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81
#1880.
직시하다 (5)
“조법, 지법, 각법, 수법, 장법, 권법, 타법, 고법, 어…… 이건 편타법이고, 슬법? 음, 이건 따로 분류를 해야 하나.”
“…….”
위긴스가 할 말을 잃어갔다.
‘뭔 놈의 종류가?’
이 정도면 대학을 하나 만들어도 될 정도다.
심지어 지금 따로 분류하고 있는 무학들은 다들 작게 보자면 권법, 크게 보자면 공격법에 속하는 것들이다. 운신법이나 내가기공, 혹은 심법에 속하는 것들은 아직 분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원래 동양의 무학이라는 게 이리 종류가 많은 건가?”
“이건 시작도 안 한 거요.”
방진훈이 코웃음을 쳤다.
“그나마 우리는 귀염뽀짝한 편이지. 중국 놈들은 팔꿈치 쓰는 법으로 따로 무학을 만들고, 발가락으로 지풍 날리는 법을 연구하는 새끼들이니까.”
“…….”
할 말을 잃은 위긴스가 절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군.’
카테고리를 분류하고 세분화하는 것은 연구하는 이들의 당연한 성향이라 할 수 있지만, 이건 정도를 넘었다. 게다가 이건 세분화라기보다는 그저 제가 만들고 싶은 무학을 제멋대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여하튼 일단은 나눠보세.”
“끙, 하고 있잖습니까.”
방진훈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위긴스의 말대로 비급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던 차.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들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으……. 더럽게도 많네.”
위긴스와 방진훈, 그리고 천태훈이 분류한 비급들을 바라보았다. 대충 쌓여 있던 것을 나눠 쌓다 보니 공간이 부족해서 아예 회의실 하나를 점거해 버렸다.
“흐음.”
위긴스가 턱을 쓸어내리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기왕이면 한국과 중국 무학도 따로 분류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럼 두 배 됩니다!”
“아네. 그러니 참는 것 아닌가.”
기겁을 하는 방진훈의 반응에 위긴스가 피식 웃어버렸다.
“자, 이제 분류는 끝났으니 제대로 시작해 보지. 자네가 만들려는 무학은 무엇인가?”
“……그건 또 왜요?”
“필요없는 것을 제거해야지. 지식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때로는 쓸데없는 지식이 상상을 방해하기도 하는 법이지. 한국에도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모르는 게 약이라는.”
“……그게 그럴 때 쓰던 말이던가.”
영국인에게 한국어의 용법을 논하는 것도 허무한 일이다.
“그래서, 대답은?”
“음…….”
방진훈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새로운 무학을 창안해 내야 한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머릿속으로 총회에 있는 모든 무학을 데이터베이스 삼아 쑤셔 넣어야 한다는 말도 들었고.
일단은 그것부터 시작한 상황이라 딱히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성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냥 하다 보면 뭐가 잡힐 거라 생각해서…….”
“거기부터 잘못됐군.”
“예?”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연구라는 것은 확실한 목적성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이지. 때때로 연구를 하다가 의도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거나 의외의 결과를 발견해 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역시 확고한 목적을 위해 체계적으로 연구를 할 때나 나오는 요행이지.”
“음…….”
“그러니 일단은 방향을 정하게. 내가 무엇을 만들겠다는 목적이 없다면 먼 길을 돌아가게 될 테니까.”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쪽으로는 그보다 위긴스가 전문가였다.
“만들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신공이겠죠.”
“신공?”
“내공 심법이라고 해야 할까, 기운을 운용하는 기본공이라고 해야 할 텐데.”
“이유는?”
“이유랄 게 딱히 있겠습니까? 그냥 뭐…….”
위긴스가 살짝 추궁하는 듯한 눈빛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본 방진훈이 멋쩍은 듯 말을 이었다.
“그게…… 기초중의 기초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기초?”
“그렇죠. 어떤 무학이든 베이스는 내공에 있으니까요. 지법이든 조법이든 권법이든 각법이든, 일단은 내력이 바탕이 되어야 제 위력을 발휘하는 법인데…….”
방진훈이 살짝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딱히 특기로 삼는 무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뛰어난 분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
“흐음.”
위긴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이런 면에서 견실한 게 방 이사의 특징이지.’
겉으로 보기에는 일수나 수금하러 다니게 생긴 사람이 무학에 있어서만큼은 생각 외로 진지하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자괴에 빠지지도 않는다.
불만이 많은 건 단점이지만, 어디 단점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럼 신공부터 시작해야지.”
위긴스의 고개가 쌓여 있는 비급 쪽으로 돌아갔다.
“그게 어느…….”
위긴스가 입을 다문다.
쌓여 있는 비급 중앙에 가장 높고 두텁게 쌓인 비급의 무더기가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좀 줄이긴 했군.”
“……아주 고맙네요, 아주.”
방진훈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보게, 방 이사.”
“예.”
“한 가지 충고를 해주겠네.”
“담아 듣죠.”
위긴스가 살짝 눈을 빛내며 말했다.
“우리 쪽에는 이런 격언이 있지. 연구가 시작될 때 이미 그 연구의 성패는 결정이 나 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럼 연구는 왜 합니까?”
“그게 중요한 거지.”
위긴스가 가만히 방진훈을 마주 보았다.
“그만큼이나 최초 설정이 중요하다는 걸세.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어떤 사실은 연구를 통해 밝혀내겠다고 마음을 먹거나,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확보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자신이 연구하려는 것에 대한 파악이 거의 끝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야.”
“…….”
“연구는 그걸 확인하는 작업일 뿐이지.”
“그러니까, 어…….”
“자네의 마음속에는 이미 자네가 만들려고 하는 무학에 대한 대체적인 스케치가 끝나 있을 걸세.”
방진훈이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는뎁쇼. 제가 하려는 게…….”
“그럼 그것부터 시작하게.”
방진훈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자 위긴스가 부연했다.
“자네가 지금까지 한 방식은 일단은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지. 그게 자네에게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알아서 나쁠 것은 없다는 듯 말이야.”
“……그렇죠.”
“하지만 그래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 전에 무학을 만들 때는 어떻게 했지?”
“그야…….”
방진훈이 골똘히 생각을 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학을 익힐 놈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게 뭔지를 고민했죠. 그래서 여기저기 무학을 뒤져서 필요한 부분을 섞어 넣은 것 같습니다.”
“그랬겠지. 원래 그래야 하는 법이니까.”
위긴스가 짝, 손뼉을 쳤다.
“그때는 자네에게 완벽한 청사진이 있었기에 필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던 거지. 하지만 지금은 그 청사진이 존재하지 않아. 아무리 자재를 태산처럼 쌓아둔다고 해도 설계도 없이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많은 무학을 분석한다고 해도 내가 뭘 만드려는지를 모른다면 시작도 할 수 없는 법이지.”
“…….”
“우선은 거기서부터 시작하게. 자네가 지금 만들려는 무공이 뭔지. 자네에게 정말 도움이 될 무공이 뭔지, 자네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려 줄 무공이 뭔지 말이야.”
방진훈이 머리를 긁는다.
“뭔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방진훈의 눈이 조금 진지해졌다.
“어쨌든 알 것 같습니다.”
“……희한한 대답이로군.”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집중해야 할 테니 자리를 비워주지. 잘해보게나.”
“저기…….”
“음?”
위긴스가 고개를 슬쩍 돌려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고맙수다.”
“별말씀을.”
가벼운 미소를 지은 위긴스가 회의실을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묘한 사내야.’
항상 느끼지만, 그에게 있어서 방진훈은 언제나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그와는 너무도 다른 타입.
그처럼 계산이 빠르지도 않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더없이 충동적이고, 괜한 불만을 입 밖으로 내 적을 만든다.
큰일을 맡기기에는 왠지 불안하고, 시켜놓은 일도 디테일은 언제나 빠져 있다. 허술하면서 감정적이고, 언제나 의외의 변수로 사람을 골치 아프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밉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방진훈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가득하다. 평소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위기일 때는 언제나 가장 필요한 곳에 있고,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어찌어찌 해결해 버리는 것 역시 방진훈이다.
‘그래서 기대를 하게 되지.’
때로는 방진훈의 존재가 불편하고, 때로는 그의 성격이 짜증 날 때도 있지만, 위긴스 역시 정신을 차려보니 그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마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인덕일 것이다.
“기대하지.”
무엇을 만들어 올지 말이다.
“휴우.”
홀로 남은 방진훈이 산더미처럼 쌓인 비급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긴스의 말은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시키니까 한다. 그딴 식으로는 될 리가 없지.’
사실 이것과 비슷한 일은 이미 해봤다. 과거 총회의 독문 무학을 만들 때 말이다. 하지만 지금과 그때가 다른 것은 아마도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미 반쯤 포기해 버렸는데 의욕이 날 리가 있나.”
하지만 이건 방진훈에게는 너무도 모호한 일이었다.
그를 위한 무학, 그만을 위한 무학.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그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이중걸과 대적한 이유도 그의 방식이 총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새로운 무학을 창안한 이유도 외부인들과 마공에 잠식되어 가는 총회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를 위한 무학이라니.
“애초에…….”
방진훈을 위한 무학이란 무엇인가.
방진훈만이 익힐 수 있는 무학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위긴스에게 말했듯이 그는 딱히 특색이 없는 무인이다. 위긴스처러 마법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바토르처럼 천생의 신력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장민처럼 노련하지도 못하다.
그런 그를 위해 준비된 무학이라는 게 있을 리가 있나.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은 방진훈이 팔짱을 꼈다.
여하튼 하나는 알겠다.
이 실마리를 풀지 못한다면 그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위긴스가 말한 대로 그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부터 생각해 내야 한다.
‘그전에는 움직이지 않아.’
여기서 말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방진훈이 눈앞에 쌓인 비급의 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혼란으로 들끓던 그의 내부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불어오던 바람이 잠잠해지고, 밀어 치던 풍랑이 잦아든다. 이내 그의 안이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무학, 무학이라…….”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밝았던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어둠에 잠길 때까지.
그리고 길고 긴 밤이 지나 해가 다시 떠올라 세상을 밝힐 때까지.
방진훈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