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78
#1877.
직시하다 (2)
우우우우우웅!
마법진이 새하얀 빛을 내뿜는다.
일순간 광휘에 휩싸인 마법진의 빛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그 안에서 사람의 형체가 드러났다.
“음…….”
모습을 드러낸 위긴스가 자신을 마중하고 있는 이들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리 거창한 환영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한 적은 없는데. 이거, 황공합니다.”
“너스레는.”
위긴스를 마중한 강진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위긴스에게서 예전에는 느낄 수 없던 강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어떤 형태로 어떻게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긴스 역시 과거와 비할 수 없는 힘을 얻어낸 게 분명했다.
“좋아 보이는군.”
“속은 골병이 들어 있습니다, 로드. 서 있기도 벅차군요.”
“놈! 입은 살아서는.”
강진호 대신 끼어든 바토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쏘아붙였다. 하지만 위긴스는 저 행동이 바토르 나름의 반가움의 표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위긴스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왜 반쪽이 되셨습니까?”
“…….”
“용량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용량에 다이어트에……. 이놈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바토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쯧쯧, 인간 같지도 않은 게 이제 좀 인간스러워졌다고 칭찬해 주거늘, 그걸 꼭 삐딱하게 받아들이기는. 야, 이놈아. 덩칫값 좀 해라.”
“영감한테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내가 덩칫값을 못하는 것보다 영감이 나잇값을 못하는 게 배는 더 심할 텐데!”
“저저, 어린애도 아니고.”
장민이 혀를 차대자 위긴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장민을 바라보았다.
“장로님?”
“그래, 나다.”
“……성형외과라도 다녀오셨습니까? 아니, 얼굴이…….”
“좀 젊어졌지.”
“허…….”
위긴스가 눈을 끔뻑였다.
아, 물론…….
무학을 익힌 이는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기 마련이다. 이건 서양의 무학을 익힌 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이미 든 나이를 되돌리는 방법은 없다. 고대의 마법사들이 환영 마법을 통해 모습을 숙이는 일이야 빈번했지만, 지금의 장민처럼 세포 자체를 젊게 되돌리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이게 동양의 신비인가…….”
한 사람은 작아지고, 한 사람은 젊어지고.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은 위긴스였다.
그래서인지 이현수가 영 실망한 눈으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워낙에 극적으로 변해서 비늘이라도 달고 나타나실 줄 알았더니…….”
위긴스를 위아래로 훑은 이현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여긴 별거 없네요.”
“……그런데 이놈이?”
위긴스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아니, 그가 무슨 광대도 아니고, 제 놈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코스프레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내가 원탁에 너무 오래 있었군.’
시간이 뒤틀린 곳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총회는 원래 이랬는데.
“먼 길 온 사람 붙들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먼 길이라 봐야 텔레포튼데. 눈 깜짝할 새 아닙니까.”
“……입 좀 다물어.”
“네.”
이현수가 입을 다물자 강진호가 이마를 짚었다.
“일단은 올라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까.”
집무실에 마주 앉은 총회의 이사들이 서로를 곁눈질한다.
“……뭘 하긴 한 모양이군.”
“그러는 바토르 님이야말로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군요.”
“흥, 입바른 소리 하지 마라. 지금 한판 붙어보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들썩하는 것 같은데.”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부정은 못하겠습니다.”
“하?”
바토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순간, 위긴스가 손을 내저었다.
“거, 진정 좀 하십시오. 사람이 몸은 작아졌는데, 성격은 왜 변하신 게 없습니까?”
“한판 붙자는데 진정할 게 뭐가 있어?”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손을 내저은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새로 익힌 것은 많은데 그걸 시험해 볼 사람이 없더군요. 원탁에는 이제 상대할 만한 이가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적당한 샌드백이 필요하시다?”
“딱 그겁니다.”
바토르의 눈이 번들거렸다.
“좋지. 대신 샌드백에 처 맞아 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거야.”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잖습니까!”
위긴스가 황당함에 소리치는 순간, 장민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적당히 좀 해라. 너희는 어찌 된 놈들이 힘이 세져도 달라지는 게 없느냐?”
“뭐? 영감, 영감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이놈이 또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는구나. 그러다가 턱주가리가 부서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어디 한번 해보시지!”
기운을 끌어 올리는 세 사람을 보며 이현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개판이네.’
익숙한 광경이기는 하지만, 뭔가 익숙하면서도 다른 맛이 난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저 양반들을 저들끼리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사실뿐이다.
하지만 이현수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안타깝게도 저 눈 돌아간 소 같은 양반들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아니, 이 양반은 이럴 때 꼭 커피를 사러 가나.’
시켜도 되잖아, 시켜도!
여기 강진호의 말 한마디면 커피 심부름 정도는 영광이라 알고 달려갈 사람이 수천 명은 있을 텐데!
1층에 커피숍을 없애 버리든 해야지! 빌어먹을!
이럴 거면 집무실에 커피 머신은 뭐 하러 들여놨나!
그때, 마침 이현수의 간절한 소망이 통했는지 강진호가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뭔가 허탈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으르렁대는 세 이사들을 바라보았다.
“……니들이 애냐?”
“…….”
강진호의 눈총을 받은 이들이 슬그머니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이현수가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희한하단 말이지.’
사실 지금 이사들이 저리 으르렁대는 이유는 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들은 지금 막 새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와 같다. 그동안 점진적으로 실력이 늘어온 것과는 달리 벽을 넘으며 단번에 실력이 일취월장하지 않았는가.
이현수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실력행사를 하고 싶어 안달복달 못하는 양반들이 강진호의 말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잘 듣는다는 점이었다.
한숨을 쉬며 걸어온 강진호가 소파에 앉았다.
“위긴스.”
“예, 로드.”
“어때?”
위긴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제가 얻은 것이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층 올라선 것 같기는 합니다.”
강진호가 묘한 얼굴로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모르겠군.’
다른 이들은 보는 것만으로 대충 얼마나 강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무학은 그가 아는 궤를 그리 벗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위긴스만은 그런 식으로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다.
단순히 마나 양으로는 위긴스의 실력을 알 수 없다. 그의 무학은 얼마나 더 알고, 얼마나 더 진리에 닿아 있는가에 따라 같은 마나로도 할 수 있는 것이 달라지니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위긴스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적이라면 더 위협적일 것이고, 동료라면 더 든든할 것이다.
“이제는 상대할 자신이 있나?”
“글쎄요.”
백연홍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임을 위긴스가 모를 리가 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위긴스의 입가에 의뭉스러운 미소가 피어난다.
“제가 그때 그자의 실력을 모두 보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역시 숨겨둔 수가 있었겠죠.”
“맞는 말이야.”
진짜 저력은 끝에 몰렸을 때 나오는 법이다.
“전력조차 뽑지 못했다는 게 새삼 실감 나 화가 나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때 본 게 전부였다면 상대하는 게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숨겨둔 것이 있다면 장담은 할 수 없겠죠.”
신중한 타입인 위긴스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는 건 자신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강진호가 피식 웃고 말았다.
“허세들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기야.
백연홍에게 모두 당해 굴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때에 비하면 훨씬 낫다.
“자만하지 마.”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겠지.
“언제나 위에는 위가 있다. 백연홍이 약한 이는 아니지만, 그들 중 더 강한 이는 얼마든지 있을 거야.”
“걱정 마십시오, 로드.”
위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눈으로 봐서는 산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없는 법입니다. 직접 올라봐야 그제야 산이 얼마나 높고 험난한지를 이해할 수 있는 법이지요. 자만은 하지 않습니다.”
위긴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 역시 실감하는 중이다.
눈앞에 있는 강진호라는 산이 얼마나 높이 있는지 말이다. 그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기에 바토르나 장민도 차마 강진호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만하기에는 적이 너무 강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새삼 실감이 간다.
벽을 넘은 고수를 열이 넘게 보유하고 있는 흑왕의 강대함이.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벽을 넘은 이들이니만큼 경험으로도, 수완으로도 자신들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위긴스들은 이제 그런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래도 최소한의 전력을 갖출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나라도 잘못됐다면…….”
“그렇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운이든 요행이든, 어쨌든 이들은 사선을 넘어 결국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쯤 한창 끙끙대고 있어야 할 양반 하나는 어디에 갔습니까?”
“방 이사?”
“예. 안 보이는군요. 딱히 폐관을 하거나 할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폐관은 아니고.”
“예.”
“고시 공부를 하고 있지.”
“……예?”
강진호가 답지 않게 히죽 웃었다.
“공부의 시대지. 젊은 사람들은 공무원이든 고시든 죽어라고 공부를 하고, 나이가 있는 이들도 승진을 하기 위해 공부를 쉴 수 없는 세상이잖아.”
“그, 그렇지요.”
“그러니 아마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이해라는 건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한계가 있는 거니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위긴스가 도통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른 이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서 부연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위긴스가 본 것은 질린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바토르와 장민이었다.
“차라리 뼈가 부러지는 게 낫지.”
“나는 못한다. 이 나이에 할 짓은 아니야.”
“…….”
질색팔색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위긴스가 더 모르겠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방 이사에게 뭘 시키신 겁니까?”
“말했잖아, 공부라고.”
“…….”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본다. 이럴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역시나 이현수다.
하지만 이현수 역시 딱히 할 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이게 참 설명을 드리려고 해도 어려운 게…….”
“뭐냐?”
“말 그대로거든요. 공부하시는 중입니다.”
“…….”
뭔가 강진호가 또 끔찍한 짓을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린 위긴스가 이 자리에 없는 방진훈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애도를 표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힘내게.’
그들의 전력은 방진훈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방 이사라면 반드시 해낼 겁니다. 그는 그런 남자니까요.”
“……이번엔 어려울걸?”
“아니.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저는 안 된다고 봅니다.”
“…….”
뭔가…….
뭔가 벌어지고 있다.
뭔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