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04
#1903.
혼란하다 (3)
화면을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이 석상처럼 굳었다.
스피커가 비명을 질러 대고, 화면을 잡은 앵글은 정신없이 여기저기로 휙휙 바뀌어 멀미가 날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저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
비명 소리.
누군가가 통제를 위해 욕을 해 대는 소리.
이리저리 움직이던 앵글이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무장한 공안을 포착한다.
“휴대폰 내려!”
우악스러운 손길이 화면을 뒤덮는 순간, 영상의 재생이 끝나며 스튜디오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상하이에 나가 있는 시민 제보 영상을 보셨습니다. 이어 현장에 나가 있는 특파원과 연결을 해보겠습니다. 김민석 기자.]짧은 침묵이 끝나자 화면이 반으로 나뉘며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상하이에 나와 있는 김민석입니다.] [현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중국 당국이 현장을 차단하고 있어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다만, 이 거리에서도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자리한 곳이 주변의 다른 빌딩인지, 기자 등 뒤의 창 너머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물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정확하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발표된 것이 있습니까?] [중국 당국은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목격자들의 진술과 SNS의 제보를 바탕으로 유추해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테러리스트들이 건물로 진입하여 민간인들을 테러한 것이라 추정됩니다.]앵커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대낮의 상해 한복판에서 테러라면, 중국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종종 테러가 벌어지곤 했지만,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테러로부터 나름 안전한 지역이라 평가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부로 더는 그런 말을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테러범들의 정체에 대해 알려진 바가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그 정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중국 정부의 발표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희생자의 수는 파악된 바가 있습니까?] [중국 현지 매체는 현재 사망자의 수를 100여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국의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확한 수를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은 중국 정부의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요, 정부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곧 입장 발표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테러 진압이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입장 표명이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앞 건물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의 기자가 고개를 돌려 건물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보시다시피 현장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그때, 갑자기 화면이 꺼지고 연결이 끊어졌다.
화면을 분할하고 있던 스튜디오의 모습이 전체 화면으로 전환되며 앵커가 당황한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현장의 상황이 혼란스러워 불편을 끼쳐 드리게 된 점,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뭔가 소식을 전달받는 듯 목을 살짝 빼던 앵커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현장의 위치가 취재가 불가한 곳이라 촬영이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진들은 지금 안전하게 이동하는 중이라 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어 들어온 시청자 제보 영상을 확인하시겠습니다.]화면이 현장의 상황으로 돌아간다.
넋 나간 듯 뉴스를 보고 있던 이현수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미친 새끼들…….”
빤한 욕이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더 강렬한 욕을 찾아낼 만한 정신도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현실 같지가 않다.
그리고 이 일에 충격을 느끼고 있는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토르도, 장민도, 위긴스도, 방진훈도…….
모두가 하나같이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훅.”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 이현수가 거칠게 한 번 숨을 토해냈다.
저들이 저지른 일이 과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대체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당연히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고, 영원할 거라 믿은 법칙이 뒤바뀐다.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느낌이었다.
안다.
이 경계는 애초부터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인계를 살아가는 이들은 어떻게든 이 경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왔다.
심지어 저 창왕조차도 두 세계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 세상의 능력이라는 것은 자신이 벌이는 일을 완벽하게 수습할 수 있느냐로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 가까스로 유지해 오던 균형이 단번에 무너졌다.
“저걸 대체 어쩔 셈이지?”
“……답이 있을 리가 있나.”
설사 저 테러가 흑왕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특정 종교 집단이나 타국이 벌인 테러라고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뉴스에서는 사망자의 수를 백여 명으로 추정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끝날 리가 없다.
“아니…… 홍왕계가 점거하고 있던 건물이라면 그 수가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보안의 문제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습이 될 만한 일은 아니야.”
“……그렇겠죠.”
위긴스조차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건 정부가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야.’
이미 뉴스를 타버렸다.
통제에 있어서는 어느 국가에도 뒤지지 않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 중국조차 이 사건이 언론을 타는 걸 막아내는 데 실패했다.
‘당연하지. 빌어먹을.’
상하이는 중국 최대 도시다. 저 건물 주변을 오가는 유동량이 오죽하겠는가. 그 많은 이들의 눈을 모두 가리는 건 누구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언론 봉쇄?
말도 안 되는 소리.
요즘은 뉴스보다 SNS에 사건이 먼저 올라오는 시대다. 어설프게 은닉을 시도했다가 사건의 전말이 퍼지기라도 하면 뒷수습이 불가능하다.
결국은 있는 그대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 90%의 진실에 10%의 거짓을 섞어서 말이다.
“흠.”
가장 뒤에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강진호가 낮은 침음을 흘렸다.
‘결국은…….’
세상사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 장민과 바토르조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강진호는 사실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건 아마 강진호가 담대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미 무학이 세상과 어우러진 세상을 살아본 귀환자의 특성일 것이다.
‘청마 역시 마찬가지겠지.’
이 나뉘어진 세상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답답한 우리나 다름없다. 강진호 역시 이 세상에 와 외부에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어마어마한 심력을 소모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저런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릴 수 있는 거겠지.
“홍왕계의 반응은?”
“……연락이 없습니다. 아마…… 예, 아마 패닉일 겁니다.”
평소에는 차이커창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이현수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진심으로 차이커창을 동정했다.
‘이걸 어떻게 대응하라고.’
이현수가 어떤 상황에서도 방어 계획을 세우지 않는 곳이 바로 MK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MK를 습격할 미친놈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현수 역시 누군가 MK에 난입해 학살을 벌였다고 한다면, 대체 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행이겠지.
“일단은 정부 쪽과 논의해서 수습해 봐야지.”
“대응이고 뭐고를 할 때가 아니야. 이건 흑왕과의 전쟁이 아니라 세상과의 언론전이다.”
심각한 얼굴로 말을 주고받는 이사들을 보며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예?”
“이해가 잘 안 돼서 말이다. 뭘 해야 한다고?”
“……저 상황을 수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긴스가 얼굴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
“완전히 숨기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당히 얼버무릴 수는 있을 겁니다. 중국 정부의 힘이라면 적당히 구한 시체로 테러범의 시신을 만들어내면 되겠죠. 생포는 불가능했고, 모두 사살했다. 그리고 이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누구인지 조사 중이다로 적당히 뭉개 버리는 겁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답을 원하니까요. 어쨌든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고 싶어 할 겁니다.”
“아니. 그걸 묻는 게 아니야.”
“……예?”
위긴스가 이해 못하겠다는 듯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강진호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걸로 수습이 될 리가 없다는 소리지.”
“……하지만 최선이잖습니까.”
위긴스를 빤히 바라보던 강진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군, 왜 말이 어긋나는지.”
“…….”
“다들 지금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예?”
“왜 이런 일이 이번 한 번만 벌어질 거라 생각하지?”
“…….”
모두가 입을 닫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어려운 건 한 번이야. 두 번은 조금 낫고, 세 번부터는 편해지지. 왜 한 번 한 걸 두 번은 못한다고 생각하지?”
“하, 하지만 정부가 상황을 인식한 이상…….”
“그게 두려웠다면 시작도 안 했겠지.”
“…….”
“똑바로 이해해. 이건 청마가 보내는 경고야. 그는 무인계가 지켜온 법칙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거지. 앞으로는 어떤 법칙이든 불문율이든 모조리 무시하고 공격하겠다는 의미야.”
이현수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켰다.
‘이런 일이 또 벌어진다고? 또?’
말도 안 된다.
지금까지는 테러다. 너무 엄청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테러의 범주로 욱여넣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일이 더 커진다면?
‘그때부터는 전쟁이다.’
무인계와 무인계의 전쟁이 아니라, 흑왕계와 중국 정부 간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제껏 유지해 오던 세상의 균형을 일거에 무너뜨리고도 남는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는 건가? 정말로?
“예전에 청마가 그랬지.”
“…….”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전쟁이란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쪽이 이기는 법이라고. 예전의 나는 그 말이 더 많은 것을 가진 쪽이 진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군. 말 그대로 지킬 것이 많은 쪽이었어.”
백 년의 시간을 굶주리며 준비해 온 이들을 상대로 홍왕계 따위는 배가 부른 돼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건 강진호조차 다르지 않았다.
“이제야 알겠군.”
강진호가 아비규환이 된 화면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네가 뭘 하려는지.’
홍왕계니, 창왕계니.
청마는 애초에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청마의 구미를 당기게 할 수 없는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항상 그랬지.”
강진호는 허무를 풀기 위해 싸웠다.
그렇다면 청마는 대체 뭘 위해 싸웠는가.
“하나는 확실해.”
강진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아마 저놈들은 지금부터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불태울 거야. 그게 홍왕계가 되었든, 우리가 되었든, 혹여는 국가, 그게 아니면 세계가 되었든.”
섬뜩한 긴장감이 이사들의 등을 타고 흘렀다.
그들 중 누구도 이 전쟁이 여기까지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발끝에서 타오른 지옥의 불길이 그들마저 삼키고 불타는 것만 같았다.
“이현수.”
“예!”
“홍왕 연결해.”
“예!”
뛰쳐나가는 이현수를 보며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내가 나약해졌다는 말이 단순히 약해졌다는 말이 아니었군. 그렇지, 청마?’
저기에 똑똑히 살아 있다.
그 시절을 살아가던 마인의 악의(惡意)가.
더없이 생생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