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45
#1944.
뒤흔들다 (4)
“빌어먹을!”
차를 타고 진입하는 방진훈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아니, 이 새끼들아! 정신 나갔어!”
그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차 앞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 그들보다 먼저 이동하던, 홍왕이 탄 차량이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혀 있다.
주석이 머무는 벙커로 향하는 길이니 검문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방진훈이 고함을 내질러 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미친 새끼들아! 니들 뒤에서 뭔 일이 터지는지도 몰라?”
느껴진다.
앞쪽에서 커다란 기운이 들썩이는 게 말이다.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들의 기감은 확실히 적의 존재를 잡아내고 있었다.
“진정하십시오, 일단.”
“아니, 인마! 지금…….”
“한국말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어차피 못 알아듣습니다. 게다가 소란을 피울수록 시간은 더 걸립니다.”
“…….”
“그리고…….”
이현수가 검문을 하고 있는 이들의 표정을 살피더니, 얼굴을 굳혔다.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뭐? 그게 뭔 소리야?”
“몰라서 막는 게 아니라, 아니까 막는 것일 수도 있죠.”
“안다고? 지금 습격을 받고 있다는 걸?”
“예.”
“그런데 왜 막아! 그럼 우릴 들여보내야지.”
“이런 데서 검문을 하는 놈들이 우리가 누군지 알겠습니까? 그냥 허가서가 있으면 통과시키고, 없으면 막는 수준이겠죠. 그런데 뒤에서 일이 터졌다면?”
“……허가고 나발이고 일단 막는다, 이거로군.”
방진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서로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지체되는 상황 자체도 어이없지만, 그를 더 황당하게 만드는 건 겨우 이런 놈들에게 홍왕과 마존을 끼고 있는 그들이 가로막힌다는 점이었다.
“이 식후 간식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에 방진훈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지금까지 나름 공권력과 충돌하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군이나 정부, 혹은 경찰과 트러블이 있을 만한 일이 생기면 굳이 싸움을 택하느니 손해를 보더라도 물러서는 쪽이 옳다 여겨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방진훈은 한 가지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동안 바깥세상의 힘을 상징하는 이들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그가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에게 그만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이다.
마음이 조급해지자 공안이고 나발이고 그냥 밀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그를 지배한다.
흑왕계의 손에서 주석을 보호하는 데 딱히 큰 관심이 없는 방진훈이지만, 이건 주석을 구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냥 밀어버려, 이 새끼들아! 뭘 빤히 기다리고 있어!”
그의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쾅!
앞차의 문이 갑자기 통째로 차에서 뜯겨 날아간다.
“…….”
움찔한 방진훈이 고개를 안쪽으로 살짝 당겼다. 그의 눈에 홍왕이 차에서 내리는 광경이 들어왔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군.”
“어, 그러네?”
방진훈이 손을 뻗어 문을 밀었다. 밴의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자, 방진훈이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다.
근거리라면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발로 가는 게 더 빠르다. 사람의 고정관념이 참 무서운 게, 머리로는 그걸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차에서 내린 방진훈의 눈에 홍왕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와…….”
그 광경에 방진훈마저 할 말을 잃고 입을 벌렸다.
‘와…… 미친 새끼들.’
저들에게 있어서 홍왕의 권위가 먹히지 않는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무인의 권력과 위엄이란 무인계 내에서만 통용되는 것. 따지고 보자면 게임 안에서만 통용되는 전자 화폐나 다름없는 것이니까.
게임 속의 캐릭터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게임을 끄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처럼, 홍왕의 지배력 역시 무인계를 벗어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저들에게 있어서는 홍왕의 존재조차도 그저 평범한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홍왕의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모습은 방진훈으로 하여금 극심한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뭐랄까.
현대 도심의 한복판에 나타난 드래곤에게 지나가던 경찰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광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것조차 부족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저 광경이 방진훈의 상식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막으려하는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홍왕이 살짝 손을 흔들었다.
카앙!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지며 홍왕을 겨누고 있던 총들이 일시에 산산조각 났다.
“뭐, 뭐야!”
“이게 뭔…….”
당황한 가드들이 두 눈을 부릅뜨며 뒷걸음질을 쳤다.
무학을 아는 이들 조차도 놀랄 만한 광경이다. 그러니 무학을 이해할 수 없는 그들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마법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러서라.”
홍왕이 다시 한번 손을 가볍게 휘젓자, 가드들이 뒤로 둥실 떠오르며 쭈욱 밀려난다.
저들도 딱히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니 상하게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마왕.”
홍왕이 고개를 돌려 막 차에서 내리는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말해.”
“진입해야겠다. 정예로만 간다.”
“흠.”
“칠장로, 삼장로! 나와 간다.”
“예, 홍왕이시여!”
밴에서 내린 두 노인이 홍왕의 좌우로 붙는다. 그 모습을 본 강진호가 묘한 얼굴로 턱을 긁었다.
“음, 정예, 정예란 말이군. 정예…….”
그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고정되었다.
“……아, 진짜.”
이현수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같은 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법 아닙니까! 그냥 이사님들 하나하나 불러서 같이 가면 되지, 꼭 저만 빼고 모두라는 식으로 굴어야겠습니까?”
“그게 빠르니까.”
“에이 씨.”
이현수가 궁시렁대며 뒤로 물러난다. 그러자 방진훈이 떨떠름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둘만 가는 거면, 저도 빠져도 될 것 같은데요.”
“정예는 다 오라잖아.”
“…….”
“방 이사도 총회의 정예이니 같이 가야지. 홍왕께서 명하시니 별수 있나.”
방진훈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몇 놈 오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보통 방어가 공격보다 쉬운 법이지.”
“…….”
“하지만 지키는 건 공격보다 어려워. 손이 더 필요하다.”
방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제가 그렇게 필요하시다면야.”
그제야 방진훈이 강진호의 뒤쪽에 붙는다. 강진호가 저벅저벅 걸어가 홍왕의 옆에 섰다.
그 뒤쪽에 선 총회의 이사들을 훑어본 홍왕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부러운가?”
“헛소리를.”
홍왕의 입에서 거친 대답이 나오는 게 흔치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름 정곡을 찔린 모양이었다.
“단숨에 간다.”
“그러지.”
홍왕과 강진호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 뒤쪽을 홍왕계의 장로와 총회의 이사들이 뒤따랐다.
“조심하십시오!”
버럭 고함을 내지른 이현수가 차이커창을 돌아보았다.
“넌 안 가냐?”
“…….”
“평소에 잘난 척해 대더니, 너도 막상 필요할 때는 전력이 안 되는 모양이네.”
그 말을 들은 차이커창이 조금 멍한 얼굴로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왜? 찔리는 모양이지?”
“……아니. 가도 되겠다 싶어서.”
“자신 있으면 가보시든가.”
“……널 보니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군.”
“뭘?”
차이커창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의 머리라는 건 모든 방향으로 발달하지는 못한다는 것 말이다. 어떤 쪽으로는 천재가 어떤 쪽으로는 병신일 수도 있군.”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차이커창이 피식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럼 알아서 잘해봐라.”
밴을 운전하던 이들까지 불러들인 차이커창이 앞쪽으로 빠르게 달려 나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별 도움도 안 될 놈들이 오기 부리기는.”
차라리 그처럼 뒤쪽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현명…….
“저기다!”
“포위해!”
이현수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어…….”
그의 눈에 완전무장을 한 일련의 무리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는 모습이 똑똑히 들어온다.
“어?”
그의 고개가 앞으로 홱 돌았다.
심지어 조금 전에 홍왕의 손짓에 밀려났던 이들도 어디선가 다시 총기를 구비하고는 달려오고 있었다.
“……아?”
잠깐만.
지금 여기 나 빼고 아무도 없…….
“쏴라!”
투투투투투투투투투!
“으아아아아! 씨바아아알!”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차 안으로 뛰쳐 들어간 이현수가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러 댔다.
“차이커차아아아앙! 이 개 새끼야아아아아아!”
뭔 소린가 했더니!
아니, 아니지! 내가 병신이지! 무슨 생각으로 내가!
타탕! 탕! 타아앙!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차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이게 영화라면 기적적으로 몸에는 총알이 박히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이현수는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 행세를 하기에는 외모가 조금 모자랐다.
“아악! 악!”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려 몸에 둘렀음에도 총알이 피부를 뚫고 박혀든다. 그나마 차를 한 번 관통하며 힘을 잃은 총알이라 찰과상에서 그치는 것이지, 생으로 직격당했다면 벌써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을지도 모른다.
이현수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러다 죽는다!’
여기에 머물러 있다가는 총알에 맞아 죽는 게 아니라 총알 무게에 눌려 죽을 판이다. 핏발이 선 눈으로 좌우를 살피며 달아날 곳을 찾던 이현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킬 바로 그때였다.
“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치솟았다.
“차이커창, 이 새끼! 돌아왔…… 아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이현수가 탄 차가 갑자기 맹렬하게 옆으로 구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뭐야! 미친!”
필사적으로 카시트를 움켜잡은 이현수가 놀이기구라도 탄 듯 회전하는 차 안에서 비명을 질러 댔다.
세상이 빙빙 돌고, 그의 속도 함께 뒤집어진다.
몇 십 바퀴는 족히 구르고서야 겨우 기세를 잃은 밴이 기우뚱하더니, 이내 쿵! 바닥에 내려선다.
“…….”
이현수가 넋이 나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용케도 바로 선 차 안, 뜯긴 문으로 밖을 바라보니 그를 포위하고 총을 쏴대던 이들이 모조리 바닥에 누워 있다. 가슴이 들썩이는 것을 봐서는 죽은 건 아닌 모양이지만 말이다.
“…….”
그 의식을 잃은 이들 사이로 한 사람이 손을 탈탈 털며 걸어온다.
“하, 씨발. 속이 시원하네.”
“…….”
그를 향해 다가온 익숙한 얼굴이 히죽 웃더니 고갯짓을 했다.
“나와, 새끼야. 여하튼 이 새끼, 손 더럽게 많이 가네.”
“……일부러 그랬죠?”
“뭘?”
“차 일부러 굴린 거죠?”
“뭐래? 인마, 실수지.”
“……그럼 왜 웃으시는데?”
“사람이 좀 웃을 수도 있지.”
“…….”
“나와. 가자. 너는 같이 가야 안전하겠다고 회주님이 데리고 오란다.”
“…….”
낄낄대며 웃어 대는 방진훈의 얼굴을 본 이현수가 넋을 놓아버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망할 무인 새끼들…….”
여하튼 무학 익힌 놈치고 정상인은 하나도 없다는 걸 새삼 실감하는 이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