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7
#196.
출연하다 (1)
“대본 연습시켰어?”
“메이크업하면서 보고 있답니다.”
“하, 씨. 이걸 생각 못했네?”
“걱정 마세요.”
조연출의 말에 장학선이 되물었다.
“뭘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재경대라잖아요.”
“재경대?”
“머리 엄청 좋다고 하더라구요.”
“아, 그래?”
장학선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형제나 남매가 비슷한 학력 수준을 가진다고 한다면, 강세아는 영악한 타입이기는 하지만 머리가 비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빠는 엘리트라니.
‘하기야.’
어찌 보면 공부 잘하는 사람의 전형이기도 했다. 외모를 꾸미는 데 관심이 없고 자신이 할 것만 하는 타입.
“그럼 사생활도 깨끗하겠네.”
“그렇죠.”
지민호 때문에 사생활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가 날 것 같은 장학선이었다.
“그래도 한다고 해서 다행이야.”
“그런데…… 피디님.”
“왜?”
“아무래도 저는 좀 불안합니다. 아무리 짧고 딱히 연기력이 필요한 역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마추어가 소화할 수 있을지 좀…….”
“인마, 걱정하지 마. 저 얼굴이면 학예회 수준으로 연기해도 돼. 전설의 발연기로 유튜브 타면 유머 게시판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힐링 게시판으로 갈 거다. 팬클럽도 생길걸?”
“……그렇게까지 잘생겼습니까?”
“니가 드라마 피디로 살아남고 싶으면 이 사람 얼굴을 카메라로 잡았을 때, 어떤 식으로 보일지 생각하며 살아야 돼. 니 눈에 카메라를 씌워야 한다고.”
“잘 모르겠습니다.”
“보면 알아, 보면.”
장학선이 컨테이너를 열고 나오는 강진호를 가리켰다.
“저 봐라.”
“예?”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본 조연출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저, 저게 뭡니까?”
“내가 말했잖아.”
후줄근한 추리닝 대신에 슈트를 입고 메이크업을 마친 강진호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정리 안 된 머리를 드라이해 손질해 놓으니, 뭐라고 해야 할까…….
“……유전자 몰빵이네.”
강세아도 예쁘다. 일부에서는 여신이라고 불릴 만큼 예쁘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저 잘생겼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런 씨발.”
“왜 욕을 해, 인마!”
“저 얼굴을 왜 그렇게 하고 다닙니까! 그따위로 쓸 거면 저 얼굴 나 주지!”
“……욕 더 해도 된다.”
장학선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강진호를 다시 바라보았다. 무슨 앵글을 잡든 장면, 장면을 즉석에서 화보로 만들어 버리는 얼굴이었다.
장학선이 씨익 웃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저 얼굴을 보고 나니 우려가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장학선은 어깨를 으쓱하며 강진호를 향해 걸어갔다. 어느새 냄새를 맡은 카메라 감독이 그의 옆으로 붙었다.
“와! 피디님, 저런 거 어디서 물어 왔습니까?”
“얼굴 좀 살죠?”
“나오는 거 한 번 잡아봤는데…… 장난 아니에요, 진짜.”
“그럴 것 같더라구요.”
카메라 감독까지 이리 나오는 것을 보면 비주얼적인 측면으로는 이미 끝났다고 봐도 된다. 카메라 감독이 평소 남자 배우의 비주얼에 혹평을 늘어놓던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장학선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강진호를 향해 다가갔다.
이쯤 되니 사고를 쳐준 지민호에게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울 보셨어요?”
“어색하네요.”
강진호는 슈트가 영 불편한지 연신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몸도 좋네.’
와이셔츠 아래로 윤곽이 드러난 대흉근이 장난이 아니다. 때로 얼굴은 참 좋은데 몸이 영 아니라서 풀 샷을 잡기 부담스러운 배우들도 있는데, 강진호는 얼굴보다 되레 몸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었다.
‘봉 잡았네.’
장학선의 얼굴이 더더욱 밝아졌다.
평소 그의 까칠함을 아는 이들이라면 지금 장학선의 얼굴을 봐도 믿지 못할 것이다.
‘일단 1화 화제성은 확실하게 잡았다!’
장학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담 가지지 마세요. 쉬운 역할이니까요.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지실 겁니다.”
‘초딩급으로만 연기해 줘도 된다.’
남은 것들은 얼굴이 알아서 할 것이다.
모니터로 보이는 앵글을 보며 장학선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쩐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조명을 받으니 외모가 확 살아난다. 일반적인 오징어도 방송용 메이크업과 조명을 받으면 대왕오징어 정도로는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런데 원래 잘생긴 놈이 메이크업과 조명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쩔긴 쩌는데…….”
모니터에 비치는 강진호의 얼굴 앞으로 ‘TAKE 15’라 적힌 클래퍼보드가 쓱 들이밀어졌다.
이 신만 열다섯 번째 찍고 있다는 뜻이었다.
“강진호 씨! 이번에는 좀 침착하게 갈게요!”
“……예.”
장학선이 심호흡을 두 번 하고는 외쳤다.
“액션!”
클래퍼보드가 뒤로 빠지고 강진호의 얼굴이 모니터에 꽉 차게 잡힌다.
‘여기까지는 죽인단 말이야, 여기까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휘날리는 앞머리.
살짝 음영이 진 눈두덩이가 잡아주는 그윽한 분위기.
얼굴이 깡패라고,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뿐인데 알아서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정말 최고다.
조연출이 강진호의 앞에서 손을 흔들며 대사를 하라고 신호를 넣었다. 그러자 강진호가 그윽한 눈빛으로 최연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지…….”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뚜!”
장학선이 발악을 하듯 소리를 지르고 전력으로 강진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강진호 씨! 강진호 씨!”
“네.”
“책을 읽지 마시고, 대사를 하란 말입니다! 대사를! 따라 해보세요! 우리 헤어지자!”
“우리 헤어지자.”
“그럴 땐 좀 더 천천히! 이렇게! 우리 헤어지자!”
“우리 헤어지자!”
“그래요, 그거란 말입니다! 다시 한 번 해볼게요! 우리 헤어지자!”
“우리 헤어지자.”
세 살 아이에게 낱말을 가르치듯 장학선은 강진호에게 한 시간째 ‘우리 헤어지자’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그 한 시간 동안 얼마나 헤어지자는 말을 해 댔는지, 이제는 자기가 진짜로 이별하는 기분까지 느끼는지 가슴 한 켠이 싸하기까지 하다.
강진호는 태연한 얼굴로 우리 헤어지자를 반복했다.
그러자 최연하가 굳은 얼굴로 피디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상황이 심각해 표정이 굳은 것이 아니라, 대사 한마디를 못하고 한 시간 동안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더니 얼굴이 굳어버린 것이다.
“……피디님, 우리 좀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입이 안 움직여요. 메이크업도 다시 해야 할 것 같고.”
“끄으응.”
장학선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장학선의 마음은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왜!
왜 저런단 말인가!
아무리 하늘이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저런 얼굴에 초딩보다 못한 연기력을 주시냔 말이다. 적당히 그냥 대사만 칠 줄 알아도 대한민국 대표 배우는 몰라도 대한민국 대표 스타는 될 수 있는 얼굴인데!
배역 하나만 잘 만나면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으로 평생 놀고먹으면서 CF만 찍어도 먹고살 수 있는 얼굴인데! 왜 저 얼굴로 저런 국어책 읽기를 늘어놓느냔 말이다!
‘뭐, 이딴 조합이 다 있어!’
“쉬었다 하죠.”
장학선이 말하자 긴장한 얼굴이던 스탭들이 한숨을 쉬며 늘어졌다.
강진호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메이크업실로 갔다. 연기자 대기실이 따로 있을 텐데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장학선은 차마 그 사실을 말할 기운이 없어 그냥 대기자실로 걸어가는 강진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망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피디에 대단한 감독이라도 저 강진호에게 오늘 내로 올바른 대사를 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거, 낮 동안 찍어야 하는 건데…….”
장학선의 어깨가 축 처졌다.
카메라 감독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장학선에게 말했다.
“이, 이거 어떻게 합니까, 피디님?”
“……어떻게 하죠?”
“병인데요, 병? 카메라 울렁증 같은데?”
“카메라 숨기고 찍어볼까요?”
“에이, 아니야. 그거 안 될 거예요. 아까 보니까 사람이 엄청 똑똑하더라고. 카메라 불 들어오니까 표정부터 변하던데? 첫 촬영하는 사람이 이미 어느 카메라가 찍고 있는지도 다 알더라고.”
“끄응.”
그래, 똑똑하다 그랬지. 그랬었지…….
“아니, 왜 똑똑하냐고!”
“……진정해요, 피디님!”
“좀 멍청하기라도 해야 속여 먹으면서 촬영이라도 하지! 미치겠네, 진짜!”
핫팩으로 몸을 적당히 데운 최연하가 이를 으득으득 갈며 장학선에게 다가왔다.
“피디님.”
“예? 아, 최연하 씨. 몸은 좀 괜찮아요?”
“이거 촬영, 밤으로 바꿔주세요.”
“……낮 신인데, 이거.”
“밤이면 분위기가 더 살겠죠! 밤으로 바꿔주세요.”
피디가 한숨을 쉬었다.
스토리상으로는 이별 신을 밤으로 바꾼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조금 늘린다고 해결될 것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어쩌시려구요?”
“일단 낮에 찍어야 하는 신들 전부 다 찍어주세요. 이 장면 빼면 별문제 없잖아요. 제 신도 거의 찍어놨고!”
“그렇죠.”
“제가 지금부터 붙어서 대사 가르칠게요. 설마 사람인데 해 질 때까지 반복하면 그거 한마디 못하겠어요?”
“…….”
불타오르는 최연하를 본 피디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은근히 성격이 불같아서 피디 멱살도 잡는다는 최연하다. 한 번 불이 붙은 이상 쉽게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꼭 내보내야 돼요! 저 얼굴을 놓칠 순 없어요!”
‘그거 남이 들으면 미묘한 대사인데요, 최연하 씨.’
장학선 피디는 멍한 눈으로 컨테이너를 바라보았다.
최연하와 강진호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간 지 네 시간이 지났다. 그새 다른 촬영들은 다들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신.
스토리상으로 보면 최연하의 남자 친구였던 강진호가 이별을 고하고 해외로 떠나는 신이었다.
1화 65분 중에서 겨우 1분도 안 되는 그 신 하나가 장학선을 괴롭히고 있었다.
장학선이 떨리는 심정으로 컨테이너를 향해 다가갔다.
‘화기애애하자, 화기애애.’
뭔가 일이 잘 풀리고 있으면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최연하쯤 되는 사람이라면 신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쓸 테니까.
하지만 큰 소리가 들려온다면?
드라마는 망하는 거다.
단순히 그 신을 삭제하는 걸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스토리 라인이 박살 나고, 일정이 개박살이 난다. 지금 와서 새로운 배우를 섭외한다고 해도 결과야 빤하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컨테이너 앞으로 조심스레 다가간 장학선의 귀에 컨테이너를 뚫을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아! 이걸 왜 못해에에에에에!”
장학선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때려치우자.’
차라리 투자자한테 할 변명을 미리 찾아보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끼이이이익!
검은 세단이 거친 브레이크음을 내며 멈춰 섰다.
덜컥.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그 안에서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내려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이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촬영을 이리 오래하는 거야?”
장학선 피디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줄 남자.
‘강진호 마스터’ 조규민이 천천히 촬영장으로 그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