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71
#1970.
혼탁하다 (5)
“이게 뭔…….”
이명환이 떨리는 눈으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으로는 화면을 보고, 귀로는 흑왕이 하는 말을 번역해 주는 마교도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동영상의 재생이 끝나는 순간, 이명환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마교도를 바라보았다.
“이게 중국 전역에 방송으로 나갔다고?”
“그런 모양이다.”
“……짱깨 새끼들 통제는 알아주잖아. 그런데 그걸 못 막았다고?”
“나도 상황은 모른다. 그저 그렇게 들었을 뿐이다.”
“미친.”
이명환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주물렀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럼 이제…….”
그의 주변에 몰려 있던 마염들 중 하나가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세상 사람들이 다들 우리의 존재를 알아버렸다는 건가?”
“설마…….”
“아니. 지금 저거 공개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이잖아. 조회 수가 벌써 백만이 넘었는데.”
그때, 마교도가 그의 발언을 정정해 주었다.
“백만이 아니다.”
“응? 뭐가? 내 눈으로 봤는데?”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이 영상이 삭제되고 다른 계정으로 다시 올라온 게 벌써 다섯 번이 넘는다. 그 몇 십 배는 될 거다.”
“…….”
“그리고 한 번에 하나씩 올라오는 것도 아니야. 온갖 계정으로 동시에 업로드가 되고, 동영상 사이트뿐 아니라 각종 SNS에도 수시로 업로드되고 있다.”
“……억 단위는 넘었겠군.”
“아마도.”
미묘한 공기가 그들 사이를 타고 흐른다.
딱히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렵다.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는 초유의 사태이다 보니, 대체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것이다. 최소한 어떤 변화가 벌어질지에 대한 예측이라도 되어야 그에 대해 반응을 할 텐데…….
“이 미친놈은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뭐가?”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좋은 거 아냐?”
“뭐?”
마염 중 하나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방식이 엄청 과격한 건 맞고, 저 새끼가 감히 우리 회주님한테 엉긴 놈이니까 모가지 잘려야 하는 건 맞는데, 말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없잖아.”
“……틀린 말이 없다고?”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뭘 잘못했냐?”
“…….”
“우리는 그냥 무학을 익힌 것뿐이잖아. 그런데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범죄자들처럼 숨어서 살아야 돼?”
“범죄를 저지른 건 맞지, 새끼야.”
“아니. 그건 선후가 바뀌었지. 우리가 범죄를 저질러서 무학을 익힌 게 아니라, 무학을 익혀서 숨어 살아야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
“그게 그거지, 뭔 씨발, 변명이 많아.”
“뭐, 이 새끼야?”
마염들이 서로 으르렁대기 시작하자, 이명환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좀 닥쳐! 새끼들아!”
“…….”
이명환의 입에서 한숨을 푹 새어 나왔다.
마염들이 기본적으로 과격하고 성격이 급한 건 사실이다. 마기의 영향으로 폭급한 성정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폭급한 성정이 서로를 향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이들 역시 혼란스럽다는 의미.
‘난리가 나겠군.’
총회는 과도할 정도로 끈끈한 집단이다.
이건 그가 총회 소속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총회처럼 인원이 많은 집단은 서로 파벌을 나눠 대립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과거의 총회 역시 회주와 각 이사들이 파벌을 나누어 대립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의 총회는 파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소속이 다르기에 생기는 미묘한 경쟁심은 있어도 소속이 다르기에 서로 경원하고 싸워 대지는 않는다.
그런 총회조차 이 안건을 두고는 순간적으로 감정질을 해 대고 있다. 그럼 총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빤한 것 아닌가.
아마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두고 무인들이 둘로 나뉘어 대립하게 될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공영길이 슬쩍 물어온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뭘?”
“이 사태 말이야.”
이명환이 눈을 찌푸렸다.
“생각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내가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일이 여기까지 터져 버리면 이미 우리 손을 떠난 문제 아냐?”
“그건 그렇지.”
이명환이 휴대폰 안 흑왕의 모습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이 동네가 힘 센 사람이 다 해먹는 동네라지만…… 정말 저 미친놈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막연한 불안함은 있었다.
불과 오십 년 전만 해도 무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런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져 간다.
이곳만 해도 그렇다.
사유지란 명목으로 철조망을 치고, 감시 인력을 붙여 철저하게 외부의 접근을 차단한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더는 막아낼 수가 없다.
과거에는 위성을 띄우는 이들이 모두 국가기관이었기에 국제 공조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속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민간 기업의 위성이 국가기관이 띄운 위성보다 더 많이 쏘아지는 추세다.
아니, 굳이 위성까지 논할 것도 없다.
당장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들은 무슨 수로 막아야 한단 말인가.
지금이야 그 수가 많지 않아 접근하는 드론이 있으면 적당히 떨어뜨려 버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결국 그들의 시선을 피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드론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었어.’
모두가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고 살아왔다.
딱히 해결책이 없고, 일이 벌어졌을 때의 뒷감당을 해낼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 흑왕이 그 모든 폭탄의 뇌관에 불을 붙여 버렸다.
눈을 찌푸리며 동영상을 다시 보던 이가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그런데 이렇게 난리가 났으면 언론에서도 보도를 하는 거 아냐?”
“……이걸 무슨 수로 보도해?”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보도 안 한다고 해서 감춰질 일이 아니잖아. 그럼 보도하겠지.”
이명환이 입을 닫았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말 이게 보도가 될까?’
아무리 기자들이 화제만 된다면 제집 숟가락 숫자까지 까발리는 이들이라고 해도 이건 파급력이 너무 어마어마하다.
“아냐. 아까 들어보니까 유럽 쪽은 이미 보도가 되고 있다고 하던데?”
“……뭐? 유럽이라니, 그걸 누구한테 들었는데?”
“카발리에 아저씨들이 그러던데?”
“…….”
이명환이 입을 닫았다.
“나도 아까 들었어. 미군 아저씨들이 미국에서 이상한 게 언론을 타고 있다고, 혹시 아는 거 있냐고 묻더라. 훈련 계획 짜면서 통화했거든.”
“거참.”
그 말을 들은 공영길이 웃고 말았다.
“이게 뭔 씨발, 유럽 놈에, 미국 놈에…… 아주 글로벌하네. 언제부터 총회가 이렇게 국제적으로 놀았냐. 야, 짱깨 새끼야.”
“짱깨라고 하지 말라고, 빵즈 새끼야.”
“지는 처하면서. 그래서 중국에서는 보도 안 되고 있냐?”
마교도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중국에서는 보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정부 쪽에서는 동영상이 올라오는 사이트들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런다고 막아질 일이 아니지.”
“왜 안 막아져? 막으면 못 가는 거 아니냐?”
“혹시 VPN이라는 말 들어봤냐?”
“뭐? 브이…… 브이, 뭐?”
“……아니다.”
“너, 그 눈깔 뭐야, 이 새끼야.”
공영길이 씩씩댔지만, 마교도는 더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어버렸다.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해외에 보도가 되고 있다라…….”
이명환이 한 손으로 입가를 주물렀다.
“그럼 결국 한국도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겠네. 외신을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곧 그렇게 되겠지.”
“…….”
아연하다.
이명환이 고개를 돌려 총회의 아래로 향하는 도로를 바라보았다.
평소 퇴근을 할 때면 별생각 없이 이용하던 길이건만, 오늘따라 저 길이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평범한 이들이 이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럼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될 것인가.
“영길아.”
“응?”
“팀장급들 다 소집 좀 해라. 오늘부터 애들 전부 외출 금지령 때려야겠다.”
“외출 금지?”
“……지금 함부로 밖에 나갔다가는 문제 생긴다. 일이 일단 진정될 때까지 접촉을 차단시켜야 돼.”
공영길이 눈을 찌푸렸다.
“야, 새끼야. 그걸 우리가 어떻게…….”
“이사님들 안 계시니까 별수 없잖아. 실장님도 안 계시고.”
총회의 지휘 체계는 애매한 면이 있다. 평소에야 이사 중 하나 정도는 총회를 지키고 있으니 지휘 체계를 고민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 이사들이 모조리 자리를 비운 상황이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바토르들 말고도 이사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실권을 잃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명환과 공영길 등 각 무력대의 대장들이라 해도 꼭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안 돼, 새끼야.”
“아니, 지금…….”
“알아, 급한 상황이라는 거. 그래서 더 안 돼. 평소에도 우리가 명령 내리면 불만 나올 텐데, 애들이 갈피를 못 잡는데 우리가 나서면 무슨 말이 나오겠냐?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벌집 쑤신 꼴 된다.”
“…….”
이명환이 입을 닫았다. 확실히 그건 공영길의 말이 틀리지 않다.
살짝 고민을 하던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태훈 선배님 어디 계시냐?”
“부장님? 부장님이야…… 본관에 계시겠지.”
“그럼 부장님한테 가서 말하자. 우리보다는 부장님이 낫겠지.”
공영길이 그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총회 최대의 계열이라 할 수 있는 방진훈계의 넘버 투가 천태훈이니, 통제하기에는 그들보다 나을 것이다.
“마교 쪽이랑 마염들은 내가 알아서 잘 이야기 해볼게. 너는 너희 애들 단속하고.”
“알아.”
“그리고…… 아마 천태훈 선배님 혼자서 해결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MK에도 연락을 해봐야겠다. 이 실장님이 한 팔 거들어주시면 되겠지.”
“MK 이현주 실장님?”
“그래.”
“흐음, 도움이 될까 모르겠네. 여하튼 알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분명 미쳐 날뛰는 놈이 나올 거다. 애초에 숨어서 수련만 하는 생활에 질려 하는 놈이 한둘이 아니었어. 그걸 지금까지 회주님의 존재가 찍어 누르고 있던 건데…….”
“하필 지금 회주님이 자리에 안 계시니까.”
“내 말이 그거야.”
이명환이 단호하게 말했다.
“애들 생활권 제한하고, 순찰도 돌리자. 어설프게 빠져나가는 애들 안 생기게.”
“그거…… 진짜 위험한 일인 거 알지?”
“안다.”
난데없이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건데 기분 좋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 상황에 누가 사고 한 번 치면 여론은 진짜 돌이킬 수 없어진다. 그때는 아무도 뒷일을 감당 못하게 될 거야.”
“……알았다. 바로 움직일게.”
본관 쪽으로 향하기 시작한 공영길을 보며 이명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
최대한 막아보려 하지만, 결국 이 물이 끓어 넘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곳이다. 물이 끓는 곳이 이곳만이 아니니까.
‘회주님.’
강진호가 보고 싶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라도 알고 싶다. 이 거친 풍랑을 버텨내기에 선장 없는 배는 너무도 무력하다.
“후우우.”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린 이명환이 고개를 내저으며 발을 뗐다.
그도 바삐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