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985
#1984.
정리하다 (4)
“…….”
“…….”
두 쌍의 묘한 눈빛이 강진호의 얼굴을 훑는다.
웬만해서는 타인의 시선에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강진호이지만, 지금 이 눈빛만은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천하의 강진호가 시선을 살짝 내리깔고 말았다.
“흐으으음.”
“으으으음.”
“…….”
미묘한 한숨 소리 뒤에 영문 모를 말이 이어진다.
“맞지?”
“…….”
“그렇지?”
“…….”
추궁하는 눈빛이 더없이 날카롭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지만, 이미 확신에 차 있는 저 눈빛을 보고도 부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응.”
“그럼 그렇지.”
“내가 그랬잖아. 그래 보인다고.”
박유민과 주영기가 이제야 속이 풀린다는 얼굴로 서로 마주 보며 주억거렸다.
“그래. 안 그러고는 말이 안 되지.”
“혹시 아니라고 할까 봐 걱정했네.”
그 괴이한 반응에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 놀라냐?”
“뭘?”
“내가 그…… 무인인데.”
“왜 놀라야 되는데?”
“…….”
주영기가 되레 되물어오자 할 말이 궁해진 강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그쪽이 낫지. 니가 평범한 사람이면 우리가 박탈감이 얼마나 심하겠냐.”
“맞아.”
심지어 박유민마저 주영기의 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같은 걸 해도 너는 잘하는데 나는 못하니까 속이 얼마나 탔는데.”
“맞아.”
“씨발, 생각하니 억울하네. 야, 이 새끼야. 그러면 진즉 좀 말해주지. 내가 너 때문에 내가 병신인가 싶어서 고민을 얼마나 한 줄 알아?”
“음……. 영기야, 그건…… 음…….”
주영기가 도끼눈을 뜨고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박유민이 슬쩍 고개를 돌려 주영기의 시선을 외면했다.
“……관계없이 내가 병신이다?”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는데.”
“이 새끼…….”
박유민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영기 말도 맞지. 우리가 뭐, 네가 그런 말 한다고 어디 떠들고 다닐 것도 아니고, 친구끼리 숨기는 건 좀 심했어.”
“맞아, 인마!”
“미안하다.”
“미안하면 끝나…….”
“그럼 됐어.”
“…….”
말을 하던 주영기가 입을 다물고 다시 박유민을 돌아보았다.
“……네가 그래 버리면 나는 뭐가 되냐?”
“사과하잖아.”
“사과한다고 다 끝나면 감옥은 왜 있는데?”
“친구끼리 각박하게 그러는 거 아니다.”
“…….”
주영기가 속이 터진다는 듯이 가슴을 쾅쾅, 때렸다.
이 착해 빠진 놈 때문에 그만 나쁜 인간이 될 판이다.
“야! 친구라는 새끼가 사람을 지금까지 속였는데.”
“본의는 아니었겠지.”
“본의가 아니면 속여도 되냐?”
“그걸 이해해 주는 게 친구잖아.”
“……우와!”
이건 숫제 철벽이다.
얼마나 꽉 먹혔는지 이쑤시개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인다.
“에이 씨!”
주영기가 콧김을 뿜으며 괜히 목청을 키웠다.
“여하튼 마음고생 심했겠네, 진호야.”
“어? 아니, 내가 뭘.”
박유민이 걱정 어린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본다.
“요즘 뉴스도 많이 나오고 이리저리 말도 많이 나오던데, 너는 괜찮은 거지? 괜히 너무 신경 쓰지 마. 병 나.”
“…….”
강진호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그가 무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거라는 것쯤은 이미 예상했다.
그렇기에 이 자리는 그가 변명을 하는 자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유민은 그를 추궁하기는커녕 되레 위로를 하고 있지 않은가.
“괜찮아?”
“뭐가?”
강진호의 물음에 박유민이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강진호가 간만에 말문이 막힌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내가 무인이라는데…….”
“응.”
“……안 찝찝해?”
“뭐가?”
“…….”
박유민이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다시 한번 갸웃했다.
“무인은 평범한 사람이랑 다르잖아.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다는 데 겁나거나 하지는 않아?”
“아, 그거? 당연히 겁나지. 솔직히 좀 무서워, 나는.”
“나도.”
주영기가 짜증 난다는 듯이 말한다.
“어제도 가게에서 웬 놈이 행패를 부렸는데, 예전 같았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욕부터 박아버렸을 텐데, 어제는 좀 겁나더라. 이 사람이 겉보기랑은 다르게 진짜 무서운 사람이면 어쩌나 싶어서.”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당연한 반응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지금쯤 곳곳에 지뢰가 널려 있는 길을 걷는 기분일 테니까.
“이해한다.”
“아까부터 자꾸 무슨 소리야?”
“……으응?”
박유민이 눈을 찌푸렸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그 무인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고, 너는 진호잖아.”
“…….”
“내가 왜 널 무서워해?”
“…….”
강진호가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데?”
“그건 옛날부터 그랬어.”
“응?”
“네가 무인이 아니었어도 너라면 했을 거야. 마음만 먹으면.”
“…….”
어…….
강진호가 무언가 대답할 말을 찾을 때, 주영기가 비웃음을 흘린다.
“맨손으로 소도 때려잡을 판이었는데, 사람이 문제냐? 오죽하면 내가 저 새끼 앞에서는 주먹도 쥐어본 적 없다.”
“…….”
박유민이 빙긋 웃으며 말한다.
“그런데 그게 확실해졌다고 새삼 달라질 거 있겠어?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무인만은 아니잖아? 격투기 선수들도 마음만 먹으면 맨손으로 사람 죽일 수 있을걸? 그런데 격투기 선수를 친구로 둔 애들이 언제 맞아 죽을까 전전긍긍하지는 않잖아. 안 그래?”
“와…… 박유민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했지?”
주영기가 낄낄대며 웃어 댔다.
“맞는 말이지. 왜, 새끼야? 우리 패 죽이기라도 하려고?”
“말을 해도…….”
“그럼 됐지, 뭐.”
주영기가 손사레를 쳤다.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 거기서 나름 한가락 하지?”
“……응?”
“천하의 강진호가 거기서 따까리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테고, 못해도 중간 보스는 해먹고 있겠지. 맞지?”
“……갑자기 그건 왜?”
“애들 좀 보내서 가게 좀 지키라고 해라. 야, 요즘 간이 떨려 죽을 것 같다.”
강진호가 얼굴을 감쌌다.
이건 주영기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의 잘못인가.
“애초에 걔들이 그렇게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애들이 아냐.”
그랬으면 이미 강진호에게 싸그리 박살이 났을 것이다. 아니, 굳이 강진호가 나설 것도 없이 방진훈과 이현수가 사고 친 놈들을 갈아 마셔 버렸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현수가 조용하네.’
한국에 돌아오면 미쳐 날뛸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방진훈에게 일을 맡겨두고 조용히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생각할 게 있어서 잠수를 탄 것이든, 아니면 다른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든.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이현수라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조금 부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현수라면 그 정도는 극복해낼 수 있을 테니까.
“야, 그래도 걱정이 된다니까? 막말로 그놈들이 홰까닥 돌아버리면 우리 같은 애들은 답이 없잖아?”
“……그래도 너희 가게는 괜찮아.”
“왜?”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 가게에 그…… 피자 만드는 거 배우러 다니는 애들 있잖아.”
“너희 회사에서 연수 보낸 애들?”
“응.”
“걔들이 왜?”
“……걔들이 그쪽이야.”
“…….”
주영기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킨다.
“그거라고?”
“어.”
“그…… 무인인가 하는 애들?”
“어.”
“…….”
주영기가 혼이 빠진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 새끼는 대가리에 뭐가 처 들었기에 말귀를 이렇게 못 알아 처먹어? 야, 이 새끼야! 힘으로 하지 말고, 살살 돌리라고!”
“이 새끼는 비싼 것만 처먹고 다녔나? 피자도 웰던으로 굽고 자빠졌네! 네가 태운 거 하나도 남기지 말고 네가 다 처먹어! 알았어?”
“장사가 쉬워 보이냐? 장사가 쉬워 보여? 아이고, 이 양반아. 너 같은 사람은 뭘 해도 굶어 죽기 딱 좋아요. 그냥 이거 배우려고 하지 말고, 나가서 동냥이라도 배워봐. 그게 더 벌겠다.”
“이 병신 새끼들아아아!”
“…….”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은 걸까?
심지어 욕을 먹다 못해 얼굴이 거의 딸기처럼 달아오른 교육생에게 그리 열 받으면 한 대 쳐보라고 턱을 들이밀기까지 했다.
‘어, 엄마…….’
아들 살아 있어, 엄마.
“그 새…… 아니, 그분들이 무인이시라고?”
“응.”
“……이 개새끼야…….”
말을 해줘야지, 말을!
이게 나를 암살하려고!
엄마야, 대체 삼도천에 발을 몇 번이나 담근 거야…….
“가게에 앞으로도 애들 자주 들락댈 테니까, 별문제는 없을 거야.”
“……저기요, 강진호 씨. 뭔가 사상이 좀 이상하신 것 같은데, 저는 무인이라는 사람들이 무섭다는 소리거든요?”
“응.”
“그런데 무인들이 들락거리는 데니까 괜찮다고요?”
“걔들은 괜찮아.”
“…….”
주영기가 빙긋 웃었다.
‘말을 말아야지.’
이 새끼랑 대화를 하겠다고 생각한 자신이 병신이지.
“그보다…….”
“그보다는 이 새끼야! 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딨어!”
박유민이 주영기의 격한 반응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애도 아니고, 그만 좀 징징대라. 지금 네가 중요한 게 아니잖냐.”
“그럼 뭐가 중요한데?”
“진호가 지금 얼마나 답답하겠어. 너는 친구라는 애가…….”
“그래…… 나만 나쁜 놈이지.”
상처받은 듯 시무룩해진 주영기이지만, 박유민은 냉정하게도 그런 주영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진호야, 너는 별문제 없고?”
“응?”
박유민이 걱정 어린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네 성격에 그냥 손 놓고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또 무리하게 뭘 하려고 할까 봐 그래.”
“…….”
귀신이 따로 없다.
때때로 강진호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가족도, 최연하도, 이현수도 아니라 박유민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한다.
“아니, 그런 건…….”
“진호야.”
박유민이 단호하게 말한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
“…….”
“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 네 책임은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오지랖 넓은 사람은 아냐.”
“넓어!”
“너무 넓어!”
“…….”
두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고함 소리에 강진호가 움찔했다.
“뭐래? 오지랖 넓기로는 태평양이 따로 없는 새끼가.”
“그래, 진호야. 그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이 두 사람은 강진호가 부린 오지랖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었다. 그러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마, 테스 형 말도 못 들었냐? 너 자신을 알라!”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닌데, 여하튼 너는 오지랖이 너무 과도하게 넓어.”
“…….”
전에도 이런 소리를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격렬한 반응을 보는 건 처음 같다.
“그러니까 진호야.”
“응?”
“너무 무리하지 마라.”
박유민의 말에 주영기가 코웃음을 쳤다.
“야야, 차라리 소귀에 성경을 읽어라.”
“……그냥 경이야.”
“그게 그거 아냐?”
“……영기야, 제발.”
“여하튼 새끼야, 저 새끼가 사람 말을 잘도 듣겠다. 이번에도 잘 알았다고 끄덕끄덕하고는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지.”
강진호가 황당한 눈으로 주영기를 바라보았다.
“내가?”
“저거, 아닌 척하는 거 봐라. 인마,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오지랖 넓은 인간인 동시에 남의 말을 제일 안 들어 처먹는 인간이야!”
“그건 나도 동의해.”
“……너희,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 맞지?”
“그럼!”
“당연하지.”
강진호가 허탈하게 웃었다.
‘좋네.’
아주 더럽고 좋다.
망할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