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80
#1979.
걸어가다 (4)
천천히 걷던 강진호가 길가에 설치되어 있는 흡연 구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굳이 담배를 피우고 갈 것까진 없었다. 그럼에도 안으로 들어와 앉은 이유는 마음이 괜히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거리는 딱히 변한 게 없다.
오가는 이들은 무인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이나 뒤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강진호의 눈에는 같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달라진 건 저들이 아니라 강진호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뭐랄까.
‘발가벗고 걷는 기분이로군.’
거리를 걸으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본 적은 없었다. 그는 딱히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별다른 의미 없이 오가는 시선이 그에게 와닿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흠칫하게 된다. 저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처럼 무심하지 않을까 봐.
저 시선이 그들과 다른 존재들을 찾고 있을까 봐.
찰칵.
강진호가 꺼내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우스운 일이다.
코끼리도 절명시킬 극독조차도 강진호의 몸 안에서는 흡수되기 무섭게 해독된다. 니코틴 따위가 그의 뇌를 흔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게 된다.
어쩌면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으, 추워!”
“며칠 따뜻하더니!”
흡연 구역 안으로 젊은 남자 둘이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재빨리 담배를 빼 물었다.
“흡연 구역은 왜 이렇게 먼 거야? 에이, 벽이라도 좀 높게 쳐주지.”
“배부른 소리 하지 말아. 우리는 그래도 좀 가까운 편이지. 건너편에서 길 건너 담배 피우러 오는 사람들이 들으면 욕해.”
“끊든 해야지, 에이.”
담배에 불을 붙인 이들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사람들은 춥지도 않나.”
“안 춥기야 하겠어? 갑자기 추워져서 두꺼운 거 못 챙긴 거겠지.”
“혹시 모르지, 저 사람들이 그걸 수도.”
남자 하나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 슈퍼맨들 있잖아. 막 하늘 날아다닌다는.”
“걔들은 춥지도 않은 건가?”
“우리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어?”
“……그건 부럽네.”
“부럽기는.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인데.”
사내의 목소리에 묘한 짜증과 노기가 어려 있다.
“국회의원 새끼들은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빨리 사과하고 그 새끼들 격리할 법안부터 마련해야 할 거 아냐.”
“격리가 되겠어? 아무리 그래도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우리는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놈들이랑 얼굴 맞대고 살아야 돼? 막말로 술집에서 시비 한번 걸렸다가 상대가 그런 놈들이면 골로 가는 거 아니냐고.”
“그건 그런데…….”
“씨발.”
사내가 짜증 난다는 듯 담배의 재를 떨었다.
“나라가 해야 할 일이 뭐야?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 아니냐고. 그런 인간 흉기들이 길거리를 나다니는데, 그걸 방치하면 직무유기지.”
“……걔들도 국민이잖아.”
“국민은 얼어 죽을. 세금도 제대로 안 내는 것 같던데. 그런 새끼들이 뭔 국민이야? 그리고…… 설사 그 새끼들이 국민이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 거 아냐?”
담배 필터를 씹어 대던 사내가 눈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여하튼 두고 봐. 이번에 제대로 대책 안 내놓으면 정권 넘어가는 거 감수해야 할 테니까. 사람들이 지금 난리도 아니잖아.”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어? 다른 나라들도 마땅히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던데.”
“그럼 거기도 정권 바뀌는 거지.”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헀다.
“지켜보라니까. 어느 나라가 됐든, 다음 선거는 강경한 대책 내놓는 애들이 다 털어갈 거야.”
“음…….”
“말이야 바른말이지, 경제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야 있는 거 아니냐고. 나도 지금까지는 돈 벌어주는 놈들이나, 복지 빵빵하게 해주는 놈들이 좋았지. 내 목숨이 위험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지.”
“근데 이걸 겪어보니 그게 아니더라니까? 우선은 내가 안전하게 살아야 복지도 있고, 돈도 있는 거지.”
말을 듣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 말에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군대 동원해서 총으로 다 쏴 죽여 버렸으면 좋겠네.”
“입조심해.”
“왜?”
“우리 회사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잖아. 기분 나빠서 패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경찰도 못 막을 텐데.”
“씨발, 더러워서 진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괴물들이랑 같이 살아야 하나.”
담배를 빠르게 태운 사내들이 몸을 움츠리며 흡연 구역을 벗어났다.
“후우.”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저들의 말이 야속하다. 그가 총회의 회주가 된 이후로 무인들을 일반인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 왔으니까.
힘을 가진 그들이 되레 평범한 이들을 피해왔다.
하지만…….
강진호 역시 평범한 이들의 입장이었다면, 저들과 생각이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저항할 수 없는 존재가 언제고 내 인생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차를 타다 죽는 이는 하루에 수천 명씩 나온다. 한국으로 한정해도 하루에 백 명 가까운 이가 죽는다.
하지만 사고를 피해 차를 타지 않겠다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자신이 그 사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에 비행기 사망자는 일 년에 많아봐야 몇 백 명, 하루로 한산하면 하루에 한 명이 겨우 죽을까 말까이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가 나면 비행기 이용자의 수는 세계적으로 급감한다.
사람이 느끼는 위험도는 이성적이지 않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위험을 느끼지 않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에는 겁부터 먹는 게 사람이다.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은 그리 다르지 않지만, 분명 보이는 것과 다르게 세상은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후우.”
담배 맛이 썼다.
오늘따라 더욱.
* * *
“잠시.”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들이 강진호를 막아선다.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경호원들의 눈이 단호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리 나온다는 건…….
“무례를 범하지 마라!”
그때, 안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총리, 고한봉이 눈을 찌푸리며 경호원들을 노려보았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죄송합니다.”
고한봉이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주님. 경호원들이 의욕이 앞섰던 모양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주님. 안으로 드시지요.”
강진호가 고한봉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네.”
강진호가 자리에 앉자, 건너편에 앉은 고한봉이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요즘 경호가 강화되어서…….”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이건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 가장 비상이 걸린 이들은 경호원들일 것이다.
무인의 존재를 모르던 이들에게는 경호의 ABC를 다시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고, 무인의 존재를 알고 있던 이들이라도 이전과 같은 경호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흑왕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고, 그와 별개로 이 뒤틀린 상황에 공격성을 드러내는 이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식사는…….”
“괜찮습니다.”
고한봉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차라도 하시죠. 회주님이 커피에 민감하신 건 알고 있지만, 물보다는 나을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고한봉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한 듯 빠르게 커피가 내어져 온다.
“아무도 들이지 말게.”
“예, 총리님.”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 문을 굳게 닫았다.
고한봉이 앞에 놓인 커피를 잡아 한 모금 마시고는 빙긋 웃는다.
“회주님이 한국에 들어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만사를 제치고 달려오려 했습니다만…… 상황이 워낙에 시끄럽다 보니 시간을 내는데 조금 걸렸습니다. 미리 일정을 조율하지 못하고 다짜고짜 찾아온 점 이해해 주십시오.”
“신경 쓰지 마세요. 이쪽은 의외로 바쁠 일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내부 단속이 먼저니까요.”
“으음, 그렇겠군요.”
강진호가 고한봉을 슬쩍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고한봉이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도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좋지는 않습니다.”
고한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각국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해 보고 있지만, 딱히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전혀 없습니까?”
“몇 가지 고려되는 것은 있습니다. 선제공격을 통한 무력화나 EMP를 통해 기지의 발사 기능 자체를 망가뜨리는 방법 등등이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건 무척이나 민감한 일입니다, 회주님.”
“……그렇겠죠.”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은 많다.
하지만 그중 위험성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그 위험성이 현실이 된다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누구도 그런 도박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분위기가 양분되고 있습니다.”
“양분이라면…….”
“한쪽은 강경하지만, 슬슬 그들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대신 핵미사일 발사 시설에 대한 점거부터 해제하자는 거죠.”
“……그걸 들어줄 리가 없잖습니까.”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칼을 들고 위협하던 이의 손에서 칼이 없어지면 위협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굴욕적으로 참아오던 이들을 복수를 시작하려 할 터. 흑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면 저들에게 핵무기를 양도한 채 협상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그렇겠죠. 그런데도 협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입니까?”
“우선은 시간을 버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으니까요. 한 번만 물러나 시간을 확보하면 사용할 수 있는 대처법의 종류도 다양해지지 않겠습니까?”
“으음.”
어려운 문제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어떤 방법도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해결법 같은 게 아닙니다.”
“…….”
강진호가 입을 꾹 닫고 고한봉을 바라보았다.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해야 할 순간이다.
“각 부처의 업무가 마비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분노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
“당장은 직접적인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잠시잠깐일 뿐입니다. 저 사태가 해결되면 곪았던 것들이 터져 나올 겁니다.”
“그렇겠죠.”
“한국이야 아직은 평온한 편이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벌써 간간이 소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각국의 정상들은 이 소요가 폭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예, 회주님.”
“정부 측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강진호의 말에 고한봉의 눈이 낮게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