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33
#1932.
대작하다 (2)
[보시다시피 건물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구조대와 공안이 현재 구조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생존자가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은 상황입니다.]기자의 뒤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가 보인다. 얼마나 깔끔하게 무너졌는지, 말을 듣지 않고 보이는 광경만 보면 폐자재들을 적당히 쌓아놓은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 뒤로 보이는 드높은 건물의 형상들만이 이 광경이 얼마나 어색하고 기이한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건물 붕괴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발생한 테러와의 연관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당국은 연관성을 부정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건물이 지어질 때 부실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무너진 건물 주위와 쌓인 폐건물 더미 위로 구급대원과 소방대원들이 바쁘게 오고 간다. 그리고 밀려오는 취재진들을 공안들이 격하게 밀어내는 광경이 카메라에 똑똑히 잡혔다.
[유가족들은 사건 현장을 한시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참사를 맞이한 시민들과 부모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지랄을 하네.”
방진훈이 혀를 차댔다.
새삼 궁금해진다.
저 기자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저렇게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모든 걸 알면서도 태연하게 저렇게 보도를 해 대는 건지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중간 어딘가겠지.
분명 현장에 갔다면 부실로 인한 붕괴 같은 게 아니라는 건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자세한 사정 같은 건 알 수 없어도 공안이 말하는 게 사실이 아니란 걸 모를 리는 없다.
하지만 그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겠지.
“통제가 이렇게까지 된다는 것도 대단하군.”
“그럴 리가 있나.”
장민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게 될 리 없지. 공중파와 신문의 공신력이라는 걸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게 된 게 언젠데.”
“맞습니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SNS 쪽에서는 이번 일이 이상하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특히나 중국 쪽 SNS가 아니라 해외 SNS에서는요.”
“해외 사람들이 더 난리라는 소린가?”
“아니요. 중국 내 SNS에서는 발언을 조심해야 하니, 해외 사이트에 접속한 중국인들이 그리 말하고 있는 거죠.”
“별…….”
방진훈이 눈을 찌푸렸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한국이 이런 사건을 은폐하려 들었다가 들통이 나는 날에는 정권이 무너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이 사건이 벌어진 게 중국이라는 점이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는 방진훈이었다. 평소에는 중국 정부에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방진훈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중국 정부의 말도 안 되는 통제력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새끼들.”
새삼 저 광경을 보니 흑왕계가 무슨 짓을 저질러 댔는지 알 것 같았다.
특히나 될 수 있으면 검경들과 얽히지 않기 위해서 온갖 골머리를 싸맸던 방진훈의 입장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공포스럽네요.”
이현수의 입에서 보기 드물게 약한 소리가 나왔다.
“저 광경이?”
“……아니, 저 광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말이죠.”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이현수는 과감하게 저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무리겠지. 아니, 절대 못해.’
민간인을 희생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입 밖으로 낸다면 욕을 들어 처먹거나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이현수는 총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 민간인들에게 피해가 가든 가지 않든, 얼마든지 일을 저지를 자신이 있었다.
속죄?
어차피 이현수는 죽으면 지옥 밑바닥에 떨어질 인간이다. 지금까지 저지른 죄를 속죄할 방법도 없는데, 앞으로 저지를 죄악을 겁낼 이유가 뭔가.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문제다.
저런 일을 저지르고 뒷감당을 한다?
절대 불가능하다.
당장 이현수가 서울 한복판에 있는 건물을 무너뜨리는 순간, 국내에서 관계를 맺어오던 모든 이들이 적으로 돌아설 것이다.
정권은 물론이고, 군부, 운이 나쁘다면 미국 측까지 총회를 손절해 버릴지도 모른다.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감당해 본다고 치자.
이 사태의 여파로 무인계가 세상으로 드러나 버린다면?
평범하게 살아오던 세상에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로 자신들의 목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존재들이 양의 탈을 쓰고 활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패닉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그건 평범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장전된 기관총을 들고 다니는 이들이 도시를 활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한 이들에게는 작은 권총 하나 소지하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
막말로 ‘이 총은 장전이 되어 있고, 언제든 발사될 수 있기는 하지만, 다들 교육받고 통제된 이들이라 사고가 나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을 누가 들어주겠는가.
이현수라고 해도 그 입장이 된다면 당장 저 미친 새끼들을 세상 밖으로 몰아내라고 악을 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무인계는 그날로 파멸이다.
“……진짜 노리는 게 그건가?”
이현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아니, 그…….”
이현수가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아득바득 무인계의 존재를 감추려는 이유가 그런 거잖아요. 그…….”
“걸리면 좆 되니까 그런 거지.”
“아니, 그 말도 맞는데…….”
왜 망하는가가 중요하다.
“공존이 불가능하고, 우리는 무인계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쉽게 말하면 무인계는 무인들의 생존을 위한 터전 아닙니까?”
“그렇지.”
“다들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무학을 익힌 우리가 평범한 이들의 사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그래서 총회가 탈퇴한 이들이 사고를 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무공을 폐하는 것 아닙니까.”
“뭐 빤한 소리를 하고 있어.”
방진훈의 말에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다시 말하자면, 무인계를 지킨다는 건 우리 미래를 지킨다는 겁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게 사실이죠.”
방진훈이 입을 다물었다.
이현수가 생각 이상으로 진지하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그런데…… 흑왕계에게는 무인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들은 애초에 무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아왔으니까요. 쉽게 말해서 저들은 당장 내일 무인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는 거죠.”
“…….”
“그러니 무너져도 상관이 없다. 세상으로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 그저 부숴 버리면 그만이다.”
“미친 소리 하고 있네.”
방진훈이 삿대질을 했다.
“미친놈들이랑 머리싸움을 하다 보니 너도 머리가 돌아버린 거 아냐? 그런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지! 뭐, 그 흑왕이라는 양반이 어릴 때 무인들에게 부모라도 잃어서 복수심에 불타기라도 한대? 무인계를 없애서 저 양반들이 보는 이득이 뭔데?”
“…….”
“전쟁이라는 건 이겨서 얻을 게 있어야 벌어지는 거야. 얻을 게 없이 벌어지는 전쟁은 소설 속에나 나오는 거고. 무인계가 있는 채로 저놈들이 전쟁에서 이기면 지배자가 되지만, 무인계가 사라지면 달라지는 게 없잖아. 그런데 왜 그런 미친 짓을 해?”
이현수조차 일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방진훈답지 않게 이건 꽤 정곡을 찌른 말이다. 모든 행동에는 지향점과 목표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무인계를 무너뜨린다는 건 행위일 뿐, 목표가 될 수 없었다.
왜 무너뜨리는가.
“원점이네요. 도무지 흑왕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그가 노리는 게 뭔지도 모르니까.”
“목적이라니. 홍왕을 끌어내 죽이려고 한 것 아니었어?”
“……생각해 보십시오. 흑왕은 홍왕이 요격에 나설 것을 알고 그쪽에 미리 십이비도 중 둘을 보냈습니다.”
“뭐 빤히 아는 소리를.”
“그와 동시에 저 건물을 무너뜨렸어요. 전혀 관계가 없는, 몇 백 킬로는 떨어져 있는 곳에서.”
“…….”
“만약 흑왕이 홍왕을 잡아 죽일 목적으로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면, 저건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거죠. 오히려 그가 할 짓에 방해만 됩니다.”
“흐음, 맞는 말이야.”
위긴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약 총회가 오지 않았다면, 흑왕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을 것이다.
그럼 그 뒤에 흑왕은 멈췄을까?
홍왕계를 정리하고 접수하는 선에서 멈췄을까?
아니, 아니다.
본능이 말하고 있다. 이 모든 행위는 단순히 홍왕계를 접수해 중국을 먹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뭔가 거대한 것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이다.
“막아야 한다라…….”
위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잠시 한국에 다녀오겠네.”
“게이트까지 가셔서 말입니까? 호위라도…….”
“아니, 괜찮네. 나 혼자 이동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게이트까지 텔레포트하고, 다시 게이트를 타면 되니까.”
“아…….”
위긴스의 실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을 잠시 잊은 이현수였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흑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끼리 이해하는 건 어려울 것 같군. 조언을 구해야지.”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도움이 될지…….”
“그런 얼굴 하지 말게. 나라고 해서 마스터를 떠받들어 모시는 건 아니니까. 그를 현자쯤으로 생각해서 생각을 위탁하는 게 아닐세. 그저…….”
위긴스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이건 한 발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일일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일세.”
“…….”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위긴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혹여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게. 내 생각에는…… 이 평화가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거든. 그리고…… 다음에는 저쪽 역시 우리의 전력을 생각하고 움직이겠지. 그때는 정말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 시작될 거야.”
“……알고 있습니다.”
“믿네.”
이현수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준 위긴스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이현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 없는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군.’
홍왕과 싸울 때는 더없이 힘겨웠다. 창왕과 싸울 때 역시 지옥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를 저지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전략의 문제라든가 전술의 문제가 아니다.
‘몽골군을 상대하는 유럽인들이 된 기분이로군.’
그건 그저 재해로 여겨졌다고 했나?
지금 이현수가 그런 기분이다. 목적이 불확실하지만, 더없이 치명적인 재해를 상대하는 기분.
“뭐가 그리 복잡하지?”
장민의 말에 이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마존이시라면 이렇게 말했을 게다,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무슨…….”
“목적이고 뭐고, 적은 명확하니까. 저들의 목적이 뭐든 흑왕의 목을 베어버리면 이 전쟁은 끝난다.”
“…….”
“때로는 단순한 게 가장 옳은 법이지. 그렇지 않나?”
“동감이다, 영감! 저놈은 머리가…….”
“처 맞고 기절한 놈은 닥치고 있지그래?”
“뭐라고?”
갑자기 투닥대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우선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흑왕의 소재를 알아내는 일.
굴속에 숨은 뱀처럼 보이지 않는 그를 그들과 같은 땅으로 잡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차이커창과 논의를 해봐야겠군.’
어쩌면…….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