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2
#191.
연기하다 (1)
조규민은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너무 늦는데?’
강진호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불안한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강진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한데?’
강진호에게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 조규민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이미 중국에서 겪은 일이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진호에게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면 몰라도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강진호가 사고를 당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놈도 보통 놈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 많은 CCTV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완벽히 지울 수 있는 인간이 평범할 리 없었다. 더구나 강진호의 말에 따르자면, 강진호를 공격하고도 멀쩡히 살아 돌아가지 않았는가.
조규민은 가만히 휴대전화를 내려놓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가 없어.’
강진호도, 그놈도 평범한 사람과는 한참이나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멀쩡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니…….
강진호 혼자였을 때는 강진호가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이가 하나씩 더 나타기 시작하자 다른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는 그런 이들이 꽤나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규민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합리적이라면 나름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 의심이었다.
단순히 강진호와 비슷한 사람이 나타났기에 드는 의심이 아니었다. 조규민의 의심을 가장 짙게 만든 것은 그 두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었다.
‘어떻게 아무런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강진호는 고층 빌딩에서 작업을 하다 떨어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떨어져 아래층 건물로 들어갔다는 것 자체도 해외 토픽감이다. 하지만 인터넷도, 방송도 모두 조용하기만 했다.
SNS가 있는 세상에서 그 많은 이들이 그 광경을 보았는데도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많은 이들이 목격한 사건을 은폐할 수 있다는 것은 국가의 힘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조규민은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어쩌면 세상은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써 묻어두었던 의혹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자 연이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끌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규민이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에 뜬 강진호라는 이름을 본 조규민이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강진호 씨?”
[네.]“다행입니다. 별일 없으셨군요.”
평소와 다름없는 강진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규민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빤히 이리 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막상 연락이 되지 않으니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그는요?”
[살아 있습니다.]살아는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조규민은 눈을 감고 강진호의 마수에 걸렸을 상대를 애도했다. 그래도 상대가 먼저 공격한 것이니 변명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큰일이 벌어졌습니까? 제가 수습해야 하나요?”
[아니요. 수습할 이들은 따로 있을 겁니다.]“그렇군요.”
조규민은 강진호의 말에서 한 가지를 더 유추할 수 있었다. 강진호도 누군가가 상황을 수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호한 말투에서 강진호 역시 그들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주변 조사는 해두겠습니다.”
[예.]“그리고 강진호 씨, 앞으로의 문제 때문인데…… 그쪽이 누구이며, 강진호 씨를 노린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중국이에요. 그리고 제가 어떤 놈인지 알고 싶었다고 하더라구요.]“……어떤 놈인지요?”
조규민의 물음에 강진호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잘 알려줬습니다.]조규민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무슨 꼴을 당했을지 안 봐도 훤했다.
“예. 고생하셨습니다.”
[그럼.]전화가 끊기자 조규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자리에 다시 앉았다.
‘한 번씩 잊어버린단 말이야.’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평소의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강진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잊어버리고 만다.
평소에 보여주는 조금은 맹한 모습과 대적자를 앞에 두었을 때 보여주는 모습 사이의 괴리가 워낙에 크기에 벌어지는 일이리라.
조규민은 앞으로의 언행을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이라…….’
물론 중국에서 충분히 문제가 될 만한 일을 벌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까지 사람을 보내다니.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조규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폰을 들었다.
“회장님께 제가 만나 뵙기를 청한다고 말씀 전해 주십시오.”
* * *
“진호야.”
“예.”
“너, 아무래도 촬영장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촬영장이요?”
아침부터 그를 찾는 어머니를 보며 강진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송국이라니?
“은영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촬영장이라면 강은영과 관련된 일이었다.
“걔 이번에 드라마 들어간 건 알고 있니?”
“아, 그래요?”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은영은 가수가 아니던가. 가수가 왜 드라마를 찍는단 말인가. 노래나 부를 것이지.
“몰랐어요.”
“……그래. 여하튼 은영이가 이번에 드라마 들어갔는데, 물건을 놓고 간 모양이다. 좀 가져다주거라.”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드라마 촬영을 하는 데 필요한 물건이 집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뭘 가져다주면 되는 거예요?”
“팩트.”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들, 확실하게 진실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화장품이야.”
“……예.”
강진호가 어머니가 내민 종이 가방을 받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쪽에도 메이크업하시는 분들 다 있지 않나요? 굳이 집에서 이런 걸 가져가야 할 이유가?”
“비싼 거다. 은영이가 자기한테 잘 맞는다고 해외에서 직구한 건데, 놓고 갔다고 아침부터 전화 와서 징징대더라. 그냥 좀 가져다줘.”
“으음…….”
강진호가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그런데 촬영장이 어디에요?”
“어디라더라? 잠깐만.”
어머니가 휴대폰을 뒤적이더니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영덕.”
“……네?”
“출발해, 아들.”
“자, 잠깐만요, 어머니?”
부우우웅.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엑셀을 밟았다.
‘요즘은 금동이 탈 일이 잘 없네.’
전역을 하고 나서부터는 자전거를 탈 일이 잘 없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활동 반경이 예전보다 훨씬 더 커졌기에 아무리 그라도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기에는 부담이 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 차에도 꽤나 익숙해졌다.
금동이와는 비교되지 않는 속도로 나아가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다.
“그런데 왜 드라마를 영덕까지 가서 촬영하는 거지?”
바다가 필요하면 가까운 인천도 있고 강원도도 있는데, 왜 그리 멀리까지 가서 촬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강진호였다.
우우우웅!
애정을 담아 붕붕이라 이름 붙인 그의 차가 낮은 배기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했다.
네비게이션이 표시하는 시간을 반으로 당겨 버린 강진호가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끼며 강진호는 한숨을 쉬었다.
“커버라도 씌워야 하나.”
이 차의 가장 큰 단점은 차에서 내릴 때였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차를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씩은 당연히 따라오고, 그 차가 주변에 주차라도 하면 대체 누가 내리는가를 다들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이다.
강진호는 얼굴에 따갑게 꽂히는 시선을 피해서 인적이 많지 않은 곳까지 빠르게 걸어 이동한 다음 전화를 걸었다.
“너 어디냐?”
[오라비? 왔어?]“어디냐고.”
강진호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어렸다. 이 종이 가방을 전해 주고는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나 지금 메이크업 중인데……. 미안한데, 이쪽으로 와서 좀 주고 가면 안 될까?]강진호의 몸을 부르르 떨렸다.
“못 나와?”
[내가 지금 나가면 언니들이 기다려야 하는데, 그럼 언니들 쉬지도 못하거든.]“알았다. 어디냐?”
[안쪽으로 쭉 들어오면 컨테이너 모여 있는 데가 있어. 잘 찾아와. 이제 나 입 벌리면 안 돼. 끊는다.]뚝.
전화가 끊기자 강진호가 낮게 심호흡을 했다.
저 바글바글대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강은영이 있는 컨테이너를 찾아내라는 것은 꽤나 힘든 미션이었다.
‘간다.’
강진호가 눈을 빛내며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여긴 못 들어가요.”
“강은영 안에 있어요?”
“강은영?”
“강세아요.”
“아, 강세아 씨?”
메이크업실을 지키고 있던 이가 강진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여긴 못 들어갑니다. 선물 전할 게 있으면 소속사로 전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애초에 여기는 일반인 못 들어오는 곳인데,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왔어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가세요.”
“아뇨. 선물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이 있다고 해서 전달하러 왔습니다.”
“네네, 알겠으니까…… 그 필요한 물건은 소속사에다 주시구요, 여기로는 절대 못 들어가니까 얌전히 돌아가세요. 경찰 부르기 전에.”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이를 보며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강은영에 대한 경호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제지 없이 저 안까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면 강진호는 되레 화를 냈을 것이다.
강진호가 휴대폰을 들고 강은영에게 전화를 했다.
“앞인데, 나 못 들어가고 있다. 나와.”
간단히 용건을 전한 강진호가 전화를 끊고는 그 자리에서 강은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응?”
강진호가 하는 양을 지켜본 경비원이 강진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어? 저 사람?’
유명한 강은영의 동영상에서 본 적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때 인터뷰를 한 얼굴이 아닌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얼굴을 보니 확실한 것 같았다.
“아, 저기…….”
그때, 컨테이너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은영이 고개를 뺴꼼히 내밀었다.
“오라비!”
강진호가 강은영을 보며 나직하게 이를 갈았다.
“너!”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은영이 다급하게 달려오더니, 강진호의 팔을 부여잡고 컨테이너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빨리! 빨리!”
“끙.”
강진호와 강은영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경비원이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모자만 벗었으면 알아봤을 텐데.’
푹 눌러쓴 모자에 거무튀튀한 트레이닝복.
누가 봐도 스토커의 전형적인 복장이 아니던가.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저러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네.”
경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