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7
#186.
쇼핑하다 (1)
“다녀왔습니다.”
“응?”
집에 들어온 강진호를 본 백현정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옷이 왜 그러니?”
강진호는 아차 하는 심정이 되었다. 이리저리 구르다 보니 옷이 걸레짝이 되었는데, 생각이 많다 보니 옷을 갈아입고 온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좀 굴렀어요.”
“몸은 괜찮고?”
“예.”
백현정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생때같은 아들내미 밖으로 굴리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너 정말 괜찮니?”
“예. 괜찮아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남들은 애한테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일만 못 시켜서 안달이라는데, 뭐한다고 굳이 힘든 일을 찾아서 시키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자기는 방위 나와서 편히 살면서!”
‘방위랑은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요, 어머니.’
아버지를 변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자신이 박살이 나게 생겼다. 강진호는 부디 아버지가 잔소리의 지옥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욕실로 향했다.
“밥은?”
“일단 좀 씻구요.”
“응, 그래. 얼른 씻고 나와라.”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간 강진호가 샤워기를 틀고 차가운 물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찬물을 맞고 나자 머리가 좀 식는 느낌이었다.
‘누구지?’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두 곳이다.
중국의 무인들, 아니면 한국의 무인들.
중국 무인들의 경우는 직접적인 원한을 맺은 적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 우위안이라는 자와 관련이 있는 이가 복수를 하기 위해 왔다 하더라도 과연 그들이 한국의 무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입국해서 이런 사고를 칠 수 있을까가 걸렸다.
그리고 한국의 무인들의 경우에는 아직 자신과 서로 목숨을 노릴 만큼의 원한을 쌓지 않았다는 것이 걸렸다.
강진호는 가만히 자신을 노린 자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누구든 상관없어.”
과거 마교에서부터 그가 지켜온 단 하나의 원칙.
원한은 반드시 갚는다.
그게 누구라고 해도.
은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그의 삶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원한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드득.
강진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속에 기이한 흥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뻐하고 있는 건가?’
강진호는 쓰게 웃었다.
냉정하게 감정 상태를 관조해 보니, 습격을 받았다는 분노나 원한보다는 정말 오랜만에 위기감을 느꼈다는 기쁨이 더 크게 그의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었다.
마교의 천생 무인들 사이에서는 그가 냉정한 사람이지만, 일반인들과 비교를 하니 그도 무학에 미친 평범한 무인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에 기뻐한다는 것 자체가 머리가 반쯤 돌아버린 사람이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니까.
‘어렵군.’
평범하게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애는 다른 무엇도 아닌 강진호 그 자신이었다.
마공에 찌들어 버린 과거가 아님에도 강진호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지금의 삶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것이 마공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사람이기 때문인지는 강진호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가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강진호지만, 그럼에도 자부할 수 있는 면이 있다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홀로 고민하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은 조사를 기다린다.’
꼬리가 잡힐 확률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만한 일이 벌어진 이상 어떻게든 흔적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조규민이 잘 처리해 준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겠지.’
그렇게 흔적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그리 쉽게 흔적을 남길 것이라면 지금까지 이리 자신들의 정체를 꼭꼭 숨기고 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인식이 충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의 목표는 자신일 테니까.
그저 지금처럼 생활하고 있다 보면 제가 알아서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니 강진호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
강진호는 나직하게 웃었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더없이 평화로운 세상이라고 느끼는 반면에 감히 자신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과거, 중원에서는 그를 죽이기 위해서 정사마의 모든 고수들이 달려들어야 했다. 그러니 감히 그를 암살할 엄두를 내는 이도 없던 것이다.
“재미있어.”
강진호는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향하던 강진호의 발이 멈춰 섰다.
“……어머니?”
“응, 진호야. 밥 다 차려놨다. 얼른 먹어라.”
“아버지랑 은영이는요?”
“아직 퇴근 안 했지. 그쪽이야 늦을 테니, 알아서 먹고 들어올 거다.”
그럼 저게 모두 강진호를 위해서 준비된 밥이라는 말인가?
상견례용 한정식 큰상 같은데?
“또 있었구나.”
“응? 무슨 말이니?”
“아, 아닙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젓고는 식탁으로 향했다.
또 있었다.
강진호를 암살하려 하는 사람이.
* * *
“……매니저?”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버지가 하라고 하시던데?”
“그래?”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강유환을 바라보았다. 커피를 뽑고 있는 강유환의 모습을 보니 의아함이 밀려왔다.
“왜 다짜고짜 매니저야?”
“그게…….”
박유민이 주영기를 대신하여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용을 다 들은 강진호가 미묘하게 얼굴을 굳혔다.
“흐음…….”
함께 있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자신이 빠지자마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강은영이 혼자 있을 때가 매우 위험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강유환이 있는 자리에서마저 이런 일이 벌어졌다. 더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강은영이 일한다는 사실만으로 일마저 제치고 모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강은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한데 그런 이들도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생각보다 심각하군.’
스토커라든가, 연예인들에 대한 사생 팬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오늘 벌어졌다는 일을 듣고 나니 생각이 바뀐다.
아무래도 강은영을 좀 더 보호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강진호는 주영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뭐여?”
시선이 자신에게로 닿자 주영기가 껄렁껄렁하게 대답했다.
“……이미지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
강진호가 차마 아무도 하지 못하던 말을 꺼내자 박유민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 이미지? 그게 뭔 소리여?”
주영기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너무 조폭같이 입고 다녀서 사람들이 안 좋아할 수 있다는 말이야. 안 그래도 연예계 쪽이 그쪽이랑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지금처럼 하고 다니면 은영이가 조폭 스폰 받는다는 말이 나올걸?”
“……그래?”
주영기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 태생이 그쪽인 게 사실인데 뭘 어쩌겠는가.
“너는 할 생각 있어?”
“나야 지금 백순데, 뭔 일이든 시켜만 주면 해야지.”
“그래.”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설 경호를 붙이거나 회사에 매니저를 좀 더 붙여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가 아는 사람이 곁에 붙어 있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강진호가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주영기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이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게다가 의외로 주영기는 여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과거, 은영이가 몇 번이나 강진호를 면회 왔을 때도 꼬맹이한테 뭐 그리 빽빽대느냐며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따져 보면 이만한 사람도 없군.’
강진호는 결정을 내렸다.
“옷 깔끔하게 입고 머리라도 깨끗하게 정리하면 말은 좀 줄어들겠지.”
“응, 그렇겠다.”
“그래. 그럼 옷만 좀 깔끔하게 입어라.”
“근데 진호야…….”
“왜?”
“그 깔끔하게 입는다는 것이 뭔 소리냐? 나는 지금 매우 깔끔하게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냐.”
“아니야! 영기야!”
강진호와 박유민이 동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 되겠다. 쇼핑 좀 하자. 날 잡을 테니까 준비해라. 네가 입을 옷을 골라주마.”
주영기가 삐딱하게 고개를 꺾더니, 무척이나 같잖다는 투로 말했다.
“네가?”
“…….”
강진호는 굳은 얼굴로 천천히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
엄마가 사 온 티와 엄마가 사 온 청바지, 아버지가 신다 넘긴 신발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아니면 얘가?”
강진호가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오로지 튼튼하고 질 좋고 값싼, 가성비에 올인한 옷들로 전신을 두르고 있는 박유민이었다.
“허허…… 나참, 사람은 오래 살아봐야 한다니까. 니들이 지금 내 패션을 지적한 거냐?”
“…….”
“…….”
패션 고자 세 사람이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 * *
“쇼핑?”
“……그렇다.”
“흐응, 오라비가 나한테 부탁이라는 걸 하는 날이 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오 년 만에 처음 주도권을 잡게 된 강은영이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먹이를 입에 문 독수리 같은 강은영의 눈빛을 보고는 흠칫하여 물러났다.
“오라비가 친히 나한테 부.탁.을 하는데, 내가 안 들어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우리가 같이한 세월이 얼만데.”
“매우 사무적으로 들리는 답변이로군.”
“하기야 오빠가 옷을 고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패션 센스는 너무 파괴적이니까. 모두의 눈을 파괴할 기세지.”
강진호는 딱히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중원에서도 그렇고, 여기에서도 그렇고…… 강진호는 자신의 옷을 자신이 선택하여 입는다는 개념이 없었다.
위에 입을 옷을 잡고 아래에 입을 옷을 챙긴 뒤, 신발을 골라 신으면 된다는 인식이 그가 가진 패션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오빠 옷이 아니라 영기 오빠 옷이라고?”
“응.”
“영기 오빠가 내 로드 매니저 하신대?”
“로드 매니저?”
“스케줄 챙기고 밥 사 오고 하는 거.”
“……경호원이라고 하자.”
감시원이라는 말이 좀 더 적절할지도 모르지만.
“흐음, 그럼 이 와중에 오빠 옷도 좀 사야겠네.”
“응?”
“엄마! 엄마!”
강은영이 방 밖으로 뛰쳐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결연한 얼굴을 한 백현정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백화점에 간다고?”
“……아뇨, 어머니. 그게 아니라…….”
“내 평생소원이 니 옷을 한 번이라도 입혀보고 고르는 거였다! 허우대는 멀쩡하다 못해 벗겨놔도 빛이 날 애가 왜 옷 좀 사러 가자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니!”
“…….”
“잘됐다. 잔말 말고 너도 따라 나와라. 니 친구랑…… 아니지! 이리된 거 유민이도 데리고 와라. 내가 유민이 옷 입고 다니는 거 보면서 속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강진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그런 일로 가는 게 아니라…….”
“이게 웬일이니! 진호가 백화점에 따라오다니!”
“엄마! 그럼 나도 옷 좀 사도 돼?”
“안 돼.”
“왜!”
“네가 옷 고르면 네 오빠 옷 볼 시간이 줄어.”
“씁, 어쩔 수 없지.”
강은영이 빠르게 인정을 하고는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빨리 가자.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내일 나오라고 해. 오픈 시간 맞춰서.”
“……가게는요?”
“네 아버지가 알아서 하겠지!”
가공할 백현정의 추진력 앞에 강진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