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24
#1923.
반격하다 (3)
쿠우우웅!
나가떨어진다.
바닥에 처박힌 바토르의 육체가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이사들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차이가…….’
분명 내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바토르의 내력은 수백 년간 내력을 쌓아온 장민과 대등할 정도다. 저들이 과거의 인물들이라고는 하지만, 새로운 육체에 내력을 쌓은 시간은 불과 백 년.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힘?
힘은 오히려 바토르가 압도한다.
속도 역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바토르가 오히려 십이비도보다 앞서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그 육체를 운용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어른만큼, 아니, 그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백연홍과 상대했을 때는 알 수 없던 것.
그제야 새삼 이곳의 모두는 빤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저들은 이미 과거에 한 시대를 지배했던 자들.
다시 말하자면, 그 시대의 모두를 이겨낸 이들이라는 점이다. 지금의 시대보다 더 많은 무인들이 치열하게 싸우던 그 시절에 아마 저들 역시 과거에는 자신보다 더 빠른 이들, 자신보다 내력이 더 강하고, 자신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이들과도 싸워왔겠지.
그런 이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더 오를 곳이 없는 곳에 도달한 이들이다.
‘막대한 경험과 어마어마한 운용력인가.’
이건 단순히 힘이 세진다고 해서, 내력이 더 강해진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있을 만한 영역이 아니다.
‘아직도 멀었다는 건가.’
위긴스의 얼굴이 막 굳어지려는 찰나였다.
“꼴좋군.”
장민이 비웃음 어린 눈으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본 위긴스가 굳어가던 몸을 풀었다.
평소 투닥대는 두 사람이기는 하지만, 정말 바토르가 위기에 빠졌다면 장민이 저런 식으로 이야기할 리가 없다. 아마 그보다 먼저 바토르에게 달려들어 구하려 했을 것이다.
“기술이니 운용이니…….”
장민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가 나보다 나은 점이 있는 건 당연한 거다. 애초에 모든 게 나보다 나은 이와는 싸움조차 할 수 없는 법이지.”
“…….”
“전투란 나의 강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두드리는 것.”
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퍼져 나갔다.
“상대의 강한 부분을 굳이 따라잡을 필요는 없지. 결과적으로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야.”
위긴스는 그때 깨달았다.
이건 그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이건 지금 쓰러져 있는 바토르에게 하는 말이었다. 바토르 역시 그 사실을 이해했는지 바닥을 움켜잡았다.
“흐…….”
덜덜 떨며 상체를 일으켜세운 바토르가 눈을 부릅뜨고 장민을 바라보았다.
“잔소리는…….”
“흠.”
“이미 알고 있다.”
쿵!
바토르가 바닥을 내밟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며 낭곤이 눈을 찌푸렸다.
‘타격이 수도 없이 들어갔는데.’
둔중한 방어를 뚫고 그의 곤이 여러 번 얼굴을 때렸다. 이만큼이나 얻어맞으면 보통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법이건만, 바토르의 얼굴에는 벌써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회복력.
애초에 육체 자체가 일반적인 기준을 아득하게 벗어났다.
‘외공이라…….’
낭인으로 살다 보니 필연적으로 조잡한 외공을 익힌 자는 여럿 만나보았지만, 저렇게까지 외공을 익힌 자는 본 적이 없다. 그가 살던 시대에서도 말이다.
무학에는 삼류도 없고 일류도 없다. 어떻게 익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 빤한 진리를 지금 바토르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강점으로 약점을 두드린다라…….”
그래, 그건 분명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하지만…….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 말은 내게도 통용되는 말이지. 이해가 어렵다면…….”
낭곤의 눈이 빛을 발했다.
“몸으로 알게 해주는 수밖에!”
그 순간, 바토르가 선수를 치며 권을 내뻗었다.
“오오오오오!”
권력.
마기까지 끌어 올린 권력이 불타오르며 낭곤을 향해 쏘아진다. 하지만 그 권력이 채 닿기도 전에 낭곤의 몸이 그 자리에서 퍽, 꺼지듯 사라졌다.
‘어디!’
아래!
몸을 낮춘 낭곤이 권력의 아래로 달려 들어온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어깨가 마치 권력을 긁어 대는 듯 바짝 닿아 있다.
최소한의 거리.
조금의 낭비도 없이 권력을 피해내며 바닥을 쓸 듯이 날아들었다.
이미 한 번 본 것이건만, 경이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보법이었다.
낭곤의 힘은 휘두르는 곤에서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난전을 겪고, 말도 안 되는 수의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이. 그가 쌓아 올린 무학은 말 그대로 전장의 무학.
낭비를 최대한 줄이고, 최소한의 힘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특화되어 있는 무학이다.
하지만 바토르 역시 우둔하지는 않다.
파아앗! 파앗! 파아아앗!
일격에 어마어마한 힘을 실어내던 권력이 그 운용을 바꾼다. 짧게 끊어 치는 권력이 마치 기관총처럼 날아드는 낭곤을 향해 쏟아졌다.
짧게 끊어 친다고는 하나, 막대한 내력과 외공을 바탕으로 한 권력은 그 한 방, 한 방이 단련된 육체를 으스러뜨리기에 충분한 힘을 담고 있었다.
쾅!
달려들던 낭곤의 발이 바닥을 걷어찬다. 그 단 한 동작으로 몸에 실린 속도를 모조리 해소해 버린 낭곤의 무릎이 느슨하게 풀렸다.
카앙!
날아드는 권력을 곤으로 쳐낸다.
일반적으로는 상대하는 이 역시 수십, 수백의 타격으로 상대의 권력을 만들어내는 벽을 세우기 마련이지만, 낭곤이 택한 방식은 달랐다.
그의 곤이 간결하게 휘둘러지며 날아드는 권력을 일일이 쳐냈다.
가공할 집중력, 그리고 가공할 속도였다.
쿵!
그리고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제 자리에서 바토르의 권력을 받아치던 낭곤의 발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졌다.
이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점점 속도를 붙여 나가던 낭곤의 몸이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향해 비처럼 쏟아지는 권력을 모조리 후려쳐 날리면서도 어마어마한 속도가 붙었다.
경이적인 광경.
순식간에 낭곤이 바토르의 바로 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하핫!”
그 모습을 보며 바토르의 눈이 광기를 머금은 듯 일렁였다.
심장이 터질 듯 뛴다.
타격을 입은 육체가 으스러지도록 아파왔지만, 그 이상의 쾌감이 꼬리뼈부터 전신으로 번져 나간다.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본 적 없는 영역.
초인과 초인의 싸움이라는 미답의 경지에서의 싸움은 그를 지금껏 없던 정도로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쿵!
내뻗은 손을 회수한 바토르가 바닥을 내밟으며 중단세를 취했다.
‘이게 아니야!’
아무리 그가 강하게 권력을 내뿜는다 해도 홍왕만 하겠는가.
아무리 그가 화려하게 장력을 날린다 해도 저 홍왕보다 강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홍왕을 만신창이로 만든 자들이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데 이런 방식이 통할 리가 없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강점이 뭐지?’
잊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잊고 휘말렸다.
따라잡아야 했으니까.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했으니까.
물에 빠진 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이고,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이는 결국 소금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넋 놓고 앉아 죽느니 안 되는 일이라도 해보는 편이 백배는 더 나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는 더는 표류하는 이도 아니고, 물에 빠진 이도 아니었다.
그가 믿어야 할 건 자신.
바로 자신의 육체다!
고오오오오!
외부로 돌려지던 기운이 그의 몸으로 다시 회수된다. 그러자 휘도는 모든 기운들이 피부와 근육에 모이기 시작했다. 검은 마기의 영향을 받은 육체가 검게, 아주 시꺼멓게 물들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완벽한 육체가 검게 물들자, 마치 검은 다이아몬드를 보는 것만 같았다.
달려들던 낭곤의 눈에도 이채가 어렸다.
‘뭐지?’
이런 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수많은 격전을 치러온 그조차도 말이다.
하나 생각할 틈 따위는 없다.
아래를 쓸 듯 곤을 휘두른 낭곤이 바토르의 다리에 곤이 닿기 직전에 당기듯 회수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몸을 팽이처럼 돌려 비어 있는 바토르의 머리를 향해 곤을 내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그의 곤이 바토르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때렸다.
하나 그 순간.
‘뭣!’
사람의 몸을 때린 감각이 아니다.
단련되지 못한 이가 단단한 철벽을 쇠몽둥이로 후려 쳤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감각. 손목이 터질 듯 저려오고, 곤을 잡은 손아귀가 비명을 질러 댄다.
이어…….
콰드드득!
비어 있는 그의 옆구리에 바토르의 팔꿈치가 파고든다. 몸을 비틀어 직격을 피해내긴 했지만, 팔꿈치가 육체에 닿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퍼어어어어억!
쇠몽둥이가 고깃덩어리를 후려치는 듯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낭곤의 몸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쿠웅!
허공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낭곤이 허공을 걷어차며 튕겨 나가던 속도보다 더 빨리 바토르를 향해 돌진한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던 일 수.
쾅! 쾅! 쾅! 쾅!
양손에 들린 곤이 춤을 추듯 바토르의 전신으로 떨어져 내린다. 눈 한 번 깜짝할 시간에 이루어진 수십 번의 타격!
곤이란 가장 기본적인 무기.
그렇기에 휘둘러 때린다는 공격의 기본에 가장 적합한 무기다.
칼보다 더 빠르고, 검보다 더 강하며, 봉보다 연환에 더 적합하다.
일순 이어진 수십 번의 타격이 검은 다이아몬드의 표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하지만 그 순간.
쿵!
바닥을 부술 듯 내밟은 바토르가 날아드는 곤을 무시하고 정권을 찔러 넣었다.
검은 윤기가 흐르는 그 주먹에 맞는 순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낭곤이 허공을 박차며 몸을 뒤로 빼냈다.
하지만 그 순간.
“오오오오오오!”
뻗어내던 주먹이 쫙 펴지며 바토르가 마치 허공을 움켜잡는 듯 손을 당겨냈다. 그에 호응하듯 그의 몸이 주먹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물러서는 낭곤을 향해 돌진했다.
육탄박치기.
평소라면 허용하지 않았을 공격이다. 하지만 허공에서의 방향 전환은 땅을 딛고 있을 때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법.
“큭!”
피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낭곤이 곤을 교차해 자신의 앞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그 몽둥이가 교차한 지점으로 바토르의 어깨가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치 폭격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충격이 사방을 휩쓸고, 그 충격에 산이 산사태를 일으키고, 세상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그리고…….
그 충격이 가라앉은 곳에서…….
“쿨럭!”
엉망이 된 몰골의 낭곤이 곤으로 바닥을 지탱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에서 피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이…… 이…… 빌어먹을…….”
불신과 분노를 담은 그의 눈이 건너편으로 쏘아진다.
“흐…….”
그곳에서 바토르가 천신처럼 서서 웃었다.
“말했지, 뭉개준다고.”
살이 터진 이마와 정수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지만, 바토르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멀지는 않아, 그렇게.”
“…….”
“흐…….”
털썩.
바토르의 몸이 일순 허물어져 바닥에 처박혔다.
“뭐?”
위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장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카운터를 처 맞았군. 등신 같은 놈이.”
바토르의 턱에 나 있는 붉은 몽둥이 자국을 본 장민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이래서 우둔한 놈은.”
저벅.
그가 앞으로 한 발 나서서 피를 쏟아내는 낭곤을 직시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장민이 기괴한 미소를 입에 담았다.
“나는 부상자라고 봐주지 않거든.”
“…….”
그 교주에 그 장로라고 생각해 버린 위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