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09
#1908.
절감하다 (3)
콰아아아앙!
폭음이 터져 나왔다.
공령의 얼굴에 귀신 같은 미소가 어린다.
‘다 내려놨다는 건가?’
이곳은 광저우의 한복판.
아무리 통제를 한다고 해도 사람의 발길을 끊을 수 없는 곳이다. 아니, 설사 사람의 행보는 통제할 수 있을지라도 멀리서 이곳을 지켜볼 이들의 눈을 모두 가릴 방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지금 그를 향해 달려드는 이들은 그런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콰아아아아앙!
날아든 장력이 그를 스쳐 지나가며 창문을 터뜨리고, 건너편 건물에 틀어박힌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
만약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며 그를 제압하려 들었다면, 이들에게는 조금의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령은 그런 수작질에 당해줄 만큼 만만한 이는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선택은 옳다.
결국 중요한 건 결과를 내느냐.
공령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어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도 가져다 붙여 얼버무릴 수 있다는 생각이겠지. 전처럼 갑자기 얻어맞아 시체도 숨기지 못하고 언론에 그대로 노출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근본이 뒤틀려서야.”
촤아아아악!
그의 손끝에서 동시에 수백 가닥의 와이어가 뿜어져 나온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와이어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홍왕계의 무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스스슷!
기운을 품은 와이어가 사람의 육체를 꿰뚫고, 베어내고, 또 움켜잡아 갈랐다.
얇디얇은 와이어가 단련된 무인의 육체를 마치 썩은 무라도 되는 것처럼 손쉽게 잘라냈다.
얇은 병기일수록 기운을 실어내기 어려운 법.
머리카락보다 더 얇은 와이어에 이만한 기운을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와이어를 동시에 수백 가닥 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 공령이 얼마나 강한지를 단번에 증명해 주고 있었다.
파아아앗!
파공음과 함께 홍왕계 무인들의 몸이 조각나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피가 비처럼 쏟아지고, 잘린 내장 조각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아무리 단련된 무인이라고 해도 이런 광경을 보면 겁에 질릴 만도 하건만, 안으로 뛰쳐 들어온 무인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내 밟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공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
공령이 짧은 탄식을 내뿜었다.
확실히 이들은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 온 지부의 무인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그를 잡기 위해서 제대로 된 이들을 보냈다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령이 입꼬리를 확 말아 올렸다.
“꽤 얕잡아 보인 모양이군.”
촤르르르륵!
비단이 펼쳐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와이어가 허공을 난다. 기세 좋게 달려든 이들의 몸에 와이어에 수도 없이 꿰뚫리며 허공에 그대로 고정되었다.
“큭!”
“끄으…….”
허공에 매달린 이들의 입에서 점점 더 끔찍한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라.
너무나도 얇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와이어가 육체를 수도 없이 꿰뚫으면 어찌 되겠는가.
딱히 고통스럽지도 않고,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다. 이대로 와이어만 빼낼 수 있다면 채 5분도 되지 않아 나아버릴 상처다.
하지만 그건 지금뿐.
숨을 쉴 때마다, 몸을 꿈틀댈 때마다 와이어가 살을 가르고 뼈를 잘라낸다. 몸의 무게가 와이어를 누를 때마다 몸이 천천히 갈라진다.
“끄륵, 끄으으윽…….”
“이…… 이 개 같은…….”
공령이 그 모습을 보며 낮게 이죽거렸다.
“모르겠군.”
매번 보는 광경이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대의라는 게 있을까?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을까?
글쎄.
아니겠지.
이들은 홍왕의 대의에 공감하지 못한다.
홍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려 드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홍왕이라는 위명을 따르는 이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진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말이다.
“이해하고 있나, 너희가 맡은 임무가 무엇인지?”
이들은 그저 소모품.
그를 상대할 이들이 주변을 제대로 포위할 때까지 그 목숨으로 공령의 발을 잡아 끄는 역할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들은 그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공령이 궁금한 것은 이들이 정말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역할에 정말 만족하는지였다.
“너희가 이 일에 목숨을 걸 가치가 있을까?”
설사 이들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다고 치자.
그래서 결국 이들의 목숨을 대가로 공령의 목이 잘려 나가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만족하며 죽을 수 있을까?
“의미가 없지.”
공령이 낮게 웃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조차 직시할 수 없는 싸구려 목숨을 아무리 베어봐야 허기가 가실 일은 없다.
공령이 손가락을 가볍게 당겼다.
촤르르륵!
와이어가 꿰뚫은 이들의 몸을 갈라낸다.
처음 형체가 어땠는지 짐작하지 못할 지경으로 육편이 되어버린 시체들을 응시하던 공령이 슬쩍 고개를 돌려 창 쪽으로 걸어갔다.
“흐음.”
어둠이 내려앉은 야경을 뚫고 진득한 살기가 풍겨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다를 바가 없는 풍경이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이 주변으로 그를 죽이기 위해 몰려든 홍왕계의 무사들이 물샐 틈 없는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유능해. 역시.”
재미있는 일이다.
과거에는 이만큼 유능한 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 문물의 이기는 과거의 책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이들조차 그럴싸한 능력자로 보이게 만든다.
예전이었다면 이 짧은 시간 안에 각각의 부대에 신호를 주고 일사불란하게 주변을 포위하게 만든다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과거의 책사들이 예지에 가까운 예측 능력으로 미리 준비를 해야 겨우 성공할 수 있던 일을 지금의 지휘관들은 앉은 자리에서 화면을 보며 입 몇 번 떼는 것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
그건 분명 위협적이다.
다만…….
“서글픈 일이야.”
그럼에도 허망하다.
아무리 일사불란하게 포위한다고 해도, 아무리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갖춘다고 해도 그를 옭아맬 그물이 썩어 문드러져서야 의미가 없지 않은가.
느껴지는 기척은 수도 없지만, 공령은 딱히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아직 이해를 못한 모양이군.”
그저 발을 빼고 물러났다면 피를 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을.
하지만 이들이 이리 나온다면 공령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분명한 법.
공령이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죽어라아아앗!”
“이 개자식!”
방에서 나오자마자 복도를 가득 채우며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공령을 향해 달려든다.
“이해력이 떨어지는군.”
공령이 가볍게 손가락을 좌우로 휘저었다.
그와 동시에 달려들던 이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수십 조각으로 잘려 아래로 쏟아진다.
비현실적인 광경.
도무지 인세에서 벌어질 것 같지 않은 광경이었다.
공령이 미간을 좁히고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갔다.
몇 번이고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자신의 죽음을 반쯤은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파블로프의 개마냥 공령을 보면 달려드는 무인들.
그리고 그런 이들은 감흥 없이 조각내는 공령.
십여 층을 내려갈 동안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막 공령이 이 의미없는 살육에 지루함을 느끼려는 찰나.
피이이이잉!
높은 피리 소리와도 같은 파공음과 함께 공령을 향해 무언가 날아들었다.
“흠?”
공령의 이채를 띠며 와이어를 펼쳐 냈다.
‘비도?’
새파란 검기를 품고 날아든 비도가 그가 펼쳐 낸 와이어에 얽혀들었다. 하나 몇 겹의 와이어가 앞을 막아섰음에도 비도는 그 힘을 잃지 않았다.
가각! 가가가가가각!
와이어들이 마치 날뛰는 짐승을 옭아맨 그물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공령의 바로 앞에서 요동치던 비수가 결국은 힘을 잃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은사인가?”
“현대식인 것 같은데.”
“웃기지도 않는군. 하는 짓은 늙어 빠진 귀환자라는 놈들이 현대의 문물을 무기로 쓴다고?”
공령이 이채를 띤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진짜군.’
조금 전, 그에게 빤한 소리를 늘어놓던 본단 놈들과는 느껴지는 감각 자체가 다르다.
백번을 정련한 백련정강에서 느껴지는 정갈함.
스스로를 쇠처럼 단련한 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이 저들에게서 느껴졌다.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여 있는 줄 알았더니…….’
하기야.
이러니 이들이 중원을 일통하고 거들먹거릴 수 있었겠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십여 명의 사내를 본 공령이 입가를 뒤틀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이들과는 다르게 무인들 특유의 무복을 입은 모습도 마음에 든다.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안 그래도 후회 중이다, 망할 새끼야.”
나타난 이들이 이를 갈았다.
위쪽 계단에서 피가 줄줄이 흘러내린다.
마치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안타까운 것은 이 공포 영화의 세부 장르는 슬래셔 무비라는 점이다. 저 피는 환상이 아니라 진짜다.
“네 몸에서 저만큼 피를 뽑아내지 못한다는 게 아쉽군.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죽은 놈들이 느낀 고통을 네가 모조리 느끼게 만들고 나서야 죽여줄 테니까.”
공령이 무표정한 눈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약한 개는 짖고 보는 법이지.”
“이 새끼가…….”
“이들이 목숨을 버려가며 기다린 게 너희라면, 안타까운 일이야. 가치 없는 일에 목숨을 버렸군.”
공령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그와 동시에 앞쪽의 십여 명이 물러서지 않고 되레 공령을 향해 조여 들어온다.
“알고나 죽어라. 우리는 홍왕계의 본단 삼대 중 하나인 천무대(天武對)의 대원들이다.”
“이름은 거창하군.”
공령이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내 이름은 굳이 알 것 없어. 죽고 나면 소용없는 일이니까.”
“……그 주둥아리를 찢어주지.”
공령이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기이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너희의 목표는 나를 죽이는 것?”
“당연한 소리를.”
“아니지.”
공령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나가 빠졌지. 될 수 있는 한 조용하게 나를 처리하는 거지.”
“……잘 아는군.”
“그럼 우선 그것부터 시작하지.”
“뭐?”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낀 천무대가 공령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공령의 움직임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랐다.
촤아아아악!
그의 양 소매에서 뿜어져 나온 와이어들이 마치 홍학의 날개처럼 쫘악 펼쳐졌다. 피에 젖은 와이어들이 천무대가 아닌 건물의 외벽들을 뚫고 박히기 시작했다.
가가가각! 가가각!
돌과 돌이 서로 비벼지는 듯 괴이한 소음과 함께 와이어들이 벽을 파고들었다.
“너…… 뭘?”
“딱히 화려한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떤 놈이 잘난 듯이 떠드는 걸 보는 것보다는 낫지.”
“…….”
“건물이 불타고, 사람이 죽어 나간다. 그래. 그건 굉장히 큰일이지. 하지만…….”
공령의 두 눈이 광기를 머금었다.
“이만한 건물이 무너지는 건 그보다 더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막아!”
“으아아아아아!”
천무대가 급히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지만, 공령은 그 모습을 보며 되레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그의 양손이 서로 교차하며 와이어를 당겨냈다.
파아아아앗!
건물을 파고든 와이어들이 일제히 뽑혀 나왔다.
“…….”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선 이들이 혼이 나간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극.
그그그극.
멀쩡하던 벽들 여기저기에 선명한 선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럼 밑에서 보자고.”
“이…… 이 미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콰르르르르릉!
이윽고 울려온, 무언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천무대가 내지른 비명 소리를 까맣게 묻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