 눈을 찌푸렸다.
확실히 저 일격은 더없이 강하다. 하지만 저런 직선적인 공격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다. 상대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가 이용할 수 있는 기운도 더 많아진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되튕겨 죽여주마!’
원을 그리던 백연홍의 검이 조금 더 빨라진다.
단전에서 솟구쳐 오른 내력을 모조리 검끝에 밀어 넣은 백연홍이 날아드는 검을 밀쳐 내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아니!’
백연홍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까지 천천히 그를 몰아쳐 오던 저자가 이 순간 갑자기 이성을 잃고 이런 빤한 공격을 할 리가 없다.
분명 뭔가 더…….
콰아아아아아아아!
그때, 날아들던 검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그 속도를 높이더니, 태극의 방패를 향해 내리꽂혔다.
순간적인 그 변화에 백연홍이 자신도 모르게 방패에 내력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백연홍은 보았다.
그가 만들어낸 방패.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고, 그 무엇이라도 튕겨낼 수 있는 무적의 방패, 그 바로 앞에 검은 원형의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을 말이다.
날아드는 검이 방패가 아니라, 방패 앞에 생겨난 검은 무언가로 파고든다. 그게 무엇인가를 짐작한 순간은 방패 앞에 생겨난 것과 똑같은 검은 원이 그의 심장 바로 앞에 생겨난 순간이었다.
검은 원 안에서 앞쪽에서 빨려 들어간 검끝이 환상처럼 튀어나온다.
‘뭣!’
공간을 전이해 방패를 뛰어넘은 위긴스의 검이 그 가공할 기세 그대로 백연홍의 육체를 꿰뚫어 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검이 폭풍을 일으키며 백연홍의 육체를 집어삼킨다.
횡으로 생겨난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육체를 휘감고 찢으며 성난 용처럼 돌진한다.
그 굉음은 비명도, 탄성도, 희열에 찬 외침조차도 묻어버렸다.
쿠우우우우웅!
미쳐 날뛰는 소용돌이가 총회의 연무장을 두르고 있는 커다란 담벼락을 모조리 부수며 산등성이에 틀어박혔다.
쿵!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남지 않았다는 듯, 추락하는 연처럼 바닥에 처박힌 위긴스가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내 주먹을 움켜잡았다.
마침내 그의 검이 백연홍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