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74
#1873.
복귀하다 (3)
새삼스레.
과거가 떠오른다.
과거, 그가 마스터와 나눈 문답이 말이다.
* * *
“마법의 시작은 언제였죠? 언제부터 모두가 새로운 지식을 탐하게 된 건가요?”
아직은 젊은 티가 역력한 위긴스의 질문에 마스터가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건 아무도 알 수 없겠지.”
“……원탁의 역사에도 나와 있지 않은 겁니까?”
“원탁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도의 모든 역사가 원탁과 함께한 것은 아니지. 집단이라는 것은 그 집단을 이룰 구성원이 충분해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 다시 말하자면, 원탁이 만들어질 때는 이미 마도를 추구하는 이들이 다수 있었다는 뜻이겠지.”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군요.”
“그렇지. 모두들 한 번씩은 그걸 궁금해하지만, 답을 찾아낸 이는 없단다.”
“음…….”
“어쩌면 마법이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일지도 모르고,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 만들어낸 미끼일지도 모르지.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주는 가호를 받은 이가 이적을 행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저 과학처럼 당연한 원리를 사람의 몸으로 행하는 것일 수도 있지.”
위긴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알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하면…….”
“음?”
위긴스가 고개를 들어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마스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마스터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위긴스가 그런 마스터를 재촉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고 하셨잖습니까? 마스터께서는 마법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대답하지 않았는가.”
“그건 원론일 뿐이죠.”
위긴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마스터시라면 답은 찾지 못했다 한들, 본인의 생각은 정리하셨을 것 같습니다만.”
마스터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총명한 학생은 나쁘지 않지만, 남의 뱃속까지 들여다보려는 능구렁이는 언제나 부담스러운 법이지.”
“……무례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무례는 아닐세.”
마스터가 딱 잘라 말했다.
“선생이란 제자의 질문에 언제나 완벽한 답을 내어놓길 원하지. ‘나도 잘 모르겠네’라든가, ‘그건 자네가 고민해 보게’라든가. 그런 대답을 하는 건 사실 조금 창피한 일이지.”
“마스터께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십니까?”
“나는 사람이 아니던가?”
마스터가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군.’
저런 눈을 한 이는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기 마련이다.
“글쎄, 내가 내린 답이라…….”
평소라면 적당히 얼버무렸겠지만, 왠지 이 눈을 보고 있으니 진지한 대답을 해주고 싶어진다.
“나는 마법이 연금술에서 왔다고 생각하네.”
“연금술 말입니까?”
“그렇다네.”
위긴스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연금의 역사가 오래이긴 하지만, 마법의 역사는…… 아니, 원탁의 역사도 연금의 역사보다는 오래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알려진 역사지.”
마스터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마법의 역사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듯, 연금술의 역사 역시 일부분만 알려진 것일세.”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처음의 연금술은 금이 아닌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천만에.”
마스터가 손을 내저었다.
“금이지. 오로지 금이었지. 아니. 그래, 금이 아니어도 좋아. 보석이라든가, 더 값비싼 것도 괜찮겠지.”
“…….”
“자네는 마법의 시작을 좀 더 거창한 것에서 찾고 싶어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네. 시작은 그저 욕망이지. 더 가지고 싶다. 더 손에 넣고 싶다. 더욱! 더욱 더!”
마스터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된다.
하지만 그런 마스터의 반응을 보는 위긴스의 눈은 어느새 찌푸려져 있었다.
“그런 욕망 때문에 마법이 발달했다는 겁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게 뭔 문제라도 있는가?”
“저열하지 않습니까.”
“저열?”
마스터가 미소를 지었다.
“저열하다는 건 뭔가?”
마스터의 시선이 위긴스를 쫓았다.
“진리를 탐구하는 것과 황금을 좇는 것. 그중 어느 것이 더 저열한가?”
“그야…….”
“황금을 좇는 쪽?”
마스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보게. 욕망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이 없고, 높고 낮음이 없어. 욕망은 그저 욕망일 뿐이지.”
“…….”
“진리를 좇아 도서관에서 밤을 새는 학구자나, 보물을 찾아서 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탐험가나, 가진 욕망의 차이는 없네. 그저 방향의 차이일 뿐이지.”
“욕망이란 동일한 형태이고, 어떤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목해야 할 것은 욕망의 방향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라는 점이지.”
“그 자체…….”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욕망이지. 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선한 방향으로 쓰기 위해서 교육을 하는 거고. 하지만 교육받든 받지 않았든 그 원동력이 욕망이라는 것은 변치 않네.”
마스터가 살짝 숨을 몰아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인간을 움직이는 건 수욕, 식욕, 성욕이지. 그건 아주 기초적인 단계일 뿐이야. 세상을 보고 삶을 알아가는 이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지.”
마스터가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누군가에게는 돈! 누군가에게는 지식! 누군가에게는 힘!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진리!”
“…….”
“다들 그렇게 시작했겠지. 처음에는 그저 돈에 대한 욕망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걸 추구하기 위해 깨닫고 또 깨달아가면서 그 욕망도 점점 변화하게 되었겠지. 더 알고 싶다. 더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싶다.”
“……욕망의 고차원적인 진화로군요.”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좋은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
“말했듯이 욕망에는 진화 같은 게 없네. 그저 방향이 달리진 것 뿐이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이의 욕망과 세상의 이면을 더 들여다보고자 하는 연구자의 욕망 사이에 높고 낮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저 더 격한가, 아닌가만이 존재할 뿐.”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알기 어렵다.
“자네는 왜 마법을 배우는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이지.”
“…….”
“자네가 원하는 건 힘, 그리고 더 높은 명예, 그리고 더 나은 대우. 그 외에 자잘한 욕망들이 모조리 뒤섞여 있겠지. 자네의 속에 말이야.”
위긴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앎에 대한 욕구일 뿐이야. 인간은 그리 단순하지 않거든. 그 모든 것이 복합적이지.”
위긴스가 가만히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대화는 마법이 어디에서 왔는가에서 조금 멀어져 있었다.
“마스터.”
위긴스의 입에서 마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하시는 겁니까?”
“글쎄, 왜일까?”
마스터가 입가를 비틀었다.
“어쩌면 깨끗한 도화지에 처음으로 선을 그어버리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쩌면 자네가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일지도 모르고.”
“…….”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다른 말이군. 위긴스.”
“예, 마스터.”
“진리에 도달하게.”
“…….”
마스터가 위긴스를 빤히 보며 말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자는 눈앞에 있는 것도 움켜잡지 못하는 모양이지. 자네 스스로에게 물어보게나, 왜 자네가 마법을 배우는지. 언젠가 이 질문에 지금과 다른 ‘진짜’ 대답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자네는 나를 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거야.”
“……저 같은 게 말입니까?”
“물론이지.”
마스터가 빙긋 웃고는 몸을 돌렸다.
“시간을 너무 빼앗겼군. 그만 돌아가 보게. 나는 바쁜 사람이니까.”
위긴스는 휘적휘적 걸어가는 마스터의 뒷모습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 * *
“다른 대답이라…….”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이미 제 대답은 달라졌습니다, 마스터.’
하지만 그 대답이 마스터가 원하던 대답은 아닐 것이다.
이제 위긴스는 더 이상 그때의 순진하고 의욕에 넘쳐났던 어린 마도사가 아니니까.
마스터는 그에게 말했다.
진리에 도달하라고.
그건 진심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는 자신의 제자라도 진리를 얻길 바라는 법이니까.
하지만…….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진리 같은 건 없어.’
그리고 위긴스는 더 이상 진리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게 그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세상의 비밀? 이면의 법칙?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려져 있는 세상의 이면을 조금 더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건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다.
그가 원하는 건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위긴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살짝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부서지고 해체된 건물의 잔해들이 들어왔다.
과거.
마도의 극에 도달한 자들이 남긴 자취.
원탁이 존재하는 한 이어져야 할 역사이자, 언젠가 또 다른 이가 발을 들여 얻어야 했던 지리.
그 모든 것이 위긴스의 손에 무너졌다.
하지만 위긴스는 조금의 죄책감도, 조금의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했다.
‘무너뜨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가 나아갈 수 있을 리가 있나.’
죄책감을 느낀다면 이보다 더한 것을 원탁에 남겨주면 그만이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재해석해 그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마스터.”
저벅저벅.
위긴스가 걸음을 옮긴다.
그의 몸은 이미 반쯤은 으스러져 걸레짝이 되어 있다. 이 지독한 던전에 단순히 환영 마법만 존재할 리 없다. 수많은 함정과 수많은 공격. 그 모든 것을 뚫어낸 위긴스가 마침내 자신이 있어야 할 온당한 곳에 도달했다.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새하얀 구체.
저게 바로 이 던전을 구성하고 있는 코어다.
저기에 이 던전을 만든 이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레코드. 과거에서 이곳으로 긴 시간을 이어 지켜져 온 기록이다.
“저는 더 이상 진리 따위를 원하지 않습니다.”
위긴스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마스터가 원하는 대로, 그는 이제 다른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저 힘.”
타락한 마도사의 접근이 두려웠는지, 그게 아니면 이제야 자신을 제대로 사용할 이가 나타났다는 것에 환호하는 것인지. 새하얀 코어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빛.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빛을 맞으며 위긴스가 걸음을 옮겼다.
그런 후…….
턱.
그의 손이 빛을 뿜어내는 코어의 위에 올려졌다. 눈부신 빛은 그만큼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법. 코어의 앞에 선 위긴스의 뒤로 칠흑 같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우우우웅.
몇 가지 술식을 전개하자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들이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이내 허공에 어마어마한 양의 글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건 말 그대로 문자의 홍수.
복잡하기 짝이 없는 룬 문자들이 세상을 가득 메운다.
그 진리의 보고를 보며 위긴스가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모조리 해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하지만…….
이걸 모두 먹어 치우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곳에 서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