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38
#1937.
무너지다 (2)
[그래서 이걸 어떻게 수습할 셈이오?]“…….”
류제[刘杰]의 볼이 살짝 경련을 일으킨다.
그가 화면 너머로 보이는 노인을 보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풍채 좋은 노인의 눈에서 그를 힐난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방부장이라는 드높은 직위에 올라 있는 그가 당의 상관이 아닌 이들에게 이런 눈빛을 받아볼 일이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그가 저 건방진 눈빛에 반발할 수 없는 이유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역시 만만한 직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일러 아론.
미합중국 국방부 장관.
그가 아무리 중화인민공화국 국방부장이라고는 해도 실질적인 권한조차 타국에 비해 열세인 직위로는 미국 국방부 장관을 상대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안 들리시오?]류제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말을 했지만, 그건 국내의 일이오. 이리 말씀하시는 건 내정 간섭이오.”
더는 끼어들지 말라는 의미.
하지만 화면 너머로 보이는 이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이 일이 정말 중국만의 일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이건 한 국가의 일이 아니오. 중국에서 벌어진 사태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있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 거요?]류제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빌어먹을 놈이.’
서로가 높은 직위를 가진 국가직들이 회의를 하면 나름 격조 높은 대화가 오고 갈 거라는 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착각일 뿐이다.
외교는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곳.
강압과 비난, 비꼼이 가득한 정글일 뿐이다.
“귀국에서 우려하는 바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중국 역시 이만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소. 지금은 쥐새끼들이 잠시 들썩이고 있는 것뿐, 곧 해결할 테니 잠자코 기다리시오.”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냐는 거요.]“제 말은…….”
[아니, 그전에 당신에게 그럴 권한이 있는지부터 물어야겠지. 왜 내가 당신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모르겠소. 나는 분명 부주석과의 회의를 요청했소만?]류제가 살짝 이를 갈았다.
다짜고짜 연락을 해서 부주석을 비추라니, 이건 예의가 어쩌고 할 차원도 아니다. 아무리 미국이 강국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중국에 대한 무시이자 협박이었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십시오.”
[나 역시 그러고 싶소. 상황이 이렇게 엿같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면.]화면 너머의 타일러 아론이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에 류제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임은 조금 온화한 편이었지. 그래서 당신들의 무능을 얼마든지 참아주었소. 하지만 나는 아니오. 나는 당신들이 사정을 봐주고 싶은 생각이 없소.]“…….”
[군대를 동원하든, 아니면 사병을 동원하든,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미친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막아내시오. 아시겠소? 시대가 바뀌었소. 이제는 더 이상 저 망할 놈들이 제 맘대로 활개 치게 내버려 둘 수 없단 말이오!]‘빌어먹을 놈이.’
듣고 있으면 이런 강짜도 없다.
그에게 권한이나 있냐고 무시하면서 어떻게든 막아내라니. 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대통령께서도 이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오.]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류제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은 이 사태를 단순히 중국의 소요라고 생각하지 않소. 저들은 이미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이 말이오. 중국이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할 시에는 미국이 중국으로 직접 무력을 투입하는 일도 고려할 것이오.]쾅!
탁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난 류제가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내정 간섭이오. 그대가 중국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걸 받아들일 것 같소?”
[이해를 못하는군.]타일러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이쪽을 쏘아보았다.
“…….”
[간섭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처리하시오! 지금 다른 국가들의 원성이 장난이 아니오. 이러다가는 5월의 밤 사태가 다시 터지게 생겼소.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오?]5월의 밤.
과거, 중동 지역에서 과격 종교 분자들이 무인들을 전쟁에 참여 시키려 한 적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총과 미사일이 오가는 전쟁에서 무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하겠냐마는, 적어도 잠입과 테러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무인들을 따라갈 이들이 없는 법.
막대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너도나도 무인들을 동원하여 균형을 깨려는 순간, 지켜보던 유럽과 중국의 무인들이 중동으로 급파되어 그 지역의 무인들을 거의 몰살시켜 버린 일이다.
[그때는 그 정도로 끝났지. 하지만 이번에는 군대가 동원되고도 남을 일이오. 아시겠소? 이건 더 이상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타일러가 이를 갈아붙였다.
[복잡한 국제 규약이 발목을 잡지 않았다면, 이미 군사력을 투입했을 거요. 알아두시오, 우리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저들이 다시 미친 짓을 저지르기 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음 당신이 대면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게 될 거요.]“……그럴 일은 없소.”
[그러길 바라야지. 신이 당신을 축복하길.]화면이 뚝 하고 꺼졌다.
동시에 류제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던졌다.
카강!
휴대폰이 크게 튀어오르며 바닥에 떨어져 쭈욱 미끄러진다.
“빌어먹을 양키 새끼들!”
류제의 입에서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는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더 화가 나는 건, 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제대로 된 반박을 해볼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제길!”
쾅!
류제가 앞에 놓인 탁자를 걷어찼다. 순간적으로 발목에 전기가 통하는 듯 저릿한 감각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몇 번이고 탁자를 차댔다.
“너희가 언제까지 우리 앞에서 그렇게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을 것 같으냐! 빌어먹을 미제 놈들!”
콰앙!
마지막으로 탁자를 걷어찬 류제가 고개를 홱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들어와!”
바로 문이 열리며 대기하고 있던 이가 안으로 뛰쳐 들어온다.
“아…….”
엎어진 탁자와 바닥에 처박혀 있는 휴대폰,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물병을 확인한 사내가 안색을 굳혔다.
“바로 치우라고 하겠습니다.”
“내버려 둬! 그보다!”
“예!”
“홍왕계는 어떻게 됐나? 연락은?”
“연락은 닿습니다.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 개입하지 말라고…….”
“이 자라 새끼 같은 놈들이! 지금 상황에서 뭐가 어쩌고 저째? 그렇게 잘 알아서 하는 놈들이 백주 대낮에 건물이 무너지는 것도 못 막는다고? 이 병신 같은 놈들이!”
류제가 토하듯 고함쳤다.
그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사내가 바짝 긴장하여 부동자세를 취했다.
“추, 추가적인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군부는!”
“방어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저놈들이 도심 한복판에 나타나는 상황인데…….”
사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중화기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도시에 중화기를 진입시킨다는 게…….”
“빌어먹을, 상황이 이 꼴인데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야? 동원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동원해서 막아야 할 것 아냐!”
“하, 하지만 도심에서 중화기를 사용했다가는 피해가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건물이 무너지는 정도로 끝났지만, 시가전이 벌어지게 되면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
“이…….”
류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 말에는 그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지.’
무인들은 너무 위험하다.
그들이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가진 무력이 군을 상회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작은 개체에 너무 많은 힘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군대가 군대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군대와 동일한 힘을 가진 한 인간을 군대가 상대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들은 아무런 제약에 묶여 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일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다 죽여 버려야 한다고 그만큼 말을 했건만!”
물론 당도 이 모든 일에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미 무인계의 말살을 위해서 몇 가지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다. 그러다 모조리 틀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류제는 그 일련의 계획들이 너무 안일했다고 생각했다.
피를 흘리지 않는 숙청은 없다.
적당히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저들의 방식으로 상대해 준다?
웃기는 소리.
전쟁은 그런 게 아니다.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부상을 입은 부위에 소금을 뿌리고 불로 지져 버리는 게 전쟁 아니던가.
그걸 망설였기에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차를 대기시켜!”
“어, 어디로…….”
“주석을 만나 뵈어야겠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류제가 다급한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저놈들 때문이 아니야.’
그가 보기에도 이 사태는 더없이 심각하다. 비슷한 일이 두어 번만 더 벌어져도 국가의 균형이 붕괴된다.
이 상황이 중국에서 벌어졌기에 이 정도로 틀어막을 수 있던 거지, 다른 나라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벌써 폭동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는 한계야.’
그러니 반드시 여기서 막아내야 한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든, 그게 아니면 정말 피를 볼 각오를 하든.
‘이제 주석께서 결단을 내리시겠지.’
이를 악문 류제가 막 건물을 벗어나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 세단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류제 맞나?”
“음?”
그가 있는 쪽을 향해 한 사람이 어슬렁대며 다가온다.
몸에 달라붙은 검은 옷으로 전신을 두른 이. 살짝 치렁하게 자라난 앞머리가 그의 용모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뭐냐!”
“물러나라!”
경호원들이 재빨리 그와 류제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가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동일한 걸음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설마?’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류제가 비명을 질러 댔다.
“쏴! 갈겨! 죽여 버…….”
파아아아앗!
그 순간, 괴이한 소리가 류제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이들의 목이 허공으로 가볍게 솟구쳐 오른다. 애초에 처음부터 몸과 연결되지 않았었다는 듯 말이다.
“어…….”
류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언제 이 많은 사람의 목이 동시에 잘려 나가는 꼴을 본 적이 있겠는가.
순간적으로 뇌가 탈색되듯 세상이 새하얘진다.
“딱히 원한은 없지만…….”
사내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순간, 류제가 느낀 것은 목이 조금 간지럽다는 감각이었다.
“잘 가라고.”
촤악!
그리고…….
그 간지러움 다음에 올 감각을 류제는 느끼지 못했다. 목이 잘려 죽은 이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니까.
“이걸 암살이라고 해야 하나?”
바닥에 처참히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바라본 공령이 고개를 내저었다.
“뭐, 상관없지. 결과는 같을 테니까.”
휘파람을 분 그가 태연하게 걸어 그 자리에서 멀어졌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을 타고 짙은 피 냄새가 점점 더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