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08
#1907.
절감하다 (2)
“N―3! N―3! 광저우 지부 공격받는 중입니다.”
차이커창이 주먹을 움켜쥔다.
“대기조는?”
“지금 요격에 나선다고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좋아!”
차이커창이 고개를 홱 돌려 지도를 바라보았다.
‘개자식들!’
저들의 행동 패턴에는 규칙성이 없다.
딱 봐도 알 수 있다. 흑왕은 그나 창왕처럼 일일이 지시를 내리는 타입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게 먹히지도 않겠지.’
흑왕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저들에게 디테일한 명령을 내리는 건 무리다.
그건 홍왕을 모시는 차이커창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홍왕이 누군가에게 굴복해 그 휘하로 들어간다?
잘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홍왕이 누군가의 명령을 군말없이 일일이 수행하는 광경은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다.
초인이란 애초에 그런 존재다.
그만한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재능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에고가 필요하다.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데 익숙해진 이들은 절대 벽을 넘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 이들을 휘하에 그만큼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한계는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어.’
세상에 난공불락의 성은 없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성이더라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반드시 그 공략법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때까지 얼마나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느냐의 싸움일 뿐.
“그리고 그 에고는 주변의 다른 십이비도에게도 분명 작용할 터.”
상하이 지부가 날아간 일은 이전까지의 손해를 다 잊게 만들 정도의 충격이었다.
저들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에 비등하거나, 그 이상의 파급을 가져올 일을 저지르려 할 터!
‘여기까진 예상대로야.’
차이커창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주변 지부에서 병력 충원해!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 대기 중인 보충조한테 당장 이동 명령을 내려! 지금 당장!”
“예!”
차이커창이 뭔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지금 있는 병력으로는 절대 못 막는다. 관건은 얼마나 빠르게 충원을 하느냐겠지. 생각해라, 생각해. 차이커창.”
적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불규칙성이다.
지금 광저우 지부가 습격을 받았다고 해서 주변의 다른 지부가 습격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주변 지부의 병력과 미리 본단에서 차출해 대기시켜 놓은 보충대까지 모조리 투입한다면, 추가적인 습격을 막을 방법이 전무해진다.
“인접한 곳에 보충대가 둘 있습니다! 어느 쪽…….”
“둘 다 투입해!”
하지만 차이커창은 망설임 없이 소리쳤다.
어차피 모두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을 주고 뼈를 친다? 아니지. 뼈를 주고 살을 친다.’
그래도 상관없다.
홍왕계는 거인. 저들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인이다. 살을 한 뭉텅이씩 잘라주는 대신 생채기 하나씩만 내도 홍왕계가 아닌 흑왕계가 먼저 무너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가용한 병력을 모조리 투입해 상대에게 확실한 상흔을 남겨야 한다.
“실장님, H―14도 습격받는 중입니다!”
차이커창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빌어먹을!’
H―14는 그가 설치한 방어 라인에 들어가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반대로 하자면 포기하고 버리는 곳이 생긴다는 의미니까.
“후퇴시켜!”
“하지만 지금 항전…….”
“잔말 말고 후퇴시켜!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 뒤에 뒤쪽 집결지에 재집결하라고 해! 당장!”
“예!”
뿌득.
차이커창이 이를 갈았다.
후퇴 명령이야 떨어지겠지만, 과연 지부에서 몇이나 살아남을까? 열을 넘으면 천운이겠지.
‘그래, 물어뜯어라!’
얼마든지 내어주마.
하지만 그 대신 우리의 이가 너희의 살에 틀어박히는 것 역시 각오해야 할 거다!
“A―27도 공격받습니다!”
“C―6 연락 두절입니다! 연결이 안 됩니다!”
사방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차이커창의 눈빛은 여전히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번 당한 일에 또다시 패닉에 빠질 만큼 그는 멍청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았다.
“지정한 지부 외에는 모두 후퇴시켜!”
“다른 지부들은…….”
“안 돼!”
먼저 뺴는 것은 하수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송곳니는 하나가 아니다. 저들이 발목을 부여잡아 줘야 그들이 노릴 곳을 제대로 공략할 수 있다.
냉정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어설프게 인정에 휘둘리다가는 더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테니까.
“N―3! 광저우 지부 상황은?”
“여전히 항전 중입니다! 아래쪽에 모인 유격대가 건물 안으로 진입 중이며, 포위조가 탈출로를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원이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면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서두르라고 해!”
“방금 명령을…….”
“다시!”
“예!”
모두가 다급하게 움직이고 명을 내린다.
차이커창이 눈가를 꾹 눌렀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실전은 또 다른 법.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변수를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F―11은? 아직 소식이 없나?”
“예. 아직은…….”
“…….”
차이커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있다.
분명히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F―11을 노릴 것이다. 상하이 지부가 날아간 이상 이건 필연적인 일이다.
‘반드시 온다!’
경향성.
중요한 건 경향성이다.
차이커창의 손이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기다려. 아직 아니야.’
반드시 온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사냥이다. 사냥꾼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인내. 덫을 놓았으면 사냥감이 밟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내심이 모자라 덫 주위를 기웃거리면 사냥감은 절대 주위로 다가오지 않으니까.
‘그러니 조금만 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부 지원, 광저우에 도착했습니다!”
“광저우에 보충대가 진입합니다! 다른 보충대도 5분 내로 진입합니다!”
“F―11 습격 중! 다시 보고드립니다! F―11 습격 중!”
쾅!
차이커창이 책상을 후려치듯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F―11 상황 다시 보고해!”
“예! F―11 척후의 연락이 끊겼다는 보고입니다! 아직 지부로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보아 바로 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꽈악!
차이커창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잡았다.
‘잡았다, 이 개자식!’
그의 시선이 지도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첫 번째로 향한 곳은 바로 상하이 지부.
‘화려한 걸 좋아한다, 이거지?’
생각해 보라.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공격을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다. 구역을 나누면 된다. 각자 맡은 구역 안에서는 자유롭게 날뛰게 하되, 서로의 구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면 불협화음이 벌어질 일이 없다.
당연히 흑왕도 저들에게 각자 구역을 나눠 줬을 것이다.
‘그럼 간단하지.’
구역 내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화려하게 먹어 치운 놈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두 번째 도시!’
상하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도시.
“항저우!”
이곳이 차이커창이 가장 완벽한 덫을 놓을 수 있는 지부다. 광저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제대로 된 덫. 한 번 걸리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살을 뚫고 뼈를 부수는 치명적인 덫을!
“준비 신호 날려! 지금 당장!”
“예!”
고함을 내지르는 수하들을 보며 차이커창이 이를 악물었다.
“지옥을 보게 될 거다.”
* * *
“흐으음.”
신창이 창을 한 번 휘두르고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냄새가 나는걸?”
분위기가 이상하다.
정문을 막아서는 이를 둘이나 해치우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 그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열 가까이 해치운 뒤다.
뭐가 다르냐고?
‘똑같아.’
얼마 전, 상하이에서 날뛸 때와 딱히 다른 게 없었다. 여전히 그를 막아서는 이들은 나약하고, 그들의 반응은 천편일률적이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
‘바로 그게 문제지.’
이들은 홍왕계다.
신창은 이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을 역행하는 이들. 흑왕계라는 존재는 본래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이레귤러들이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홍왕계가 중국을 일통하고 이 시대의 패자로 남았을 것이다.
중원을 일통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아무리 강호가 과거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 넓은 땅을 모조리 지배한다는 것은 웬만한 능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해낸 이들을 대놓고 무시할 만큼 그는 오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 당한 이들이 빤한 습격에 대처하지 못한다?
조금의 달라짐 없이 또다시 같은 공격을 빤히 허용한다?
“냄새가 난단 말이지.”
신창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함정이군.’
상대의 능력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
그렇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이대로 돌아 나가는 것. 상대가 파놓은 함정을 상대해 주지 않고 농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얼마나 제대로 된 함정을 팠는지 어디 한번 볼까?”
신창이 휘파람을 불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애초에 이곳으로 오면서 저항을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빤히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격해 들어온 이유는 이들이 어떤 함정을 파더라도 돌파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오만. 그래, 오만함.
때로 오만함은 어리석음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설사 어리석은 이라 손가락질받는 한이 있더라도 조무래기들을 상대로 물러서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그만한 자존심이 없었다면 그는 신창이라 불리지도 못했을 테니까.
“어디…….”
콰아아아앙!
가볍게 휘두른 창에 굳게 닫힌 철문이 종잇조각처럼 찢겨져 날아갔다.
“없고.”
이층에 남은 이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신창이 다음 계단을 올랐다.
콰아아앙!
삼층 역시 아무도 없다.
“이것 봐라?”
이 건물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위쪽으로는 분명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다만, 저들은 그와의 항전을 포기하고 위층으로 달아나고 있을 뿐이다.
“흐음, 뛰어내리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무리겠지.
사람이 고층에서 뛰어내리고도 멀쩡한 모습을 주변인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이 건물을 사지로 만드는 것은 신창이 아니다. 그리고 높이도 아니다. 저들을 옭아매고 있는 법칙들이었다.
“……멍청하긴.”
괜한 짜증을 느낀 신창이 단숨에 세 층을 뛰어올랐다. 인기척이 있는 곳까지 단번에 오를 생각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쪽으로.”
계단을 뛰어오르던 신창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뭐?’
그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굳게 닫힌 철문.
지금까지 봐온 철문일 뿐이다.
문제는 이 철문 너머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누군가 분명 존재하는데, 그가 느끼지 못했다?
등을 타고 소름이 돋는다.
몸을 휩쓰는 이질감에 전율하던 신창이 천천히 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가볍게 손을 뻗어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끼이이익.
손잡이를 잡아 돌리자, 애초에 잠그지 않은 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동시에 신창은 보았다.
그를 맞이하는 이를.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를.
탁.
사내가 손에 든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그 잔 옆으로 한 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술병이 눈에 띈다.
술병으로 가닿은 신창의 시선이 술잔을 내려놓은 사내에게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에 밝은 기색이 떠올랐다.
너무도 고대하던 것을 마주한 듯한 표정. 또한 너무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본 듯한 표정.
그 상극에 가까운 표정이 제멋대로 뒤섞여 그의 얼굴을 뒤틀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신창은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커다란 육체, 그 육체를 감싸고 있는 금색의 곤룡포.
딱히 표정 없는 얼굴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거대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홍왕?”
사내의 입가가 미미한 호선을 그렸다.
“하…… 하하, 진짜 홍왕인가?”
신창이 황당하다는 듯 홍왕을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군.’
설마…… 이제 겨우 시작하는 단계에서 홍왕을 조우할 줄이야.
함정이라고 생각한 곳이 사실은 지옥 밑바닥이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신창이 입가를 뒤틀며 웃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홍왕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결론은 내가 내려주지.”
홍왕의 두 눈에서 금색의 안광이 치솟아 올랐다.
“감히 내 수하들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하하하핫! 좋지!”
신창이 광소를 터뜨리며 창을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