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2007
#2006.
진군하다 (1)
“아니…….”
천태훈이 세상 한심한 표정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오시냐?”
“……사부님.”
“왜?”
“그게 숨는다고 숨어집니까?”
“…….”
애초에…….
강진호는 사람의 기운으로 사람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러니까 저 골방 안에 몸을 숨긴다고 해서 강진호가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방진훈은 어떻게든 강진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골방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좁은 공간으로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나오십쇼! 쪽팔려 죽겠습니다!”
“누가 본다고 쪽팔려!”
“아직 아무도 안 봤으니까 제가 아직 살아 있죠. 누가 봤으면 죽었죠!”
“…….”
천태훈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애초에 사무실에 그런 공간이 왜 있는 겁니까?”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옛날 총회는 살벌했어요. 사람 잡아와서 가두고 하려면, 이런 공간이 있기는 해야 하거든.”
“…….”
천태훈이 ‘제가 지금 그게 궁금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잖습니까?’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방진훈이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태훈아.”
“예.”
“나는 왜 이리 운이 없을까?”
“…….”
“이제 좀 살 만해졌다 싶으면 일이 터지고, 이제는 정말 좀 살 만하다 싶으면 더 큰일이 터지고.”
“…….”
“일본 놈들이니, 홍왕이니, 유럽이니. 하나하나 목숨 걸고 버텼더니, 이제는 뭐? 핵? 핵이 터져? 아오, 씨발. 내가 더러워서 은퇴하든 해야지.”
“사부님.”
“왜?”
“애초에 회주님이 우릴 안 도와줬으면, 우리는 벌써 저 지하에 묻혀서 콘크리트 관 뚜껑 덮고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인천 앞바다 바닥에 가라앉아 불가사리랑 친구 먹고 있든가요.”
“…….”
“운이 없긴 뭘 없습니까. 회주님을 만난 것 자체가 운이죠.”
방진훈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걸 너무 잘 알아서 하는 말이다.
천태훈의 말대로 방진훈은 강진호를 만나서 목숨을 건졌다. 이중걸이 일본 놈들까지 끌어들일 줄 상상도 하지 못한 방진훈에게는 애초에 승산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혹시 그 위기를 돌파했다 하더라도 영남회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그냥 도망가서 산속에 숨어 살았어야 하는 건데! 그때!”
“……우는소리 좀 그만하십시오! 볼품없게.”
“이 새끼야, 사느냐 죽느냐가 걸렸는데, 볼품은 얼어 뒈질! 지옥에서 폼 잡을 일 있냐!”
방진훈이 격하게 마른세수를 했다.
회주님이 선전포고를 해버렸으니, 이제 분명 소수가 핵미사일 기지로 진입할 게 분명하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나는 아니겠지?”
“…….”
“아니, 생각을 해보자고. 같이 갈 사람이야 빤하겠지. 일단 바토르 님, 그리고 장민 장로님, 위긴스 이사! 그리고…….”
“사부님요.”
“격이 다르잖아, 이 새끼야! 격이!”
“아, 그게 무인이라는 사람이 할 말입니까? 자존심도 없어요?”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격이 다른데 어쩌라고!”
방진훈이 초조한 얼굴로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회주님도 이성이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까? 그 새끼는 데려가 봐야 별 도움도 안 되니 그냥 냅 두자고, 차라리 마교 장로들 중에 몇몇을 뽑아서 가지 않으실까?”
“…….”
“아니, 이게 현실적이라니까? 잘 생각해 보…….”
그 순간, 방진훈의 고개가 문 쪽으로 격하게 돌아갔다.
“…….”
부정하려 해도 날카로운 무인의 감각은 문 앞에 다가와 선 존재의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아, 안 돼…….”
끼이이이익.
낡아 빠진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그 뒤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다.
강진호가 답지 않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방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무척이나 떨떠름한 얼굴로 그런 강진호를 바라보던 방진훈이 힘겹게 입술을 뗐다.
“……인사하러 오신 겁니까?”
“설마?”
“…….”
방진훈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를요?”
“그럼.”
“굳이 저를요?”
“말해 뭐 해.”
“…….”
방진훈이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뭐라 설명해야 할까, 이 기분을.
마치 망친 시험의 성적표를 결국 눈으로 확인해 버린 기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하시는 것 같은데…….”
“괜찮아. 실수해도 내가 하니까.”
“그 피해는 제가 고스란히 받는 것 같은데…….”
“감수해야지.”
“…….”
“그…….”
그때, 천태훈이 방진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부님.”
“…….”
“쓸데없이 저항하지 마시고, 한국 무인의 명예를 걸고 당당하게 가십시오.”
“뭘 가, 이 새끼야! 그럴 때는 잘 다녀오라고 해야지!”
“아니, 못 오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방진훈이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라는 눈으로 바라보자, 천태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장난입니다.”
“어, 그래. 장난. 나도 좋아하지, 장난. 나는 특히나 사람 뼈 부러뜨리는 장난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
불타는 눈으로 천태훈을 노려보던 방진훈이 한숨을 푹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강진호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강진호의 바로 앞에 선 방진훈이 눈을 끔뻑였다.
“진짜 실수하시는 것 같은데…….”
“설마.”
“어휴…….”
방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강진호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런 방진훈의 손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의 주먹에 자잘한 상처들이 나 있다.
방진훈은 이미 초인의 영역에 접어든 무인. 육체의 강도나 회복력은 평범한 무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이의 손에 아직 상처가 남아 있다는 건 많은 것을 의미한다.
‘대비는 끔찍하게 한 모양이군.’
방진훈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입으로는 죽겠다란 말을 달고 살지만, 어떤 상황이든 반드시 대비한다. 자신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가자고.”
“실수하시는 건데…….”
“괜찮다니까.”
“제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괜찮아, 괜찮아.”
“하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강진호를 따라가는 방진훈의 뒷모습을 향해 천태훈이 손을 흔들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사부님!”
“……너는 다녀와서 보자.”
조금은 결이 다른 합류였다.
* * *
“자, 그럼…….”
이현수가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럴 거면 그냥 이사진 모이라고 했으면 끝날 일 아닙니까? 그걸 굳이 하나하나 쫓아다니면서 모을 이유가?”
“…….”
강진호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닫자, 위긴스가 혀를 찼다.
“너는 미학이라는 걸 모르는군. 똑같은 결과라고 해도 그 과정이 다르면 평가도 다른 법이지.”
“…….”
“홍왕계에서는?”
“홍왕이 지원 올 겁니다.”
“홍왕이라…… 다른 이들은?”
“차이커창의 말로는 방해만 된다고 하더군요.”
“…….”
위긴스가 턱을 쓸어내렸다.
‘냉정한 판단이긴 하지만, 그 차이커창도 참 대단한 인간이군. 그걸 솔직하게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홍왕계에도 장로들은 있다. 아니, 장로의 수로만 따지자면 총회는 따라가지도 못한다. 그 장로들 중에서도 거의 초인에 근접한 이들이 있을 텐데…….
“심사가 너무 까다롭군.”
“현실이니까요. 무력이 부족해도 들이댈 만한 특성이 있다면 어떻게 넣어는 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흐음.”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에 홍왕까지라……. 조금 부족한 느낌인데.”
“하나 더 있다.”
“예?”
강진호가 턱짓으로 방의 구석을 가리켰다. 그러자 전신을 검은 망토로 두른 혈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써먹을 데가 있을 거야.”
“으음, 확실히.”
총회 이사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무력적인 측면으로는 아쉬움이 있는 혈마이지만…… 그 기괴함과 은밀함은 부족한 무력을 보완하고도 남는다.
‘조커 카드로는 더없이 적절하군.’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로드. 저, 바토르 님, 장민 장로님, 방 이사, 혈마, 홍왕까지 해서 총 일곱이군요.”
“아니. 하나 더 데리고 간다.”
“예?”
위긴스가 의문에 찬 눈으로 바라보자, 강진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있는 전력은 모조리 활용해야지.”
“설마…….”
위긴스가 멍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 * *
철컹.
굳게 닫힌 문이 열린다.
저벅, 저벅, 저벅.
완벽하게 닫힌 공간 안으로 강진호가 걸어 들어간다. 지하 특유의 음습함은 딱히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지하는 지하. 알 수 없는 갑갑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저벅저벅.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걸어간 강진호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창을 보며 섰다.
커다란 강화 아크릴 창 안에 갇혀 있던 사내가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군요, 회주님.”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녹이 쓸었나?”
“녹은 이미 쓸어 있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기름칠이나 근근이 해서 버티는 것이죠.”
마스터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다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머리는 전보다 조금 더 원활히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럼 됐군.”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라. 마지막 싸움이다. 전과를 올리면 풀어주지.”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저는 딱히 이 생활에 불만이 없습니다. 풀려나기 위해서 노력할 이유가 없죠.”
강진호가 잠자고 마스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회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목숨 정도야 걸어봐야겠죠. 그게 제가 회주님께 진 빚을 갚는 길일 테니까요.”
“그거면 됐어.”
강진호가 손을 휘젓자 마스터를 가두고 있던 강화 아크릴 벽이 단번에 박살 난다.
잘게 쪼개져 돌 조각처럼 바닥에 떨어진 아크릴을 밟으며 마스터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온다.
“금제는?”
“이미 풀었다.”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사라졌던 마력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한다.
“사람은 잃어봐야 아는 것도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이제야 이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이해한 것 같으니 말입니다.”
마스터가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마주 보았다.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한 번 잃은 신뢰는 어떻게도 회복이 안 될 텐데?”
“나는 여전히 너를 믿지 않아.”
“…….”
“하지만 믿는 이와 함께 싸우는 게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아니라는 건 이해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겠지.”
마스터가 그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럼 한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듣자하니 우리가 악역이라 했다던데?”
“물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마스터가 입꼬리를 뒤틀었다.
“평생 스스로를 선역이라 착각하고 살아온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지요. 이쯤 왔으니, 인생의 마지막으로 악역을 한 번 제대로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마음에 드는군.”
강진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마스터가 그 손을 꽉 맞잡는다.
“출발은 내일 아침이다. 준비해.”
“분부대로.”
최후에 확정 된 인원은 모두 여덟.
세상을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적은 숫자였다.