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0
#199.
출연하다 (4)
뜬끔없는 황정후의 말에 강진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업이요?”
“그렇다네.”
황정후가 조규민을 슬쩍 바라보았다. 대신 설명을 하라는 뜻이었다.
조규민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에 강진호의 전화가 울렸다.
“음?”
강진호가 서둘러 전화를 끄려다가 액정에 떠 있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그러게.”
강진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황정후가 가만히 조규민을 보며 말했다.
“잘하는 짓일까?”
조규민이 간만에 쓴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강진호 씨는 백지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재경의 경영에 관여를 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럼 MBA를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본인이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아무 데나 골라 갈 수준인데, 외국으로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리 없이 학위를 따 올 것 같은데.”
“다른 기업이라면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재경은 회장님께서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만든 기업이 아닙니까.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본인이 아래에서부터 시작해 보아야 합니다.”
“음…….”
저 말은 마음에 들었다.
“하긴, 요즘 2세라는 놈들이 군대도 안 갔다 오고 외국에서 대충 학위나 따서 경영자니 뭐니 설치는 것을 보면 어이없긴 했지.”
‘회장님…… 2세가 아니라 3세입니다.’
생각해 보면 현재 기업들의 경영 일선에 나서 있는 이들은 황정후의 아들뻘도 아니라 손자뻘들이었다. 아직까지 일선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황정후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 조규민이었다.
“그러니 일찍부터 경영을 배우셔야 합니다. 최소한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나가는지는 아셔야 큰돈을 만졌을 때도 개념이 잡히실 겁니다.”
“그럴 바에야 작은 회사 하나를 떼어주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작은 돈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은 돈을 돈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미 재산이 충분히 있으신 분이라 앞으로 돈의 무서움을 느끼기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강제로라도 알게 해야죠.”
“흐음…….”
황정후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물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장사가 엄청 잘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돈 벌기가 쉽다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예?”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한 조규민의 머리가 헝클어지는 찰나에 강진호가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강진호가 자리에 앉자 황정후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 아버님 전화 같던데.”
“별일 아닙니다.”
“표정을 보니 별일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매출이 떨어졌으니, 하는 일 없으면 낮에 나와서 일을 좀 하라고 하시더군요.”
황정후가 눈을 찌푸렸다.
“자네 하나 더 돕는다고 매출이 얼마나 뛴다고 그러시는가?”
그러자 조규민이 조용히 손을 내저었다.
“올라?”
“세 배는 늘어날 겁니다.”
“…….”
황정후가 미묘한 시선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진짜 돈의 무서움을 알게 되는 거 맞나?’
조규민이 조금 애매하다 생각되었는지 헛기침을 하며 황정후의 시선을 피했다.
“사업이라고 하셨습니까?”
황정후는 입맛을 다셨다.
이리된 이상 기호지세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돌진을 해야 할 시점이었다.
“말은 사업이지만 거창하게 말한 것뿐이고, 가벼운 가게 하나를 해보는 게 어떨까 해서 하는 말이네.”
“어째서요?”
“으음…….”
황정후가 입맛을 다셨다. 경영 수업을 해야 하니까 사업을 해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런 귀찮은 설명은 조규민에게 맡기는 게 옳다고 생각한 황정후가 고개를 돌려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곧 조규민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했다.
“강진호 씨를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회장님께서, 강진호 씨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지금 경험하기 힘든 일을 미리 한 번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호의를 베푸신 겁니다.”
“호의요?”
“예.”
조규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사업이라고 하여 그리 부담 가시실 것 없습니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작은 프렌차이즈 하나 운영해 보시는 게 어떨까 하는 거니까요.”
“프렌차이즈라…….”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복학하기 전까지 한 번 해보시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강진호는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좋은 이야기였다.
“마음만 받죠.”
“…….”
“귀찮은 건 질색이라서요.”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조규민이 기겁을 하여 몸을 일으키더니 다급하게 강진호의 팔을 잡았다.
등 뒤로 황정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그가 입안한 일이 이렇게 틀어지면 무능한 놈이라 낙인이 찍힐 것이다.
‘절대 이렇게는 안 돼!’
기껏 빠져나갈 기회를 줬는데도 스스로 걷어찬 조규민이다. 이제는 이 길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단 말이다.
“물론! 물론 강진호 씨에게는 일만 늘어나지 딱히 메리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메리트가 될 만한 부분들을 준비했습니다. 일단 제 말을 들어보고 결정하시죠!”
“안 들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러지 마시고! 에이! 좀!”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규민은 칼날 같은 황정후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내고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창업 지원금은 이쪽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저 돈 있어요.”
“물론 있으시죠! 엄청 있으시죠!”
황정후의 눈이 좀 더 가늘어지자 조규민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당한 입지를 찾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개인이 입지와 법률적인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기는 힘들죠. 저희가 그 모든 부분에 대한 지원을 해드립니다. 강진호 씨는 6개월 동안 매장을 잘 운영하고, 처음 차입한 금액만 반환하시면 됩니다. 이 정도 조건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도 없군요. 그럼.”
“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조규민이 하하, 웃으며 강진호의 어깨를 꽉 잡았다. 결코 놓아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들어가 있는 손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냥 조건을 말씀드린 겁니다. 메리트는 따로 있지요.”
“그게 뭡니까?”
“학점이요.”
“……네?”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학점이라니, 이개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조규민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재경대학에는 체험 학습이 있습니다.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직종에 3개월 이상을 근무할 경우에 전공 3학점을 주는 시스템이죠.”
“음?”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6개월을 근무할 경우에는 6학점을 주게 됩니다. 물론 그 이상은 지급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론을 줄줄 꿰어봐야 실전에서 써먹어보지 못한 이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회장님의 훌륭하신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쓸데없는 것 빼고 말하게.”
“예, 회장님.”
황정후의 딴지에 아부의 기회를 날려 버린 조규민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여하튼 재경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신 강진호 씨라면 점장이나 사장으로 6개월을 근무하게 되시면 전공 6학점이 주어집니다.”
“괜찮은 시스템이네요.”
조규민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졸업을 당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강진호는 대학이란 곳에 별로 미련이 없었다. 그가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특히나 강유환은 아무리 재산이 많더라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졸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쾌한 교육관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딱히 쓸모도 없는 교육을 받으며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강진호에게 대학을 빨리 졸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구미가 당기는 메리트일 것이다.
“무척이나 좋은 시스템이네요. 그런데 왜 제가 이 사실을 몰랐죠?”
“경영학과생이면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경영학이니만큼 자신이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지 않으면 인정해 주지 않거든요. 인턴이나 알바로 경영을 배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6개월 단기로 사업을 해보겠다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요.”
강진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강진호야말로 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학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라는 건 알겠는데, 사실 제가 의문이 하나 들거든요.”
“예, 말씀하시죠.”
강진호가 반쯤은 넘어왔다고 생각한 조규민이 미소를 지으며 강진호의 질문을 기다렸다.
“이 시스템이 계절학기 6학점 듣는 것에 비해서 무슨 메리트가 있죠?”
“…….”
조규민의 눈이 멍해졌다.
“네?”
“여름방학이야 복학 문제가 있어서 어렵다고는 해도 겨울방학에 그냥 9학점을 들어버리면 되는 건데, 왜 굳이 이런 방법으로 6학점을 따야 하는 거냐, 이거죠.”
“아…….”
조규민이 멍한 얼굴로 물었다.
“계절학기 들을 생각이셨어요?”
“네.”
“……그러시구나.”
강진호가 뚱한 눈으로 말했다.
“학점이 더 필요하면 방학 동안 학점을 따면 되는 건데, 굳이 이런 식으로 6개월씩이나 걸려서 일을 하고 6학점을 따라고 하는 건 매우 비효율적인 일 같은데요? 이러니 신청자가 적고 알려지지 않은 것 아닌가요?”
황정후의 눈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 하지만 이건 최대 학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계절학기 포함해도 일 년 이수 가능 학점은 48학점이지만,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54학점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저 이번 년도 1학기 안 들어서 최대 학점 어차피 못 채워요.”
“아, 그렇네요. 하하…….”
멘탈이 나가 버린 조규민이 힘없이 주저앉아 소파에 기대 피식피식 웃기 시작하자, 강진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음? 버, 벌써 가는가?”
“용건 끝난 거 아닌가요?”
할 말이 없어진 황정후가 입만 꿈뻑거리고 있자, 강진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강진호가 회장실을 빠져나가자 황정후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칼날 같은 시선으로 조규민을 돌아보았다.
“……회장님, 그게 아니옵고…….”
“알고 있겠지?”
“예?”
“이유는 필요치 않아. 변명도 필요치 않아. 이리된 이상 후퇴는 없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강진호를 반드시 일하게 만들어.”
‘그만둘까?’
편한 삶보다는 강진호의 곁에서 재미를 찾고 싶다던 패기는 어디 갔는지, 조규민은 불과 하루 만에 어제 내린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돌아올 것 없어! 성공하고 나서 출근하게!”
“……유급 휴가를 준다는 소리신가요?”
“영원한 무급 휴가라는 말 들어보았는가?”
“해고지요.”
“잘 아는군. 그럼 잘해보게.”
황정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향하자, 조규민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조금 멍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쓸쓸히 계단으로 향했다.
“조 실장님, 또 계단 가신다.”
“또 깨지셨나 봐.”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항변할 기운도 없었다.
인적 드문 계단으로 향한 조규민이 가만히 휴대폰을 들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이 시간에 웬일이니?]“엄마, 나 진지하게 묻는 건데…….”
[회사 나오면 호적에서도 나가는 거여.]“……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조규민의 한숨은 그칠 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