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62
#1861.
올라서다 (1)
가아아아아앙!
‘……저게 대체 뭐야?’
굉음을 듣고 달려나온 이명한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하늘로 솟아오른 다섯 개의 강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이한 광경이 안겨주는 이질감이 이명한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강기.’
그것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강기였다.
이명한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저 불길하기 짝이 없는 강기의 손톱이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가 알던 것과는 그 형태도, 실린 힘도 다르지만…….
‘장로님!’
이명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아아아아아앙!
솟아오른 손톱이 휘둘러지며 주변의 흙먼지가 휘말려 올라간다. 마치 황톳빛의 용처럼 솟아오른 흙먼지가 이내 사방으로 흩어지며 먼지구름 사이에 숨겨져 있던 장민의 모습이 드러난다.
“…….”
이명한의 눈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저건…….’
장민이다.
하지만 저건 장민이 아니었다.
언제나 단정하고 깔끔해 나이를 잊게 만들던 장민의 모습이 아니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은 누더기나 다름없이 변해 있고, 그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육체는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혈안.’
검게 물든 얼굴 사이로 보이는 두 눈은 섬뜩하기 짝이 없는 핏빛을 흘려 대고 있었다.
압도당한다.
그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혼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마인…….’
이해할 것 같다.
왜 마인들이 그토록 경원당했는지.
설사 천만의 마인이 선량하다 하더라도 그중 하나 저런 것이 나와 버린다면, 누구라도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공을 익힌 이명한조차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는데, 마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저 모습이 어떻게 다가오겠는가.
마치 현세에 강림한 아수라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저게 뭐야?”
“빌어먹을!”
굉음을 듣고 달려온 이들이 장민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주춤 물러섰다.
그리고 그 순간.
장민의 고개가 새로이 달려온 이들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안 돼!’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장민이 찢어지는 듯한 귀곡성을 내지르며 돌진을 시작했다. 그 돌진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이명한이 죽을힘을 다해 달려 장민의 앞을 막아섰다.
콰아아아아아앙!
일격.
단 일격을 막아냈을 뿐인데, 내장이 모조리 터져 나가는 것만 같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튕겨 나간 이명한이 피를 게워내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물러서!”
“이, 이명…….”
“아무도 접근시키지 마! 아무도! 가서 회주님을 모셔와! 어서!”
“아, 알았다!”
바닥을 움켜잡은 이명한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다.’
이미 그는 장민과 수도 없이 손을 섞어보았다. 장민이 그를 마교의 후예로 키우기 위해서 친히 교육을 해주었으니까.
하나…….
‘전혀 달라.’
전력을 다했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을 가져다 댈 때가 아니다. 평소의 장민과는 느껴지는 기운부터 다르다.
무엇보다…….
‘이건 정말 죽는다.’
조금 전, 장민이 날린 일격에는 오로지 그를 죽이겠다는 살의만이 가득했다.
“쿨럭!”
피를 한 번 더 토해낸 이명한이 주먹을 움켜잡았다.
‘겨우 한 방에 이 꼴인가.’
최근 강진호가 쉬지 않고 수련을 해오고 있음에도 단 한 방에 정신을 잃어버릴 뻔했다. 아니, 거의 목숨이 끊길 뻔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한눈에 보아도 장민은 이성을 잃었다. 저게 심마의 대가인지, 아니면 다른 작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대로 장민을 풀어놓게 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 꼴만은 절대 볼 수 없다.
우드드득.
꽉 움켜쥔 이명한의 주먹에서 검은 연기 같은 마기가 피어오른다.
그 적의를 알아챘는지, 장민이 핏빛으로 물든 눈으로 사납게 이명한을 노려보았다.
동시에…….
콰아아앙!
바닥이 터지는 폭음과 함께 장민이 광속으로 이명한을 향해 돌진했다. 바람이 찢어지고, 전투기가 이륙할 때처럼 흙먼지가 일직선으로 튕겨 오른다.
가아아아아앙!
장민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조강이 이명한의 전신을 휩쓸어왔다.
“흡!”
이명한의 주먹이 시커먼 권강을 머금었다.
묵색의 투기가 날아드는 핏빛의 손톱과 그대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이명환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을 날아 바닥으로 추락한다.
쿠우웅!
바닥을 부수며 처박힌 이명한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남아 있나?’
그의 눈이 자신의 오른손을 확인한다. 걸레짝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손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명한이 내심 안도를 느꼈다. 저 강기와 충돌하는 순간, 손이 팔꿈치까지 모조리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행히 잘려 나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휘이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공기 소리를 들은 이명한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몸을 뒤집어 굴렀다.
카가가각!
조금 전까지 그가 처박혀 있던 자리가 길게 갈라지면 다섯 줄기로 깊이 파인다. 저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무슨 꼴이 되었을지 상상하기도 두려울 정도였다.
“큭!”
몸을 일으켜 세운 이명한이 주먹을 다시 움켜잡았다. 걸레짝이 되어버린 주먹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그 어떤 고통도 죽음보다는 나은 법.
‘발목만 잡고 늘어지면 돼.’
감히 이길 수 있다는 꿈은 꾸지 않는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장민이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물론 그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후욱.”
그가 마기를 끌어 올렸을 때는 평소와는 달리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장민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마기로 들끓는 머리마저 차게 식혀 버렸다.
‘먼저 발을 뻗지 마.’
기다릴 수 있는 한 최대한 기다린다. 단 1초라도 더 시간을 끌어야…….
파앗!
그 순간, 장민의 몸이 퍽 꺼지듯 사라지더니, 공간을 격하고 이명한의 눈앞에 나타났다. 너무도 빠른 속도를 그의 눈이 쫓지 못한 것이다.
“으아아아아압!”
하지만 이명한도 이명한.
그동안 강진호를 맞상대한 경험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순간적으로 장민의 공격에 반응했다.
카가가각!
장민의 조강이 이명한의 어깨부터 허벅지까지를 넓게 덮으며 긁어낸다. 마치 거대한 독수리가 발톱으로 긁고 지나간 것처럼 말이다.
갈라진 육체에서 피가 터지듯 흘러나온다.
끔찍한 상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마기를 뿜어내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지금 지금 여섯 조각으로 토막이 나 있을 것이다.
“큭…….”
지독할 정도로 강하다.
마주 서 있는 것이 허무할 정도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깎여 나가는 목숨을 어떻게든 부여잡아 한순간이라도 더 버티는 것뿐이다.
이것이 벽을 넘을 자격을 손에 넣은 자의 힘.
하지만 이명한은 그 아득한 차이에 절망하지 않았다. 상대도 되지 않는 강함에 맞서면서도 조금도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
“이 정도가 아니야!”
이명한이 움찔거리는 발끝을 부여잡았다.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
안에서 끓어오르는 야성에 몸을 맡겨 달려드는 건 용기가 아니다. 그건 그저 이성을 잃은 날뜀에 불과하다.
진짜 용기는 버텨내는 것.
이명한이 이를 악물고 마기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 마기에 호응하듯 장민의 몸에서도 검붉은 마기가 세차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치듯 장민을 휘감고 도는 어마어마한 마기를 눈으로 확인한 순간, 의지가 꺾여 버릴 것만 같다.
하나 흔들리는 한이 있어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이건 다름 아닌 장민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시면 잘 배웠다고 칭찬하게 만들어 드리지!”
이명한이 마기를 끌어 올린 양손을 교차하며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장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어마어마한 마기들이 마치 지옥에서 솟아오른 악귀들처럼 제멋대로 뒤얽히며 이명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광경을 본 이명한이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날아드는 마기의 결 한 올, 한 올이 눈에 잡힐 듯 생생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기가 날아드는 속도는 그가 예상하는 것보다 느렸다.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마치 기어오는 것처럼 느리다. 하품이 날 정도로.
하지만 이명한은 알고 있다. 이건 결코 저 마기가 느리게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그의 몸 역시 날아드는 마기처럼 느리기 짝이 없다. 아니, 저 느릿한 마기조차 그의 몸에 비한다면 가공할 정도로 빨랐다.
‘죽는…….’
지금 자신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한 이명한이 마지막 발버둥을 치려 하는 그 순간.
스읏.
이명한의 얼굴 바로 옆으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평범한 속도.
하지만 모든 것이 느려진 이 세계를 감안한다면, 벼락보다 더 빠른 속도라 해야 할 것이다.
‘손?’
그의 얼굴 바로 옆을 스치며 앞으로 뻗어진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손이었다.
그것도 뭔가 익숙한.
주먹이 쥐어진 채 앞으로 뻗어진 손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손끝에서 검디검은, 너무도 검어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마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건 너무도 폭력적이고, 또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이명한이 저항할 의지마저 잃어버린 장민의 마기를 뻗어진 손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집어삼킨다.
가가가가각!
그건 괴이한 광경이었다.
아마 이명한의 시간이 극도로 느려지지 않았다면, 두 눈을 부릅떠도 이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기가 마기를 포식한다.
마치 게걸스러운 괴물이 다른 괴물을 물어뜯고 통째로 삼켜 씹어 대듯, 마기가 마기를 찢고, 씹고, 또 흡수해 낸다.
콰드드득.
그러고는 마치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모두 거짓인 것처럼 마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
턱.
그 순간, 앞으로 뻗어진 손이 이명한의 어깨에 얹어진다.
“잘했다.”
“…….”
이명한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장로님은…….”
“괜찮다.”
저벅.
이명한의 어깨를 한 번 꾹 눌러준 강진호가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앞으로 나섰다.
“심마에 먹혔군.”
“그럼…….”
“보통은 죽이는 수밖에 없지만…… 뭐, 이건 교에서는 일상적인 일 같은 거라…….”
강진호가 혈광을 뿜어내는 장민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잔인한 미소 사이로 그의 새하얀 이가 드러난다.
“정신을 돌려놓으면 되겠지.”
이명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강진호의 섬뜩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좀 과격한 방법이라 잘못하면 죽겠지만.”
“……예?”
‘그게 대체 뭐가 다른 겁니까!’라는 의문을 드러낼 틈도 없이 강진호가 장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악!”
장민의 목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공포에 질린 비명이 아니라 더없는 적대감을 담은 비명 소리였다.
그 비명을 들은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며 장민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