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26
#1925.
반격하다 (5)
무학에는 언제나 딜레마가 존재한다.
최고의 파괴력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것을 우선할 것인가.
대부분의 무학은 그 중간 어림 어딘가에서 절충점을 찾기 마련이지만, 그렇다 해도 추구하는 방향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다.
파권이 태어난 황보세가는 파괴력을 추구하는 문파였다.
강력한 내력과 호방한 권력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단번에 찍어 누른다.
하나 파권은 그 방식에 대한 의문을 버리지 못한 이였다.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고 해도 맞추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공격이란 상대의 몸에 닿아야 공격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빈 허공에 휘두르는 무의미한 손짓과 다를 바가 없다.
산을 부술 권력도, 바다를 가르는 검격도 적의 육체에 닿지 않는다면 그저 힘 낭비에 불과하다.
어릴 적부터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은 화두는 결국 그로 하여금 가문의 가르침을 배척하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비난과 물리적인 폭력, 그리고 더없는 압박 속에서도 그는 그의 길을 관철해 냈다.
그렇게 완성한 권.
동작은 최대한 낭비 없이 작게.
상대의 공격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흘려내고, 그 최소한의 동작으로 벌어낸 시간으로 상대보다 한 발 더 먼저 움직인다.
현대에는 지극히 당연한 법칙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당연하지 못했다. 내력을 가진 인간은 단 일격만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고, 단단한 방어 위로도 적의 내장을 터뜨릴 수 있다.
그러니 더 강한 공격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정도로 여겨진 것이다.
하나 그 정도는 파권의 권 앞에 모조리 꺾였다.
이름조차 붙지 않은 권.
오로지 그에게 맞춰 완성되었기에 그 누구에도 전수할 수 없던 권.
이 권법은 파권의 자존심이자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진다.
파아아앗!
주먹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마치 채찍 끝이 허공을 때리는 소리처럼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타.
근육 한 올, 한 올에 담긴 힘을 모조리 끌어낸다. 호흡마저 멈춘 채 내력과 근력을 쥐어짜 정교한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과도 같은 연타를 뽑아낸다.
상대에게 일말의 틈조차 주지 않은 채 쏟아지는 연격.
이 권격에 노출된 이들은 반격조차 시도해 보지 못한 채 곤죽이 되어 죽어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파권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그가 익히 알던 그 광경이 아니었다.
타닥! 탁!
장난처럼 휘저어지는 손.
딱히 규칙성도 찾을 수 없고, 정교함은 보이지도 않는.
무학이 뭔지도 모르는 자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은 손짓이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손짓에 파권이 내지르는 권격이 모조리 막히고 있었다.
‘어떻게?’
아니. 안다.
이유는 너무 명확하다.
‘큭!’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 권의 속도를 높인다.
인식을 뛰어넘는 속도.
숙련된 복서의 주먹은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없다. 주먹이 출발하여 몸에 닿는 속도가 눈으로 주먹의 움직임을 인식하여 머리에서 처리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싱을 하는 이들은 주먹이 아니라 어깨와 팔꿈치 등 공격이 아닌 공격의 전조를 보고 미리 반응한다.
하지만 그의 권은 전조가 존재하지 않는 권.
상식적으로는 아무리 무학으로 단련되어 반사 신경을 극한까지 올린 육체라고는 하나, 그의 권이 출발하는 것을 보고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야 옳다.
하지만 지금 그의 그런 상식은 여지 없이 깨어졌다.
보라.
파아아앗!
근육의 한계까지 짜내고 짜내 날린 일권.
하나 그의 주먹이 채 뻗어지기도 전에 이미 강진호의 손이 그의 주먹이 나아갈 곳에 미리 도착해 있다.
‘어떻게…….’
턱!
그의 주먹이 강진호의 손에 잡힌다.
“…….”
파권의 눈이 형용할 수 없는 눈빛을 머금고 뒤흔들렸다.
그의 권은 일체의 낭비를 줄인 무학.
모든 것을 최소화하고, 상대의 몸에 주먹이 닿는 것을 최우선시 한 무학이다. 그 말인즉슨, 모든 이점을 버리고 속도와 연타에 가용 자원을 모조리 투자한 무학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저 제멋대로 휘두르는 낭비 투성이의 주먹이 그의 권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아아아아아악!”
저도 모르게 고함을 내지른 파권이 폭발적인 연타를 날린다.
영혼의 마지막 한 방울을 쥐어짜듯, 뒤를 돌아보지 않는 공격.
하지만 그 폭우처럼 쏟아지는 연타의 단 한 방울조차 강진호의 육체에 닿지 못했다.
‘더! 더!’
순간적으로 과한 내력을 뽑아 올려서인지 단전이 찢어질 듯 아파오고 전신의 기혈이 비명을 질러 댄다. 하지만 파권은 공격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공격이 멈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안다.
고함을 내지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되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갈 뿐이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쓸데없는 기력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파권은 고함이라도 질러 대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절망의 벽이다.
무슨 수를 써도 뚫리지 않고, 아무리 악을 써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
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절망의 벽.
콰아아아앙!
내뻗은 권력과 권력이 서로 충돌하며 연쇄적으로 맞물린다. 그 충격에 파권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왔다.
탁.
딱히 대단한 타격을 입은 건 아니다.
그저 이어지는 연격을 더 이어가지 못했을 뿐.
하지만 파권의 얼굴에는 팔다리가 잘려 나간 이나 지을 법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헉, 허억, 헉, 헉…….”
얼굴 전체가 땀으로 범벅되어 있다.
무인의 영역을 넘어 초인의 영역까지 발을 들인 이가 이토록 땀을 흘려 대는 광경은 평생을 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파권은 운동에 익숙하지 않은 이가 과격한 운동을 한 것처럼 땀을 흘려 대고 있었다.
통제되지 않은 채 뛰는 심장.
느슨하게 풀려 천 근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팔다리.
가빠오는 숨.
덜덜 떨리는 손을 어쩌지 못한 파권이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대체…….’
순간적으로 한계까지 다녀왔다.
하지만 그의 최선을 상대한 강진호는 처음 그와 마주했을 때의 모습과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그저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손끝조차 들썩이지 않는다.
압도적인 차이.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가를 알아버린 파권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절망뿐이었다.
말없이 파권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빠르군.”
“…….”
파권의 손이 얼굴을 흠뻑 적신 땀을 훔쳐 낸다.
‘마존.’
그 이름이 왜 절망의 상징이었는지 알 것 같다.
강하다. 그래, 강하다.
하지만 지금 강함이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 어떤 수도 통할 것 같지 않다.
땅을 딛고 살아가는 짐승이 아무리 악을 써봐야 하늘을 날고 있는 새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그가 어떤 수를 쓴다고 해도 이 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압도적인 절망감.
“이…….”
파권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전신을 덮쳐오는 절망감 앞에 그대로 좌절할 사람이었다면, 파권의 명성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압도적인 절망을 마주하면서도 파권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럴 리가 없어.’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가장 큰 장기인 속도는 마존에게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부가 끝난 것은 아니다.
파아아아앗!
파권이 한 줄기 빛살과도 같이 강진호에게로 달려든다.
‘강하게!’
바닥을 박찬 그의 발이 강진호의 머리를 후려친다.
속도를 적당히 포기한 대신 평소의 몇 배나 되는 내력을 실은 공격.
쿵!
살짝 들어 올린 강진호의 팔이 파권의 발차기를 막아낸다. 하지만 파권 역시 이 일격으로 강진호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파앗! 파아아앗!
허공에서 파권의 발이 강진호의 얼굴을 연신 걷어찬다.
순식간에 십여 개의 각영을 만들어낸 파권이 발끝에 걸리는 감각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닥으로 낙하하듯 아래로 쏘아진다.
그의 팔꿈치가 강진호의 발등을 노리며 내꽂아졌다. 하지만 팔꿈치가 발등에 닿기 직전, 강진호의 발이 뒤로 가볍게 옮겨진다. 내력을 잔뜩 실은 팔꿈치가 애꿎은 바닥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앙!
파권이 양팔로 바닥을 후려치며 강진호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상대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목숨을 건 각오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파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여기다!’
그가 가장 유리할 수 있는 거리.
그건 그의 단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거리다. 서로 주먹을 완전히 내뻗지 못하고 촌경(寸勍)만으로 공격할 수 있는 거리. 바로 이곳에 그의 승산이 있다.
‘짧게!’
그의 근육이 잔뜩 긴장한 채 덜덜 떨어 댄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낸 그림의 마지막 점을 찍는 것처럼 일 격, 일격에 그의 모든 것을 실어낸다.
파바바바박!
순식간에 십여 번의 촌경이 강진호의 가슴을 후려친다. 단 한 치의 거리만으로 가속하여 모든 힘과 내력을 실어내는 타격.
문외한이 보자면 앙탈을 부리는 듯 작은 두드림에 불과하지만, 그 일격, 일격에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위력이 담겨 있다.
‘어떠냐!’
아무리 마존이라고 한들, 이만한 연격을 가슴에 허용한 이상 타격이 없을 수 없다.
‘물러서라!’
이 한 번의 연격으로 쓰러뜨릴 수는 없겠지만, 분명 다시 거리를 벌리려 할 터. 그의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는 순간, 내력 한 올도 남기지 않을 기세로 추적해 공격을 쏟아붓…….
그 순간이었다.
콰드드드득!
파권의 몸이 쏘아진 포탄처럼 날아갔다.
쾅! 쾅! 쾅!
바닥에 처박힌 몸이 떠올랐다 다시 처박히고, 다시 처박히기를 반복한 끝에 그의 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끄으으윽…….”
파권의 덜덜 떨리는 손이 옆구리를 움켜잡는다.
흙에 처박힌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그의 옆구리가 마치 찰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때린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다.
“……쿨럭!”
그의 공격이 격중한 순간, 강진호가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그의 옆구리에 팔꿈치를 틀어박은 것이다.
‘그럴 리가…….’
순간적으로 그의 약점을 파악할 수는 있다. 빈틈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가장 적절한 공격을 완벽하게 찾아내 시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평생 권을 익혀온 이들끼리나 오가는 공격이 아니던가.
그가 알기로 마존은 절대 권사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퉤!”
강진호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낸다.
그의 공격이 분명 타격을 입혔다는 의미. 하지만 그 사실이 파권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했다.
“이번 건 괜찮았어.”
“…….”
“계속하지. 다만…….”
강진호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와 동시의 그의 몸 주위로 검은 마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기처럼 피어난 마기가 몸 주변을 휘감아 돈다. 마치 검은 불꽃이 전신을 태우는 것처럼.
“이제는 내 방식대로.”
꿈에 볼까 무서운 미소를 지은 강진호의 얼굴은 검은 마기가 뒤덮는다.
붉게, 더없이 붉게.
핏빛으로 물든 안광이 파권의 심장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