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05
#1904.
혼란하다 (4)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나 차가울 수 있을까?
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차마 입을 열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보고를 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보고를 받는 이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보고를 하는 이를 죽이는 사람은 아니라는 정도다.
“정부 측에서…… 대응책을 찾아오라고…….”
“…….”
“일단 언론은 최대한 통제는 하겠지만, 이 이상의 통제는 어렵답니다. 화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거의 말이 통하지 않을 지경이라…….”
“화?”
“……예.”
보고하던 이가 식은땀을 흘렸다.
“흑왕을 제어하는 일은 우리 쪽 소관이 아니었냐며, 이런 식으로 무능…… 아니,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들도 생각이…….”
“아주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군.”
보고하던 이가 숨을 죽였다.
차이커창에게서 도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차가운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소관이다?”
“…….”
“머저리 같은 놈들이…….”
차이커창이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들은 그저 상황을 수습하느라 골치를 썩는 정도지만, 홍왕계는 상하이 지부 자체가 날아갔다.
물적, 인적 피해는 차마 말로 할 수도 없는 정도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극심한 피해는 이제 전국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심적인 부담감이다.
외곽을 착실하게 노려올 것이라 생각한 놈들이 갑자기 상하이 한복판에 나타나 벌건 대낮에 학살을 해 댔다. 이건 시간과 공간, 외부적인 시선을 모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격해 대겠다는 선언이다.
“이 개 같은 새끼들이!”
콰아아아아앙!
내려친 손이 책상을 부순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모니터가 바닥으로 나뒹굴며 액정이 갈라져 기괴한 빛을 내뿜어 댔다.
“후우!”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는지, 차이커창이 격하게 숨을 토해냈다.
작은 피해.
그래, 생각하면 이건 작은 피해다.
위치한 곳이 상하이이고, 외부적으로 전쟁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지부 하나가 사라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홍왕계의 지부는 아직도 백여 개 가까이 남아 있고, 본단의 피해는 전무한 상황이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발가락이 바늘에 찔린 상처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발톱 사이를 파고드는 바늘을 뽑아낼 도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게 고문과 무엇이 다른가.
‘빌어먹을!’
적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링에 올라 싸우는 것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글러브를 끼고 룰 안에서 싸운다면, 적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길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적은 링 위에서 싸우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기껏 체급에 맞춰 감량을 하고, 주먹을 글러브로 감싸고, 양손만을 휘둘러 싸울 준비를 마쳤건만, 상대는 링에 오르지도 않은 채 가방 안에서 AK―47을 꺼내 난사를 해 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중재해야 할 경찰은 이건 네 몫이 아니냐고 되레 그를 윽박질러 댄다.
‘대응책을 찾아오라고?’
무인계가 이런 일에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래서 그 미친놈은 어떻게 됐어?”
“……최상층까지 모조리 쓸어버리고는 종적을 감췄습니다.”
“하핫, 돌아버리겠군.”
그 많은 병력들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을 텐데,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이지?
하기야 딱히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적당한 옆 건물 몇 개만 뛰어넘어 버리면 끝이니까.
“피해는…….”
“건물 내 근무하던 고용직을 포함하여 전체 인원 오백칠십이 명 중…… 생존자는 삼백 명 정도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삼백이라…….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았군.”
“큰 건물이니까요. 전원을 내리지 않는 이상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이들을 잡을 수는 없었겠죠.”
“후.”
엘리베이터가 중앙에 밀집한 구조가 아닌 게 천운이었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오히려 나쁜 결과야.’
막아야 할 입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니까.
“정부 쪽 대처는?”
“검진을 명목으로 생존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통제 구역에 수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휴대폰은 모조리 압수하여 폐기 중이고…… 적당히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일반인의 감금은 유지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거기 일반인이 어디 있다고. 빌어먹을 새끼들.”
무학을 익히지 않은 채 홍왕계에 협조하던 이들은 그들의 소관이라는 의미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기본적으로 차이커창은 무인이고, 무인은 통제를 싫어한다. 그 역시 평소에는 강력한 중국 정부의 통제를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만큼은 저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 버리는 공안의 힘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의 정부라면 시민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테니까.
“빌어먹을.”
자꾸만 욕이 나온다.
이 상황이 가장 절망적인 것은 적이 그들의 심장부를 들쑤시고 지나갔음에도 제대로 된 대처법을 찾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의 제약에 칭칭 묶여 있는 그들과는 다르게 흑왕계는 너무나도 자유롭다.
그들이 바닥에 붙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토끼 떼라면, 흑왕계는 창공을 활강하는 매다. 급격히 강하하여 한 마리씩 낚아채고 달아가는 매를 토끼가 무슨 수로 막아내겠는가.
아니.
그들이 토끼 떼라면 차라리 이리저리 도망이라도 칠 수 있겠지.
‘발 묶인 토끼 꼴이라는 건가?’
헛웃음이 나온다.
천하의 홍왕계가 발묶인 토끼 꼴이라니.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다.
“후욱.”
자조와 분노, 증오와 짜증이 폭풍처럼 소용돌이쳤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그런 감정에 쏟을 에너지마저 모조리 긁어모아 대처법을 찾는 것이다.
“정부 쪽에는 어떻게든 알아서 수습하라고 해.”
“괘, 괜찮겠습니까?”
“발등에 불 떨어진 건 서로 마찬가지야. 우리가 손놔 버리면 자기들도 감당할 일이 커지겠지. 협조는 최대한 할 테니까 어떻게든 뭉개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제길.”
차이커창이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주물러 댔다.
이번 한 번은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다. 미디어를 장악할 수만 있다면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평소 같으면 타국의 특파원이라든가 외국 기자들이 진실을 밝히니 어쩌니 떠들어 대겠지만, 이건 전 국가가 함께 묻어야 할 사안이니까.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상하이를 습격할 수 있다는 것은 베이징도, 충칭도…… 원하는 곳은 어디든 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저들은 이미 홍왕계의 지부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손에 넣은 것이 분명하다. 모두가 노려질 수 있는 상황, 지부의 전력만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넓은 중국에 퍼져 있는 지부들을 무슨 수로 방어하라는 건가.
“놈들의 종적은 여전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나?”
“최대한 많은 인원들을 동원하고는 있지만…….”
“……우선 습격당한 상하이 지부에서 CCTV부터 확보해. 얼굴이라도 찍혔다면 한결 낫겠지.”
“이미 회수 중입니다.”
차이커창이 다시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예상치 못한 이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호, 홍왕이시여!”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누군지 확인한 차이커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홍왕을 맞았다. 그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 어떻게.’
평소 홍왕은 웬만해서는 그를 직접 찾아오지 않는다. 굳이 그에게 할 말이 있다면 호출을 하지, 자신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온 홍왕이 박살 난 책상과 모니터를 슬쩍 바라보았다.
“이, 이건…….”
“흥분이 과하군.”
“……죄송합니다.”
차이커창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마왕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
차이커창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강진호가?
“지부를 모두 철수하고 뒤로 빼라 하더군.”
차이커창이 주먹을 움켜쥔다.
현실적으로 답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잘개 쪼개진 전력으로는 절대 흑왕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하지만 그건 흑왕에게 완전히 백기를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대응이다. 홍왕계라는, 중국을 지배하는 문파가 할 만한 대처가 아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했다.”
“……여쭤도 되겠습니까?”
“저들이 원하는 게 그것이라더군. 지부를 뒤로 물리는 것.”
“……예?”
“흑왕은 상대의 손발을 자르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상대의 정보를 차단하고, 그쪽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전혀 알지 못하게 만든 다음 야금야금 괴롭히며 먹어 치우는 게 장기라고.”
“…….”
“하지만 한번 말려든 이상 대응책이 없다는 게 그쪽의 의견이다. 차라리 원하는 대로 해주고 전력이라도 보존하는 게 낫다고 하던데…….”
으드드득.
차이커창이 이를 갈아붙였다.
굴욕적이기 짝이 없다.
그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 제안이 그들을 농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네게 묻겠다, 차이커창.”
“……예.”
“너는 우리가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차이커창이 입을 다물었다.
홍왕의 물음에 즉각 대답하지 않고 숙고를 한다는 건 평소의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제나 물음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보좌의 자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차이커창도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홍왕이시여.”
“말하라.”
“제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십시오.”
“…….”
“마왕의 말대로라면 저들은 우리의 지부들을 더욱 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습격에서는 규칙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면?”
“하지만…….”
차이커창이 단호한 눈으로 홍왕을 바라보았다.
“찾아내겠습니다. 저들이 다음에 어디를 노릴지 반드시 짐작해 낼 것입니다. 그리고 피로 저들의 발을 엮고, 목을 꿰뚫을 것입니다!”
“흐음…….”
“그러니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시를 간청드립니다!”
차이커창이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하지만 홍왕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일어나라.”
“…….”
“나는 네게 선택을 맡겼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허락을 구하느냐. 너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일 터.”
“호, 홍왕이시여!”
“뜻대로 행하라. 내가 너의 수족이 되어 적을 멸하리라. 나는 단 한 번도 너의 판단을 의심한 적 없다.”
“감사합니다!”
차이커창이 머리를 더 낮게 낮췄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 법.
무거운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러 왔지만, 차이커창은 이 부담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지독한 전쟁에서 승리한 이들이다.’
저 흑왕계가 신선놀음을 할 동안 그들은 저 깊은 무저갱의 아비규환 속에서 승리해 이곳까지 올라왔다.
‘우릴 만만히 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흑왕!’
차이커창이 핏발이 선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 눈을 본 홍왕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당하기만 해서는 억울하지.”
“물론입니다.”
“열 번을 얻어맞아도 한 번이면 된다. 그 한 번으로 저들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제가 반드시…….”
이를 악문 차이커창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반드시 그리 만들겠습니다, 홍왕이시여.”
차디찬 맹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