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58
#1857.
시도하다 (2)
“엘더 나이트를 기억하나?”
“……기억 못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스터? 제가 그사이 치매가 오지 않은 이상엔 말입니다.”
마스터가 낮게 웃었다.
“내가 말실수를 했군. 그래, 그 엘더 나이트 말이지.”
마스터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들의 강함은…….”
“잠시만요, 마스터.”
마스터가 입을 더 열기도 전에 위긴스가 말을 잘랐다.
“엘더 나이트급으로 강해질 방법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음?”
“열이 모여도 로드 하나를 당하지 못한 이들입니다. 지금의 저라면 그중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둘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마스터의 눈이 가늘어졌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너무 과한 게 아닌가?”
“마스터께서 다른 것에 신경 쓰시는 동안 제가 놀고만 있던 게 아닙니다. 지금은 마스터도 저를 당해내실 수 없습니다.”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스터는 그 말에 딱히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아는 위긴스는 허세를 부리는 이가 아니니까.
더구나 추락할 대로 추락해 버린 그에게 허세를 부릴 이유는 더더욱 없다.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군.”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이 정도의 노력 없이는 스스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니까요.”
마스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겠지.’
왜 위긴스가 원탁을 버리고 총회에 투신했는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감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던 일이 이제는 결과로서 증명되고 있다.
‘결국은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건가?’
오랜 역사와 완벽한 시스템.
그건 어떤 면에서는 더없는 장점일지 모른다. 하지만 완벽한 시스템과 세월을 통해 정교해진 법도들은 사람의 성장을 억누르고 시스템의 부품으로 소비해 버린다.
‘답답했던 거겠지.’
그 안에서 정해진 길을 걸어간다는 게 말이다.
그와 위긴스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이 더 나아갈 수 있다는 패기를 잃었다는 점이다.
정해진 레일을 달리던 이가 길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앞으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달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이 준비되어 있다.
그 길 밖으로 걸음을 내딛는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얻음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을 각오도 해야 한다는 거겠지.’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말은 쉽다.
하지만 그곳이 더 나을 거라는 확신은 누구도 할 수 없다. 특히나 원탁과 같은, 그를 위해 완벽히 준비된 곳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그때 선택을 달리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내 뒤를 이어 그저 그런 마스터가 되었겠지.’
그게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빛이 나는군.”
“……예?”
“자네 말일세.”
“…….”
마스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잃고 싶지 않다는 게 문제였군.’
무인은 안주하는 순간, 썩어갈 수밖에 없는 족속들이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서서 자신이 틀어쥔 어떤 것도 놓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다면 엉덩이를 들고 발을 놀려야 하건만, 제자리에 앉은 채 그 모든 것을 누리고자 했다.
위긴스와 그의 차이는 거기에서부터 벌어진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이 달라져도 좋은 일은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과연 달라진 건지.”
위긴스가 낮게 웃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가슴 안에 괴물 하나 정도는 품고 살죠. 그저 사회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 제 안의 괴물을 억누를 뿐입니다.”
마스터가 눈을 찌푸렸다.
“그것참…… 유치한 말이로군.”
“하지만 사실이죠.”
위긴스의 얼굴에 뒤틀린 미소가 자리잡는다.
“저는 반듯하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기사이자 훌륭한 아버지, 그리고 따르는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누군가이고자 했지요.”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마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이유를 가져다 대긴 했지만, 결국 저는 로드에게 홀린 겁니다.”
“홀렸다?”
“예. 그 폭력이 주는 압도적인 위압감, 스스로를 억제하지 않는 힘에 대한 동경. 정말 압도적인 힘은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게 맞춰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로드를 보며 알게 된 거죠.”
위긴스가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지만 말입니다. 저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그저 적당히 끼워 맞춘 논리로 대충 이해한 척 넘어갔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는 건가?”
“예, 마스터.”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애초에 그리 반듯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악당이 더 적성에 맞다고 할 수 있죠.”
“……그 말에 동의해야 한다는 게 슬프군.”
그 위긴스에게 가장 지독하게 당한 사람이 바로 마스터니까.
하지만 이제는 딱히 원한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남아 있지 않다. 원탁 역시 자신의 적이 된 이들을 가혹할 정도로 수탈한 것은 분명 사실이니까.
그저 길이 달라진 이들이 더는 예전 같을 수 없었을 뿐이다.
그에 더해…….
스스로를 악당이라 지칭하는 위긴스의 얼굴에도 한 점 망설임이 보이지 않는다. 저건 자신의 길을 확신한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군. 여하튼 자네가 엘더 나이트 둘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무척이나 고무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하려는 말과는 별 상관이 없네. 애초에 나는 자네를 엘더 나이트로 만들려는 게 아니니까.”
“그럼…….”
“엘더 나이트란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이미 충분히 자신을 증명한 이들이 선택하는 길이지.”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다만…….”
마스터가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이지.”
“과정?”
“증명이란 모호한 것이지. 그리고 강함이란 상대적인 것이야.”
“…….”
“한 시대에서 가장 강한 이가 엘더 나이트가 되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가장 큰 문제는 이 시대의 최강자와 다른 시대의 최강자를 비교할 방법이 없다는 걸세. 말했다시피 강함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던가. 어떤 시대에는 100의 강함을 가진 이가 최강이 되겠지만, 어떤 시대는 20의 힘만으로도 최강이 될 수도 있지.”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연홍이 말하던 것과 같군.’
결국 다른 시대에 태어난 이들끼리는 전해지는 이야기나 일화로 그 강함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중원에서야 그저 아쉬움으로 남을 일이지만, 엘더 나이트들을 선정해야 하는 원탁에서는 이게 실질적인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새로운 엘더 나이트들을 선정할 때마다 이전의 엘더 나이트들을 깨우는 건 너무도 비효율적이니까.
“그럼 말씀하시는 게…….”
“선인들은 엘더 나이트의 자격을 증명하게 만드는 방법을 구상했지. 시대가 흘러도 그 기준이 달라지지 않는 척도를 세우려 했어. 그게 바로 ‘시련의 문’일세.”
위긴스가 모호하다는 얼굴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던전 같은 겁니까?”
“비슷하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애초에 만들어진 것도 꽤 오래전이란 말일세. 그 시대에야 그게 너무 당연했지.”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스터,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모양인데…… 저는 엘더 나이트의 시련을 받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저는 이미 그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자네가 아직 젊긴 한 모양이야.”
“예?”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을 생각이 없는 걸 보니.”
“…….”
“그래서 자네는 그 시련의 문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마지막 엘더 나이트가 어떻게 뽑혔는지 기억하고 있는가?”
“기존의 엘더 나이트드을 깨웠었죠.”
더없이 비효율적이게도 말이다.
“그 시련의 문은 폐기된 정책이네. 그걸로 엘더 나이트를 구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되었지.”
“어째서입니까?”
“다 죽었거든.”
“…….”
마스터가 머쓱하게 웃었다.
“엘더 나이트가 되겠다고 시련의 문에 들어간 이들은 모조리 죽었네. 이상하다 싶어 엘더 나이트를 깨워 그 실력을 인정받은 이를 시련에 문에 투입했더니, 돌아오지 못했지. 밸런스를 잘못 잡은 거야.”
“…….”
위긴스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그럼 밸런스를 다시…… 아니, 아니지요. 그게 그렇게 쉽게 손 쓸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렇지. 게다가 자네도 알다시피 엘더 나이트가 되는 시험을 받을 만한 이가 한 시대에 몇씩 나오는 게 아니네. 문제를 깨달았을 때 즈음에는 시련의 문을 만든 이들은 모두 죽었고, 더는 손을 쓸 방법이 없어졌지.”
“흐음.”
위긴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겠습니다만,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습니다.”
“뭔가?”
“그 밸런싱에 실패한 던전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제가 필요한 건 증명이 아닙니다.”
“그래.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낸 걸세.”
“예?”
마스터가 미소 지었다.
“시련에 문에 들어간 이는 모두 죽었지. 하지만 모두가 그 안에서 죽은 건 아니네. 그 시련에 문에서 돌아온 이가 하나 있었다네.”
“……실패가 증명된 다음에 말입니까?”
“세상에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이도 있고, 도전 정신이 과도한 이도 있지. 그리고 종종 그 두 가지를 함께 가진 사람이 등장하곤 한다네.”
“그렇겠지요.”
“여하튼 그는 스스로 시련의 문의 봉인을 풀고 그 안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그가 마침내 시련의 문 안에 마련된 시험을 통과하고 나왔을 때는…….”
마스터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미쳐 있었지.”
“…….”
“광전사가 되어버린 이가 눈 앞에 보이는 이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기 시작했네. 그를 막기 위해 원탁에 주둔하던 모든 전력이 동원되었음에도 막아낼 수가 없었네. 결국 당대의 마스터가 엘더 나이트를 전원 깨워 진압을 시도했지.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어찌 되었습니까?”
“진압은 성공했지만, 엘더 나이트 중 셋이 죽었네.”
위긴스의 눈이 흔들렸다.
“그곳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결코 그런 힘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네. 그런 자였다면 굳이 시련에 문에 들 필요도 없었겠지.”
“예. 그랬겠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자네가 그곳을 통과할 수 있다면, 지금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걸세.”
위긴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나는 동양의 방식으로는 벽을 넘을 수 없다.’
참오니, 참선이니, 자신을 버린다느니.
그런 말을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벽을 넘기 위해서는 그만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 시련의 문은 어디에 있습니까?”
“할 생각인가?”
“이제 와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마스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닐세. 그 문을 열 수 있는 자는 오로지 마스터뿐이지.”
“…….”
“우선은 마스터가 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딱히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위긴스가 마스터를 슬쩍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마스터의 자격을 손에 넣은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이보게, 위긴스.”
“…….”
“피는 될 수 있으면 흘리지 말아주게나.”
“……노력하지요.”
멀어져 가는 위긴스를 빤히 바라보던 마스터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호의인지 악의인지 모르겠군.’
위긴스가 정말 그 시련을 통과해 강해지길 바라는 건지, 아니면 그 안에서 고통스레 죽어가길 원하는 건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도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마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